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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철도 경주 대회는 왜 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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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계 최초의 철도 경주 대회는 왜 열렸을까?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8> 마르크스·디킨스가 해설하는 철도 경주

"철도도 도로, 항공, 해운처럼 경쟁을 통해 효율화해야 한다."

"철도 운영 경쟁 체제란 민간에 철도 운송 사업의 면허를 주는 것입니다. 이는 도로, 공항, 항만 시설 등을 국가가 건설하여 버스‧항공사‧해운사 등에게 운송 사업 면허를 주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인용문들은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정책 블로그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국가 교통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정책 부서가 철도를 도로나 항공, 해운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국토부가 밝힌 위의 내용들은 정부 철도 정책의 함량 미달만을 드러낼 뿐이다.

지금부터 독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에 들어가겠다. 아래 질문 내용에 답하실 수 있으신 분은 연락 주시라.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다.

기차 경주대회 보거나 들어보신 분?
자가용 기차를 보신 분들 있으신지?
기차쇼 참관해보신 적이 있으신 분?

인류가 만든 것 중에 공공 교통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바로 철도다.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통틀어서 오직 철도만이 사람과 화물을 나르는 일에만 복무한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다나 강을 항해하는 배 모두 운송을 위한 상업용이 있는가 하면 개인이 소유한 자가용이 있다. 더 나아가 F1 자동차 경주나 비행기의 에어쇼처럼 이들 교통수단은 스포츠나 레저의 영역까지 진출해 있다. 그렇다면 철도와 다른 교통수단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정해진 궤도 달리는 철도, 경쟁 발생 불가

오직 철도라는 교통수단만이 궤도라는 시설 위에서만 존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운전자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는 시스템이다.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운전자의 의지대로 피할 수 있으며 도로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출근길 자동차들이 수시로 차선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정규 항로가 있는 비행기나 배 역시 운항 공간에서의 자율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철도는 정해진 궤도 위에서 순차적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철도는 교통로와 운행수단이 완전히 결합된 폐쇄적 시스템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철도에서는 시장 경제에서 말하는 자유 경쟁을 할 수 없다. 국토 교통부가 수서발 KTX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며 예를 든 서울 지하철의 서울 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경쟁하지 않는다. 경쟁이 성립하려면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한데, 지하철을 이용해 천호동에서 광화문을 가기 위해서는 도시철도공사가 운행하는 5호선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다. 어디서 경쟁이 발생하는가?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간을 이용하기 위해서 서울의 톨게이트를 지나서 부산까지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는 어떤 신호에도 제한받지 않는다. 신호등조차 없다. 반면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운행하는 열차는 수백 개에 이르는 신호 시스템의 제어를 받는다. 각각의 신호는 선로에 설치된 장치를 통해 달리는 열차로 전달된다. 선로에서 온 신호를 수신한 열차는 이에 조응해 열차의 속도를 제어하며, 앞뒤 열차와의 간격을 조절하고, 정차할 역의 선로를 배정받는다. 열차가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탁월한 안전성이 보장되는 이유는 운전자의 자율 의지가 최대한 배재된 채 촘촘한 신호 체계에 의해 제어되기 때문이다. 열차 기관사는 단순한 운전자가 아니라 선로가 주는 신호에 열차를 조응시키는 오퍼레이터의 역할을 한다. 신호 시스템을 기초로 기관사는 눈, 비나 안개 등 기후 조건에 따른 선로의 상태와 열차의 길이와 무게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운전한다.

이런 특성으로 철도를 운영할 때는 선로와 그 위를 달리는 기차, 이를 종합적으로 통제하는 관제실의 삼위일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철도 구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정책들은 철도의 유기적 통합 시스템을 강제로 분할하는 것들이어서 안타까웠다. 철도 운영과 시설을 분리하고 최근 논란 속에 중단되었던 정부의 관제권 회수 같은 일들은 한국 철도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뿐이다.

