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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복지국가 기둥 세우는 척하다 뽑아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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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복지국가 기둥 세우는 척하다 뽑아버려"

[인터뷰]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계의 평가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으로 압축된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수정된 대선 공약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보장' 공약은 '필수 의료'로 지원 범위를 제한키로 했고,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사회보험료(4대 보험료)를 100% 지원하겠다던 약속은 50%로 반 토막이 났다.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던 기초노령연금도 지급액이 축소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말 바꾸기가 아니다'라고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모호한 인수위의 공약에는 '재정이 허락하는 한'이라는 속말이 숨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곤 했다. 그렇다면 수정된 공약은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까? <프레시안>이 복지 전문가인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난 이유다.

'박근혜 표' 복지 정책에 대해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연금과 의료는 복지국가의 두 기둥인데, 박근혜 정부가 두 기둥을 세우는 척하다가 다 뽑아버렸다"고 평가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 연금과 의료비가 전체 복지 재원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연금과 의료가 복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통합해 급여를 차등 지급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도 설계를 잘못했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사회보험료 지원 등의 고용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기존에 했던 지원 규모와 거의 비슷하다"면서 "고용 복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박근혜 집권을 계기로 '위로부터 복지 확대'가 가능할까 기대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고, 복지 민심에 의한 '아래로부터 복지 확대' 노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아래로부터 복지 운동과 증세 운동'을 강조했다.

인터뷰는 25일 그가 연구실장으로 일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한편, 28일은 보편적 복지를 바라는 시민이 모여 만든 풀뿌리 운동 단체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설립 1주년이기도 하다. <편집자>


국민연금과 연동한 기초연금 차등 지급,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됐다"

프레시안 : '박근혜 표' 복지 공약 가운데 요즘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연금과 의료 공약이다. 연금부터 얘기하면,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이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한 국민행복연금을 신설해 내년 7월부터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오건호 : 서구 복지국가를 보면 연금이 전체 복지 지출의 3분의 1을, 의료비가 다시 3분의 1을 차지한다. 연금과 의료는 수많은 복지 항목 중 일부가 아니라 복지의 핵심이다. 그런데 박근혜 복지 공약 중에서 먼저 의료 공약이 후퇴했다. 기초노령연금도 애초에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가 차등 지급하기로 공약을 수정했으므로 후퇴했다.

기초연금은 다들 더 받긴 해서 지금보다는 좋아지는데, 차등 지급하다 보니 국민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 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국민연금 미가입자보다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에서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제도 수용성)가 낮아질 우려가 있다.

또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비례해 지급한다고 했다.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들은 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가입자들이어서 이들이 더욱 기초연금에서 역진적 차별을 받게 됐다.

▲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종합하면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른 기초연금 차등 지급 방식은 국민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 간에는 형평성 문제와 제도에 대한 신뢰 문제를,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비례한 차등 지급 방식은 국민연금 가입자 간의 역진성 문제를 일으켰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별도의 제도로 분리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기여 방식이고 기초연금은 무기여 방식이니 재원이나 제도 설계가 완전히 다르다. 애초 방식대로 기초연금은 최소한의 기본 소득을 보장하고, 국민연금은 가입을 조건으로 부분 비례해서 얹어주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두 제도는 별도다. 국민연금을 받는다고 해서 기초연금을 깎는 경우는 없다. 북유럽에서도 기초연금 합리화를 하지만, 이를 공적 연금 가입 여부와 연동하지는 않는다. 상위계층에게만 안 주는 식으로 한다.

보편 복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북유럽에서도 요즘 연금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는데, 깎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 게다가 북유럽에는 다른 노후 복지 제도가 있다. 복지 규모가 우리의 3배다. 우리보다 3배 큰 집을 가진 사람이 내부 수리하는 것과 우리가 이제 막 층 올리는 것을 비교하면 안 된다. 노후 복지 체계가 여러 층으로 잡힌 상태에서 기초연금을 합리화하는 것과 없는 상태에서 깎는 것은 다르다. 그럼 왜 기초연금만 스웨덴·핀란드를 따라 하자고 하나? 다른 제도도 북유럽을 따라 하자고 하지.

프레시안 : 제도 설계가 잘못됐으니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인가.

오건호 : 지금은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됐다. 이미 2007년에, 2028년까지 기초연금 수급액을 소득대체율 10%로 만들 예정이었다. 그 시행 계획을 약 15년 앞당긴 것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새롭게 기초연금 지급액을 올린 게 아니다. 물론 당시 법으로는 수급 대상이 70%였는데, 이번에 대상을 100%로 늘리긴 했다. 하지만 차등 지급하게 됐다.

