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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종현이의 억울한 죽음, 반복하지 않으려면…

"환자안전법 제정해 의료 사고 예방 시스템 갖춰야"

항암치료제 투약 오류로 숨진 정종현(9) 군의 죽음을 계기로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 법')을 제정하려는 논의가 이뤄졌다. 환자안전법이란 의료 과오에 대한 보고 체계를 확립하고 사고 예방 시스템을 마련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오제세 의원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한의사협회는 9일 국회에서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입법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의료 사고 사망자, 교통사고 사망자의 3배에 가까워

한국의 환자 안전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상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실 교수가 2012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연간 의료 사고로 숨지는 환자 3만9000명 가운데 1만7000명은 시스템 개선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사고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 6000여 명의 3배 가까이 달하는 수치다.

오제세 의원은 "항공의 경우 '항공 안전 보고'라는 오류 보고 체계를 만들어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사전에 발견해 제거했고, 그 결과 1970년대에 200만 분의 1 수준이었던 항공 사고 발생률이 최근 1000만 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며 "의료에도 환자 안전을 위해 이러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료 오류 보고 체계 도입…의료인 익명 보장·면책해야"

발표를 맡은 이상일 교수는 "환자안전법을 제정해 의료 오류가 생겼을 때 환자 안전 보고 체계를 구축하되, 보고를 한 의료인과 의료 기관에 면책 특권을 부여하고 익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의료 기관장 등이 보고해야 할 의료 과오의 종류를 △과실에 의한 심각한 사고 △경미한 사건 △일어날 뻔한 사건으로 분류했다. 환자 사망 사건 등 심각한 사고에는 의료 기관장에게 '의무 보고'를 강제하고, 경미한 사건이나 일어날 뻔한 사건에는 '자율 보고'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고를 장려할 것 △보고한 의료인을 처벌하지 말 것 △처벌할 수 없는 독립된 기관을 만들어 보고를 받을 것 △비밀을 유지하되, 전문가가 자료를 분석해서 권고안을 만들고, 심각한 위해가 있을 때만 전파할 것 등을 권고하고 있다"며 "보고의 익명성과 보고에 따른 면책이 (의료인에게) 중요한 인센티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항공 분야에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인 경우를 제외하고 항공 안전 장애를 일으킨 사람이 발생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적법한 보고를 하면 면책 특권을 얻는다. 보고자의 신분은 비밀에 부친다.

▲ 2009년 7월. 당시 8세였던 정종현 군. ⓒ김영희

외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환자 안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 '환자 안전 및 의료 질 향상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수집되는 환자 안전 정보에 대한 기밀을 유지하도록 규정한다. 의료 사고 보고가 '환자 안전 업무 산출물'로 인정받으면, 의료인 등 사고 보고자는 연방 정부 차원의 면책 특권을 얻는다.

단, 미국의 57개 주정부 가운데 27개 주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당 의료 기관이 주 정부에 의무 보고하도록 규제한다. 이를 위반한 의료 기관에는 허가 취소, 감사 등의 벌칙이 따른다. 그밖에 호주 빅토리아주, 싱가포르, 일본 등도 '심각한 사고'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덴마크도 2003년 환자안전법을 제정해 보건 의료인과 의료 기관이 의료 사고를 국가보건청에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정부는 수집된 의료 사고 자료를 토대로 예방 목적의 환자 안전 지침을 개발하는 데 중점적으로 활용한다. 덴마크 또한 보고한 의료인이 보고로 인한 형사 절차나 징계 절차에서 조사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두고 있다.

"도입 취지는 공감하나, 보고 의무 자율에 맡겨야"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석승한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정책개발실장,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과장은 "의료인의 면책 조항이 없다면 법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의무 보고 조항을 넣는 대신 의료 기관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인 한국의료질향상학회 이사는 "보고를 강제하면 (의료인이 의료 과오를) 은폐할 가능성이 높다"며 "보고 체계를 강제하려면 보고했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조항도 같이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지난해 '의료 분쟁 조정 중재원'을 설립했으나, 환자 안전과 의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다"며 "환자 안전은 박근혜 정부의 국민 안전의 일부인 만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은 백혈병에 걸렸던 고(故) 정종현(사망 당시 9세) 군이 항암제 투약 오류로 2010년 5월 숨지면서 촉발됐다. 정 군의 어머니 김영희 씨는 '제2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으려면 "의료 사고를 은폐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해 예방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관련 기사 : 주사 한번 맞고 죽은 9살 종현이…"의료사고가 남 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오제세 의원에게 '환자안전법 제정'을 청원하는 시민 1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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