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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잡지 연쇄 '사망'…누가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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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잡지 연쇄 '사망'…누가 죽였나

[잡지의 죽음 ①] <텐아시아>·<무비위크> 사태가 보여준 '비평의 오늘'

<무비위크>가 3월 마지막 호를 끝으로 사실상 폐간한다. 대표적 대중문화 웹진인 <텐아시아>는 강명석 편집장을 비롯한 주요 인력이 집단 퇴사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자체 수익을 내는 대중음악 잡지는 찾기 힘들어졌다. 대중문화의 주요 축인 영화·TV·음악을 다루는 전문지 시장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서 위기의 원인과 암울한 미래상을 들었다. <편집자>

잡지가 사라진다. 더 정확하게 호명하자면, 영화나 음악 등 대중문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들이 사라져간다. <로드쇼>, <스크린>, <프리미어>, <서브>, <핫뮤직>, <GMV>(지엠비), <이매진>, <키노>, <필름 2.0>, <무비위크>….

매체 특성상 특정 시간대(한 주, 한 달, 혹은 1분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 앞에 마모되고 그 가치가 부식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물리적 차원의 부식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잡지 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물적 토대의 급격한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잡지는 그런 면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다. 자본주의의 가장 화려한 이미지로서 대중문화를 홍보하는 첨병 격인 잡지가 왜 그토록 연약해져 버렸나?

우선 대중문화 시장이 자본 '싸움판'의 중심지가 됐다는 걸 꼽을 수 있다. 영화 잡지의 경우를 살펴보자. 1995년 월간지 <키노>와 주간지 <씨네21>이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영화 담론의 장이 펼쳐졌다. <키노>와 <씨네21>은 그 이전부터 발간되던 월간지 <스크린>이나 <로드쇼>가 집중한 '핫'한 스타들의 가십 기사나 할리우드 대작 위주의 영화 소개와는 다른 방향을 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널리 공유되지 않은 한국 영화의 진지한 비평과 진단이 실렸고, 할리우드 대작 이외의 작가주의 영화들, 국내에 개봉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개봉할 가능성이 없는 낯선 걸작들을 소개했다.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풍성했던 영화 문화와 한국 영화의 질적·양적 발전이 이들 잡지의 활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2000년 영화 주간지 <필름 2.0>과 <씨네버스>가 창간되면서 전성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잡지가 사라져간다. ⓒ프레시안(손문상)

영화 자본이 잡지를 죽였다

상황은 2003~2004년경부터 달라졌다. 우선 2001년 CJ, 오리온, 롯데 등 대기업이 영화계에 뛰어든 이래 한국 영화의 제작 규모가 변했다. 영화 제작 사업이 점차 기업화 모델을 따라가기 시작하면서,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기획 영화 문법이 매뉴얼화되었다. 영화 전문지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심도 있는 소개글과 분석을 실을 수 있는 종류의 영화들은 점점 기획 영화 시장에서 밀려나 배급은 고사하고 제작조차 힘겨운 상황이 됐다. 대기업 하에서 기획되는 영화들은, 그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과정만큼이나 그걸 다루는 기사의 형식과 주제 역시 비슷비슷한 포맷으로 결정되었다.

2000년 이전까지 영화 전문지와 영화계는 서로 동반자 내지는 동료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2003년경부터 영화 전문지는 영화계의 '관리' 대상이 됐다. 영화평론가 장병원(전 <필름2.0> 편집장)은 "영화를 둘러싼 상황 전부를 '매니지(manage)'해야 한다는 기업 논리가 들어오면서 매체를 관리하는 마인드로 돌아섰다"고 돌이켰다. 2000년 이후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과 더불어, 대기업에 편입된 영화사가 제작과 홍보의 방향을 철저한 계획 하에 정했다. 이로 인해 영화 전문지는 여타의 뉴스 사이트들보다 좀 더 차별화되고 전문적인 정보를 얻는 게 어려워졌다.

장병원 평론가는 "고급 정보를 얻고 밀착 취재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매체 쪽에서 노력을 덜 해서라기보다는 제도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쪽(영화계)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감독, 혹은 그 배우를 사적으로 아는 친분으로 '뚫어야만' 간신히 새로운 정보가 나오는 정도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같은 경향이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현장 취재 때 정점에 달했다고 기억한다. 매체를 통틀어 100여 명의 기자들이 현장 취재에 참여했는데, 그 인원이 현장에서 딱 1시간 동안 보고 나온 게 취재의 전부였다. 줄 서서 견학하듯 보고 돌아왔는데, 기사에 쓸 말이 없었다."

전문지들이 기사를 쓰기 위해선 영화사, 정확하게는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들이 계획적으로 만들어놓은 단일한 창구에 일률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영화를 비롯한 문화 상품을 생산하는 입장인 제작사나 기획사에서 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정보 또는 홍보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대중문화를 다루는 잡지로선 존립 근거의 큰 부분을 빼앗긴 셈이다.

