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짤막한 기사를 실었다.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촌들이 운영하던 사우디아라비아 굴지의 건설회사이자 투자그룹인 ‘사우디 빈라딘 그룹’이 상호합의하에 미국 칼라일 그룹과의 거래를 청산하기로 했다는 보도였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빈라딘 그룹은 그동안 방위산업 및 우주항공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칼라일그룹 펀드에 돈을 맡기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9.11테러후 미국내 여론이 험악해지자 거래를 끊게 됐다.
이 신문은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칼라일그룹 회장인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장관이 조지 부시 전대통령,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과 함께 사우디 제다에 있는 사우디 빈라딘 그룹 본부를 여러 차례 방문했었다고 보도했다. 조지 부시 전대통령은 칼라일그룹의 고문, 제임스 베이커는 칼라일그룹의 파트너(공동주주)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부시 전대통령과 빈 라덴 사촌들간의 끈끈한 물밑 유착**
이 보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칼라일그룹,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공화당정권 사이의 끈끈한 물밑 유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주목할 만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모론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하고 있는 미국은 자신이 오래 전에 던진 부메랑에 의해 허덕이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가능해진다. 어쩌면 조지 W.부시대통령 등 공화당이 밀접한 연관이 맺고 있는 칼라일그룹이 사우디 빈라딘 그룹과의 유대강화 또는 무기수주를 위해 중동에 뿌린 로비자금의 일부가 빈 라덴의 테러자금으로 쓰였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 이스라엘, 대만과 함께 미국 군수산업의 4대 시장중 하나로 꼽히는 나라이다. 따라서 사우디는 미국 군수산업체의 오랜 로비대상 가운데 하나였고, 미국 굴지의 군수 펀드인 칼라일그룹은 당연히 각종 로비인맥을 동원해 사우디를 중점관리해왔다. 이같은 로비의 최전방에 선 인물이 다름아닌 조지 W.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었고, 조지 부시의 각료들이었던 프랭크 칼루치와 제임스 베이커 등 공화당인맥이었던 것이다.
***자본금 1백20억달러의 세계최대 군수펀드**
칼라일 그룹의 인터넷 홍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칼라일은 스스로를 전세계 50개국의 3백90여명의 투자가들로부터 돈을 모아 무기, 방위산업,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자본금 1백20억달러(2000년말 현재)의 ‘글로벌 투자펀드’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칼라일은 그 정확한 실체가 국제금융계에서조차 아직 베일에 덮여있을 정도로 미스테리한 집단이다. 가뭄에 콩나듯 때때로 미국의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외환ㆍ금융위기로 넋이 나갔던 지난 98년 1월초 일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칼라일 그룹을 ‘미국 최대의 성장펀드’로 꼽았다. 칼라일 그룹이 아시아 금융위기가 폭발한 97년에 10억달러의 이익을 벌어들여 다른 쟁쟁한 월가 투자회사들을 제치고 정상의 자리에 우뚝 올라섰기 때문이다. 칼라일 펀드는 또한 창립후 10년간 연평균 34%의 기록적인 투자배당을 해왔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87년 워싱턴에서 설립된 칼라일그룹은 불과 5년전만 해도 제임스 베이커 전국무장관과 리차드 더먼 전예산국장 등 일부 유명 전직관료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빼면 월가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2류 펀드’중 하나였다. 그러나 칼라일그룹은 이제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칼 오토 폴 전 독일 분데스방크(독일중앙은행) 총재 등의 투자파트너들로부터 투자자금을 모아 사업영역을 전세계로 확대하고 있는 슈퍼파워가 됐다.
***박태준 전 총리도 칼라일그룹 자문**
그로부터 3년 뒤 나온 지난 3월5일자 뉴욕타임스 보도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부시정부 출범에 즈음해 부시정부의 뿌리를 파헤친 이 기사에 따르면, 조지 부시 전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로버트 칼루치 전 국방장관 등 80년대 공화당 정권 시절 재직했던 고위 관리들이 칼라일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거나 자문역을 통해 회사의 돈벌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본유치 및 투자를 전문으로 하면서 미국내 11번째 방위사업 계약자이기도 하며, 탱크와 비행기 날개 등 다양한 군장비를 제작하는 회사를 직접 소유하고 있다. 또한 2000년말 현재 전세계 1백64개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회사의 고용인원은 7만명에 달하며 매출액은 1백60억달러에 달한다.
칼라일은 전세계로 영업을 확장하면서 아시아 등지에 자문역을 두고 있는데, 한국의 박태준 전 국무총리,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태국의 파냐라쿤 전 총리 등이 자문역을 맡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말 칼라일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왕세자와 만난 뒤 파드 왕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과 요트여행을 하고 저녁식사를 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서는 국무총리와 정부 고위관리 및 재계인사들을 만났으며, 이후 칼라일은 한국내 몇 안되는 건실한 은행의 하나인 한미은행의 지배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다른 상대들을 눌렀다.
***조지 W.부시 대통령도 한때는 칼라일 임원**
칼라일은 지난 90년 경력을 쌓기를 바라던 부시 현 대통령에게 이사직을 제공한 바 있다. 당시 부시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칼라일 그룹의 자회사로 비행기 조달업무를 하고 있던 카터에어의 이사가 됐었다.
베이커 전 장관은 아예 이 회사의 소유자 중 한명이며, 칼루치 전 장관은 이사회 의장으로 있다. 부시정부의 도널드 럼스펠드 현 국방장관과 대학 동기생으로 절친한 사이인 칼루치는 국방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상대이다. 칼루치는 칼라일이 수십억달러짜리 방위 관련 사업을 검토중이던 지난 2월 리처드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장관을 만났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현재 1백37억달러 규모의 크루세이더 탱크사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상이 뉴욕 타임스의 보도 요지였다.
***칼라일 펀드는 CIA펀드이자 군수펀드**
이런 보도들을 접하면, 칼라일이 단순한 투자기관이 아니라 각국의 우익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경(政經)복합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한 외국계 전문가는 칼라일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칼라일은 그 뿌리를 더듬어가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시절 CIA는 중남미 좌익게릴라들에게 대항하는 우익세력을 돕기 위해 극비리에 자금을 조성해 운영해왔다. 그러다가 이 사실이 드러나 미국 국회에서 노스 중령 청문회가 열리는 등 크게 정치문제화 되자 기존에 조성된 자금의 일부를 양성화했는데, 이것이 바로 칼라일 펀드의 모체이다.
미국의 대다수 펀드가 뉴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반면, 유독 칼라일 펀드만이 정치중심지인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한 칼라일 그룹이 군수산업 등 미국 공화당의 자금줄에 투자, 단기간에 세계적 펀드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치적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다.
칼라일 그룹은 조금 과장해 말한다면 CIA펀드, 군수펀드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공화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까닭인지 칼라일 펀드는 부시정권 집권후 한층 확장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5월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던 아서 레빗과 연방통신위원회(FCC)의장이던 윌리엄 케너드가 각각 칼라일그룹 고문과 이사로 자리를 옮겨 미국을 들썩였다.
이들은 각각 증권분야와 통신분야의 최고 수장들이었던 까닭에 시장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시장에서는 이를 구산업인 군수산업에 치중하던 칼라일이 부시정부 집권을 계기로 사업영역을 금융, 정보통신(IT) 등 신산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과연 칼라일 펀드가 어디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할 것인지, 그 과정에 물의를 빚지는 않을지, 예의 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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