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최원영 대통령 비서실 고용복지수석이 이번 정책이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논란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상당수의 어르신은 '지금보다 더 많이 받게 되었는데 왜 반발하느냐'라고 반문하며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국민은 언론 보도들을 접하면서도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기초연금 공약이 탄생한 배경과 의미
일찍이 2012년 총선 전부터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국회에서 개최한 '복지국가 공약 제안 세미나'를 통해 '기초연금 2배 인상'을 제안하였고, 실제로 지난해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모두 기초연금 2배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이 되면 노인 인구가 810만 명이나 된다는 인구 추계가 통계청에서 이미 발표되었기에, 공약 수행에 필요한 기초연금 재원이 최대 연간 17조 원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양대 정당이 모두 이 공약을 채택했던 것은 단순히 노인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 지난해 6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농민·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노인 빈곤 해소와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위한 운동본부(준)'를 발족하고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
기초노령연금법은 참여정부 당시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60%에서 40%로 크게 낮아진 소득대체율 문제와 광범위한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제정됐다. 여야는 2028년까지 국민연금 가입자의 최근 3년간의 평균 소득인 A 값의 10%(2013년 기준 20만 원)를 기초연금으로 보장하도록 이미 법을 개정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대로 두어도 기초연금은 약 14년 후면 전체 노인들의 70%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이 대선 공약을 통해 이를 현 정부 시기부터 시작하도록 앞당긴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기초연금 두 배 인상 공약이 나온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560만 명 어르신들의 86.9%가 상대적 빈곤 상태이고, 2011년 기준 OECD 국가들의 노인 빈곤율이 13.5%인데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그 3배가 넘는 45%나 되므로 이러한 상황을 해소해야만 했다. 둘째, 사적연금은 물론이고 퇴직연금이나 국민연금에도 가입하지 않은 다수의 노인과 잠재적 노인들에게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함으로써 최소한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야 했다. 셋째, 노인 자살률이 선진국들의 3-5배나 되는 현대판 고려장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기초연금 확대는 노인 자살률을 줄이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넷째, 기초연금 인상은 자녀들이 노인 부모에게 가지는 부양 부담을 조금이라도 완화해 주는 효과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노인의 75%가 자신의 직접 소득이 없이 자녀들이 주는 용돈이나 생활비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다섯째, 기초연금 인상은 경제 활동 인구에서 제외된 노인들을 소비를 통해 경제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수출 부문의 부가가치 생산이 전체의 75%인데 비해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 내수 부문의 부가가치 생산이 25%밖에 안 되는 심각한 내수와 수출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기초연금을 인상해야 했다. 여섯째, 고령화 시대에 새로이 조성되는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기초연금 등을 통해 노후 소득을 보장해야 했다. 참여정부 시절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의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의 경우 노인 인구의 비율이 10%를 넘어갈 때부터 실버산업이 커지나,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가처분 소득이 없어 실버산업 자체가 아직 제대로 태동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지급하는 방안은 연일 후퇴를 거듭하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 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부터 기초연금 재원을 국민연금 기금에서 끌어다 쓰자는 말이 흘러나왔고,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는 소득 수준과 연계하는 차등 지급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던 탓이다. 특히 공약을 시행하는 데 드는 막대한 재정이 문제가 되면서 공약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대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기초연금안이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목적 가운데 상당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 기초연금 도입 방안의 문제점과 해법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에 따르면, 전체 노인의 70%에 해당하는 391만 명이 혜택을 받는다. 353만 명은 내년 7월부터 매달 20만 원을 받게 되고, 나머지 38만 명도 매월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를 받으므로 현재의 노인들에게는 손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소득 상위 30%에게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였고, 노인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또한 40대와 50대도 총액에서 본다면 지금보다 덜 받지는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는데, 왜 시민단체들이나 야권은 이렇게 반발하는 것일까?
재정 추계를 제대로 못 하였거나 이건희 회장에게까지 기초연금을 주는 잘못된 공약은 지금이라도 고쳐야 바람직할 것이므로, 공약을 축소하거나 조정하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지는 않다. 또한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이에 따른 세수 결손이 올해만 50조 원 정도 더 발생하여 적자 재정을 편성하여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면, 일부가 조금 덜 받는 것도 양해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빚을 내어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주어야 하느냐라는 반문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기초연금안이 앞으로 남은 4년 임기 동안만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정책이라는 점 때문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현재의 정부안은 국민연금의 가입 기간과 연동되어 있다. 즉 국민연금 가입자가 적고 가입 기간이 짧은 지금의 노인들은 대부분 기초연금을 20만 원씩 받을 수 있지만, 지금의 40대와 50대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소득과 무관하게 가입 기간이 15년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그 기간이 1년씩 초과할 때마다 약 6000~7000원씩 기초연금을 당초 목표보다 줄여서 받는다(2028년 수급자 기준). 또한 가입 기간 30년을 초과할 경우에는 기초연금이 10만 원으로 동일하다. 즉 국민연금에 장기 가입하지 않은 지금의 노인들에게는 다 지급하지만, 장기 가입할 확률이 높은 미래의 노인들에게 줄 것은 줄이는 것이다.
▲ 정부 기초연금안에 따른 국민연금 가입 기간별 기초연금액 삭감 구간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 |
정치적으로는 노인들의 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 안은 매우 위험한 방안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게 하기에 전체적으로 국민연금이 흔들리게 된다. 이미 정부의 기초연금 방안이 인수위에서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국민연금의 임의 가입자가 4만 명이나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현재의 정부안은 기초연금이 삭감되지 않는 15년(2028년 수급자 기준) 동안만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이후에는 탈퇴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함으로써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깨는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물론 기초연금을 조금 줄여서 지급해도 40대와 50대의 공적 노후 소득 보장 총액이 지금보다 줄어들지는 않지만, 현행 법령에 따라 받기로 예정된 안에 비하면 매달 10만 원까지 손해를 보게 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퇴직금이나 사적연금 등과 더불어 다층적 노후 소득 보장 체계의 한 부분을 형성하면서 상호 보완관계가 있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나 지급 금액을 기초연금과 직접 연동하는 것은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불신하게끔 하면서 수십 년 동안 어렵게 쌓아온 사회적 합의를 깨고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둘째, 현재의 정부 안이 노인 빈곤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70-80%의 노인들에게만 기초연금이 지급된다고 해서 보편적 복지의 원칙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위 30%의 노인들에게 지급하지 않으면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기초연금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안을 시행해도 전체적으로 노인들의 상대 빈곤 개선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또한 앞으로도 노인들의 빈곤이 개선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근본적으로 정책의 효과가 미미해진다.
끝으로, 기초연금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과 관련하여 우리는 원칙에 더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첫째,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의 가입 기간과 연동하는 방안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둘째, 소득 하위 70%의 어르신들에게는 동일한 금액을 정액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래서 임기 내에 A 값의 10%에 해당하는 금액(2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셋째, 소득 상위 30% 어르신 중에도 형편이 좋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인 만큼, 상황에 따라 일부에게라도 일정액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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