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하거나 항의방문을 가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하실 말씀 있으면 이렇게 단체로 찾아와서 시끄럽게 하지 마시고, 나중에 평화적으로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시끄럽게 왜 이러세요?"
재미있는 말이다. '시끄럽게' 와 '평화적으로'가 상반되는 언어라는 것도 그렇지만(여기서 '평화적'은 사실 '혼자서 조용히 찾아와'로만 이해될 뿐이다.) 사람들이 함께 찾아가도 겨우 들어줄까 말까 한 사람들이 조용히 이야기하면 들어줄지 믿을 수 없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화가 난다. 당신들처럼 힘 있는 사람들이야 한마디만 해도 언론에 나올 수 있고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우리가 이야기 하면 사회가 들어나 줄 것 같으냐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대에서 이야기 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냐고 반문하고 싶어진다.
사회적 약자들은 왜 연대하고 함께 외칠 수밖에 없나
헌법 제21조 1.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20조 1. 모든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008년 촛불집회 때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의 첫 소절이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국가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로서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왜 거리로 한데 몰려나와 이야기하며 교통을 방해하고, 시끄럽게 구냐고 이야기한다. 또한 거리에서 행진하고 크게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인도에서 조용히 하면 안 되냐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보단 그들의 시끄러움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지 않으면, 거리를 가득 채우고 크게 구호를 외치지 않으면 누구도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9시 뉴스, 일간지 신문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신문, 방송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 사건사고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는 1분을 넘기면 대단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1분이라도 나오는 이유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해서 이야기한 결과였다.
힘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나올 수 있는 곳, 정치인들이 시장에 방문에 악수 한 번 하는 장면, 기업총수가 해외에 나갔다 온 이야기까지 나오는, 그래서 그들의 한마디에도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이야기하는 건 그 누구도 볼 수 없다. 그것이 권력이 작동하는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는 자의 힘의 차이다.
희망버스,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를 사회에 알린 연대의 이야기
지난해 6월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의 힘은 버스 16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 700여 명에서 시작된 연대는 회를 거듭하며 3만여 명의 힘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친 희망버스였다. 희망버스를 통해 한진중공업 문제, 정리해고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고 결국 국회의 개입을 통해 한진중공업 해고자에 대한 1년 후 복직이 결정되었다(지난 11월 9일 93명의 정리해고 노동자가 복직했지만 근무지 변경, 무기한 휴직, 노조파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희망버스가 없었다면, 사람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최루액과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지 않았다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이 우리 사회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 부산시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으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부산 광복로 롯데백화점 앞 도로에서 살수차를 동원해 강제해산을 시도하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희망버스의 연대는 해고노동자의 슬픔과 고통을 혼자만 앓지 않도록 함께 나누고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만들었다. 그 진실한 힘이 커져 우리는 정리해고 문제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이 있었기에 다른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희망을 가지며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기소 남발하는 검찰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노사 간 합의로 종료된 이후 검찰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해 무더기 기소를 시작하였다. 기소 이유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누군가는 집시법을 위반했다고, 또 누군가는 도로를 걸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을 향한 칼날은 지난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하였다가 기소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2008년 서울시청 광장부터 숭례문까지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를 외쳤다. 전국으로 따지면 거의 100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었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해 정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검찰은 촛불집회가 끝나자마자 이들을 기소하기 시작했다. 사회를 보았다는 이유로,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경찰버스에 올라갔단 이유로,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은 기소되었다.
물론 촛불집회에서만 사람들이 기소된 건 아니다. 검찰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집회에 대해 어김없이 기소하였고, 사람들의 힘이 모아지려 하면 자신들이 가진 기소권을 통해 이들을 깨부수려 했다. 헌법에 보장된 결사의 자유는 몇 가지 하위법의 통제를 통해서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이들이 강력한 사법탄압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연대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의 부르짖음이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마음껏 휘둘러 대던 구조조정과 폭력이, 정치권들이 국민 모르게 저질러온 밀실정치들이 연대하는 사람들의 힘을 통해 막히고 속속히 드러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희망버스서 '인권침해감시' 활동하다가 연행
나도 5차 희망버스 기간에 현장에서 연행된 적이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선거가 한참이었고, 정리해고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형성되던 때였다. 나는 그곳에서 집회참가자에 대한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하고 있었다. 평화적 집회를 위협하고 집회참가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남포동에서 경찰이 차량키를 뺏기 위해 침탈한 현장에서 나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집회참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남포동 사거리에 경찰이 밀고 들어온 상황이었다. 급하게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연행되는 사람들 쪽으로 가던 중 갑자기 몇 명의 경찰에게 끌려 나가 경찰차에 태워졌다.
그렇게 나는 희망버스 사법탄압 당사자가 되어 재판을 받았다. 경찰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어 1,2심 재판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1,2심 모두 무죄를 받았고 지난 11월 7일 확정판결통지서를 받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주장하는 폭행의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폭력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고 증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며 "당시 압수수색영장을 발급받지 않고 시위대의 방송차량을 빼앗아 오는 직무가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규정된 '행정상 즉시강제'의 요건을 갖춘 적법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판결했다.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재판, 경찰력의 행사가 적법한지 의문이 드는 재판에서 난 무죄를 받았고 2심에서도 역시 같은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호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하며
무죄 선고를 받은 참가자들은 나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받았다. 사법부가 현행법상 유죄로 판결하더라도 희망버스의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하며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사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사건들에 대해서 항고하며 사법탄압을 지속하였다. 이들은 희망버스의 정당성을 부정하였으며, 위법한 법집행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가진 권력만을 남용했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탄압일뿐이다. 나와 같이 희망버스 참여로 기소된 사람들 역시 모두 무죄를 받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와 인권옹호활동이 처벌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연대가 폭력적 진압과 사법탄압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의 외침이 무엇인지 더 귀 기울여야 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막는 법령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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