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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명원이는 왜 치과 치료 3일 만에 숨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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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 살 명원이는 왜 치과 치료 3일 만에 숨졌나

"멀쩡한 아이가 치료 받다 숨졌는데…더 이상 이런 일 없어야"

33개월 난 명원이는 엄마와 나들이를 갔다. 명원이는 카페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가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어머니 이 모(31) 씨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명원이가 며칠 뒤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명원이가 치과 치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지난해 7월, 이 씨는 친정에서 가까운 소아 전문 치과를 찾았다. 모유 수유를 오래한 탓에 아이 치아가 조금 하얗게 변했다. 치과에 가니 어금니 4개와 앞니 3개를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어려서 치료받을 때 움직이고 무서워하니 수면 치료를 하자"고 권했다. 부작용에 대해 묻자 깨면 졸려 하는 정도이고, 다른 엄마도 다들 그렇게 치료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27일 오전 10시, 이 씨는 명원이를 데리고 치과에 갔다. 명원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병원 측에선 자는 아이를 깨워 수면제 물약(포크랄 시럽) 15cc를 먹이라고 했다. 자는 아이를 깨워 수면제를 먹일 필요까지 있겠느냐 싶었지만, 나중에 깰 우려가 있다고 해서 지시를 받아들였다. 10시 25분께 다시 잠든 명원이는 11시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치과 위생사는 아이를 담요에 싼 뒤 그물을 양쪽 고리에 걸어서 팽팽하게 치료 의자에 고정시켰다. 아이를 진료실에 들여보내고 이 씨는 다시 대기실에 앉았다.

▲ 사고 이틀 전 엄마와 놀던 명원이.

11시 30분께 진료실 문이 열리더니 데스크 치과 위생사에게 119를 불러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이 씨가 진료실로 달려가니 아이 코에서 분홍색 거품이 섞인 피가, 입에서도 피가 나왔다. 의사는 아이의 심장을 압박하고 있었다. 11시 34분께 119에서 전화가 왔는데, 의사는 "갑자기 호흡·심장 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코에 산소마스크를 대주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수화기 너머로 "자가 호흡이 없으니 코에 마스크 치우고 입으로 숨을 넣어줘야 한다"는 말이 들렸다. 그때부터 의사가 입으로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명원이는 11시 37분께 도착한 응급차를 타고 2차 병원으로 옮겨졌다. 12시 40분께서야 심장이 돌아왔다. 옮겨진 병원에서는 "뇌에 산소가 오랫동안 공급되지 않아 아이가 뇌사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소아중환자실로 옮겨진 명원이는 곧바로 '뇌간 반사 소실(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튿날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서 명원이 몸이 부어올랐다. 소변이 배출되지 않았다. 혈압을 높여주려다 보니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다리가 까맣게 괴사되기 시작했다. 하루가 더 지나자 폐까지 물이 찼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심폐소생술을 하겠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봐도 아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요. '명원아 힘들지. 명원아 사랑해. 잘 가'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심장 정지가 왔어요. 의사가 올라가서 가슴을 누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애가 들썩 들썩 하는 게 아이에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만 하시라고 하고 보냈어요."

7월 30일 명원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치과에서 수면 마취 치료를 받은 지 3일 만이었다.

유가족 "마취제 과다 투여" vs 치과의 "과다 투여 아냐"

이 씨 부부는 2차 병원 이송 당시 치과 의사에게 "마취약을 많이 쓴 것 아니냐", "119에서는 인공호흡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초반에 응급조치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치과의 과실이 아니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씨 부부는 의무기록지를 떼어본 결과, 마취제인 포크랄과 유시락스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 등이 적정량보다 많이 쓰였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술 전 진정에 쓰이는 포크랄의 적정 용량은 체중 kg당 50mg이다. 명원이의 몸무게는 12.5kg이었다. 포크랄은 아이에게 6.25cc가 투여돼야 하지만, 15cc가 투여됐다는 것. 이 씨는 아이에게 투여된 유시락스 5cc, 리도카인 3엠플도 적정 용량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당 치과는 적정 용량이 투여됐으므로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포크랄의 부작용으로는 의식 억제기, 호흡 억제, 저혈압 또는 심부정맥 등이 있다. 이후 깊은 혼수 및 심폐 허탈이 나타날 수 있다. 위급 상황 시에는 "심전도 검사를 계속하면서 기도, 호흡 상태, 및 순환기 상태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하며 적절한 산소 공급"을 해야 한다. 미다졸람 또한 무호흡, 호흡 억제, 쇼크 등의 부작용이 있다.

