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자못 크다.
노 당선자가 대선에서 차기대통령으로 확정된 것은 불과 14일전 일이다. 2주가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사이 국민들은 노 당선자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새해를 맞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盧당선자 지지도 89.1%, "역시 지혜로운 국민"**
한 예로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달 26일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 당선자의 국정운영 전망에 대해 '대체로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66.2%, "아주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22.9%로 긍정적 시각이 89.1%에 달했다.
이는 노 당선자의 대선 득표율이 48.9%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대선때 상대방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국민들도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 새 대통령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이 얼마나 성숙했으며 지혜로운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예다.
앞의 여론조사는 동시에 우리 국민들이 노 당선자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도 말하고 있다.
새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응답자의 45.2%가 경기회복, 14.7%가 북핵ㆍ남북관계를 꼽았고, 그 다음이 부정부패 척결(14.0%), 정치개혁(7.1%) 순이었다.
노 당선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국민의 주문 메뉴인 셈이다.
***盧, "국민이 대통령"**
노 당선자는 구랍 31일 기자간담회때 자신의 좌석 뒤편에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역대 민간출신 대통령들도 정권출범때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YS는 '문민정부', DJ는 '국민의 정부'를 표방했다. 캐치프레이즈는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의미한다. YS는 군부가 아닌 문민임을, DJ는 기득권층이 아닌 국민임을 강조했다. 당시 국민들도 이같은 캐치프레이즈에 공감하며 집권초기에 새 대통령에게 80~90%의 높은 지지율로 호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캐치프레이즈 성취도는 '반쪽'에 그쳤고, 많은 국민들을 실망케 했다.
노 당선자의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권력주체가 기득권층이 아닌 '국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대로 한 '자리매김'이다. 국민 또한 90%에 육박하는 높은 호응도로 노 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임자들의 숱한 '약속 불이행'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시와 김정일의 '벼랑끝 게임'**
노 당선자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엄중한 '시련'을 맞고 있다. 북핵위기가 그것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금 '벼랑끝 게임'을 벌이고 있다. 외형상 제3자가 끼어들 틈조차 보이지 않는 극한대결 양상이다.
노 당선자는 개탄했다.
우선 북한에 대해선 "내게 시간도 주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에 대해선 "대북정책 결정시 한국민의 의사와 생존권이 가장 존중돼야 한다"는 민족주체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이어 신년사를 통해 "북핵위기를 풀 자신이 있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메시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위기를 놓고 일부 수구세력과 정파는 '딴지걸기'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대선 패배에 따른 아노미 상태에서 '정치적 반전'을 도모하겠다는 계산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앞으로 북핵위기를 풀어가는 데 있어 국내외적 장애가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노 당선자 앞에 출현한 '샌드위치 위기'**
역대 정권도 집권시 위기를 맞았다.
YS정권은 노태우정권의 '거품경기' 몰락에 따른 심각한 경기침체를 전임정권으로부터 물려받았다.
DJ정권은 IMF사태라는 최악의 위기를 물려받았다.
YS는 '신경제 1백일 작전'을 비롯한 일련의 경기부양책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겨냥한 일종의 포퓰리즘적 대응이었다. YS는 그후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등 경제를 정치논리로 이끌다가 재임 말년에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초라하게 물러나야 했다.
DJ는 앵글로색슨형 구조조정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미국과 IMF의 강제적 주문사항에 따른 선택의 폭이 좁은 대응이었다. 그 결과 금융ㆍ외환위기는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랫목이 뜨근해지기 시작했으니 곧 웃목도 따끈해질 것"이라던 대국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반쪽 성공이었을뿐이다.
이런 면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맞이한 위기는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다. 어찌 보면 더 엄중하다고도 할 수 있다. DJ집권 당시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나 경제여건이 대단히 좋지 않다. 특히 외부 경제여건은 세계공황이 우려될 정도로 역대 최악이다. 여기에다가 북핵이라는 메가톤급 위기가 도래했다.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동시출현한, 일종의 '샌드위치 위기'다.
북핵 위기는 외교안보상의 위기인 동시에 잠재적 경제위기다. 지난해말의 주가 폭락에서도 엿볼 수 있듯, 우리나라의 컨트리 리스크(국가위험도)를 크게 심화시킬 수도 있는 이번 위기에 제대로 대응 못하면 경제불안은 크게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닌 주체다"**
샌드위치 위기에 대한 노 당선자의 첫 대응은 일단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북핵위기와 관련, 7천만 민족의 생존권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입장 표명은 향후 북핵위기 해결을 둘러싼 국제역학관계에서 우리나라가 북-미 게임의 '구경꾼'이 아닌 '주체'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도 재계에 '충격적 조치'가 없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도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외국투자가들을 겨냥해 조흥은행 매각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일관되게 추진하겠으며 증권 집단소송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도입하겠다는 입장표명도 외국투자가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구체적 과정에 들어가면 각종 험로가 예상된다. 북핵위기의 경우 미국과 북한이라는 두마리 황소싸움을 뜯어말리며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까지 숱한 '결단'과 '지혜'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노 당선자는 워싱턴과 평양, 베이징을 무수히 들락거려야 하며, 필요시에는 부시 및 김정일과 예리한 대립각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제 위기 돌파도 간단치 않은 과제다. 훌륭한 청사진을 그리기란 쉽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물, 그것도 작은 돌맹이 하나만 떨어져도 순식간에 흘어지는 송사리떼에 비유되는 경제는 그렇게 쉽게 쥐락펴락할 수 있는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실물경험이 많고 미시경제에 밝은 인재풀이 부족한 노 당선자의 경우는 특히 그러할 것이다.
***국가 CEO, 노 당선자가 할 일**
도미닉 바튼 한국맥킨지사 대표는 <위험한 시장>이라는 근저에서 "탁월한 CEO란 위기를 경쟁자 도태의 기회로 반전시킬 줄 아는 CEO"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아울러 훌륭한 CEO는 위기의 도래를 동물적 감각으로 읽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해하는 임직원들에게 '위대한 이야기(Great Story)', 즉 장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는 국가 CEO다.
CEO가 할 일은 민간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위기라는 도전에의 응전이다. 반면에 CEO가 져야 하는 짐은 중차대하다. 일선직원의 시행착오는 조직에 치명상을 입히지 않아 피해를 곧 회복할 수 있으나, CEO의 시행착오는 조직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CEO는 따라서 고독할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고독을 돌파할 수 있는 힘찬 원동력은 있다. 다름아닌 '국민'이다.
특히 우리 국민은 더없이 현명하고 수준높다. 선거 과정이 아무리 치열했든, 선거 기간중 누구를 밀었든 간에 일단 결과가 나오면 깨끗이 승복하고 새 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세계최고의 정치국민'이 바로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노 당선자가 진심으로 신봉한다면 우리 민족앞에 도래한 '2003년의 위기'는 도리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대약진의 계기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국민이 대통령"임을 잊지 말고 모두가 힘과 지혜를 합쳐 맹진할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