장 평론가는 그런 상황이 영화 전문지의 "질적인 하향 평준화에 일조를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영화 저널리스트 태상준도 2004년 무렵이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를 통해 뭔가 배우려 하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고, 제작사와 배급사가 대기업에 편입되면서 관객의 입맛에 철저하게 맞추는 상업 영화가 훨씬 더 많아지고, 매체에서 다루는 영화 담론에 대한 관심이나 믿음이 떨어져 나간 시기"라고 동의했다.

대기업 계열 제작사들의 이 같은 방침에 매체들이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영화 전문지가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도 동시에 끝났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현재 남아 있는 매체는 거대 언론사 혹은 거대 출판사 계열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생적인 구조가 가능한 영화 전문지로는 씨네21 주식회사에서 발행하는 <씨네21>이 유일하다. 하지만 <씨네21> 역시 원래 <한겨레> 신문사의 계열사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 잡지는 '독자' 생존이라기보다 모기업 혹은 대주주의 방침에 따라 향방이 좌지우지된다. 최근 직원 교체 제안으로 인한 갈등 끝에 기자들이 집단 사표를 냈던 TV 비평 전문 웹진 <텐아시아>와 3월 마지막 주를 끝으로 문을 닫은 영화 전문지 <무비위크>의 사례도 크게 보아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건 과거 일찌감치 폐간한 영화 잡지들이 점점 떨어져가는 광고 수익 앞에 허덕이다 문을 닫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다. (관련 기사 : 쓰러진 <텐아시아>의 오늘에 외로워진 이유)

<텐아시아>와 <무비위크> 모두 새로운 콘텐츠 생산 및 독자들과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스스로 갱신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보이면서 호평 받았고, 수익 면에서 크게 적자를 보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텐아시아>의 경우 대표이사의 일방적인 인사 발령 시도가 이어졌고, <무비위크>는 모기업 <중앙일보>에서 새로운 인력 구성 혹은 효율적인 매체 운영을 위한 통합 등의 방안에 따라야 했다. 그로 인해 집단 사표 혹은 폐간의 조치에 이르게 됐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무비위크>의 경우 그 인력들은 <중앙일보>와 <중앙일보>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메가박스가 2013년 1월 초부터 발행하는 영화유료지 <매거진 M>으로 흡수된다.)

음악 시장 독과점이 가져온 변화

이와 같은 변화는 대중음악 전문지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콘텐츠에 제값이 매겨지는 대중음악 잡지는 사실상 멸종을 향해가는 중이다. 월간지 시장에서는 <재즈피플>과 <스튜디오24>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오아시스>가 발행되기도 했으나, 안착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박준흠 전 <서브> 편집장이 지난 2010년 12월 <대중음악 SOUND>를 발간했으나 계간지 형태로 발행돼, 상주 기자를 두기도 힘든 상황이다.

<엘리펀트-슈>, <파라노이드> 등의 잡지가 꾸준히 발행되고 있으나 무가지 형태다.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2006년 웹진으로 시작해 지난해부터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변신, 홍대 인근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엘리펀트-슈>의 경우 최근 인디 신(scene)에서 관심을 받는 음악인을 중심으로 이승환 등 당대의 스타까지 취재 대상으로 두는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상주 인력은 단 네 명에 불과하다.

맹선호 <엘리펀트-슈> 에디터는 "광고 수익이 일정 수준 붙긴 하지만, 주로 공연 기획이나 광고 대행 등을 통한 수익에 의존한다"며 "유료화에 대한 독자들의 거부감이 만만찮다. 유료화를 시도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중음악 잡지도 영화 잡지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절정기를 맞았다. 1970~1980년대 음악 비평과 해외 음악 정보 창구를 해왔던 <월간팝송>의 뒤를 이어 <핫뮤직>이 1990년 창간했고, 이어 <GMV>, <월드팝스>, <락킷>, <서브> 등이 줄줄이 창간했다. <핫뮤직>은 한때 2만 부를 완판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절정이 곧 나락의 시작이었다. 대부분의 잡지가 채 3년을 버티지 못했다.

근본 원인은 취재 대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동아기획과 이영훈, 유재하 등의 의미 있는 이름들이 가요계에 등장하면서 조짐은 보였다. 서태지 현상 이후 변화는 더 가속화됐다. 대중음악 시장의 축이 팝에서 가요로 빠르게 재편됐다. 아이돌이 현상을 넘어 일상이 됐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유의미한 음악 담론을 끄집어내는 데는 한계가 뚜렷했다. 국내 영화계는 일찌감치 비평의 영역에 들어 있었던 데 반해, 대중음악계는 그렇지 않았다. 긴 호흡으로 현상을 연구하고 이를 하나의 담론으로 만들던 비평이 설 자리를 잃자, 그 비평을 담는 그릇이었던 잡지도 맥을 못 췄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신현준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대중음악 비평의 전성기였다는 1990년대에도 비평의 주요 대상은 외국 음악이었다. 당시 국내 가요계 관계자들은 <TV가이드>를 보던 게 현실"이었다며 "주류 가요가 비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평론가들도 주류 가요를 비평의 대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여러 잡지들이 당시 발아하던 국내 인디 신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클럽을 소개하고,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피어나는 새로운 물결을 조명했다. 그러나 그 기반은 결코 탄탄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음악 잡지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 빈 공간은 아이돌의 화보와 패션지가 메웠다.

