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확히 말하면 국토교통부는 한국 철도가 부실과 비효율의 온상이고 그 원인으로 1세기를 넘게 이어온 독점을 들고 있다. '독점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은 경쟁밖에 없다. 따라서 경쟁 체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순한 경쟁 체제만으로는 효율을 극대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 철도가 독점 때문에 부실한 것도 있지만, 공적 체제라는 한계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철도가 국영 철도이던 시절 국토부(당시 건교부)는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지배하는 비효율적인 체제로 철도를 운영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지금 공기업은 비효율적이라서 문제라고 한다. 결국 효율적인 민간기업이 철도의 부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최종 형태는 독점을 타파한 '경쟁 체제 + 효율적인 민간 = 민간 경쟁 체제'로 귀결된다. 국토부의 눈에는 철도 민영화가 한국 철도의 발전을 이룰 궁극적 모델이다. 국토부는 공무원 체제나 공기업 체제가 비효율이라고 목청을 높이는데, 그동안 철도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온 국토부 관료 자신들은 '비효율적인 공무원 집단'의 극히 예외라는 확신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부 관료들의 민간이 효율적이라는 믿음은 종교에 가깝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수서발 KTX 민영화에 대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때 대표적으로 내건 예가 '경쟁을 통해 효율화' 되었다는 이동통신 사례였다. 예를 들어도 조금이나마 설득력이 있는 예를 들어야지 상상력조차 빈곤한 관료들은 KTX 민영화가 되면 이동통신 시장처럼 좋아진다는 어이없는 선전을 했다. OECD국가와 비교해도 통신비의 가계 부담이 높아 이용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면서도, 이를 규제하는 방통위의 여러 처방들이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을 국토부만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KT의 2010년 기준 주식 보유 현황을 보면, 외국인이 49%로 최대주주다. 그 뒤로 국내 주주 34.82%, 국민연금 8.26% 순이다. 한국거래소(KRX) 보도 자료를 보면, KT는 2010년 배당 수익으로만 외국인에게 3000억 원 이상을 안겨줬다. 한국의 이동통신 이용자들은 OECD 가맹국 최고 수준의 통신비를 내지만, 배를 불리는 건 이들 이동통신사들에 투자한 월가의 국제 자본들이다.
▲ 국토부가 '수서발 KTX 쪼개기'를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독점의 혜택을 누린 적자 기업'이라는 형용 모순
철도의 독점을 깨고 경쟁을 통해 효율화시키겠다는 사람들은 경제학이 말하는 독점을 단지 같은 단어라고 해서 철도의 '자연 독점'과 혼동하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일부에서는 철도의 자연 독점 이론은 경쟁이 심화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철지난 이론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어느 이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철지난 이론인지는 그리 먼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증명될 듯하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일반적 진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하나는 자본주의 발전의 심화(특정 지역 내에서 산업의 확대 성장)이고, 또 하나는 자본주의 발전의 확대(새로운 지배 영역의 확장)다.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한 기업이 초과 이윤을 확보하고 더 많은 시장을 지배함으로써 시장 전반을 장악하면, 결국 우리가 말하는 독점적 지위에 오르게 된다. 독점적 시장 지배를 하는 기업은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이윤을 확보한다. 이렇게 확보된 이윤을 독점적 초과 이윤이라고 한다.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 경제의 특성상 기업이 거대해진 만큼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갖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독점은 원래의 생산 가치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사회에 부담시킴으로써 전 사회적으로 손실을 주고 시장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독과점 방지나 독점적 카르텔의 금지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런 면을 고려하면 철도 산업이 강력한 시장 지배력으로 사회적 가치보다 높은 초과 이윤을 챙기는 독점 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수 십 년간 국가의 정책에 따라 원가 이하의 요금 수준을 유지하고 투자 없이 방치된 열차와 선로, 역사를 관리해온 철도가 독점적 시장 장악을 통해 초과 이윤을 누리며 방만하게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110년이 넘는 "독점의 혜택을 누린 적자 기업"이라는 형용 모순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초기 사유 철도가 주도했던 철도가 근대 이후 국가의 독점적 관리로 들어선 이유는 분명하다. 근대적 산업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철도가 국가의 주요 기간 교통망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강력한 집행력과 재정이 없으면 안 됐기 때문이었다. 선로가 연장될수록 개별 기업은 거대한 장치 산업인 철도에 투자할 여력을 잃었다. 따라서 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 기반 시설을 확보하는 데 국가의 힘이 필요했다. 즉 철도 시스템이 열차 운행과 시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독특한 특성을 갖는 것과 막대한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현실이 맞물려 국가가 철도를 자연 독점하게 됐다. 이렇게 전체 산업 발전의 주요한 바탕이 되거나 국가 교통망의 구축과 운영이라는 명확한 특징을 갖는 자본을 우리는 사회 간접 자본이라 부르고 있다.