프레시안 :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을 끌어다 기초연금에 쓰지는 않겠다고 했는데, 어쨌든 급여를 통합하게 됐다. 예상되는 다른 부작용이 있나?

오건호 : 족보가 다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섞다 보니까 수정안이 계속 나올 수 있게 됐다. 여러 가지 제도 변형이 가능하다. 개악이 수월해졌다. 예를 들어 앞으로 기초연금을 축소할 여지가 있다. 국민연금 제도가 성숙하면서 금액이 많아지고 가입 기간이 길어지면 국민연금이 (보장하는 부분이) 커졌으니 이와 연동하여 기초연금을 더 줄여도 된다고 얘기할 것이다. 이미 기초연금 차등 지급 문이 열린 상태이니 이런 논의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을 전용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번에 열린 셈이다. 이번 논란 이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시민사회든 주류 사회든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에 쓰자는 얘기가 나온 적이 없다. 인수위 때문에 정 급하면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에 끌어다 쓰자는 논의가 가능해졌다. 이번에도 진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기초연금 지급을 '세금으로 한다'고 안 하고 '세금으로 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기초노령연금 재원이 마련되지 않았는데, 당장 내년 7월에 급여는 나가기 시작한다. 재원이 없다고 급여를 끊겠나? 정 급하면 국민연금 기금에 손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노인 부양 책임 떠넘길 건가?

프레시안 : 원래 국민연금은 재원이 부족하면 세금으로 메운다는데?

오건호 : 보험료로 연금을 다 지급할 수 없으면, 세금으로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GDP 11% 규모의 노후 연금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정도 지급 능력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해서 GDP의 2.5% 규모만 내고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후세대들이 11%를 낼 수는 없다. 지금부터 세금과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올려서 후세대가 11%의 연금 지출 부담을 수용하게 하기 위한 이행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갑자기 올리면, 후세대들이 보험료율 인상을 지급 능력과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앞으로 세금과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상향해야 한다. 세대별 미래로 갈수록 연금 재정 책임 몫을 늘려나가는 상향 로드맵을 밟아야 한다.

기초연금은 노인 수가 늘어 재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지급한다면 지금보다 7조 원이 더 소요된다. 부담액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지급액이 그대로라고 해도, 노인 수가 절대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령화율이 11%인데, 2060년이 되면 40% 정도 된다. 올해 7조 원이지만 8조, 9조 원으로 늘다가 결국 약 40조 원이 들어갈 것이다. 새로 늘어나는 부담액을 후세대에게 부담하게 하려면, 당 세대 젊은이가 당 세대 노인의 기초연금 몫만큼은 부양한다는 원칙을 정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올려놓고 나중에 후세대에게 "미안하다. 고령화 때문에 세금을 조금 더 올려야 한다"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세대들이 "우리보다 노인 부양 책임을 덜 졌던 당신들은 젊었을 때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후세대보고 다 책임지라고?"라고 반발할 것이다. 지급 능력이 있어도, 정치적 이유로 후세대가 증세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이 첫 단추다. 이행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으면, 어느 특정 세대의 재정 부담이 확 커져야 한다. 후세대가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급여가 깎일 수도 있다. 똑같이 GDP가 3만 달러인 국가에서도 복지 제도가 다양한 이유는 경제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 복지 지출에 대한 국민의 수용도 때문이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오건호 외 지음, 피어나 펴냄) ⓒ피어나
유럽은 국민연금 급여율이 50-60% 정도 되는데 보험료율이 20%다. 우리는 2028년 기준으로 급여율이 40%인데 보험료율은 9%에 불과하다. 유럽은 보험료율이 우리의 두 배인데 국민이 이를 감수하고 제도를 신뢰한다. "냈더니 나중에 더 많이 받더라. 좋더라. 필요하더라." 이런 식의 신뢰만 쌓이면 보험료율 상향은 가능하다.

2011년 기준 가입자와 기업이 낸 국민연금 보험료가 총 28조 원이다. 동시에 민간 생명보험에 낸 금액이 약 90조 원이다. 돈이 없는 게 아니다. 공적 연금에 지극히 조금 낸 것이다. '공적 연금 중심으로 노후를 대비하자'는 마음과 시민적 책임 의식이 생기면 누가 민간 생명보험에 가입하겠나. 보험료를 늘릴 경제력 여력은 있다. 그런데 제도를 신뢰할 수 없으니까 9% 보험료율에도 저항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재정 분리해야

프레시안 : 국민연금 기금은 있는데 기초연금을 위한 재정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으로 때워야 하나?

