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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0명 공장…현대차, 박근혜 공약을 비웃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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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0명 공장…현대차, 박근혜 공약을 비웃나

[박점규의 동행] 현대다이모스 비정규직 공장 노사 합의의 의미

최진일 씨(35)는 기아자동차 모닝과 레이를 만듭니다. 모닝은 1분기 국내 시장에서 2만3462대가 팔려 판매량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닝과 레이를 합친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10%에 육박합니다.

6월 12일 현대모비스 발표에 따르면 레이는 여대생이 사고 싶은 첫 차 2위에 올랐고, 지난 5월 한 중고차 전문 업체 조사에서 부부의 날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은 차 1위를 차지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모닝과 레이를 기아차에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를 만드는 노동자 최진일 씨는 기아차 소속이 아닙니다. 모닝과 레이는 기아차와 동희산업의 합자 회사인 동희오토에서 만듭니다.

그런데 그는 동희오토 소속도 아닙니다. 동희오토가 계약을 맺은 17개 사내 하청 업체 중 하나인 희광이라는 업체 소속입니다. 기아차에서는 동희오토를 기아 서산 공장으로 부르지만, 그는 기아차 소속도, 동희오토 소속도 아닙니다.

동희오토, 즉 기아차 서산 공장에는 17개 사내 하청 업체 1300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생산 라인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노동자는 모두 비정규직 사내 하청입니다. 노동자들은 기아차 서산 공장을 '정규직 0명(빵 명) 공장'으로 부릅니다.

▲ 13일 아침 기아차 모닝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 ⓒ최진일

자동차 판매 1위 기아차 모닝 공장의 노동자

그런데 이 공장과 담벼락이 맞닿아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 현대다이모스는 7월 완공 예정인 신규 공장을 동희오토와 똑같은 비정규직 공장으로 운영하기로 노사가 합의했습니다. 생산직 사원 180명을 정규직이 아니라 모두 사내 하청 노동자로 채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현대다이모스는 현대, 기아, 쌍용차 등 완성차 업체에 시트, 파워트레인, 변속기 등을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 회사로 현대차그룹 계열사입니다. 현대다이모스는 2010년 순이익이 439억 원에서 2012년 751억 원으로 172%나 증가한 초우량 회사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물량이 늘어나서 공장을 새로 지으면 당연히 정규직 노동자들로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현대다이모스는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생산 라인은 모두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로 채워진 '정규직 0명 공장'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현대다이모스 회사는 노사 교섭에서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결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정규직 0명 공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현대다이모스의 주식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쳐 92.7%입니다. 이번 '비정규직 공장'은 현대차그룹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굴지의 재벌인 현대차그룹이 2년 사이에 순이익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계열사에 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라 비정규직 공장을 만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순이익 172% 늘어난 현대차 계열사, '정규직 0명 공장' 신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실질적인 고용 안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공공 부문부터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며, 대기업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약속한 국민 행복 10대 공약 중 '비정규직 근로자의 내일이 밝아집니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공공 부문부터 상시적인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대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회사의 노동조합 탄압 문서가 통째로 유출돼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고, 기업 총수가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울며 겨자 먹기'로 사내 하청 노동자 1만여 명을 정규직화한 이마트를 시작으로 한화,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상시적인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비정규직 공장을 신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대차 재벌과 정몽구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콧방귀를 뀌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 비웃는 현대차

현대다이모스가 만들려고 하는 '정규직 0명 공장'의 효시는 세계 10위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현대모비스입니다. 현대모비스는 전국 11개 공장 중에서 8개 공장이 비정규직 공장입니다. 원래 정규직 중심으로 생산을 해왔고 노동조합이 있었던 창원, 울산, 진천 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장은 모두 정규직 0명 공장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주요 부품 회사인 현대위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조합이 있었던 창원 공장을 제외한 안산, 평택, 광주, 서산 공장이 비정규직 공장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공장에 파견되어 관리자로 일하고 있고, 생산직은 전부 사내 하청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현대위아에 이어 현대다이모스까지 핵심적인 자동차 부품 3총사를 모두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일부 공장은 정년퇴직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공장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제공

자동차 부품 3총사는 모두 비정규직 공장

매년 3월 31일까지 공시해야 하는 현대모비스의 2012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의 당기 순이익은 2010년 2조7152억 원에서 2012년 3조542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전년도 대비 130%에 달합니다. 2012년 직원 현황은 정규직 노동자 6982명, 비정규직 노동자 103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1.45%에 불과합니다. 이 수치대로라면 비정규직이 거의 없는 참 착한 기업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현대모비스가 직접 고용한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국 11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3000명이 넘는 사내 하청 노동자의 숫자는 빠져 있습니다. 현대모비스 공장 안에서 현대모비스의 지시와 관리 감독을 받으며 하루 10시간, 1년 365일 내내 일하고 있지만 현대모비스 소속이 아닌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통계에도 없는 유령입니다.