19세기 영국, 철도 경주 대회 열리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사실 철도 경주 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기관차 경주 대회인데 영국의 자본주의가 막 폭발하는 바로 그 시절이었다. 조지 스티븐슨의 주도로 개통된 스톡턴-달링턴 구간의 철도가 대성공을 거두자, 철도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당시 눈코 뜰 새 없이 성장하는 산업을 뒷받침할 교통수단이 절실히 필요한 도시가 있었는데, 바로 맨체스터와 리버풀이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구간에 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되자, 이것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스톡턴-달링턴 철도가 성공을 거뒀음에도 독립적인 기관차가 끄는 형태의 교통수단은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에 역마다 21개의 고정 증기기관을 설치하고 로프를 연결해서 객차를 견인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아직 시속 10km 정도에 불과한 기관차의 견인력에 대한 의구심이 새로 개설될 철도의 운영 방식 확정을 머뭇거리게 했다. 철도 건설을 맡은 회사는 혼란 속에서도 책임자인 스티븐슨을 믿었지만, 많은 기술자들과 속칭 전문가들이 스티븐슨의 능력에 문제를 제기했기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회사는 기관차 운행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과 기관차가 반드시 열차를 끌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 속에서 기발한 제안을 한다. 500파운드라는 거금의 상금을 걸고 기관차 경주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에게는 500파운드의 상금보다 이 대회의 우승자가 맨체스터-리버풀구간의 기관차로 선택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자신이 새로 제작하는 기관차 로켓호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제 대회가 열리는 레인힐이라는 곳으로 가보자. 마이크를 현장으로 넘긴다.

▲ 운행 당시의 로켓호를 그린 삽화 ⓒ브리타니카

중계차 나와 주세요!

안녕하십니까? 21세기 한국의 시민 여러분! 여기는 현지 시각 1829년 10월 6일 인류사 최초의 기관차 경주대회가 열리는 영국 리버풀 인근의 레인힐입니다. 저는 역시 인류사 최초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실황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 찰스 디킨스입니다. 오늘 해설에는 주욱 이곳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발전 상황에 주목해 오고 앞으로 철도가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칠 예정인 칼 마르크스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마르크스 선생님!

예! 안녕하십니까? 칼 마르크스입니다.

디킨스 :먼저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서 오늘 기관차 경주 대회가 갖는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마르크스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확산을 폭발시키는 발화점과 같은 도시입니다. 아시다시피 리버풀은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노예사냥의 집결지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시켜 주는 노예 중계 무역의 본산이었습니다. 또한 영국 식민지 무역의 전진기지로서 오래전부터 고속 성장을 했던 곳이고요. 맨체스터는 새로운 공업 도시로 거듭난 곳입니다. 특히 맨체스터 지역은 영국이 폭력적으로 농촌을 해체시키고 방직 산업을 발전시킨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도시지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진 과정이 담긴 도시입니다. 농촌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맨체스터의 방직 공장에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환된 곳입니다. 워낙 많은 농민들이 유입 되서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들이 공장 옆 공터나 트래퍼드 공원에서 맥주 내기 축구 시합으로 시간을 때우는 데요, 이러다간 맨체스터는 축구와 술주정꾼으로 유명한 도시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리버풀과 맨체스터 이 두 곳의 결합은 영국의 공업 생산과 해외 무역이 결합하는 아주 중요한 지점인데요. 이것을 이어줄 교통수단으로서의 철도가 부설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철도는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신화적 힘을 갖는 교통수단으로 발전할 것이 확실한데요. 그 첫 장을 여는 기관차를 선정한다는 의미까지 있는 이번 대회는 역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디킨스 : 리버풀과 맨체스터 구간 까지 길이는 어느 정도고요 현재 공사 진척 상황 좀 설명해 주시죠.

