(1) 관료에 포획된 무능한 정부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87년 이후) 정치 엘리트들이 관료 엘리트의 도움 없이는 국정 운영 자체가 어렵게 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의존이 급속히 커지고, 행정 관료 엘리트의 권력이 (과거 군부 독재의) 권위주의 시기보다 커지고 있다"면서 "역설적으로 민주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보다 더 관료에게 포획된 정부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 시기부터 시작된 한미 FTA의 전 과정은 이러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더구나 정권이 계속 바뀌면서 이들 관료 집단에 대한 통제는 더욱 어렵게 된다. 정책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본적 과업이 모두 관료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관료집단의 '인(人)의 장막'과 '관행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대통령은 '청와대 하숙생', 국회의원은 '국회 5년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게 된다.
특히 최 교수가 지적한 대로 "민주화 이후 한국의 행정 관료체제는 유능한 관료에서 무능한 관료로 변하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들을 통제할 기제가 결여된 채 계속 교대되는 권력에 대한 줄 대기가 성행하는 가운데 무책임과 전문성의 결여 그리고 복지부동의 부정적 측면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권의 무능과 함께 총체적으로 무력하고 무능한 정부로 귀결됨으로써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정당과 정부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고시(考試)에 의한 고위관료 선발 제도(고시제도는 기수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엘리트 관료의 파워를 키우는 재생산 기제로 작동되고 있다) 폐기되어야 하고, 고위직 관료는 기본적으로 전문성 있는 외부인사로 충당될 수 있도록 개방직으로 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철저한 평가 및 감사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 우리 사회의 두 대척점, 비정규직과 재벌
이제 우리 사회는 크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양대 계급으로 구분해야 할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로 부상하였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는 그들의 이익을 지켜줄 노조와 정당이 존재하지만,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켜줄 아무런 조직도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들은 어느 개그맨의 풍자처럼 "숨만 쉬고 89세까지 살아야" 집 장만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어떠한 민주주의도 빛 좋은 개살구, 허울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점에서 사회의 가장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호 역시 존중되어야 하지만, 대규모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지속적 이윤을 추구하는 대자본의 논리이며 결국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양산과 맞물려 있는 문제라는 점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반면 재벌의 지배력이 우리나라처럼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구석구석까지 재벌들이 총체적으로 지배하여 재벌 및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되고 있다. 재벌의 '자유'는 반드시 악(惡)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대부분 독점과 탐욕 그리고 절대다수 대중에 대한 질곡으로 귀결되기 쉽다는 점에서 반드시 조정되고 규제되어야 한다.
2.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험대, '온라인 시민대표'
지금 이른바 '제3정당' 창당 여부가 관심사로 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정당 창당의 과정을 살펴볼 때 대부분 시종 상층 인사들만의 이합집산과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일관되었으며, 그리하여 또 다른 제3정당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결국은 기성 제도권 정당과 별 차별성 없는 형태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소요될 엄청난 자금 문제 역시 만만치 않은 난제이다.
지금 우리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아래로부터의 힘'이 활성화되고 이것이 효과적으로 체제 내에 반영되는 시스템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해내는 요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필요한 것은 상층 인사 위주의 방식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자발적으로 건설되어 그 의사가 반영되는 그러한 정치 조직이다.
이 시점에서 현재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는 '무당파' 대중들을 결집시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곧 '온라인 시민대표'를 '아래로부터' 전국적으로 조직해내는 것이다.
SNS로 상징되는 온라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전례 없는 새로운 사회와 대중이 출현하였다. 하지만 기존 정당과 의회 시스템은 이 다이내믹한 변화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당들은 '자기들만의 리그'만 관람하도록 강요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대표를 선출할 권리 행사는 사실상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며 또한 현 국회가 민의의 반영에 현저히 취약하기 때문에, 이제 온라인을 통하여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진정한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들을 지켜줄 아무런 장치도 갖지 못한 비정규직에게도 당연히 개방된다.
이 '시민대표'의 선출과정에서 후보자들은 자신의 '공약'을 내걸고 '투명한' 온라인 선거운동을 하며, 필요할 경우 오프라인에서의 결합도 적절하게 배합한다. 후보자의 연령 제한은 17세 정도로 대폭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이 조직은 특히 초기 단계에서 최대한 기존 정파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역량을 세워나가도록 한다.
'온라인 시민대표'는 민의의 반영 시스템이 전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이며 대의제도의 실제적이고도 유력한 보완이다. 또한 현재 왜곡된 소통을 이어주는 유력한 방안으로서 이른바 '광장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현 수단이며, 현대 온라인 정보사회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정신과 제도를 올바르게 반영하는 정명(正名)의 실천이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대중과 유리된 채 오히려 대중 위에 군림하는 오프라인 정치에 대한 깨어 있는 '시민'들의 강력한 견제이자 심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온라인 대표'에 만약 결원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선출하여 강인한 지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향후 이 온라인 대표의 역할은 대의제도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기제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제도권 정당과의 경쟁 구도에 의하여 정당으로 하여금 대중과 유리되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 기능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온라인 시민대표'가 국가의 합법적인 기구로 정착되고 의회의 공식적인 구성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도약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 안철수 교수, 15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재산 환원 취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3. 정당, 안철수의 길이 아니다
7,80년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세력을 지니고 있던 민주화운동 진영은 왜 스러져 갔을까?
여기에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무엇보다도 민주화운동 세력이 주체적인 역량을 구축하지 못하고 제도권 정당에 경쟁적으로 진입함으로써 스스로 급속하게 왜소해지고 분열하면서 무력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서울대 안철수 교수의 행보를 위하여 생각해보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막 순간에 지지 의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정치권 진입, 혹은 직접적 개입의 시기는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본다. 현재 제3정당 창당론도 제기되고 있고, 또 통합정당 건설론도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 그것들은 안철수의 당면 과제가 아니다.
이우위직(以迂爲直), 우회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며, 부전이승(不戰而勝),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상의 승리이다. 안철수 교수는 이미 서울시장 선거에서 싸우지 않고 승리하였고, 우회함으로써 가장 빨리 도달하였다. 전혀 아쉬울 것도 없고 서두를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기성 정치인처럼 상층 위주의 정치공학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힘'을 중시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만약 위에서 제기한 '온라인 시민대표'가 실현된다면, 사실상 이미 '온라인 시민대표'의 한 대표인 안 교수는 그와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다.
이미 객관적 조건은 충분히 성숙되었다. 우리 사회의 '무당파'는 이미 40%에 이르고 있고,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다. 여기에 주체적인 역량이 결집되는 상황이 되면 선거라는 전쟁터에 나아갈 것이고, 반대로 역량이 아직 부족하거나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서울시장 선거처럼 자신과 가까운 우군을 '진정성을 가지고' 지원하면 된다.
고단한 시대, 대중들은 영웅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간 '영웅으로 추앙되었으나 영웅이지 못했던' 숱한 인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다시 우리 시대의 영웅의 반열에 선 안철수, 그는 기성 정치인에게 결여된 신뢰성을 무기로 삼고 특유의 그 넉넉함을 바탕으로 대중의 열망을 받들어 역사적 과업을 잘 수행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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