오건호 : 그건 곤란하다. 국민연금은 노사가 절반씩 부담해 근로자 소득의 9%를 낸다. 보험료율은 바뀔 수 있지만, 국민연금 기금은 국민연금 지급분으로 놔둔 것이므로 기초연금에 갖다 써버리면 안 된다. 기초연금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재원이 다르고 급여만 통합된 상태다. 국민연금의 통합 방식으로는 관리 통합, 급여 통합, 재정 통합 이렇게 세 가지가 가능하다. 관리 통합은 두 연금의 관리를 연금공단으로 일원화하는 것이고, 급여 통합은 재원은 다르되 급여만 통합하는 것이다. 재정 통합은 기초연금 재원을 국민연금에서 갖다 쓰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재정 통합을 얘기했다가 저항이 심하니 급여 통합으로 간 것이다. 하지만 기초연금 재원이 없을 때 재정 통합으로 바뀔 여지는 충분하다.

국민연금은 우리가 절반을 내고 후세대가 나머지 절반을 내는 방식이고, 기초연금은 세금을 더 거둬 당 세대 젊은이가 당 세대 노인을 부담하는 원칙으로 가자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필수 의료 단계적 건강보험 적용?

프레시안 :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을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가 '필수 의료'에 한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의료적 비급여가 얼마나 보장될까?

오건호 : 비급여 부담 가운데 간병비를 제외하고,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다. 의료적 비급여는 나머지 절반인데,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를 빼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나머지 의료적 비급여를 다 건강보험에 포함할지는 알 수 없다. 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할 것이다.

그런데 아마 재정이 없을 것이다. 새 정부는 4대 중증질환이나 노인 임플란트 공약에 드는 비용은 공약집의 재정 소요 총액에 포함하지 않았다. 마련한 돈이 없다. 그렇다고 건강보험료를 올릴 것인가?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기조상 구조적으로는 민간 의료보험 시장을 침해할 수가 없으므로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필수 의료'라고 해봤자, 필수 의료로 적용받는 데도 여러 가지 기준이 있고, 그마저도 단계별로 접근할 것이고, 그래 봤자 전체 고액 진료 환자의 15%밖에 안 되는 4대 중증질환자만 대상이다. 지극히 제한적이다.

근로장려세제·비정규직 사회보험료로는 한계 많아

프레시안 : 새 정부는 '노동' 대신 '고용 복지' 의제를 들고나왔다. 5대 국정 과제에 '맞춤형 고용·복지'가 있다. 중산층 비율과 고용률을 모두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오건호 : 고용 복지가 약하다. 불안정 노동자에게 줄 수 있는 복지가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저소득층 비정규직 사회보험료(4대 보험료) 지원이다.

사회보험료 지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했던 것과 거의 똑같다. 이명박 정부도 월 소득 105만 원 미만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보험료 2분의 1을, 125만 원 미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3분의 1을 지원했다. 월 소득 125만 원이 기준이었다가 이번에 130만 원으로, 지원 금액이 모두 2분의 1로 올랐는데, 자연증가분 정도에 그친 수준이다.

사회보험료 지원 보장액도 50%도 원래 공약에서는 100% 지원이었다. 이것마저도 애초 공약에서 후퇴했다. 실제로 효과가 많이 안 날 것이다. 노사가 임의로 사회보험료 등록을 안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절반을 내는 것도 노사 모두 서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행정감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국민연금 가입률이 30%대에 머무는 이유다. 이 제도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애초 공약대로 수혜자인 노동자 부담분을 100% 감면해야 한다.

유일한 고용 복지 연계 정책이 근로장려세제다. 의미는 있는데 근로 유인 효과가 크다고 보지는 않는다. EITC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지만, EITC 때문에 노동시장 참가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올라간 고용률도 한계 직업에 있는 사람들의 고용률이다. 일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질 좋은 일자리가 없는 게 문제고, 일을 하려고 해도 보수가 박한 게 문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지원해 노동자들의 힘이 세지고, 자본을 압박하고, 노사 관계에서 노동의 권력을 키워주는 정치가 필요한데 거의 없지 않나.

노동조합 배제하고 고용 복지?

프레시안 : 이번 정부 인사의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인사를 어떻게 생각하나?

