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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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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

[복지국가SOCIETY] "박근혜, '줄푸세' 한계 못 벗어났다"

나는 이번 대선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얼마나 강화할 것인지를 둘러싼 대결 구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가 국가의 역할 강화에 더 적극적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의 시장은 그동안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 동안 승자독식의 양극화를 낳는 구조적 문제를 확대해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실패한 시장을 적절하게 치유하는 국가의 기능, 즉 공공성의 확대이다. 1원 1표의 시장만능주의를 1인 1표의 민주주의로 교정하고 조정하는 경제사회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양극화에서 비롯된 민생불안의 사회, 즉 격차사회를 해소할 단초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로 인해 초래된 격차사회는 시장임금과 회사별 복지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10%의 좋은 일자리는 높은 시장임금을 지급한다. 이들 일자리는 회사별 복지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병원비며 대학등록금까지 거의 모든 복지를 기업이 부담해준다. 그래서 이러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복지국가 스웨덴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반면에 90%의 나쁜 일자리는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한 일자리이거나 저임금 일자리들이다. 회사별 복지도 형편없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 간 시장임금의 격차가 '100 대 50'이라면 회사별 복지의 격차는 심한 경우 '100 대 0'이다. 이건 순전히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양극화와 이동성의 제약이라는 이중구조로 고착된 데 더해, 국가의 복지 역할이 최소화된 탓이다.

이러한 격차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 먼저,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민주화 조치들을 입법하고 집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회사별 복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손에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경제의 달성을, 다른 한 손에는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를 들고, 적극적 국가 개입을 통해 혁신적 경제가 펼쳐지는 새로운 시대인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이게 우리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의 대선 후보 진영은 모두가 복지국가 건설을 자임해왔다. 나는 지금 그것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에 드러난 바로는, 박근혜 후보 측의 복지국가 약속이 이전보다 다소 약해지는 것 같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민주화의 추진 의지가 4.11 총선 때보다 크게 약화되었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입하였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배척되고 소외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빗대어 일부 언론은 "토사종팽"이라는 신조어를 타이틀로 뽑았다. 나는 이것이 복지국가의 한 축인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경제의 건설'에 대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추진 의지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추진 의지도 마찬가지인데, 새누리당 진영은 여전히 선별적 복지에 대한 강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그 이유를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과 '줄푸세' 노선으로부터의 전향적인 이탈을 감행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장만능주의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박약했다. 사실, 이 일은 새누리당 같은 보수정당이 추진하기에는 애초에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용기를 냈다.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하였다. 나는 보수정당의 이러한 전향적 노력에 대해서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여당의 환골탈태를 위한 이러한 노력에 못 미쳤던 민주당을 비판하곤 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여야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를 넘어 우리의 시대적 과제로 등장한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인 바, 이 일은 어느 한 정당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정책 패키지는 재벌과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규제 정책이다. 패권적 질서에 의해 왜곡된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적 개입이다. 사실, 이건 최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더 나은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규제를 넘은 지원과 조장 정책이 요구된다. 이게 바로 조세재정 정책이다. 재벌과 대기업에 비해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등이 기술개발에 성공하고 활발하게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하고 조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적 지원뿐만 아니라 기술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진보적 경제 산업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300인 이하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의 생산력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이들 기업들과 대기업 간의 시장임금의 격차가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실 더 큰 문제는 회사별 복지의 격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보편적 복지가 신속하게 제도화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는 다음 두 가지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대상 인구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둘째는 해당 복지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을 때의 보편적 복지를 마침내 '실질적 보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길은 쉽지 않은 것이다. 먼저, 국민적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이 일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국민들은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내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치권의 큰 결심이 요구된다. 잘못하면 표가 떨어지고 낙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길로 가야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관철되는 '질 높은 민주주의'와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용기 있는 정치세력의 존재가 절실한 것이다.