사회 간접 자본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불러올 수 있는 여러 가지 폐해를 보완해주는 장치로서 개별 자본의 사적 이익 추구 대상이 아니다. 더 건강한 경제 체제로 지탱시킬 수 있는 토대인 만큼, 사회적 소유의 형태를 띠는 것이 당연하다. 많은 나라에서 철도를 국가의 직접적 운영에서 공기업 체제로 전환시키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철도가 갖는 고유한 특성인 통일적이고 독점적인 시스템을 과도하게 훼손시키지는 않았다. 유독 이런 철도의 특성을 무시한 영국과 같은 일부 국가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긴 하지만 드문 일이다.
만약 국토부의 주장대로 철도 산업의 독점이 한국 철도를 부실로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철도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 프랑스, 지역 독점 체제로 분할된 일본 철도의 독점적 운영은 설명할 길이 없다. 한국 철도가 당면한 문제는 독점에서 비롯한 문제가 아니고, 철도의 산업적 특성과 정부의 투자 부재, 정책 부재 등 다양한 원인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완전히 배제한 채 상투적인 독점의 문제로 철도의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정부는 철도의 발전을 가장 심각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날림 공사, 중복 건설…영국 민간 철도 회사의 비효율
철도가 경쟁을 통해서 효율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 경쟁을 통해 철도를 말아먹은 이야기다. 1990년대 영국 민영화 이야기냐고? 아니다. 1840년대 영국으로 가보자.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몰려드는 승객과 화물을 감당할 수 없어 철도회사는 가지고 있는 기관차를 풀가동해야 했고 추가로 기관차와 객차를 주문해야 했다. 이때까지 철도의 건설을 방해하거나 무용론을 제기 했던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철도를 의심의 눈길로 보던 런던의 자본가들은 철도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야말로 철도의 대폭발 시대가 열렸다. 1837년 회기에만 118건의 새로운 철도 법안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었다. 의회는 경쟁이 철도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며 신규 노선에 대한 설립 허가를 남발했다. 두 개 이상의 철도가 같은 시기에 착공되는 일도 허다했고 경쟁 철도 회사 간에 기술자를 서로 빼가는 일도 벌어졌다. 자본가들은 초기의 철도 건설 사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철도 교통량이 눈부시게 증가하고 이에 따른 배당금이 올라가자 벌떼처럼 철도 사업에 달려들었다.
▲ 철도가 막 등장했던 초기의 열차 모습 ⓒ런던 교통박물관 |
런던의 부자들이 철도에 돈을 대자 철도 주식은 최고의 우량주로 떠올랐고 가장 중요한 거래 종목이 되었다. 집안 장롱 깊숙이 숨겨져 있던 돈까지 다투어 철도 주식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자금이 모이자 새로운 선로 건설 계획을 촉진됐고 인구가 많은 구간에 건설되는 철도 주식에는 프리미엄까지 따라붙었다. 철도 사업에 대한 배당률이 최소 8%에서 1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거대 자본가는 물론이고 거지까지 구걸하는 돈을 모아 철도의 채권을 샀다. 이때부터 철도 사업의 성격과 목표가 달라졌다.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된 철도는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복권이 되어 버렸다.
투자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철도에 대해서 알 필요도 없었고 철도가 갖는 특성이나 교통수단으로서의 역할 같은 것엔 관심도 없었다. 철도가 새로 들어가는 역의 도시에는 바로 주식시장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서로 철도 주식을 사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눈앞에서 철도 주식에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 횡재를 하는 사람들을 본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전문 사기꾼들이었다. 새로운 철도 계획을 거짓으로 꾸며 투자 자금을 유치한 뒤 사라지는 고전적인 수법이 등장했고, 실제로 철도 건설에 나선 기술자, 변호사, 측량사, 철도회사 직원들도 한 몫 잡기 위해 일을 꾸몄다. 무모한 철도 건설 계획을 세우고 교통량이 없는 곳도 있다고 거짓 예측을 했다. 철도로 돈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은 부지런히 돈을 챙겨먹자는 심보였다. 한국의 국책연구원인 교통연구원이 허위 수요예측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는 철도를 양산한 것을 보면 비슷한 성향의 DNA를 가진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 의회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주와 운하 사업자의 입장을 대변해 철도 건설 법안에 대해 무관심과 꾸물거림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투기의 회오리가 불어 닥치자 금광에 달려드는 사람처럼 철도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전념했다. 의회는 시민들에게 "무한 경쟁의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미 놓여있는 선로와 나란히 새로운 노선을 건설하는 법안도 승인했다. 궤간도 마음대로 정하게 하고 기관차의 형식도 자유롭게 했다. 일단 철도를 건설하겠다고 하면 승인을 못해줘서 안달이 났다. 수십 개의 철도 회사가 생겼고 돈에 눈이 먼 투자자들을 등에 업고 철도가 깔렸다. 철도 투자 관련 소식지로 우편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광풍이 일었다.
