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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1주년, 미국 어떻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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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9.11테러 1주년, 미국 어떻게 변했나

윤재석의 지구촌 Q&A <5>

Q) 미국 국방의 지휘본부인 워싱턴DC 교외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을 공격하고 세계금융의 중심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를 초토화해 8층 깊이의 거대한 웅덩이로 만들어버리면서 미국의 자존심까지 여지없이 망가뜨린 동시다발 항공기 테러 사건은 미국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9월11일은 테러 1주년 되는 날이었는데요. 이날 대대적인 기념식이 벌어졌죠?

A)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추모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 뉴욕주 및 뉴욕시 당국은 9.11테러 발생 1주년이 되는 현지시간 9월11일 오전 피해 현장인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과 펜타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주 생스빌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시차에 따라 대대적인 1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날 9.11테러 최대의 피해지역인 뉴욕 맨해튼의 1백10층 짜리 쌍둥이 빌딩 WTC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에선 테러여객기가 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첫 충돌했던 오전 8시46분(한국시간 오후 9시46분), 애도하는 '침묵의 시간'으로 명명해 이후 쌍둥이 빌딩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걸린 1시간 42분에 맞춰 기념식을 거행됐는데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행사에서 조지 파타키 뉴욕 주지사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낭독했으며 조지 맥그리비 뉴저지 주지사는 독립선언문 요지를 낭독했습니다. 이같은 컨텐츠에서 추도식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고 비장하게 하려는 주최측의 의도를 엿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서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유족 대표들은 피랍항공기의 WTC 및 국방부청사 돌진 테러와 또 다른 피랍기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추락으로 숨진 2천8백1명의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이들의 명복을 빌었고 호명된 희생자의 유족들은 이에 맞춰 특별히 마련된 램프를 따라 8층 깊이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爆心)' 바닥까지 내려가 한 가운데 마련된 '명예의 원(Circle of Honor)'에 꽃과 기념물을 바치는 비통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피랍기가 WTC에 처음 충돌한 8시46분과 두 번째 타워가 붕괴된 10시29분 전국의 교회와 학교, 가정 등에서는 종을 울리거나 묵념, 기도를 올림으로써 일반인들도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을 전하고 평화에 대한 의지를 다졌는데요.

앞서 맨해튼을 비롯한 뉴욕시 산하 5개 구에서는 9.11 당시 목숨을 걸고 피해자 구호에 나섰던 경찰관, 소방대원 등 제복 요원들이 백파이프와 드럼악대의 연주에 맞춰 새벽 시가지를 행진한 끝에 추도행사 직전 '그라운드 제로'에 집결, 행사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맨해튼과 뉴욕시 전역이 애도의 물결로 뒤덮였다고 하겠습니다.

Q) 이날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보낸 사람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아니겠습니까?

A) 그렇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 일찍 워싱턴 시내의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마친 부시 대통령은, 부인 로라 여사를 대동하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지도자와 유족들과 함께 워싱턴 교외에 있는 미 국방부 청사 앞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자유 속의 단결(United in Freedom)'로 명명된 이날 펜타곤 추모행사는 오전 9시30분부터 90분간 계속됐으며 1년 전 아메리칸 항공(AA) 77기가 국방부 건물에 추락한 시각인 9시37분에는 참석자들이 행사를 잠시 중단한 채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 행사에서 "고인들은 비극 속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헛되이 숨져간 것은 아니다"면서 "그들의 희생은 이 나라를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고 그들의 희생을 기렸습니다.

이어 오후에는 유나이티드 항공(UA) 93편이 추락한 펜실베이니아주 섕스빌로 이동해 1년전 희생된 승객과 승무원 등 40명의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특히 당시 테러범과 격투를 벌여 항공기가 돌진하는 것을 막은 것으로 알려진 승객, 승무원들의 의지와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뉴욕을 이동해 오후 4시30분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 당도해 헌화한 뒤 유족과 구호요원들을 만나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해거름엔 그라운드 제로 인근 상가지역인 배터리 파크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에 불을 댕기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밤 9시 자유의 여신상과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지역을 배경으로 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입국 관문이었던 엘리스 아일랜드에서 "9.11테러로 인해 모든 미국인들이 테러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혹독한 교훈을 얻었다"면서 미국의 이상(理想)을 수호하기 위해 매진할 것임을 천명하는 대국민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은 9.11테러로 여전히 슬픔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기 위한 취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대 이라크 공격 등 이른바 대(對)테러전의 다음 단계 진행을 정당화하면서 민의를 결집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Q) 9.11테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얼마나 됩니까?