현대모비스 창원 공장 노동조합의 한 간부에게 전국 11개 모비스 공장에 몇 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가 있는지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노조에 사내 하청 고용 현황 자료를 주지 않아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파텍스, 현대파워텍도 비정규직 공장이라고 합니다. 역시 계열사인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위스코에는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몇 명이나 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비정규직 비율 1.45% 현대모비스는 착한 기업?

고용노동부는 6월 11일 고용 형태별 고용 현황을 의무 공시하도록 한 고용정책기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을 완료해 오는 19일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300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매년 3월 1일 기준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 일일 노동자, 재택 노동자 등의 현황을 고용부가 운영하는 고용 정보 사이트인 워크넷에 공시해야 합니다. 간접 고용에 속하는 용역과 파견, 사내 하청 노동자의 현황도 정해진 서식에 따라 공시해야 합니다.

공시는 의무 사항이지만 벌칙 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모비스가 지금처럼 직원 현황에 3000명이 넘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빼고 기업 공시를 해도, 노동부 워크넷에 사내 하청 노동자 현황을 공시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 형태 공시제는 비정규직 줄이기 대책입니다. 기업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비율을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비정규직을 줄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근로자 파견법을 10년 동안 위반하고도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고, 지금도 불법 파견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처벌 조항이 있어도 법을 지키지 않는 '법 위의 재벌'이 벌칙 조항도 없는데 의무 사항을 지킬까요?

내년부터 고용 형태 공시제 시행, 처벌 조항 없어

최진일 씨는 지난 2006년 6월에 입사해 기아차 모닝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의 월급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높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를 만들어 싸웠고, 모두 해고됐습니다.

동희오토 공장 앞에서 4년을 싸운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이 있는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한여름 폭염과 태풍을 견디며 노숙 투쟁을 벌였고, 2010년 11월 3일 9명의 노동자 모두 복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11년 12월 마지막 날짜로 복직했습니다.

최 씨를 비롯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기아차 모닝공장은 최저임금을 받는 '정규직 0명 공장'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금속노조 가입을 막기 위해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들이 만들어졌고, 노동자들의 처우가 조금씩 개선됐습니다.

최 씨의 지난달 월급 명세서에는 세금을 떼고 181만1386원의 월급이 찍혔습니다. 성과금을 포함하면 연봉이 3000만 원을 넘습니다. 중소기업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나 다른 비정규직 공장에 비하면 처우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처우는 나아졌지만

며칠 전 회사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질환 여부를 조사하는 설문지를 나눠줬습니다. 최진일 씨는 손, 팔, 다리, 등, 어깨 등 여러 곳에 체크를 했습니다. 동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아차 서산 공장의 시간당 작업 시간을 뜻하는 편성률은 90%가 넘습니다. 숨 쉴 틈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최진일 씨는 조합원들과 함께 인원을 충원해 노동 강도를 낮추고, 현대와 기아차처럼 밤샘 근무를 없애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6월 13일에도 야간 일을 마치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선전전을 했습니다. 침묵하는 노동자에게는 떡고물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지난 8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300명이 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로 채워진 비정규직 공장 현대위아 포승 공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금속노조에 가입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기아차 모닝공장에서 시작한 민주 노조의 바람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정규직 0명 공장'인 현대위아 포승 공장에 만들어진 노조

지난 10일 금속노조 충남지부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비정규직 공장에 합의해 민주 노조의 정신을 훼손한 현대다이모스지회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한국의 비정규직 공장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야만적인 공장입니다. 첫째, 노동자를 자르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주면서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하청 업체를 폐업해 손쉽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비교 대상인 정규직 노동자가 없고 비정규직만 일하기 때문에 불법 파견을 은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의 일터는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에서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로 바뀌어왔고,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50%를 넘었습니다. 일터의 하청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정규직 0명 공장' 같은 나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를 몰아내고 있습니다.

최진일 씨가 일하고 있는 기아차 모닝과 레이 공장에 납품하는 부품사들은 대부분이 비정규직 공장들입니다. 동희오토,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다이모스 등 재벌인 현대차가 정규직 0명 공장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가장 야만적인 공장인 정규직 0명 공장은 정부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1만 명 가까운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마트처럼 노동부가 근로감독관을 투입해 근로기준법과 파견법 등 노동 관계법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해서 사용자들을 처벌하면 됩니다. 그러나 노동부는 사내 하청 사용 실태조차 조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진일 씨는 대법원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 받은 노동자가 240일이 지나도록 철탑에 매달려 현대차에 법을 지키라고 호소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이 뭉치고 연대하면 나쁜 공장도, 나쁜 사회도 조금씩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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