오건호 :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복지 쪽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복지의 총량이 늘어날수록 전달 체계 개혁이 중요하다. 제도와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실세라는 이유로 복지부 장관이 됐을 때, 정권의 기조는 반영하겠지만, 복지 인프라 개혁에 얼마나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작업에 주도권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노사 관계에 대한 경험이 없다. 노동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노사 관계, 노사 간 힘의 관계가 중심이다. 노사 관계에 따라 제도가 만들어진다. 고용률도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이 얼마나 커지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처럼 자본의 권력 자원이 월등한 상황에서 고용률을 올리거나 노동자 복지를 확충하려면, 힘의 균형을 맞추는 노사 관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전교조를 쳤다. 이명박 정부처럼 노동자를 배제하고 노사 협력 세력만 끼고 가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복지 확대를 요구해야 하고 정부는 고용 복지를 늘려야 하는데, 이는 노동의 힘이 커졌을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인정해 주고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는데 초장부터 배제 전략으로 간다. 청와대에서 그렇게 가더라도 장관이 조정해야 하는데 과연 노사 관계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 그걸 할 수 있을까.

"아래로부터 복지 운동과 복지 의제 만들어야"

프레시안 : 박근혜 공약에 대한 총평을 부탁한다.

오건호 :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만 보면 복지 확대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연금이 날아가고 병원비도 다 날아갔다. 연금과 의료가 복지국가의 두 기둥인데, 두 기둥을 세우려는 척하다가 다 뽑아버렸으니 한국형 복지국가의 기둥이 없어졌다. 게다가 고용 복지 정책도 취약하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복지 확대에 큰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박근혜 집권을 계기로 '위로부터 복지 확대'가 가능할까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복지 민심에 의한 '아래로부터 복지 확대' 노선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랫바닥의 복지 민심은 여전히 크다. 복지 정책과 복지 민심의 갈등은 정권 초부터 진행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무상 보육, 무상 급식, 반값 등록금 논의가 진전됐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도 복지가 늘었다. 누구의 힘인가? 이명박 정부의 공약 때문은 아니다. 시민의 힘이 크면 국회와 행정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한국에서 복지를 늘린 것은 복지 민심이었다. 앞으로 복지 민심이 어떻게 잘 뭉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전략도 중요하다. 무상 급식, 보편 복지 담론처럼 시민사회 운동도 전략적 기획이 필요하다. 복지 민심의 탄탄함을 믿으면 박근혜 시대의 복지국가 운동이 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성과도 낼 수 있다. 박근혜를 매개로 위로부터 복지 확대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날아갔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복지를 확대했듯이, 복지 민심의 힘에 의한 '아래로부터 복지 확대' 노선일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보편적 복지가 성공하기 위한 조언을 하자면?

ⓒ프레시안(최형락)
오건호 :
보편 복지가 위력이 있는 의제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우선 합당한 재정 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난 선거를 거울삼아야 한다. 총선, 대선 때 복지 의제를 정치권이 주도해야 했는데, 야권이 복지 의제를 적극 주창하지 못하는 징후를 보였다. 정치권은 시민사회의 증세 요구가 없다고 보고 있었다. 정치권에 요구하기 전에 시민사회에서 증세 논의가 터져 나와야 했다.

다음으로 주체가 있어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증세라는 아킬레스건에 붙잡혀 있고. 진보정당은 내분으로 대중적 활동을 못했다. 노동조합도 복지와 노동을 분리하면서 '선(先) 노동 후(後) 복지'를 말했다. 이러한 선후 구도는 적절치 않은 논리이다. 복지와 노동은 동전의 양면으로 봐야 한다. 노동 기본권을 주창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돼야 한다. 현장에서 단절당하면 완전히 사지에 내몰리니 활동을 하기 어렵다. 서구 복지국가를 보면 복지 민심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게 노조인데 한국에서는 노조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우리는 복지 민심은 성장했다고 판단했다. 복지 재정을 더 확충해 '재정 주권 운동'을 벌이자고 했다. 그런 취지에서 개인들이 소득별 보편 증세라는 의제로 모여 지난해 2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를 결성했다. 증세뿐만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 세금 특혜 줄이기, 재정 지출 개혁까지 포함한 재정 방안을 마련하려고 했다. 병원비는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다른 복지는 '사회복지세'를 도입하는 식으로 재정 중심의 증세 논의를 이끌어 내고, 시민이 목소리를 내면 복지의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프레시안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 달라.

오건호 : 복지 민심이 탄탄하다고 본다면,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시민사회 운동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도 중앙과 지역운동을 같이하며, 모든 이가 집중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들 계획이다. 무상 급식이 전국에서 복지 논쟁을 일으켰듯이, 복지 민심을 전략적으로 안고 갈 의제가 필요하다. 지금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과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한 상태다. 올해 상반기까지 지역 단체에서 이 의제를 논의할 생각이다. 무상 급식이 당선 여부를 가렸듯이, 전국적 복지 의제를 만들어서 2016년 총선을 다시 복지 총선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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