마르크스 : 양 구간은 약 45km로 한국에서 최초로 개통될 노선인 노량진-제물포 구간의 33km에 비하면 상당히 긴 거리입니다. 걸어 다니는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틀에서 삼일이 걸리고요 급행 역마차를 이용할 경우 하루에 약간 못 미치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을 철도로 연결할 때 과연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인데 이번 대회 결과로 소요 시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 스톡턴과 달링턴에서 기차가 운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15km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운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본격적인 영국 철도의 장을 여는 것은 이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노선이 될 것입니다. 현재 리버풀 쪽의 선로는 건설이 된 상태고요 이번 경주 대회도 리버풀-맨체스터 구간 중에 건설이 완료된 구간인 이곳 레인힐에서 열린 것입니다. 전체 개통은 일 년 쯤 뒤에 이뤄지리라 예측 됩니다.

디킨스 : 저희가 경마나 마차 경주 대회는 본적이 있지만 기관차 경주 대회는 처음 경험하는 건데요 경주 방식이나 규칙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마르크스 : 경마처럼 여러 말들이 동시에 달리는 방식은 철도의 특성상 불가능하고요. 동계 올림픽의 스키 활강 대회처럼 순번대로 일정 구간을 달려 기관차의 성능을 테스트 하는 방식으로 열립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규정에 따라 이미 10월 1일 이곳 레인힐의 리버풀 쪽 선로에 기관차를 설치해서 경주를 준비해야 했는데요. 유럽 전역에서 참가자들이 몰렸지만 실제로 10대의 기관차만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예선이라 할 수 있는 사전 테스트에서 정상 작동을 하지 못한 기관차 다섯 대가 탈락하고 다섯 대만 최종 결선에 나선 상황입니다.

디킨스 : 네. 벌써 절반의 출전 선수들이 탈락한 셈인데요. 결선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마르크스 : 예. 피켜스케이팅처럼 반드시 구현해야할 항목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관차 무게의 3배 이상 차량을 연결하고 시속 16km 이상을 내야 합니다. 또한 이 경주대회 구간이 3km 정도 되는데요. 이 구간을 20회 이상 왕복해야 하고 112km 이상의 운행거리를 달성해야 합니다.

또 권투처럼 계체량도 통과해야 하는 데요 기관차 무게는 6톤 이하여야 하고 높이는 연통 꼭대기 까지 4.5m를 넘으면 안 됩니다.

디킨스 : 마르크스 해설위원의 말씀을 들어보니 상당히 복잡한 규칙을 갖고 있는 경주입니다. 저는 잠시 이곳의 풍경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있는 중계석은 열차가 리버풀 쪽으로 달리는 출발점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경주구간 총 길이가 3km 정도 되기 때문에 최종 도착지점은 이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보인다 하더라도 경주를 보기위해 모여든 관중들에 가려서 제대로 보기는 힘든 위치입니다. 출발 지점을 비롯해 선로 변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백 명의 경찰이 동원돼서 질서 유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요. 너무 많은 인파들로 경찰 병력 증원이 요청된 상태입니다. 지금 방금 조직위에서 긴급 공지가 전달 됐는데요. 긴급히 마련한 임시 화장실이 많이 부족하지만 아무데나 용변을 보는 행위를 삼가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선로 변 곳곳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것을 이곳 중계석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시 칼 해설 위원님과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출전 기관차들이 레인힐에 전시돼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 데요. 이런 모습은 영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지요?

마르크스 : 그렇습니다. 영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최초로 있는 일이지요. 인간이 연료를 연소시켜 작동할 수 있는 기계 장치를 만든 것은 얼마 안 된 일인데요, 현대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움직이는 기계를 만드는 데까지 왔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더 급속히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에 출품된 기계들은 모두 훌륭한 듯 보입니다. 원래 증기기관은 탄광이나 방직 공장 같은 곳에 설치된 고정 자본이었지요. 중요한 생산수단인데요. 여기에 노동자들의 노동이 더해져야만 새로운 가치가 창출됩니다. 애덤스미스도 이야기한 노동 가치이지요. 이런 고정 자본에 발이 달린 모습으로 지난 며칠 동안 레인힐에 전시되었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신들처럼 보였습니다. 이 기관차들이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것입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상품은 결국 교환되어야 하는데요. 철도는 이 교환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또 광범위하게 보장할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생산 양식이 창출하는 엄청난 생산량을 감당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죠.