이 씨가 명원이에게 미다졸람이 투여됐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나중이었다. 치과 의무기록지에는 빠져있으나, 2차, 3차 병원 의무기록지에 "미다졸람 한 방울을 코에 투여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 씨는 "치과 의사가 직접 병원까지 따라가 투여한 약을 구술했고, 그 내용이 큰 병원 의무기록지에 적혀 있다"며 "치과 측에서 미다졸람 투여 기록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이 씨 부부는 "치과 의사가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지난해 8월 담당 치과 의사를 형사 고발했다. 이 씨는 "처음에는 담당 형사도 태도가 미적지근했는데, 대한의사협회가 마취 사고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며 "이후 경찰이 지난해 12월 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 마취통증의학과의 A 대학 교수는 "포크랄 시럽은 소아의 경우 하루 용량 1g을 넘지 말라고 돼 있는데, 체중이 얼마 나가지 않는 아이에게 포크랄 시럽을 1.5g이나 한 번에 투여했다"며 "과량을 투여해도 너무 과량을 투여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시락스의 권장 사용량은 kg당 1mg인데, 5cc(10mg)를 사용했다"며 "포크랄을 과량 사용한 상태에서 유시락스를 함께 사용했을 때 상승 작용으로 나타날 부작용을 생각하면, 감량해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도카인 3엠플에 대해서도 "리도카인은 4.5mg/kg이 최대 허용량이나, 보통 치과에서 사용하는 리도카인이 2%임을 고려하면 102mg로 많이 사용했다"며 "국소 마취제 과다 사용에 의해서도 호흡 저하, 쇼크, 심장 정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진정 마취가 깊게 되면 전신 마취 때와 같이 스스로 숨도 잘 쉬지 못하고 심장 기능도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소아는 호흡기가 성인보다 미성숙해서 호흡 관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호흡 저하, 심장 기능 저하만으로 환자가 사망에 이르지는 않지만, 이를 장시간 방치하면 위험하다"며 "빨리 발견해서 필요한 처치를 했다면 문제가 되기 전에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 또한 응급조치만 빨리 이뤄졌어도 아이가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치과 위생사가 "우리는 아이의 마취 상태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입을 보고 있다. 입만 보고 치료하다가 (심장 박동 측정 기계에서) 삐 소리가 나니까 의사가 마사지를 하다가 상태가 심각해서 119를 불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심장이 멈추거나 숨이 멎으면 빠른 조치가 중요한데, 119의 전화가 올 때까지 치과에서 4-5분 정도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했다.

"깊은 진정 마취, 전문가 없으면 의료 사고날 수 있다"

홍기혁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사장(인제대 상계 백병원 교수)은 "예전에는 의원에서 수술이나 시술들이 국소 마취로 진행됐는데, 요즘은 치과 진료뿐만 아니라 수면 내시경, 성형 수술을 할 때도 '진정(수면) 마취'를 하라고 권한다"며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프로포폴 오남용도 문제지만 마취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료 사고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정(수면) 마취를 받다가 환자가 사망한 경우는 종종 있다. 지난달에는 60대 여성이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마취가 깬 직후 쓰러져 결국 숨졌다. 지난해 1월 SBS는 대한의사협회가 검찰과 경찰에 제출한 자료를 인용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수면 마취 사고 건수가 23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18명이 숨졌으며, 5명은 뇌 손상과 전신 마비 등 심각한 장애를 입었다. 사망 사고의 80%는 마취 전문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다 일어났다.

홍 이사장은 "시술 도중에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의사는 마취제를 더 넣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의사가 다른 진료에 신경 쓰면 응급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져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며 "전신 마취의 전 단계인 '깊은 진정'을 할 경우에 환자의 심박 정도나 마취 정도를 끝까지 감시할 의사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신 마취와는 달리 진정 마취에는 수가가 책정되지 않아 마취과 의사가 개입하기 어렵다"며 "마취 전문의가 배석하기 어려우면, 적어도 '진정 마취'를 하는 의사가 심폐 소생술을 능숙하게 하거나 진정 치료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A 교수는 "이번 사건처럼 약을 3-4가지씩 사용하다 보면 기본 용량만 썼더라도 약들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켜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약을 한두 가지만 쓰게 한다거나 용량을 제한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있는 곳에서만 수면 마취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엄마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이 씨는 국민권익위원회, 식약청(현 식약처), 법제처, 보건복지부 등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씨의 요구 사항은 세 가지다. 첫째, 마취약의 허용 용량을 법적으로 정할 것, 둘째,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도 응급 처치를 배우고 간단한 구급 장비를 갖추도록 할 것, 셋째, 마취제를 사용할 때 부작용을 설명한 뒤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을 것 등이다.

이 씨는 "치과에 갔을 때 수면 마취(깊은 진정)를 하면 부작용으로 호흡 정지나 심장 정지가 올 수 있다는 설명을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며 "다른 엄마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료 소송 과정에서의 고통도 적지 않았다. 이 씨는 "멀쩡한 아이가 치과 치료를 받다가 곧바로 죽었다면 명백한 의사의 과실인데 왜 내가 소송으로 의사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왜 의료 소송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힘겹게 싸워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이 씨 부부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과 저는 텅 빈 집에서 하염없이 울 때가 많아요. 집 안에 명원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거든요. 한때 죽을까도 생각했어요. 지금은 처벌을 위해서 반드시 진실을 밝힐 겁니다."

해당 소아 전문 치과 측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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