▲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이 두 가지의 요건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에 도움이 되고자 신간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를 출간하였다. 보통의 시민들이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적극 나서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 복지국가의 건설은 불가능한데, 나는 이 책이 이 일의 길라잡이가 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정책 대결의 핵심이었던 무상급식 문제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 문제의 발단은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었다. 당시 김상곤 교육감은 무상급식을 실시함에 있어 한정된 예산을 감안할 때 두 가지의 방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나는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의 일부를 인용하여 왜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방안은 저소득층에게 우선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이후에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의 민주당 소속이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엄정하게 제약된 당시의 조건 속에서 1965년 빈자를 위한 공적 의료보호(Medicaid)와 노인을 위한 공적 의료보험(Medicare)을 실시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전체 국민에게로 확대하겠다는 구상과 유사한 방안이다. 김상곤 교육감이 이 방안을 선택하게 될 경우에는 당연히 저소득층이 아닌 학생들은 무상급식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소득수준에 따라 무상급식 대상자를 선별하여 급식을 제공하는 선별적 무상급식이다. 두 번째 방안은 전면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되, 저학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시하는 방안이었다. 이 방안은 소득을 기준으로 선별한 게 아니고 특정 연령대의 인구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특정 인구에 대해 보편주의가 적용된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두 번째 방안, 즉 학년별 보편적 무상급식을 선택했다."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189-192쪽)

나는 얼마 전에 행한 경북대학교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연간 200억 원이라는 제약된 예산으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방안과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 학년에 걸쳐 가난한 학생들 약 15%를 선별하여 이들에게만 선별적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방안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응답한 학생들은 모두 선별적 무상급식을 지지했다. 나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정된 재원으로 어려운 사람부터 돕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상곤 교육감은 그 상식을 뛰어넘는 결단으로 위대한 투쟁을 시작했다. 만약 2010년 연초에 그가 경기도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가난한 학생들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선별적 무상급식을 실시했더라면 지금 무상급식 대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을까? 무상급식의 질은 더 높아졌을까?

린든 존슨 대통령 역시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래로 미국에서는 뉴딜시대가 열렸지만, 의료보장제도 만큼은 한 치의 진전도 보지 못하였다. 전 국민 의료보장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던 트루먼 대통령의 실패 이후, 미국에서는 유럽식 국가의료보장제도가 도입되지 못한 채 의료를 기업별 복지에 의존하는 시장주의에 맡겨 놓았던 것이다. 마침내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호제도(Medicaid)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의료보험제도(Medicare) 도입하였다. 노인의료보험은 보편주의였지만, 의료보호제도는 전형적인 선별주의 복지였다. 이것을 기반으로 단계적인 확대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유럽식의 국가의료보장제도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식코'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로 고통 받고 있다.

선별적 복지로 시작해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하다. 3%의 빈곤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자를 언젠가 10%로 확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선별적 복지는 그 성격이 애초부터 소득과 재산 조사(자산조사, Means test)를 통해 가장 가난한 일부 국민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기초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공공부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급식을 공공부조 프로그램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예산의 제약을 뛰어넘는 게 그것이다. 세금의 대부분을 내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하면 된다. 복지의 수혜자와 비용의 부담자를 일치시키는 전략이 그것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실패한 보편주의를 김상곤 교육감은 해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찬양하는 이유이다.

요즘 일부에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전략적 조합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 말이 화자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싶다. 즉, 복지 프로그램은 그것의 '원래 성격'에 부합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큰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다.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보험'은 대상자 모두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도 지나치게 낮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즉, 실질적 보편주의가 관철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 보육, 교육, 의료, 요양과 같은 사회서비스도 보편주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또, 아동수당이나 장애인수당 같은 사회수당도 보편주의를 원칙으로 만들어진 제도들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보편주의를 견지하더라도 늘 일부의 사람들은 추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때는 자산조사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지원해주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것이 선별적 복지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이러한 관계를 나는 '전략적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재원의 한정으로 인해 처음에는 선별적 복지로 시작했다가 차츰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며, 이것을 전략적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맞춤형 복지가 이러한 기조인 것 같다. 그런데 이건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새누리당의 보편적 무상보육 방침을 매우 잘 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새누리당이 완고한 보수정당에서 현대식 보수정당으로 바뀌고 있다는 좋은 징조다. 보육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에서도 실질적 보편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여기에서는 완고하게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부터 도와야 한다는 '온정적' 심성은 백번 이해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복지의 수혜자와 비용의 부담자를 일치시키는 일이다. 중산층 이상의 국민에게도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해주고, 그들에게 세금을 더 걷으면 될 일이다. 그래야 실질적 보편주의가 제도화되고, 회사별 복지의 격차사회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이러한 담론과 정책 경쟁의 장이 되길 온 국민과 함께 기대하며 촉구하고 싶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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