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대의민주주의는 과연 '민주주의적'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대의민주주의는 과연 '민주주의적'인가?

[기고] '안철수 현상'을 지켜보며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①

'안철수, 박원순 현상'으로 상징되는 기성 정당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 혹은 혐오는 과연 정당이란 무엇이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낳게 하고 있다. 월가 점령시위로 드러나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 또한 미국식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엄중한 문제 제기이다.

과연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그 자체인가? 민주주의와 등치될 수 있는 것인가?

인간들은 사회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속해있는 각 층위(層位) 조직별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게 된다. 이른바 '서구식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다수의 정당에 의한 선거에 의하여 대중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두 개, 혹은 몇 개의 정당만이 후보자를 내세우고 '자기들만의 경쟁'을 통하여 대표를 선출함으로써 결국 대중들을 수동적인 지위로 전락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 더구나 그들 정당 대부분이 사실상 대자본의 영향력하에 강력하게 포섭되어 명백한 '계급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1942)의 저자인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아예 "민주주의란 정치 엘리트 간의 경쟁이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여기에서 슘페터의 지적은 매우 예리했지만,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대의제' 혹은 '오늘날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어야 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부르주아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대의제의 역사

대의제도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형성되어 발전하였다. 영국에서 대의제도는 17세기에 형성되었는데, 당시 대의기관은 곧 의회를 말하고 있었다. 의회, 즉 'Parliament'라는 말은 '의논하다'는 행위를 뜻하였으며, 이는 당시 영국에서 '대자문회의(大諮問會議)'에서의 귀족들의 논의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 의회는 군주제 하에서 일종의 자문기관에 불과하였고, 군주에 의하여 좌지우지되어 그 선출과 소집은 철저하게 군주의 의사로 결정되었다.

그 뒤 명예혁명과 함께 의회의 발전이 이루어져 소위 의회과두제가 형성되었는데, 당시 의원 1/3 이상이 귀족이거나 이에 준하는 계층이었고, 과거 의원을 배출한 가문에서 나온 의원이 압도적 다수로서 의회는 사실상 상류층의 클럽이었다.

선거권도 일정한 재력을 지닌 남성으로 한정되었고, 귀족과 부호들은 재력으로 그들을 매수하고 사회적인 힘을 행사하여 위협으로 획득한 의원직은 금권 정치의 경향을 띠게 하였다. 이는 당시의 의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기능하기보다 귀족과 부호들의 금권정치를 유지시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의제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는 논거는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발생사적 요인에 근거하고 있다. 1866년까지 선거권을 지닌 사람은 불과 100만 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3% 수준이었다.

이렇게 하여 영국에서의 대의제도는 초기에 군주와의 투쟁으로부터 비롯되어 점차 부르주아 계급에 의하여 발전되었는데, 이것이 대의 원리에 부합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 실현된 보통 및 평등선거에 의해서였다.

군주와 민중을 혐오하고 귀족의 통치를 지향하다

당시 영국 대의제의 이념을 정립한 인물은 바로 버크(E. Burke)이다. 그리고 버크의 이 '대의이론'은 현대적 대의제도의 이념적 온상으로 되었다.

18세기 영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휘그주의(Whiggism)는 귀족적 과두제를 옹호했는데, 명예혁명 후 의회가 강력한 힘을 가지면서 영국에서 지배적인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휘그주의를 철저하게 체화했던 버크에 의하면, 의회란 군주 주권에 반대하여 정부를 창출해낼 수 있는 다수를 만들어주는 것을 담보하는 존재로서 그 구성원인 의원은 정치적으로 유효한 방법을 찾아내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실현시키는 사람이다. 따라서 의원은 공적인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어디까지나 독자성을 지닌 공인(公人)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선거민의 대리인이어서는 안 되며 선거인에게 기속(羈束)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여 E. Burke는 이른바 '명령적 위임(imperatives Mandat)'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선거에서 선출된 자가 선거민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그 행위는 선거인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으로서 기속위임(羈束委任)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의 반대어는 바로 자유위임(freies Mandat), 혹은 무기속위임이다.)

그에 따르면, 의원은 전체적인 공공복리의 실현을 위하여 집단적인 선거민의 명령적 위임이나 개인적인 개별적 선거민의 명령적 위임에 기속되어서는 안 된다. 즉, 의원은 선거로 선출된 후 자신의 선거구 내지 선거구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선거구민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통치란 이성에 맞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덕을 갖춘 자가 담당해야 하고, 국민은 이에 직접 개입하면 안 된다.

이러한 E. Burke의 주장은 결국 군주와 국민을 혐오하고 그로부터 거리를 둔 상태에서 귀족들에 의한 통치를 도모하고자 한 휘그주의의 기본 노선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었다. 당시의 의회주권이라는 논리는 귀족들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군주를 견제하려는 의도와 함께 국민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영국 대의제도는 17∼18세기에 '군주주권'만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갖는 '국민 주권론'에 대해서도 투쟁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을 지니면서 결국 '의회 주권론'으로 귀착되었다.

* 기고문의 특성상 주석은 생략하였음을 양해바랍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