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탈북자 25명의 망명을 주선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씨는 탈북자 등 북한 주민의 인권을 사수하려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인가, 아니면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무모한 영웅주의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동키호테 같은 '괴짜'인가.
자선 단체인 '독일 응급의사단'의 일원으로 지난 2000년 12월까지 18개월 동안 북한에 체류했던 폴러첸씨가 최근 한국 언론에 소개된 모습은 말 그대로 북한 인권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휴머니스트임을 증명한다. 실제로 폴러첸씨는 북한 해주의 한 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하던 중 중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자신의 허벅지 살점을 이식해주는 수술을 감행해 북한 정부로부터 '우호메달'을 받는 등 보기 드문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폴러첸씨가 비무장지대에서 행한 월북시도나 4년전 독일에서의 자살시도 등 괴이한 행적은 그가 북한 주민의 인권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는 순수한 휴머니스트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의 살신성인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일각에서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무모하게 탈북자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북한 주민들과 탈북 희망자들의 인권을 유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폴러첸은 어떤 사람일까. 특히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5일 '독일 의사, 북한 주민 도우려 반칙하다(German Doctor Breaks to Aid N.Koreans)' 제하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폴러첸씨를 소개함으로써 그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폴러첸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워싱턴포스트 5일자 기사와 지난해 2월 기자가 폴러첸과 가졌던 인터뷰 요지를 전재한다. 폴러첸과의 인터뷰는 당시 기자가 일하고 있던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에 게재하기 위해 이루어졌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해 기사화되지 못했다.
기자는 지난해 2월 27일 당시 북한에서 추방돼 웨스틴조선 호텔에 머물고 있던 폴러첸씨를 약 2시간 가량 만나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당시 폴러첸씨는 "자신은 김대중 대통령 햇볕정책의 열렬한 지지자"라며 월간조선 등 언론에 비친 자신의 발언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당시 인터뷰는 폴러첸씨의 허락하에 녹음을 했다.
기자는 바로 폴러첸씨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하려고 했으나 폴러첸씨가 당시 성명을 내고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왜곡된 언론보도를 지적하겠다고 밝혀 기사화를 유보했었다. 그러나 얼마 후 폴러첸씨는 개인변호사에게 자문한 결과 기자회견이 자신의 입장을 다시 왜곡시킬 우려가 있어 기자회견을 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월간조선은 당시 폴러첸씨가 열려고 했던 기자회견이 친정부 인사들에 의해 회유됐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취재에 들어갔었다. 당시 월간조선 기자는 "폴러첸씨가 만났던 친정부 인사들이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폴러첸씨의 증언이 있다"며 혹시 기자가 그런 말을 듣거나 한 적은 없는지를 질문했다.
물론 그와 비슷한 이야기도 들은 바 없었던 기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폴러첸씨가 월간조선에 그와 같은 증언을 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으나 그가 3월초 이미 미국으로 떠난 후였으며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아 기사화하지 못했다. 월간조선도 당시 취재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이후 기자는 폴러첸씨가 미국에서 한 인터뷰나 최근 베이징에서 탈북자 망명을 성공시킨 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기자에게 "한국 언론보도의 90%는 왜곡됐다"고 한 그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됐다.
***2001년 2월 27일 폴러첸과의 인터뷰 요지**
폴러첸씨는 특히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이 자신을 다룬 3월호 '조갑제 편집장의 심층 인터뷰'에서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사화했다며,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을 작문하거나 가정법을 사용한 문장을 직설법으로 인용한 부분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주장과 말을 왜곡보도한 언론보도에 대해 변호사 자문을 거쳐 반론권 청구 등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전반적인 월간조선 인터뷰 기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90% 이상의 기사 내용이 내가 한 말과 다르다. 특히 가정법을 사용해 한 말을 직설법으로 바꿔 마치 내가 직접 한 말처럼 기사화한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뿐이다."
-한국 언론보도가 왜곡됐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됐는가.
"미국 타임지 기자인 매킨타이어(Doanld MaCintyre)나 독일어를 할 줄 아는 한국 대학생들, 그리고 언론인들로부터 나와 관련된 기사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5년간 한국에서 살며 한국어를 배운 한 독일친구가 관련기사가 난 신문들을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어왔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사실상 정확하게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으나 그들의 말을 통해 내가 한 말과 전혀 다르게 보도됐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는 말을 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한국 언론보도는 평양에서 내 말이 왜곡돼 보도된 것과 똑같이 왜곡됐고 내 말을 이용했다기보다는 손상시켰다."
