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의 전격적인 부채감면 결정으로 기사회생의 길을 찾은 듯 보였던 한국일보가 경영권을 둘러싼 삼촌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과 조카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간의 갈등이 증폭되며 다시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채권단과의 합의 이행을 위한 지난달 28일 주주총회가 장중호 사장의 불참으로 무산된 데 이어 15일 열린 한국일보 주주총회에서도 숙질간의 갈등으로 정관 변경이 부결되면서 채권단과 합의한 한국일보 회생전략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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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부결로 채권단과 합의한 MOU 체결 연기**
이날 한국일보 주총은 채권단이 요구한 완전감자 후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부채감소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과 장재근 일간스포츠 회장,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나 표결 결과 한국일보의 현 최대주주인 장중호 사장측의 반대로 부결됐다. 감자결의에는 전체 지분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이날 표결에서 장재민 미주 한국일보 회장과 장재구 회장측은 찬성했으나 장재국 회장의 지분위임을 받은 장재근 일간스포츠 회장은 기권했다.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장중호 사장은 장강재 전 한국일보 사장의 장남으로 장재구 회장의 조카이며 현재 우호지분을 포함해 49.5%의 한국일보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날 주총에 상정된 안건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등 한국일보 채권단이 지난 6월 7일 장재구 회장이 약속한 5백억원의 자금도입을 전제로 완전감자 후 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대출금 금리 인하, 원금상환 유예 등을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채권단은 당초 한국일보가 주총을 통해 완전감자 후 증자, 전환사채 발행을 위한 정관변경 등을 결의하면 6월말 채무약정서(MOU)를 체결하기로 결정한 바 있으나 이날 주총 부결로 MOU 체결이 늦어지게 됐다.
***한국일보 경영권 둘러싼 숙질간 갈등이 부결 배경**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이 완전감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정관변경에 반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최대주주로서의 경영권 확보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사회 결의를 통한 증자가 결정되기 전 주총을 소집해 최대주주로서의 지분을 이용, 새로운 이사를 선임해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애초 장 사장은 지난 1월 장재구 회장에게 한국일보 유상증자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자신은 2대주주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채권단의 완전감자 결정에 따라 증자가 이뤄질 경우 단 1%의 지분도 소유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장 사장측은 또 장재구 회장과의 막후협상을 통해 일간스포츠 양수도 대금 인하와 외주가공비 인하 등 일간스포츠 경영정상화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으나 장 회장의 반대에 부딪히며 갈등이 빚어졌다.
장 사장측은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장 사장이 한국일보 경영권을 양보하는 이행각서를 쓰기도 했는데 이제는 장 회장측이 일간스포츠 경영까지 좌지우지하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있다. 현 상황에서 이행각서는 무효다. 채권단과 합의한 각서는 한국일보 법인으로서의 약속이기 때문에 장재구 회장 외에 누가 경영권을 갖더라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장중호 사장측의 주장은 자신들이 5백억원을 마련해 한국일보 살리기에 직접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 사장측은 "아직 장 회장측과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 중요한 건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를 동시에 살리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 사장측의 이같은 입장정리는 사실 한국일보 경영권을 다시 적극적으로 되찾겠다는 의지표현이라기보다는 장재구 회장에 대한 압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장 사장이 최대주주이면서도 한국일보 경영권을 양보한 만큼 장 회장이 일간스포츠 경영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간스포츠 경영정상화를 위해 양수도대금 인하 등 필요한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현재 일간스포츠 주식 49%를 가진 최대주주다.
또 장 사장측은 완전감자 후 증자라는 채권단과의 합의에 대한 불만도 표출하고 있다. 애초 장 사장은 일간스포츠를 운영하다 나중에 한국일보 유상증자에 참여해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복안을 가졌었는데 장 회장과 채권단의 완전감자 후 증자 합의로 경영권 회복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일보의 한 고위간부는 "장중호 사장측의 섭섭한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지금 중요한 건 일단 한국일보를 살리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채권단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장재구 회장은 본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겠지만 완전감자 후 증자와 일간스포츠 양수도대금 등 채권단, 또는 법인간에 이뤄진 계약에 대해서는 재량권 밖의 일이라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재구 회장 자금도입 시기 늦춰**
한편 장재구 회장은 15일 주총 부결에 따라 약속한 5백억원중 지난 6월말까지 1백억원을 들여오기로 했던 계획을 일단 이사회의 증자결의가 확정되는 오는 8월 5일로 연기했다. 완전감자 후 증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신규자금을 도입하더라도 증자비용으로 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일보측은 15일 주총에서 정관변경이 부결됐으나 이미 지난 1월 주총을 통해 수권자본금 규모를 6백억원으로 늘렸기 때문에 이후 증자는 주총을 거치지 않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달 28일 열릴 예정이던 주총이 장중호 사장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당일 이사회를 열어 2백10억원의 증자를 결의했고, 15일 주총 직후 다시 이사회를 열어 2백40억원의 추가 증자공모를 결정했다.
한 관계자는 "이사회 증자결의에 따라 한국일보는 오는 8월 5일 다시 이사회를 열어 2백10억원에 달하는 일차 증자를 실시할 예정이며 장재구 회장은 애초 6월말까지 들여오기로 약속했던 1백억원을 이 때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재구 회장이 최대주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일보 증자는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는 장중호 사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전망이 불투명하다. 장 사장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16일 이사회를 소집해 '이사 선임 및 해임' 을 위한 주총소집을 요청했으나 이사회는 소집이유 등을 제대로 명시하고 있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다시 제출하라고 반려시켰다.
애초부터 한국일보 이사회는 장재구 회장이 선임한 인사들로 구성돼 있어 장 사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장 사장측은 이사회가 주총 소집을 거부하더라도 주총소집을 위한 행정소송까지 낼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한국일보 경영권을 둘러싼 숙질간 갈등은 법정으로 비화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장 사장측은 법원에 주총소집을 위한 가처분신청을 낼 경우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하고 있다. 장 사장이 최대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주총이 열릴 경우 장 사장의 경영권 확보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장재구 회장측은 주총 소집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양측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한 한국일보 경영권을 둘러싼 숙질간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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