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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 돈만 쓴다고 교육이 바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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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선후보들, 돈만 쓴다고 교육이 바뀌겠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학벌 서열, 교육 공공성 문제 해결해야

복지 민심이 정치를 끌어간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함으로써 18대 대통령선거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맞장 대결로 정리되었다. 큰 틀에서 보자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인기영합주의'라고 비판받던 복지 요구는 2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 선거를 이끌어가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공약이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이야 '무슨 헛소리냐?'고 내 말을 비판할지도 모르겠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와 비교하면 지금은 확실히 어느 후보도 복지 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선거판이다. 무상보육, 국민건강보험 개혁, 대학생 반값 등록금, 청소년 돌봄 등 복지 영역의 많은 의제가 그 규모와 실현 방식, 재원을 둘러싼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한때 '진보' 쪽의 목소리로만 여겼던 복지 공약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특히 교육 관련 공약에서 잘 드러난다. 두 후보 모두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재정, 즉 대학교육에 국가가 집어 넣을 돈을 국내총생산 대비 1%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현재 0.6% 수준이므로 국내총생산 약 1,300조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5조 원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등록금도 모두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똑같이 내걸고 있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던 새누리당의 예전 태도와는 사뭇 달라졌다. 확실히 복지 민심이 우리 정치를 이끌고 있다.

다만 반값 등록금을 소득 수준에 따라 장학금으로 차등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대학에 교부금으로 지급하고 보편적으로 반값이 되도록 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 가운데 어느 방안이 더 좋을지는 유권자가 꼼꼼히 따져볼 문제다. 또한 일반고의 1년 등록금이 170만 원 수준인데 이보다 등록금이 세 배 가량 비싼 외고나 자사고도 무상교육을 동일하게 적용할지 두 후보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정작 교육 개혁에는 관심 적어

대학 등록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그 대부분을 개인이 부담하는 형편에서 고교 졸업생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 사정을 감안한다면 국가가 고등교육에 책임을 높이겠다고 나온 것은 환영할 일이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생활에서 능력과 노력으로 일군 성과를 평가받기도 전에 비싼 등록금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할 위험을 어느 정도는 해결해줄 터이니, 정의의 관점에서도 마땅하다. 내 아들이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기에 나로서도 매우 관심이 높아지는 공약이다.

그런데 하나 더 생각해보자. 등록금이 현실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다들 공감하는 공약이겠지만, 과연 등록금이 우리의 교육 문제, 교육과 연결된 사회 문제의 핵심인가? 핵심은 아니다. 자식을 한 명이라도 키워본 학부모라면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학벌 중시 풍조→대학의 지나친 서열화→대학 입시 경쟁 과열→입시 위주의 중등 교육→극성스런 사교육→청소년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교육 문제의 사슬구조가 얼마나 뿌리 깊고 억센지 다 안다. 나만 해도 자식의 대학 진학이 확정되고 나니까 당장 반값 등록금에 관심이 쏠리지만, 그전까지는 '도대체 애들을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키워야 하나?' 하는 불만이 가장 컸다.

두 후보는 이런 측면에서 매우 허술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는 참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문제이고, 교육구조의 개혁을 통해 개선될 여지보다는 노동정책이나 사회복지정책의 개혁과 연관지어서 전방위적으로 고쳐나갈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대학체제나 대학입시제도를 개혁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회구조에 있지는 않다. 이를 고친다하여 사회에 어떤 혼란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대신 그러한 개혁은 초중등교육에 어마어마한 변화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두 후보는 용기를 내야 한다.

▲지난 1월 16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학교에서 수험생들이 2012학년도 정시모집 논술고사를 치르기 위해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입제도 간소화가 줄여주는 고통의 크기는?