-조 편집장은 당신이 "북한엔 아우슈비츠가 살아있다. 나는 독일인으로서 유태인 학살을 방관한 과오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나는 킬링필드나 아우슈비츠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것은 킨더가르텐(유치원)과 병원 등이 고작이었다. 내가 남한에 온 까닭은 햇볓정책의 지지자로서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통일의 길을 갈 수 있는지, 통일을 쟁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김대중 정부에 충고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당신은 조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난 또 헤이그로 가서 김정일을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발표할 생각입니다. 집단학살을 했으니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나는 의사표현을 할 때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나는 만약에 북한에 집단학살이나 인권침해가 목격되고 관련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국제적십자사 등 인권단체들이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의사로서 관찰자일 뿐이며 북한의 유치원이나 병원, 고아원만 목격했을 뿐 어떠한 집단수용소나 학살 등을 목격하지도 못했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조 편집장은 스스로 김일성 김정일 히틀러 스탈린이 20세기의 4대 악마라고 생각한다며 김정일은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인가.
"나는 누구로부터 그 말이 나왔는지 알고 있으나 분명히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감옥이나 수용소 등을 전혀 목격한 바 없고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한 내가 어떻게 김정일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이외에도 폴러첸씨는 자신이 한국을 방문한 후 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햇볕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은 야당인 한나라당 사람들과 햇볕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밖에 없어 답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폴러첸씨는 지난 3월 스페인 대사관의 탈북자 망명을 주도한 후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리려는 자신의 노력이 현 정부의 햇볕정책 등으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은 지상의 지옥으로,옛독일 집단 수용소 체제의 업그레이드된 형태"라고 비난했다. 그는 북한 체제가 지난 1989년의 동독과 같은 방식으로 붕괴되는 것을 보는 것이 자신의 궁극적인 야심이라고 덧붙였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북한을 아우슈비츠나 킬링필드에 비교한 적이 없었다는 그의 말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음은 폴러첸씨를 집중 분석한 5월 5일자 워싱턴포스트 기사 전문.
***'독일의사, 북한 주민 도우려 반칙하다'**
4년 전 실의에 빠진 시골 의사였던 노르베르트 폴러첸은 독일 의료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데 지쳤다. 그는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최선책은 TV 카메라를 동원, 자신이 자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니면 최소한 자살을 조작하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폴러첸은 권총에 공포탄을 장진하고 진짜로 계단에 굴러 떨어져 그렇게 했다. 그는 병원으로 실려간 다음 일어나 정상 근무를 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즐겁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은 아내였다고 폴러첸은 말했다. 아내는 그에게 될 수록 멀리 떠나라고 부탁했다. 그는 멀고 먼 북한에 가게 됐고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목적을 찾았다가 북한 정부로부터 비슷한 추방 통보를 받았다. 지금 폴러첸은 자신의 선전 기법을 이용해 북한 당국을 공격하고, 굶고 있는 불쌍한 북한 주민의 절망감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남북한 비무장지대에서 월경하는 척 하여 앞에 있던 무장 군인들을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
평양에 있을 때 그는 방북중인 기자들을 이끌고 경비가 소홀한 지역을 허가 없이 둘러봄으로써 추방당했다. 지난 3월에는 베이징에서 북한인 25명의 스페인 대사관 망명 주선을 도왔다. 그는 TV 촬영팀을 북한 접경지로 안내해 월경을 시도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탈북자 돕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시위를 주도, 한국 정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폴러첸은 TV 촬영 팀이 많을 것이란 이유로 한일 월드컵 개폐막식을 일시 중단시킬 것임을 시사했다.