강일권 <리드머> 편집장은 "가요 권력의 중심이 아이돌로 빠르게 옮아가면서 연예인 화보를 찾는 팬과 진중한 담론을 찾는 콜렉터의 간극이 크게 벌어졌다"며 "비평가가 활동할 영역이 줄어든 게 잡지 시장의 어려움, 비평 토양의 척박함과 관련 깊다"고 지적했다.

아이돌 시장으로 변화한 것은 음악계에도 독과점 현상을 낳았다. 1990년대 음반 제작사로서 시장에 진입했다 쓴맛을 봤던 재벌 자본은 인터넷 시대 이후 음원 유통 산업에 재진입했다. 이와 함께 아이돌을 키우던 연예기획사가 빅3(SM, YG, JYP)로 재편되면서 자본 집중 현상이 심화했다.

실제 음원 시장의 경우, SK플래닛이 거느린 로엔엔터테인먼트(멜론)와 SK컴즈가 각각 음원 다운로드 시장과 홈페이지 배경음악 시장의 50퍼센트, 95퍼센트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대자본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대자본이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전문 비평의 영역은 자연스레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자본은 일방적 홍보의 도구를 원하지, 골치 아픈 비평의 중요성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나도원 대중음악 평론가는 <레디앙>에 기고한 '영화 잡지의 멸종, 그것의 의미는?'에서 "플랫폼을 포털과 대기업 자본이 장악하고, 독립적인 웹진들처럼 군소 매체들은 식물화하거나 포털에 종속되어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며 "일부 대중의 '비평과 저널 무용론'은 본의 아니게 시장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그 자리에 각종 잡기(가십)와 참여를 가장한 홍보 도구를 불러들였고, 이른바 전문가들은 '재미있는 현상 파악'만을 주문받아 납품했다"고 비판했다.

▲시장이 바뀌고, 취재 대상이 변했다. '한류'로 대변되는 대중문화는 크게 팽창했지만, 전문지는 같이 성장하지 못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의 상황과 한국이 크게 다른 부분이다. 소녀시대의 공연 모습. ⓒ뉴시스

인터넷 확산이 가져온 변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확산, 그리고 2010년대의 스마트폰 확산 이후 대중문화 독자의 성향 자체가 바뀌어버렸다는 것도 오랫동안 지적된 원인이다. 잡지가 형성하는 담론과 정보는 기본적으로 분량이 긴 글에 기반을 둔다. 매체 플랫폼은 '긴 글은 읽지 않는' 인터넷 시대에서, 이제는 더 즉시적인 모바일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 환경 자체가 우호적이지 않다. 결과적으로 대중의 관심은 잡지가 제공하는 무거운 담론에서 멀어졌고, 마니아층은 인터넷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직접 습득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계 종사자들은 "지금은 영화 콘텐츠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영화 관람료가 다른 문화 활동에 비해 여전히 너무 저렴하고, (극장뿐 아니라 인터넷 다운로드로)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너무 가치 없는 저급한 콘텐츠가 되어버린 경향"이 영화 전문지의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영화가 스크린에 걸려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영화 정보의 동향,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분석과 전망 등에 대한 궁금증도 동반 실종된 것이다. 장병원 평론가의 표현대로 "2000년대 이후부터 환경적인 변화와 업계의 변화가 같이 연동되어 왔다." 1990년대 중반의 문화 산업 활황기와 함께했던 전문 매체 역시 산업의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음악 전문지 시장도 인터넷 환경에 발맞춰 웹진으로 변신을 꾀했다. <보다>, <웨이브>, <리드머>, <백비트>, <이즘> 등은 지금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존 종이매체가 망하는, 즉 잡지 시장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출발했다. 자연 물질적 기반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강일권 편집장은 "당장 배급사들부터 웹진 광고 단가를 현금 대신 홍보 음반으로 메우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미 대중음악 전문지 시장에서 '기자'의 존재는 사라졌다. 비평가만이 남아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잡지의 몰락과 함께 비평의 설 자리마저 무너뜨리는 추세다. 특히 대중음악의 경우 2000년대 들면서 장르 구분이 극히 모호해지고 세분화됐다. 피비 알앤비(PB R&B), 덥스텝, 스토너 록 등 다양한 스타일이 동시대적으로 소비되는 한편,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와 달리 대중음악 담론이 유통될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대중음악 전문지가 한정된 인원을 활용해 정보 전달과 담론 생성을 동시에 소화해내기 어려워졌다. 담론보다 개개인의 취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소수 비평가가 담론을 형성하고 대중을 장악하기 불가능한 여건이 조성됐다.

신현준 연구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권위 부재의 시대'가 되지 않았느냐"며 "인터넷 발달로 인한 정보의 민주화는 결코 나쁜 게 아니지만, 이제 비평에 대한 집중도는 그만큼 떨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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