디킨스 : 앗, 말씀 드리는 순간 출발 지점을 떠난 기관차가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연통으로는 구름을 생산해 내듯이 연기를 뿜어 올리며 성난 코뿔소처럼 달려오고 있습니다. 아 도색으로 봐선 코뿔소가 아니라 얼룩말 같군요. 노랑과 검정색으로 칠해진 차체에 하얀 굴뚝이 돋보입니다. 아 아 이런 광경은 제 평생 처음 보는 장면입니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토록 거대한 쇳덩어리가 달릴 수 있는지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 레인힐 기관차 경주 현장입니다.

지금 달려오는 기관차는 어떤 팀인지 설명을 해 주지죠.

마르크스 : 예, 지금 달려오는 기관차는 결선 세 번째 주자인 로켓호입니다. 로켓호를 운전하는 선수는 조지 스티븐슨으로 기관차 제작의 달인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전시 과정에서 로켓호를 보면서 잠시 조시 스티븐슨 선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다른 출전 기관차들도 상당히 훌륭하지만 자신의 로켓호는 이 중 최고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지금 달리는 모습을 보니 역시 그런 자신감을 가졌던 게 이해가 됩니다.

초기 철도, 낙타를 이기다

디킨스 : 예, 벌써 눈 깜짝 할 새에 저희 중계석 앞을 지나쳐 지금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선로변의 관중들 거의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를 정도로 환호가 대단한데요. 언뜻 눈으로 봐도 마차보다 훨씬 빠르게 보입니다. 칼 해설위원님이 보기에 속도가 어느 정도로 보입니까?

▲ 런던 과학 박물관에 전시된 스티븐슨의 로켓호. ⓒ런던과학박물관
마르크스 :
저도 지금 제 눈을 의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회 규정에 따르면 평균시속 16km 이상을 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속 16km면 우편 배낭과 캐빈에 사람을 태우고 말 네 마리가 끄는 역마차 정도의 빠르기인데요. 지금 최소한 그의 두세 배의 속도를 보여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공식 측정 기록이 나오면 정확히 알 수 있겠는데요. 이전의 기관차들이 갈수록 속도가 떨어지거나 뒤에 화차를 연결하면 잘 달리다가도 움직이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모습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갈수록 속도가 더 붙는 것 같습니다.

디킨스 : 방금 기록원들이 전달한 내용에 따르면 로켓호의 최고 속도가 시속 47km로 나왔다고 하는데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요?

마르크스 : 예, 지금 뒤에 기관차 무게의 3배에 이르는 화차를 연결하고 달렸거든요. 이게 최고 속도가 시속 47km가 나왔다는 건 인류가 이제껏 도달하지 못했던 속도의 벽을 깨뜨렸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 속도가 현실화 되면 장거리 수송수단의 일대 혁신이 오는 거지요.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장거리 육상 수송수단은 낙타가 유일 했는데요. 캐러반이라고 불리는 낙타 대상들의 수송 능력을 보면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사용되는 단봉 낙타의 경우 주로 기온이 낮은 밤에 이동하거든요, 이럴 경우 100kg의 짐을 지고 하루 60km를 이동하는 게 최대치입니다. 일반적으로는 50kg의 짐을 지고 하루 10시간을 이동해 35-40km를 이동합니다. 1톤의 화물을 가지고 사하라 사막을 횡단할 경우 20마리의 단봉 낙타 행렬이 8-10주를 이동해야 합니다.

