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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칼자루 쥔 쪽은 칼라일 아닌 국민은행"

<심층분석> 한미은행 매각-초조한 칼라일, 느긋한 국민은행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금융계가 술렁이는 가운데 한미은행 최대주주인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팔겠다"는 입장을 흘려 '2차 은행합병 전쟁'이 본격화하는 국면이다.

칼라일 관계자는 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골드만삭스의 검토 보고서를 토대로 국내 1개 우량은행과 합병협상을 벌이거나, 합병이 여의치 않으면 공개입찰 절차를 거쳐 보유지분을 국내외 투자가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한 뒤 연말까지 결론지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칼라일, "한미은행 지분 팔겠다"**

조선일보는 이 관계자의 말에 근거해 "최근 매각주간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 합병대상 은행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하거나 공개입찰을 통해 한미은행 보유지분(35.7%)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합병 작업을 완료한 국민은행도 한미은행 인수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8일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한미은행은 즉각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8일 "매각주간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기 위해선 이사회를 열어야 하나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골드만삭스의 검토보고서라는 것도 증권사들이 수시로 생산하는 보고서중 하나일뿐, 보도처럼 매각추진을 위한 자료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한미은행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금융계에서는 칼라일 관계자의 이번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000년 11월 15일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하면서 맺은 계약에 따라, 인수후 2년 만기가 되는 오는 15일이후 칼라일은 지분매각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라일의 이번 발언은 신한지주가 조흥은행 인수를 선언하면서 '제2차 은행합병' 붐이 조성되는 시점에 맞춰. 국내금융시장에 지분매각 의지를 흘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자도 못 건질 위기에 몰린 칼라일**

금융계는 그러나 칼라일의 매각 제안이 시장에서 쉽게 먹힐지는 두고봐야 안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미은행 주가가 너무 형편없는 까닭이다.

8일 현재 한미은행 주가는 7천7백원대다. 요즘 들어 8천원을 기준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한미은행 주가는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4월22일 주당 1만5천3백원까지 올랐었다. 현재 주가는 당시와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난 상태다. 현 가격수준으로는 칼라일이 결코 주식을 팔 수 없다.

칼라일은 지난 2000년 11월15일 미국 투자은행 J.P.모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미은행이 발행한 해외주식예탁증서(DR)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4천4백47억원을 투자해 한미은행 지분 40.7%를 사들였다. 이때 평균 매수가격은 주당 6천8백원이었다.

여기에다가 또하나 고려해야 하는 게 한미은행 주식 매입 당시의 환율이다. 당시 환율은 달러당 1천1백15원이었다. 8일 현재 환율은 1천2백10원대. 따라서 당시 달러화를 들여와 환전을 해서 인수대금을 치른 칼라일 입장에서 보면, 2년사이에 달러당 1백원의 '환차손'을 입은 셈이다.

환차손까지 고려한다면 칼라일은 지금 주당 8천원을 받아야 간신히 본전을 찾는 셈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 현주가에다가 큰 폭의 프리미엄을 붙여 팔지 못한다면, 칼라일은 이자도 못 뽑는 손해보는 투자를 한 게 된다.

칼라일같은 투자펀드의 경우 일반적으로 연 34%의 수익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칼라일이 한미은행에 투자한 지 2년이 된 만큼 68%의 수익률이 보장돼야 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 계산법에 따를 경우 칼라일은 주당 투자액 8천원에 목표수익 5천4백여원을 더한 1만3천4백원에 팔아야 한다.

***유일한 매수 능력 보유자는 국민은행**

문제는 현재 8천원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미은행 주식을 두배 가까운 1만3천여원에 살 곳이 과연 국내에 있겠느냐이다.

칼라일은 우선적으로 국민은행에게 팔 생각이다.

칼라일은 그동안 신한지주에 한미은행 지분을 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물밑 접촉도 해왔다.

한미은행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이와 관련, "신한지주에게 당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는 "신한지주가 그동안 한미은행 인수의사를 흘리면서 실제로는 지난 3월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클로즈(종료)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한지주는 그때부터 한미은행을 연막으로 삼아 실제로는 조흥은행을 주목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의 한미은행 추가인수 가능성에 대해서도 "하나은행에 과연 그런 총알(자금)이 있겠느냐"고 회의적이었다. 또한 지난 2000년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던 하나은행과 한미은행 합병을 칼라일이 백지화시킨 '전력'도 하나은행의 참여 가능성을 희박하게 하는 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은행 가운데 한미은행 인수 여력이 있는 곳은 국민은행 한 곳뿐이라는 게 현재 칼라일이 도달한 최종결론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1조원을 넘게 벌어들여, 국내 은행 누구보다 총알이 넉넉한 탓이다.

