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이 서해교전의 원흉인가?”
공교롭게도 민족상잔의 비극 6.25가 발생한 6월이 되면 대북포용정책을 상징하는 햇볕정책이 한반도내 일부 강경론자들의 ‘안보상업주의’라는 심판대위에 올라 난도질을 당한다. 월드컵을 통해 전 국민이 하나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던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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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서해교전이 월드컵 대타인가**
특히 지난 한달 월드컵 광고특수를 누리며 전 지면의 50% 이상을 축구 이야기로 도배했던 일부 보수언론들은 6.29 서해교전이 발발하자마자 월드컵 이후의 새로운 비상구를 찾은 듯 전 지면을 동원해 다시 한반도를 전쟁일보 직전의 광풍의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휴전상태인 한반도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우리측 병사 5명이 사망·실종, 19명이 부상당하고 한척의 고속정이 침몰했으니 분명한 비극이요 위기상황이다. 또 교전으로 희생당한 군인들에 대한 위로는 한국이라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고귀한 희생양인 만큼 일부 언론들이 보도한 미담기사 등 말의 성찬이나 성금모금만으로는 부족하다. 차제에 군복무중 순직한 군인들에 대해선 별도의 보상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태가 발발한 현 시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면한 위기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이냐에 있다. 즉 사태발생의 원인규명을 통해 위기상황 재발을 방지하고 재발가능성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교전 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을 일으켜 우세한 물리적 힘을 동원해 상대에 보복하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분단상황에서 두 방법론에 모두 요구되는 것은 우세한 전쟁억지력인데 이미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북포용정책이라는 햇볕정책이 점진적 노력을 통한 관계개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원하지 않는 주변 4강 등 전 세계가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전쟁위협 억제라는 목적외에도 제2의 6.25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득이 실보다 클 수 없기 때문임도 자명하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 상황을 가정해보자는 제안 자체가 이미 진부하다. 전쟁이란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곤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시 행정부처럼 한국내 강경론자들이 부각시키려는 전쟁억지력 강화라는 명분도 전쟁을 하자는 직접적인 선동이라고는 해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언론들은 군에 대해 '왜 제대로 보복을 못했느냐'며 병사들을 잃은 우리 국민들의 복수심에 불을 지르고 있다. 이들이 정작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겠으나 전쟁심리를 부추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안포 왜 안 쐈나" 전쟁 부추기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3일자 1면 머리에 '"北 서해도발은 우발적"/정부, 美·日 설득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우리 정부가 서해교전에 대해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우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일본 및 미국 정부에 전달하면서 '양국이 냉정하게 대응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일본 마이니치신문 2일자 보도에 근거한 것이다. 마이니치는 한국정부가 한국군에 의한 북한군 관계의 통신도청 내용 분석결과와 북한 축구협회의 월드컵 축하 서한 등을 근거로 서해교전의 계획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전했다(본지 2일자 보도).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사설(선제공격을 '우발적인 것'이라고?)과 3면 해설기사(정부 '사태축소' 나섰나) 등을 통해 정부를 맹공격하고 나섰다. 북측의 분명한 도발에 대해 어째서 정부는 우물쭈물하고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번 사태가 일어난 배경 등 진상규명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예컨대 MBC가 1일과 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집중 추적한 연평도 어민들의 월선(어로한계선) 조업에 대해 조선일보는 사회면에 '꽃게잡이 망치고 애꿎은 병사들 목숨만··· 연평도 어민들 마음고생' 을 머릿기사로 실었다. 어민들이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민들의 월선 조업이 이번 교전사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북방한계선(NLL)을 북한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 해마다 6월이면 문제의 해역에서 꽃게잡이로 북한측과 갈등을 빚어왔다는 점에서 우리 어민들의 무리한 월선 조업이 북한측을 자극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태와 같은 비극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진상 규명의 바탕 위에서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우리 정부에 대해 강경대응만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1일 이상우 서강대 교수의 ‘아침시론: ‘햇볕’이 예고한 비극’을 싣고 현 정부가 아직도 북한에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 정부만이라도 꿈에서 깨어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론을 쓴 이상우 교수는 “왜 선제공격한 적함을 격침시키지 않았는가? 초계정은 무엇을 했으며 지원 나간 전투기는 왜 구경만 했는가? 연평도의 해안포는 왜 침묵했는가?”라며 교전확산을 막으려 차단기동 작전(밀어내기)을 실시한 군의 노력을 폄하했다. 즉 북측의 선제공격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이 개최한 월드컵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건 말건 무조건 당한 것 이상 돌려줬어야 옳았다는 주장이다.