만약 철도를 이용해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게 되면 낙타 수천마리를 끌고 3-4일 만에 이동하는 것의 효과를 나타내는데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류 역사를 바꿀 것이 확실합니다. 물론 아시아의 스텝 지역과 추운 지방을 여행하는 데 이용하는 쌍봉 낙타의 경우 수송능력이 단봉 낙타보다는 낫지만 철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과거 고대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던 수단 중의 하나가 길이었거든요. 영국이 이 철도를 최초로 가졌다는 것은 로마처럼 세계를 지배할 수단을 확보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지중해와 중동,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프랑스, 이곳 영국까지 로마인들의 머리 위에 항상 그들의 태양이 떠올랐듯이 해상무역을 장악한 영국이 철도까지 갖게 되어 영국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디킨스 : 마르크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보니 이게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군요. 저는 아직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만 내년에 리버풀과 맨체스터 간 철도가 개통되면 꼭 타봐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겁이 좀 나긴 하지만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꽤 근사할 것 같습니다. 이제 로켓호의 경주가 끝나고 다음 선수가 준비 중인데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출발선 부근이 소란스러워 보입니다. 아 방금 출발선의 문제를 저희 중계팀원이 말을 타고 와서 알려줬습니다. 무게 초과라는데 칼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마르크스 : 지금 경주에 나설 선수는 더 이상의 경쟁 상대는 없다는 뜻의 상-파레이호인데요. 기관사는 티모시 핵워스입니다. 지금 어떤 문제가 발생했냐면 보일러하고 화차의 물통에 물을 채우니까 규정 무게를 500kg 초과했거든요. 이러면 규정 위반으로 탈락입니다. 물을 덜어내고 달려야 할 것 같은데요.

디킨스 : 예 문제가 해결 됐는지 상-파레이호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과 검정색이 칠해진 건 로켓호와 같지만 초록색이 추가된 도색입니다. 제가 볼 때 에는 로켓호와 별다르지 않게 달리는 것 같습니다. 쏜살 같이 중계석 앞을 지났습니다.

지금은 상-파레이호 8번째 왕복인데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출발 지점을 돌아 다시 달리기 시작한 상-파레이호와 티모시 핵워스 기관사입니다. 아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저희 중계석 바로 앞에 상-파레이호가 갑자기 섰습니다. 티모시 핵워스가 내리는 군요. 이건 또 어떤 상황으로 보입니까?

마르크스 : 티모시 선수 얼굴이 어두운 걸로 봐서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증기 배출도 잘 안 되는 거 같이 보이고요 지금 운전실에서 나와 여기저기를 보고 있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걸로 보이는데요. 안타깝습니다. 아 지금 경기 진행 요원이 증기기관 실린더가 파손되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죠?

디킨스 : 아 티모시 선수 양팔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경기 포기를 선언하는군요. 지금 대회 조직 위원회가 고장을 일으킨 상-파레이호를 출발지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티모시 선수 굉장히 아쉬운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기관차를 보고 있습니다. 이어서 선을 보일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마르크스 : 노벨티호입니다. 브레이스웨이트와 에릭슨 두 사람이 공동으로 제작한 기관차인 데요. 원래 이 노벨티호가 제일 먼저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준비가 안 되어서 며칠 미루어졌었습니다. 시험 운행 때는 제법 잘 달렸고요 비공식이긴 하지만 최고 시속 45km라는 놀라운 기록을 보여주기도 해서 스티븐슨의 로켓에 맞서는 다크호스로 평가되었거든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본선에서는 힘을 못 쓰고 있네요.