게다가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한미은행 인수 의지를 분명 갖고 있다. 김 행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가합병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자은행을 두는 방안은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국민은행의 서민적 이미지를 보완할 수 있는 은행의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미은행을 의식한 발언임에 분명했다.

김 행장은 주택은행장 시절이던 지난 2000년 11월 칼라일이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한 직후 김병주 칼라일 한국대표에게 합병 의사를 타진한 바 있다. 하지만 그때 김병주 대표가 "6개월후 얘기하자"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그 대신 국민은행과 합병을 선택해야 했다.

김 행장은 당시 한미은행의 '우수한 인력'과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은행, "글쎄, 한미은행 주가 더 떨어지지 않겠냐"**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지금의 국민은행은 2년 전의 주택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행장은 한미은행과 합병할 생각이 없다. "한미은행 하나 정도를 합쳐봤자 뭐 크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식이다. 또한 합병과정에 불가피하게 불거질 감원 등을 둘러싼 진통도 귀찮아 하는 눈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자은행' 개념의 지분인수 방식이다. 요컨대 주식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뒤 별도 경영을 시키는 방식이다.

김 행장은 그러나 자은행 방식의 인수에 대해서도 하나의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다. 먼저 정부가 모은행과 자은행간의 정보 공유를 허용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금융지주회사만 계열사간 정보공유가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가 모은행과 자은행에 대해서도 정보공유를 허용해줘야만 자은행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정부가 이같은 규제를 풀어줘야만 한미은행 인수에 나서겠다는 게 김정태 행장의 생각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또 인수가격과 관련해서도 칼라일이 부르는 값을 쳐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미은행은 지난 3.4분기에 7백90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이는 2.4분기의 3백90억원에 비교할 때 크게 약진한 수치다. 카드와 가계대출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카드와 가계대출은 이제 '악재'다. 연체율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4.4분기부터는 은행 수익에 도리어 암적 존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배적 판단이다. 이는 앞으로 상당 기간 은행주가가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현재의 한미은행 주가 수준도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칼라일이 내심 기대하는 높은 가격으로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일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칼라일이 투자한 본전에다가 약간의 이자를 덧붙여주는 수준의 가격을 생각하고 있음을 감지케 하는 발언이다.

이같은 국민은행측 반응을 보면, 칼라일 생각대로 협상이 쉽게 진행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공개입찰을 붙인다 해도 상황이 그리 개선될 것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칼라일의 기대치를 채워줄 가격을 써낼 이들은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칼자루를 쥔 쪽은 국민은행이고 칼날을 잡은 쪽은 칼라일인 형국이다.

***국민은행도 내심 인수할 의사는 있어**

한 공적자금 투입은행 임원은 "칼라일은 '한미은행 지분을 팔겠다'가 아니라 '팔고 싶다'고 말해야 솔직하다"는 의미심장한 촌평을 했다.

이 임원은 "칼라일이 한미은행 매각 의사를 언론에 흘린 것은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겠냐"고 분석했다. 그는 "합병 국민은행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했고, 신한지주가 조흥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마당에 한미은행 같은 소형은행이 홀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며 수익력도 나날이 악화될 것"이라며 "칼라일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한미은행 지분을 매각해야 그나마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임원은 "알아주는 장사꾼인 김정태 행장이 이같이 초조한 칼라일의 심정을 모를 리 없다"며 "시간을 끌수록 칼라일의 협상력만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국민은행도 '가격'만 갖고서 한미은행을 평가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 일정한 신경전 끝에 극적인 막판 타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내년도 은행 영업환경은 올해보다 악화될 게 분명하며, 이럴 경우 수익력을 계속 확대할 수 있는 방법중 하나가 은행 인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금융계에서는 평소 김정태 행장이 하영구 한미은행장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대목도 국민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박태준 사위인 김병주 대표도 한미은행 우선주 3백억 보유**

칼라일은 지난 87년 프랭크 칼루치 전 미 국방장관 주도로 설립된 투자펀드로, 자산운용규모가 1백50억달러에 이른다. 칼라일은 현재 미국대통령인 조지 W.부시가 한 때 임원으로 경영수업을 받았고, 부시 대통령 아버지인 조지 부시가 현재 칼라일 고문으로 재직할 정도로 정치적 파워가 막강한 펀드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태준 전총리가 고문으로 재직중이며, 그의 사위인 김병주씨가 현재 칼라일 펀드의 아시아책임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김병주 대표는 칼라일이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할 때 별도로 3백억원 규모의 한미은행 우선주를 함께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과연 이같이 간단치 않은 배경의 칼라일 펀드가 한미은행 지분 매각에서 얼마나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벌써부터 국내외 금융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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