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한 말을 정색하고 비장하게 하는 일은 어색하다. 법을 공부하고 적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집회의 자유는 이런 범주에 들어갈 만큼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희망버스에 참가한 사람들을 변론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정색하고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희망버스에 참가하고 시위대와 함께 행진을 한 사람에게 주로 적용되는 조항은 금지된 야간시위 참가(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0조 위반),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한 것을 이유로 한 형법상의 일반교통방해죄, 그리고 해산명령불응죄이다.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은 수많은 집회금지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 제1조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적법한' 집회라는 문을 최대한 좁혀놓고 있는 것이 집시법이기도 하다. '적법'이라는 전제를 최대한 좁혀놓았으니 '최대한' 보장할 집회도 별로 없다. 집회에 관한 경찰 행정이 규제나 금지 위주로 행해지는 것의 원인으로 집시법이 작용하는 면이 크다. 그래서 집시법은 집회시위 보장법이 아니라 집회시위 탄압법이라는 비판이 계속 있어왔다.
미신고 집회는 미신고일 뿐 금지된 집회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을 지배하고, 그 언어가 실질적 의미를 왜곡시키는 경우에도 오염된 언어의 잘못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용어가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법률용어에 있어서 이런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데 신고하지 않은 집회를 불법집회로 일컫거나, 행진을 해서 도로가 정체되면 교통이 '방해'된다고 무심히 법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이런 왜곡이 발생한다. 희망버스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거나,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해산명령을 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공소장에는 이런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이런 문제가 많은 집시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의 헌법적인 의미를 고민한 판결들을 내고 있다. 지난 4월 19일 대법원에서는 미신고집회에 대해서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아니 되므로,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만으로 해산을 명하고 이에 대해 불응하였다고 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대법원 2012. 4. 19. 선고 2010도6388).
형법의 근간을 이루는 원리 중 하나로 죄형법정주의가 있다. 이 원칙의 방점은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형법의 보장적 기능을 담보하는 데 있다. 법률에 의해 범죄와 처벌이 규정되어 있지 않는 영역에서는 행동의 자유가 보호된다는 의미이다. 현행 집시법은 집단적인 폭행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나 시위임을 알면서 참가한 경우가 아닌 한 미신고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또한 위 판결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집회신고의 이유는 정보제공의 의미이지, 허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신고 집회가 불법집회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신고집회=불법집회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 집회는 보호해야 할 집회가 아니라 빨리 해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명명이다.
▲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신고를 하든 말든 야간시위는 어차피 다 불법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그런데 현행 집시법에서는 집회와 시위를 구분하고 있고, 헌재는 야간집회 금지에 대해서만 불합치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야간'시위'는 아직도 금지되어 있다. 일몰 후에는 그 어떤 형태의 시위도, 어떤 장소에서의 시위도 전면 금지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히 헌법에 반하는 이 조항은 2010년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었는데 왜 아직까지 위헌결정이 나지 않는지(설마 헌법재판소에서 이 조항을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어쨌든 이 조항은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살아있다. 그러므로 야간시위를 하고 싶다고 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금지통고가 될 수밖에 없고, 신고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다.
1차 희망버스가 있었던 6월 12일 새벽 1시에 발해진 해산명령은 이렇다. "영도경찰서에서 알립니다. 집회참석자 여러분, 여러분은 신고 되지 않은 불법집회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자진 해산하여 집으로 귀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위헌적인 야간시위금지조항을 전제로 해서 미신고의 위법이 더해지고, 이런 미신고를 이유로 다시 해산명령을 발하고 그에 불응할 경우 처벌하는 위헌의 악순환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처벌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보장되어야 할 집회 시위이지만, 교통을 방해했으니 처벌한다?
시위 참가자들이 도로를 행진해서 교통소통에 정체가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앞서 말했듯이 집시법은 단순히 미신고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집시법상으로는 처벌하지 않지만 도로에 행진을 했으면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법집행일까?
한편으로는 폭력집회가 아닌 한 집회에 참가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집회시위의 본질적 요소인 도로행진은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법이 뒤통수를 때리는 격이다. 2차 희망버스에서 일반교통방해로 기소된 피고인의 공소장에는 "참가자 7000여 명이… 진행방향 전 차로를 차지한 채 행진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참가자들과 공동하여 육로를 불통하게 하는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하였다"고 적혀있다. 진행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는 경찰의 적절한 교통통제로 차량소통이 가능한 상태였음에도 '도로를 점거했으니'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한 것이다.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날아다닐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의 소유자이거나, 인도와 차도의 경계선을 절대 넘지 않는 편집증의 소유자도 아니다. 7000명이 행진을 어디서 하겠는가. 헌법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면서 행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당연히 전제한다.
시위의 참가자가 소수라서 인도만으로 행진을 할 수 있거나, 1차선 정도만으로 행진할 수 있는데 도로를 막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막은 경우는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버스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한 것은 그런 행위 때문이 아니다. 그냥 시위에 참가해서 행진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집회·시위에 참가한 것을 처벌한 것이다.
합헌적 법적용을 기대하며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
2003년 헌법재판소에서 집회의 자유의 의미를 밝힌 내용이다. 희망버스 참가자에 대한 야간시위참가, 해산명령위반, 일반교통방해를 이유로 한 수사와 처벌은 시간을 결정할 권리, 일정한 공간을 점유할 수밖에 없는 시위의 본질적 양상을 무시한 법 적용이다. 최근 4차 희망버스 참가자에 대해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일부에서는 예외적인 판결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판결이다. 아직 그 상식은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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