A) 참사 발생 1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정확한 인명 피해 집계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펜타곤과 펜실베이니아주 생크빌 외곽의 희생자수는 정확하게 나오고 있는 반면, 가장 큰 인명피해가 난 뉴욕 WTC 사상자는 여전히 유동적입니다.

참사 1주년 추모식에서 호명된 희생자는 2천8백1명(공중납치범 10명은 제외)이었습니다. 이는 지난 8월19일 뉴욕시 당국이 발표한 2천8백19명 보다 다소 줄어든 규모입니다. 뉴욕시 당국은 아직 실종자만 7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면서 이 들중 일부는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공식 사망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희생자중 신원이 확인된 숫자도 절반에 못 미치는 1천3백79명으로 나머지는 시신을 찾지 못해 대부분 유족들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아무튼 여기에다 생스빌 외곽에서 강제 추락한 UA93 승무원과 승객 40명, 국방부 청사와 충돌한 AA77 승무원과 승객 59명 그리고 국방부 청사에서 숨진 125명을 포함하면, 총 희생자는 모두 3천25명(테러범 19명 제외)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습니다.

Q) 가장 참혹하게 당한 뉴욕의 경우 직·간접의 물적(物的) 피해도 상당할 텐데요.

A) 9.11 테러로 뉴욕시가 입은 재산 피해액은 830억~950억 달러(100조~약1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로이터 동신이 지난 4일 월리엄 톰슨 뉴욕시 회계감사관이 작성한 '1년후,9.11이 뉴욕에 미친 재정적 충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빌딩과 기반시설 등의 파괴로 인한 물적 손실이 218억 달러(26조원), 인적 손실이 87억달러(10조원)로 각각 집계됐습니다.

인적 손실은 물론 사람 값이 아니라 9.11로 인해 숨진 사람들이 근로 가능한 연령까지 일했을 경우 뉴욕시의 시내총생산(GCP)에 기여했을 금액을 추정해 계산한 액수죠.

이 같은 직접 피해 이외에도 테러 이후 사무실들이 뉴욕시 외곽으로 빠져나간 데 따른 일자리 축소 등으로 GCP에 지속적으로 미치는 피해액은 2004년까지 523억~643억달러(44조~7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Q) 하지만 미국이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한다는 구실로 시작한 대테러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도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까?

A) 사실 이 부분은 대부분 관심의 초점에서 빗겨나 있는데 어느 면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9.11테러 한 달 뒤인 작년 10월7일 미국에 의해 시작된 이른바 대(對)테러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전국이 초토화되다시피 되어버렸습니다. 79년 구 소련군의 침공과 이어진 내전으로 가뜩이나 전쟁과 기아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온 아프간은 지난해 미국의 대테러전쟁의 제물로 바쳐지면서 폐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미국은 빈 라덴의 세력 근거인 알 카에다를 소탕한다는 미명아래 대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지만 알카에다 요원 수백 명을 포로로 잡은 이외에 별다른 소득없이 결과적으로 아프간 민간인만 3천8백여 명을 사상에 이르게 하고 1백50여만 명의 난민을 추가로 양산해 난민 총수를 5백20여만 명까지 끌어올리면서 전후 복구비도 50억 달러를 상회하게 만들었습니다.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의 생사는 아직도 모른 채 말이죠.

Q) 9.11테러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준 것도 사실이죠?

A) 정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미국인들의 심리적 불안이 상당히 커졌다는 겁니다. 미국의학협회보가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테러참사 후 1~2개월 동안 뉴욕시민 중 11%가 외상(外傷)후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보였는데 이 수치는 미국 평균치의 3배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테러참사 직후 조사에서는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스트레스가 기록됐다고도 하죠. 직접 테러참사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TV를 통해 테러참사 당시 상황을 목격한 경우 피해자 범주에 들어가는 새로운 징후가 생긴 겁니다.

연방 기관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5일 발표한 보고서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이 보고서는 뉴욕주, 뉴저지주, 코네티컷주 등 3개 주의 주민 3천5백1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11일~12월13일 전화 조사한 결과, 75%가 9.11 테러 이후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된 것으로 나났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9.11테러 이후 분노를 느끼고 있고 일부는 흡연 및 음주를 과거보다 훨씬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자의 경우 27%가 9.11 테러의 영향으로 흡연량을 늘었고 남자 응답자의 4%는 예전보다 많은 술을 마신다고 답해 테러의 충격을 약물이나 기호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종교에 귀의하거나 더욱 신실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가하면, 지역사회 봉사활동이 늘어나는 등 공동체의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단 뉴욕 일원의 주민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겠습니까. 매스컴을 통해 테러를 접한 모든 미국민들, 아니 지구인들 모두가 크든 작든 충격과 그에 따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죠.