금발 머리에 둘러싸인 통통한 얼굴인 44세의 폴러첸은 사람들은 나를 미친 독일 의사라 부른다고 만족한 웃음을 활짝 띄며 말했다. 그는 미친 것인가, 용감한가, 아니면 위험한가?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가 북한을 골려준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평양의 한 유엔 관계자는 말했다. 또 다른 구호요원이며 농업 전문가인 토머스 F. 맥카디는 "북한 주민의 처지를 국제 정치 문제화하려는 잘못된 노력"이라며 폴러첸의 괴이한 행동을 지적하고 분명 손해를 보는 측은 북한 주민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주장에 대한 놀라운 증거가 있다. 3월 14일 25명의 북한 난민이 폴러첸에게서 몰래 귀띔을 받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동안 베이징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사건이 있은 뒤 북한 접경지 일대에 무자비한 단속이 실시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천명의 불법 탈북자들이 검거되어 강제 송환되고 있다고 한다. 폴러첸은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단속에 나의 책임이 일부 있다는 것을 안다"고 시인하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폴러첸은 타인에 대한 자기 비판과 자기 과오를 한꺼번에 기꺼이 바칠 용의가 있는 악의없는 열성분자다. 그의 열정은 끝이 없다. 자기 주장을 역설할 기회가 생기면 그는 숨을 돌리는 것도 싫은 눈치다. 조찬 인터뷰에서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음식도 귀찮은 듯 무시했다. 그가 깊은 도의적 책임감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 같은 행동을 한다는 말도 속사포 같은 말 속에 거의 묻혀 버렸다. 그는 "난 독일인이다. 우리 독일인은 나치 독일 때 행동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았다. 우리는 침묵했다"며 "나치 강제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있었으나 우리는 두려웠다. 단속이 두려워 침묵한 것이다. 난 독일인으로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타인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안다. 독일에서도 똑같은 핑계가 있었다. 그는 "귀순(허용)은 동독인들에게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 준다고 말하는 서독 신문 보도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침묵은 독재를 보호해 준다는 것이 역사의 증거"라고 말하는 그는 "폭로와 선전이 있는 곳에는 결국 정권이 붕괴한다. 그렇다, 붕괴의 길은 매우 위험하다. 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전진하여 더 큰 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러첸은 바로 그렇게 할 결심이다. 그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바삐 돌아 다닌다. 시위 때문에 한국에 갔다가 EU 회의로 제네바에 가고, 북한 인권 위반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계획을 지원하고 증언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고 보스턴을 방문, 하바드대에서 연설하고 몽골에서는 중국을 통해 북한 주민을 도피시키는 지하 철도와 협력한다. 그러나 폴러첸이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가 의심하는 비판도 있다. 이 운동권 의사는 홍보로 자신이 뜨고 있음을 시인한다. 그래도 그는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대 언론 대변인이란 말을 듣고 있다. 자랑스럽다. 왜 자신을 팔아 새 CD를 판촉하거나 티셔츠를 팔 수 있다면 훌륭한 사업가로 인식되는가? 그러나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자신을 파는 것은 웬지 수치스럽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을 하지 않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인권 일을 한다. 변한 것이 없다. 난 독일 의료체제와 10년간 투쟁하고 이룬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대규모 시위를 벌였을 때와 휠체어 환자를 소집했을 때, 그리고 내가 자살극을 폈을 때는 주목을 받았다."
폴러첸이 가게 앞 시위를 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말했듯 환자에게 혜택을 주는 개혁을 성사시킨 후 독일에서의 의사 직업을 그만두고 독일 자선 단체의 가난한 지역 근무를 자원, 18개월의 북한 근무를 하게 됐다. 북한에서 그는 자선체제 내에서 일했다. "호의를 베풀려는 고지식하고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이였다. 난 봉사했고, 먹을 것을 주고, 약을 주고, 내 피부를 주었다"고 그는 말했다. 보급품과 약품이 극심하게 부족하자 그는 화상 환자를 돕기 위해 주머니칼로 자신의 허벅지에서 이식용 피부를 벗겨냄으로써 북한 당국을 놀라게 했고 평양 정부로부터 특별 '우호 메달'을 받아 전국을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는 전국을 돌며 본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직접 촬영한 줄무늬 병원 복장을 하고 있고, 나치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을 너무 닮은, 초점없는 눈에 굶주리는 어린이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순회 강연을 하고 있다. 2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동아태소위에서 행한 증언에서 폴러첸은 북한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했고 군 고위층, 당 간부와 엘리트를 제외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발견한 "믿을 수 없는 가난"을 설명했다.
2000년 10월 서방 기자들에게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함께 단기간의 방북이 허용됐을 때 폴러첸은 자신이 본 것을 세계에 보여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기자실에 나타나 공식 시찰을 포기하고 자기와 함께 황폐한 평양시 병원들을 잠시 둘러보자고 권유했다. 이 일로 그는 두달 후 쫓겨났다. 폴러첸은 사적인 이유로 어린이들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그의 결혼생활이 무너졌을 때 5-14세의 아들 넷을 두고 떠났다. "아버지 역할이 나의 최대 약점이였다"고 시인한 그는 "그것이 아마도 내가 항상 아이들에 대해 감성적인 말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 자식을 돌보지 못해 남의 자식을 돌 본다"고 말했다.
폴러첸을 접촉하기란 움직이는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것과 같다. 그는 현재 자신의 말처럼 "인터넷 속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정해진 주소가 없고 휴대폰도 없다. 서울에서 그는 동정적인 독일인 사장이 경영하는 호화 호텔 로비에 있는 구내 전화기를 이용하여 전화 인터뷰를 한다. 그는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여 연락한다.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의 여행 경비 대부분은 그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단체가 조달해 준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 특정 단체의 후원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폴러첸은 "나는 다소 과장할 때도 있다. 너무 멀리, 너무 빨리 갈 위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인권 사업이 대서특필되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 언론은 잘 안다. 그들이 영웅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북한을 위한 영웅이 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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