한순간에 꺼진 철도 투기 거품
투기 열풍으로 새롭게 떠오른 신흥 부자는 철도 도급업자였다. 이들은 벼락부자가 되어 지주, 철도회사 경영진, 의원으로까지 진출했다. 도급업자들이 철도 사업에서 돈을 버는 방식은 간단했다. 터널을 뚫을 때 벽돌 대신 진흙을 발랐고, 철교의 기초 공사를 날림으로 했다. 석재를 넣어야 할 곳에 잡석으로 채우고 선로에 까는 자갈까지 속여서 깔았다. 철도 건설 감독들은 도급업자들을 감시해야 하는 위치였지만 정부로부터 낮은 임금을 받는 감독들의 주머니는 도급업자들이 채워주었다.
철도회사가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건설 광풍이 불자 철도 기술자들의 몸값도 폭등했다. 특히 철도의 대가로 우뚝 선 조지 스티븐슨을 영입하기 위한 철도 회사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일부 회사에서는 조지 스티븐슨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이름만이라도 빌려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스티븐슨은 "노동과 명예가 없는 돈은 필요 없다"며 이름을 빌려주는 것도, 투기 열풍에 빠진 철도회사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더 나아가 자신이 그토록 필요성을 주장했던 철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말리기까지 했다. 선로 건설에 뛰어든 도급업자들의 실태를 본 스티븐슨의 분노도 대단했다. 스티븐슨은 많은 선로를 건설하면서 16-19킬로미터마다 공구를 나누고 노련한 주임 기술자를 공구마다 배치했다. 이 기술자 밑에 경력이 있는 보조 기술자를 배치하고 또 터널 작업과 벽돌 쌓기 작업을 감독하는 경험자들을 배치했다. 기관차가 달리기 위한 전제 조건이 튼튼한 선로임을 알고 있는 스티븐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탐욕에 찌든 도급업자들의 날림 공사의 결실은 얼마 안 가 열매를 맺었다. 터널이 무너져 내리거나 지은 지 얼마 안 된 교량이 썩어 주저앉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스티븐슨은 영국 철도의 상황에 점점 환멸을 느꼈다.
▲ 19세기 중반의 철도 사고. 비용 절감을 이유로 진행된 부실 공사는 대참사를 부른다. ⓒ구글 |
수십 개의 철도회사가 경쟁을 벌이고 철도를 통해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영국 철도의 거품이 '펑'하고 터진 것은 1845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를 때보다 훨씬 빠르게 철도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의원과 귀족들은 물론 변호사와 의사, 상인들, 건달과 술주정뱅이 들, 심지어는 거지들까지 휴짓조각이 되어버린 철도 주식을 망연자실 바라보아야만 했다. 경마장에선 이제야 철도에 빼앗겼던 손님들이 좀 오겠다는 농담이 돌았다.
영국이 실패한 철도 효율화, 벨기에가 성공시키다
철도가 영국에서 막 발현하던 시기에 이웃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될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에 맞서 동맹군으로 참전했다가 영국에 머물러 있던 귀족 가문의 사람이었다. 1831년 벨기에의 국왕이 되는 레오폴드 1세였다. 레오폴드는 철도가 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유럽 최초의 군주였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와의 독립 전쟁 후유증으로 여러 가지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레오폴드 국왕은 철도가 그 일들을 완수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스티븐슨을 불러들였다. 국왕은 벨기에 백성들에게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레오폴드 국왕은 벨기에의 주요 도시와 지역을 잇는 전국을 포괄하는 철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 철도가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게 앤트워프나 브뤼셀의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을 금지했다. 스티븐슨은 아들과 함께 벨기에로 건너가 레오폴드 국왕과 벨기에 전국에 걸친 철도망 건설 계획을 논의하고 총책임자가 된다.
영국 철도가 경쟁 체제에서 허덕이는 동안 벨기에 철도는 국가가 주도하는 완벽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이 경쟁을 부추기면서 너무 많은 돈을 지출했고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안 레오폴드 국왕의 판단은 정확했다. 벨기에 국민들은 영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요금을 내고 전체 구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835년 5월 레오폴드 국왕은 조지 스티븐슨의 공로를 치하하며 기사작위를 수여했다. 1841년에는 스티븐슨의 아들 로버트 스티븐슨에게도 기사 작위의 영광을 수여했다.
영국 정부와 입법부가 경쟁이 독점을 방지할 거라는 억측으로 철도에 경쟁을 촉진한 결과는 끔찍했다. 조지 스티븐슨은 자신이 기초를 세웠지만 실패의 길로 갔던 영국철도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철도의 경쟁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지 스티븐슨은 두 눈에 힘을 주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화할 수 있는 곳에서는 경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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