Q) 미국 입국의 문턱도 높아졌죠.

A) 문턱이 높아진 정도가 아니라 살벌해졌다고 해야겠습니다. 공항이나 국경, 항만에서 검문-검색 수위가 엄청나게 까다로워진 것은 물론이고, 미국 비자 발급에서 입국, 체류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새로 까다로운 규제조치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11일부터는 외국인 입국자의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의무화한 국가안보출입국등록제(NSEERS)가 시행되고 있어 거의 경찰국가의 수준에 다가갔다고 하겠습니다.

9.11 테러 이후 외국인은 물론이고 미국인의 경우에도 아랍계는 물론, 소수인종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차별과 과도한 검문 등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는 추적 체제도 본격 가동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제 미국에서의 삶을 더욱 살벌해질 것 같습니다.

Q) 이에 따라 사생활 침해도 다반사로 일어나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냉소도 나오고 있다는데요.

A) 9.11테러 이후 사생활 감시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1984년'에 니오는 '빅 브러더(Big Brother)'의 출현이 가시화되고 있는 거죠. 미국의 경우 아주 조직적이고도 고도의 감시 시스템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앞에서도 말한 국가안보 출입국 등록제(NSEERS)입니다.

9월11일부터 채택된 NSEERS는 테러 등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외국인 방문객에 대해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 등을 실시하는 시스템으로 입국 검색대에 선 개인의 뇌파와 호흡 등 신체의 미세한 변화를 탐지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에서는 '진실 전화'라고 불리는 전화용 거짓말탐지기 사용도 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보도한 바 있는데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는 환경 미화를 명목으로 거리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으며, 플로리다주 탬파에 이어 버지니아는 시 전역에 범죄자 식별을 위한 얼굴 인식 카메라 설치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디엔가 설치된 몰래카메라와 각종 장치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이 전개되고 있는 거죠.

이같은 감시는 전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해 온 유럽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테러 및 각종 범죄 예방과 수사를 위해 최소 1년간 e메일과 전화통화 등 개인 통신기록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습니다. 앞서 EU는 지난달 30일 대 테러 수사관에게 전화통화 명세 등 민간 전자기록과 인터넷상의 개인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확대한 바 있습니다.

Q) 병력 동원 체제의 변화도 있는 모양인데요.

A) 9.11테러이후 주방위군(National Guard)와 예비역(Reservists)의 복무기간이 베트남전이후 처음으로 만 2년 현역 근무로 강화돼 테러의 주방위군과 예비역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에 따르면, 90년대초 공산주의 붕괴 후 현역 비율이 낮아지고 반대로 이들 주방위군과 예비역의 비율이 높아져(현재 1백20만 명) 현역 1백40만에 육박하는 규모를 보이고 있는 주방위군과 예비역에게 미국 정부가 소집 근무 연장을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안보의 절반을 주방위군과 예비역이 담당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됩니다. 특히 부시가 이라크 침공을 강행할 경우 여기에 소집될 공군 예비역 등은 10만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테러사태 발생시 각종 구조와 경계 업무에 이들을 소집해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다 실전의 경우에도 이들 병력의 소요(所要)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주방위군과 예비역은 비록 급여 면에서는 현역과 차이가 나지만 각종 혜택이 대체로 양호하면서도 현역과 달리 업무가 과중하지 않아 미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직종의 하나였고 예비역의 경우는 주부들의 부업으로도 좋은 일거리였는데 이젠 그것도 흘러간 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Q) 9.11테러 사건 직후부터 부단히 제기된 문제이지만 이런 엄청난 테러의 원인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A) 우선 미국의 일방주의적 오만함, 특히 아랍권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태도 등이 9.11테러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통설이죠.

9.11테러 때 테러범들이 여객기를 타고 공격한 대상을 보면 그 단초를 읽을 수 있습니다. 미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즉 미국의 힘에 의해 세계가 평정된다는 미국 국방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고,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는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미국이 돈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근거지라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 공산권의 와해로 세계 유일강국의 위치를 점한 미국이 9.11테러를 계기로 일방주의 외교에 박차를 가하면서 교토의정서 탈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모태가 된 로마조약의 비준 거부와 일방적 세계무역 정책 등을 추진하며 세계 각국의 반발을 사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중동 또는 아랍권으로 대별되는 이슬람을 적대시, 또는 차별화하면서 몰아붙이는 바람에 이 들중 과격파들에게 테러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에도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힘의 외교, 그리고 부시 행정부 들어서서 부쩍 두드러진 이른바 미국의 신제국주의적 태도에 대해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 않습니까?