이 시론은 또 서해교전을 패전으로 규정하고 즉각 응전하지 못한 전투지휘부에 1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방부의 후속조치와 대통령의 사태인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외에도 1일자 사설(‘DJ 햇볕 이젠 뭐라고 할 작정인가’)과 기자수첩(‘햇볕에 길들여진 통일부’), 2일자 사설(‘당하고도 속수무책으로 가는 정권’) 등을 통해 이번 서해교전으로 햇볕정책의 허점이 드러났다며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조선일보와 같이 보수언론으로 평가받고 있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번 교전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햇볕정책에 대한 직접공격은 삼가고 있다. 하지만 서해교전 사태의 원인규명보다 군 지휘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현란한 그래픽 등을 동원한 중계보도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면 과연 이번 사태는 햇볕정책에 길들여진 군인들의 나태한 안보인식과 투철하지 못한 사전방비 때문에 발생했는가. 6.29 서해교전에 대한 정확한 원인규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남북간 지속적인 불씨로 남아있던 북한측의 북방한계선(NLL) 인정문제와 어로한계선을 넘어 꽃게잡이에 나선 연평도 어민들의 조업활동 등이 일부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북방한계선이 서해교전의 근본원인**
99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서해교전이 발발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무래도 1953년 8월 유엔군 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한 북방한계선에서 찾아봐야 한다. 당시 유엔군과 북한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육상에만 군사분계선을 그려놓고 동·서해상에는 분명한 분계선을 확정짓지 않았던 것이다.
즉 북방한계선은 남쪽 배가 북쪽으로 올라가 무력충돌을 빚을 것을 우려해 유엔군이 설정한 경계선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는 북방한계선의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북한은 1970년대 초반부터 북방한계선을 남북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며 지난 99년 9월에는 일방적으로 서해상 분계선을 선포하기도 했다. 물론 남측 역시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상 경계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북, 혹은 유엔군과 북한이 합의한 서해상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해마다 서해상에서 발생하는 연평도 주변의 꽃게잡이 문제도 명확한 경계선에 대한 구분이 없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꽃게 조업이 가능한 어장을 찾아 남북어부들이 이동하다보니 북방한계선이라는 군사적 경계선이 가져야 할 본래의 기능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서해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경계선 문제부터 확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이든 남이든 상대방에 대한 도발은 인정될 수 없다. 이는 국가체제의 문제를 넘어서 민족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해 시시비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용도 폐기 운운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닌 것이다.
***방상훈 사장과 조선일보의 동상이몽**
햇볕정책에 대해 본질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은 지난 4월 10일 한국기자협회와의 인터뷰에서 “햇볕정책에 대해 근본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정책을 풀어 가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지금보다 더 지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방 사장은 “그러나 북한이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광자금을 달러 등 현금으로 결재한다든지 기름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기업을 개입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지원하게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차라리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게 올바른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방 사장은 당시 북한지원에 대한 조선일보의 ‘퍼주기’ 비판에 대해 “편집국의 보도와 내 생각이 모두 일치할 수는 없다. 생각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6.29 서해교전과 관련한 조선일보 지면의 ‘햇볕정책 용도폐기’ 주장이 방 사장이 말한 편집국과의 생각 차이, 즉 편집권 독립 때문인지, 아니면 사주인 방 사장의 생각에 변화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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