디킨스 : 예, 노벨티호 힘을 내길 기원하겠습니다. 파란색과 구리색으로 칠해진 차체가 듬직해 보입니다. 드디어 노벨티호 커다란 굉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합니다. 선로변의 관중들 또다시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노벨티호 잘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반환점을 돌아 규정된 왕복횟수를 채우면 되는 데요 아무쪼록 도전이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아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 난거 같은데요? 소방대원들이 출동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이고요 관중들이 선로 변을 에워싸고 있는 듯합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희 중계팀이 사정을 파악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페스트처럼 유럽을 강타한 철도

마르크스 : 제가 좀 전에 조지 스티븐슨의 기관차가 달리는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은 참으로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이 세계의 미래가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고요. 철도망이 영국 전체로 또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영국과 같은 생산과 소비 체제를 심어준다는 것인데요.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은 물론 시간을 뛰어 넘는 것은 분명한 진보이긴 하지만, 이 진보의 결과가 어떤 세상을 만들지는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네요.

디킨스 : 그렇군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철도가 세상에 자리 잡는다면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것들이 현실화되겠는데요. 그런데 이런 철도가 우리 생전에, 세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영국에서만이라도 일반화될까요?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르크스 : 제가 보기에는 리버플-맨체스터 철도가 달리기 시작하면 곧바로 영국 전체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그 이유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자리잡은 이상 이 체제의 발전에 철도만큼 매력적인 수단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철도는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퍼져갔던 페스트 병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갈 걸로 보입니다.

디킨스 : 그 말이 실감이 나질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네요. 치명적인 병균은 아니니까요.

마르크스 : 철도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운송할 체제는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으로.

디킨스 : 아 막 노벨티호의 상황을 알려오는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노벨티호가 출발지에서 3km 떨어진 반환점 부근에서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공급관이라는 장치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며 떨어져 나갔다고 하는데요 일단 경주를 중단하고 4일 후에 재경기를 갖기로 조직위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마르크스 : 예. 이렇게 되면 조지 스티븐슨의 로켓호가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앞서 탈락한 사이클로패드호는 증기 기관차는 아니었습니다, 벨트 위에 말이 올라가서 달리는 것으로 동력을 얻는 신기한 방식이었는데요, 말의 자연력과 기관을 결합시킨 일종의 하이브리드 엔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참가 기관차를 증기기관으로만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회 규정상 문제는 없었지만, 경기 중 놀란 말이 폭주하는 바람에 기관이 망가지면서 완주에 실패했습니다. 퍼시비어런스호도 불운했는데요. 레인힐로 운송도중 사고로 기관차가 파손돼서 5일 동안이나 수리를 하고 대회 막바지에 출전했지만 제대로 달리지 못했습니다. 참가비 25파운드만 받아가는 걸로 그쳤죠? 이렇게 된 이상 노벨티호가 4일 후 눈에 뛰는 성능을 보이지 못한다면 500파운드의 상금과 최초의 기관차 경주대회 우승의 영광은 출전 팀 중 최고의 성능을 보인 로켓호와 조지 스티븐슨의 몫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디킨스 : 예, 오늘 중계는 일단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의 우승팀은 들으신 대로 조지 스티븐슨과 로켓호가 유력해 보입니다만,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철도로 열리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굉장히 기대됩니다. 지금까지 영국 중서부 리버풀의 레인힐에서 도움말에는 칼 마르크스 선생님이었고 저는 캐스터 찰스 디킨스였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P.S. 10월 14일 다시 열린 경주에서 노벨티호에는 증기 생성기의 연결 나사가 부러지는 바람에 작은 폭발이 일어났고 기관사 에릭슨은 경주를 포기했다. 레인힐 경주 대회의 우승은 로켓호가 차지했고, 스티븐슨은 리버풀-맨체스터 노선에서 움직이는 동력차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성공적으로 시연하면서 철도 시대의 막을 열었다. 위의 레인힐 경주대회 중계는 영국에서 동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을 등장시켜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하고자 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긴 대회 일정상 일부 사건은 글쓴이가 재구성했음을 알려드린다. 칼 마르크스의 해설 부분 중 낙타 수송 능력 관련 내용은 서울대 출판부에서 펴낸 주경철 선생님의 <대항해 시대>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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