A) 11일 퇴임한 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7일 가진 퇴임사에서 이른바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저질러지고 있는 강대국, 특히 미국의 인권유린 사태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 출신인 로빈슨 고등판무관은 5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모든 것이 'T(테러)'라는 말로 정당화되고 있다"면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민권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아무런 기소절차 없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억류하고,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를 반대하는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로빈슨 판무관은 "9.11테러는 단순히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격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런 인도적인 가치를 옹호해야 하며, 그래야 테러와도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참고로 로빈슨 판무관은 당초 지난해 4월 임기가 끝나 그만두려 했으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권유로 이 직책을 다시 맡아 오는 2005년까지 재임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미국과 러시아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스스로 물러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Q) 미국 내부의 비판소리도 높죠?

A) 미국외교협회(CFR)가 발행하는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9~10월호가 '1년후(A Year After)'라는 제목으로 마련한 9.11 1주년 특집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강행하고 있는 일방주의적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對)테러 전쟁의 승리와 국익을 추구한다면 국제사회와 호흡을 같이해야 할 것"이라고 점잖게 꾸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이 특집의 기고자 중 마이클 허시(Michael Hirsh) 전 뉴스위크 국제담당 편집인은 "9.11테러 이후 나온 부시 독트린은 우리 편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 중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이었고, 이는 미국과 세계 각국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잣대가 됐다"면서 부시 독트린은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고, 어디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이어졌으나 1년이 지난 지금 미국 외교정책이나 대테러전쟁의 방향은 분명치 않으며 '우리 편'이 이기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으며 미국 편엔 누가 있는지도 불명확하다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들러리로 만들고, 국제조약의 구속력도 인정치 않고 있는 미국은 이제, 제1차 세계대전 중 국제적 협조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던 우드로 W 윌슨 전 대통령의 전례를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신(新)윌슨주의를 강조했습니다.

한편 마이클 만델바움(Michael Mandelbaum)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지금 미국의 막강한 힘은 옛 로마제국의 위용을 연상시키며 미국은 이제 수퍼파워(Superpower)정도가 아니라 하이퍼파워(Hyperpower)로 군림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 모든 힘이 무엇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 것인가ꡑ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말하고 평화·민주주의·자유시장이라는 3대 사상 위에 존립하고 있는 세계를 향해 미국은 이 3가지 요소들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Q) 미국 교육계가 9.11테러를 촉발케 한 자국 중심의 교육 성향에 대해 자성하고 나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A) 비록 진보성향의 일부 교원들이지만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지난달 19일 미국의 양대 교원 단체 중 자유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전국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가 미국의 반성을 강조하는 지침을 웹사이트(www.nea.org)에 올렸습니다.

NEA는 종교학 교수 브라이언 리핀코트(JFK대학)의 자문을 받아 교사들에게 띄운 교육 지침에서 "특정국가의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못박는 방식의 교육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교육은 2차대전때 일본계 미국인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과 같은 똑같은 오류를 범한다."면서 "미국의 가치는 관용과 자유와 민주로 비관용적인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ꡓ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NEA의 라이벌이자 보수 성향의 미국교원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AFT측은 "NEA가 과거 미국이 저지른 잘못에 너무 매몰되고 있다"며 "오늘날 가장 추악한 인종주의적 편견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인을 죽인 테러리스트"라고 NEA측의 지침을 반박했지만, 미국 교육계의 일각에서마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희망적인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이같은 쟁론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4천2백여명의 신입생 전원에게 이슬람교 경전인 쿠란을 읽고 토론 수업에 참가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타문화, 타종교, 타인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라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지시임에도 기독교보수주의 그룹이 법원에 수업중지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해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Q) 9.11테러 1주년을 계기로 부시가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 본격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것 같던데요.

A) 부시 대통령은 12일 유엔 연설을 통해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를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유엔의 결의를 요구하고 만약 이라크가 이를 거부할 경우 '미국의 행동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은 이같은 조치들을 강제하는 결의안을 만들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협력할 것이지만 만일 이라크가 다시 대항한다면 세계 지도자들은 그 책임을 묻도록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서는 결의안을 준수하든지, 군사행동을 감수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 통첩의 성격을 띤 것으로 해석됩니다.

부시 대통령은 '평화와 안보를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반드시 이행돼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행동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한 뒤 '정통성을 잃은 정권은 권력도 잃게 될 것'이라고 후세인 정권을 정면 겨냥했습니다.