먼저 대학입시제도에 관해 두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는 "수시는 학생부 위주, 정시는 수능 위주로 대학입시를 대폭 단순화하고, 한국형 공통원서접수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는 "대입전형을 단순화하고 대입 지원처를 통해 국가가 대입지원을 관리"하겠다고 내걸었다. 참 비슷하다. 이런 정책은 3천몇백 가지나 된다는 대입 전형 방식 때문에 학부모와 수험생, 교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하소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올해 대입전형을 경험해보니 처음엔 나도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차세대'니 '드림'이니 '리더십'이니 '잠재력'이니 하는 이름을 붙인 정체 모를 전형 방법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니까 대입전형은 크게 네 가지였다. 내신 성적으로 가는 방법, 수능 점수로 가는 방법, 대학별 논술(또는 적성) 시험으로 가는 방법, 입학사정관 제도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다. 전형에 반영되는 요소와 비율이 각각 다르고 그 이름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복잡함이 2~30년 전에 대학입시를 경험한 학부모에게는 골치 아프겠지만, 진학담당 교사나 학생들에게는 그리 높은 장애물이 아니다. 어느 사교육 전문가 말마따나 공부 잘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 다만 공부를 잘한다는 그 이야기가 여전히 한 학년 내에서 일렬로 줄 세우는 학교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뜻이고, 한두 문제 틀리면 등급이 주저앉는 수능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30년 전 대학에 들어갈 때와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물론 입학사정관 전형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를 환영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내신 성적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도의 내신 성적이 되어야 면접이라도 볼 자격이 주어진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좌우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보다는 입학사정관 제도 역시 고등학교의 일렬 줄 세우기 내신제도의 압력 아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단순한 입학 전형이 좋은가, 다양한 입학 전형이 좋은가는 현재의 입시 구조에서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단순하면 획일적이라는 뜻이므로 입시 경쟁은 더 과열될 수도 있다. 복잡하면 부모와 학생의 정보력이 약할 경우엔 자포자기 심정이 될 수 있다. 둘 다 해결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열쇠는 대학입시와 고교 내신제도를 동시에 바꾸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2010년 통계청 분석에 따르자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주당 공부시간은 26시간이다. 중학생은 그 2배인 52시간을 공부한다. 이게 정상인가? 이걸 역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학에 가서 제대로 경쟁하게끔 입시와 대학운영을 고친다면 중등교육에서 불필요한 경쟁과 획일적인 입시교육은 대폭 줄일 수 있다. 동일한 교과서에 동일한 진도에 동일한 시험으로 평가하는 줄 세우기 식 내신 제도를 없애고 우열반이라는 딱지 없이도 적성과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진다.

대학체제 개편을 미뤄선 안 된다

대학체제 개혁 요구는 두 가지 각도에서 제기된다. 하나는 수도권 사립대 위주로 굳어진 학벌 서열을 완화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립대 비율이 80%에 달해 등록금 인상이나 재단비리, 대학의 취업학원 전락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어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다.

박근혜 후보는 지방대학의 특성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나 특성화가 대학 서열 문제를 완화하고 지역의 균형 발전을 북돋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기능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분야가 아니라면 과연 어느 대학이 특성화에 운명을 걸 수 있겠는가. 이는 대학 당국자와 대입 수험생 모두에게 돌아갈 질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지방대와 국립대 육성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서 비교적 올바른 해법을 찾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지방대 육성방안이 명확하지 않고, 국립대 연합체제의 경우는 당초의 문제의식이 많이 바랜 느낌이다. 일차적으로 강의 개방, 학점 교류 등을 시행하고 점차로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추진한다는 방침인데, 공동학위 수여는 언제부터 시행할지 의지가 분명치 않다. 또한 공동학위 대상에 서울대를 포함할 것인지, 포함한다면 서울대로 몰려드는 편중 양상은 어찌 해결할지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다. 공동학위를 수여하려면 논리적으로 신입생 공동선발이 필요한데, 이 이야기는 아예 사라졌다.

국립대 연합체제는 지방의 국립대를 수도권 사립대 수준으로 끌어올려 지금과 같은 대학서열구조를 깨뜨리는 방안이자 취업 위주의 대학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지렛대 노릇을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선발을 통해 국립대 학생의 교양과정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교양과정 성적에 따라 전공과정 진학을 결정함으로써 기존의 대학입시제도와는 다른 새로운 입시제도의 모형을 만들 수도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견지하지 않는다면 국립대 연합체제 역시 화려한 말로 그칠 위험이 크다.

눈 앞의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곧 우리 아이가 대학 고학년이 되면 양극화된 일자리 문제와 학벌 중시 풍조에 나의 불만이 더 커질 것이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미신을 나 역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 아이가 용빼는 재주와 재수로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되길 바라면서. 이럴 때 우리는 세상이 개판이라고 욕하게 된다. 눈앞의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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