이에 앞서 부시는 11일 오후 9.11테러 1주년 기념 대국민 연설에서 문명이 테러리스트나 폭군에 의해 휘둘리도록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이라크 공격 계획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부시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겨냥, "미국은 폭군을 물리치고, 죽음의 캠프들을 해방시켰으며 모든 억압의 땅에서 자유를 고양시켜왔다"면서 "우리는 이들 광신자 패거리를 무시하거나 회유할 의도가 없으며 대량살상무기로 문명을 위협하는 어떠한 테러리스트나 폭군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오보로 판명이 나긴 했습니다만, 11일 폭스 뉴스의 보도로 파문이 일었던 플로리다 주 템파 소재 미 중부사령부의 카타르 이전설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고 보면 대 이라크 공격은 이제 시간 문제인 것같습니다.

앞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0일 "미국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이르면 2개월 이내에 군사력을 이동 배치할 준비를 완료했다"고 보도한 바 있지 않습니까.

이 신문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에 3만병력을 무장시킬 각종 무기류와 군수품을 확보해놓고 있으며 전면전에 투입될 15만여 병력을 올 크리스마스 이전에 증파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1991년 걸프전 때보다 지원 병력 수송 등은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탱크, 전차, 장갑차 등 중화기도 쿠웨이트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중동지역에 배치돼 있으며 미 항공기 4백여대, 항공모함 한 척과 순양함 두 척, 구축함 네 척, 전술 잠수함 한 정 등으로 짜인 함대가 중동지역에 배치돼 있다고 전했습니다.

Q) 하지만 대 이라크 공격에 대해선 독일, 프랑스 등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들 뿐 아니라 국내의 반발도 거세지 않습니까?

A) 영국을 제외한 전통적 맹방, 유엔 등 국제사회 등의 반발도 문제지만 부시로서는 빗발치는 국내의 반대가 더욱 부담이 됩니다.

부시는 11월 중간선거 이전 이라크 공격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미 의회 지도자들이 이라크 공격 필요성에 대한 설명에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0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국장 등이 의회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이라크 공격과 관련해 비공개 브리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반응은 차가웠다는군요.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 민주당 간사는 "이라크의 위협이 급박하다는 정보가 없다"면서 "(브리핑에서) 사담 후세인의 능력에 관한 '윤색' 말고는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리처드 더빈(일리노이)상원의원은 "이렇게 적은 정보를 갖고 이라크 문제에 관해 투표를 한다면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된다"며 "지금 결정하기는 성급하다"고 거들었구요.

민심도 대 이라크 공격에 회의하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텍사스 카우보이의 단순한 기질을 지닌 부시의 대 이라크 공격은 10월이냐 11월이냐, 시기만 남겨 놓고 못말리는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구촌 전역이 그의 공격 명령 한 마디에 안보면에서 경제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받게되는데도 이렇다할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현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존재 앞에서 지구는 점점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9.11 테러 주요 일지

◇2001년
▲9월11일=미국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건물 등에 피랍 항공기 3대 충돌.
▲9월12일=부시, 테러사건을 ꡐ전쟁행위ꡑ로 규정. 유엔 안보리 테러 비난 결의문 채택.
▲9월15일=부시 대통령, 테러 용의자로 빈 라덴 거명.
▲9월20일=부시 대통령, 탈레반에 빈 라덴 인도 요구.
▲9월21일=탈레반, 빈 라덴 인도 거부.
▲10월6일=부시 대통령, 탈레반에 군사행동 최후통첩.
▲10월7일=미·영 연합군, 아프간 공습 개시.
▲10월19~20일=미군 특수부대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인근에서 첫 지상전.
▲11월9일 =북부동맹, 아프간 북부 최대 전략요충 마자르 이 샤리프 함락.
▲11월13일=북부동맹, 수도 카불 입성.
▲11월25일=마지르 이 샤리프 인근 포로수용소에서 폭동 발생.수백명 사망.
▲12월5일=아프간 4개정파, 독일 본에서 과도정부 구성안 합의.
▲12월7일=탈레반, 최후 거점 칸다하르 포기 및 항복.
▲12월11일=알 카에다 항복 선언.
▲12월22일=아프간 4개정파, 과도행정위 수반으로 하미드 카르자이 지명.

◇2002년
▲1월3일=유엔 평화유지군(ISAF) 아프간 첫 파견.
▲1월16일=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 카불 방문.
▲3월3일=동맹군, 아프간 동부 가르데즈 지역에서 아나콘다 작전 개시.
▲3월18일=아나콘다 작전 종료, 미군 8명 전사 및 50명 부상.
▲4월19일=자히르 샤 전 아프간 국왕 귀국.
▲6월13일=카르자이, 로야지르가(종족회의)에서 임시국가 수반으로 선출.
▲8월17일=미 국방보고서, 테러조직 소탕에 미군 선제공격 필요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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