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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이 OECD 최악 장시간 노동국가가 된 이유?

[이제는 '성평등 복지'다]<1> 가족 중심 복지를 넘어서야

낯설지만 오래된 미래 기획, 성평등복지국가

몇 년 전만해도 '복지국가'는 살기 좋은 먼 나라들의 소문에 등장하는 말이었다. 소문에 뒤이어 한국은 시기상조라는, 아직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곤 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복지국가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2012년 대선을 맞아 후보들이 제시하는 대안 사회의 키워드에도 복지국가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제는 파이가 충분히 커진 걸까? 대답은 파이의 양에 달려있지 않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파이 그 자체가 아니라 파이를 만들고 나누고 누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기획은 삶의 방식을 바꿔보자는 새로운 시도, '다 그렇게 사니까 별 수 없지'라는 체념 속에서 개인적으로 감내해왔던, 괴롭지만 내 탓이라 여기고 말았던 삶의 문제들을 공동체의 과제로 재발견하고, 우리가 지향할 인간적인 삶을 다시 상상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되곤 하는 문제, 바로 성별을 둘러싼 불평등을 공동체의 과제로 재발견하는 일이다. 그 재발견의 이름이 바로 '성평등복지국가'이다.

더욱이 지금 한국 사회는 성평등을 지향하며 추진되었던 정책들이 결국 '여성전용 정책'이거나 '가족 정책'이거나 '모성보호 정책'으로 빗겨 제도화 되어 있는 상황이다. '여성'이라는 성역할은 성평등을 질문하게 만드는 배경인데, 오히려 그 성역할에 갇혀 있는 정책들이 성평등 정책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라는 대안사회를 기획할 때는 그 기초에서부터 성평등의 가치를 전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복지국가'에서도 여전히 '여성전용 복지제도'나 '가족 복지제도'나 '모성보호 복지제도'라는 한계선 주변에서 삶을 기획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결을 담은 성평등복지 의제를 발굴하다

국가 전략에 대한 개입이라는 점에서, 성평등 복지국가의 밑그림은 정책이라는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2년 초에 <성평등 복지국가 전략보고서>를 발표하며 성평등복지국가의 기본방향과 노동, 연금, 건강, 돌봄, 주거, 교육 등의 영역에 걸친 170여개의 정책과제들을 제안한 바 있다.
성평등복지국가의 기본방향

1. 여성은 경제활동의 주체이며, 소득활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권리가 있다
2. 여성과 남성은 일, 가족, 생활의 균형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3. 성차별적인 제도와 문화를 바꾸어 평등한 사회, 차이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룬다
4. 국가는 사회구성원의 기본적인 소득과 생활기준을 보장한다
5. 돌봄노동의 사회화 공공화를 실현하고, 돌봄을 받을 권리와 제공할 권리를 보장한다
6. 개인은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권리와,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갖는다
7.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권리를 보장한다.
8. 국가는 적정한 주거와 안전을 보장한다.
9. 모든 사회구성원은 신체 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할 권리를 갖는다.

- 성평등 복지국가 전략보고서 (2012, 한국여성민우회) 中

하지만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은 무수히 많은 정책들이 제시되며 토론되고 있는 해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그 정책을 삶의 조건으로 살아가게 될 사람들에게 정책은 다 비슷비슷하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복잡하고 어려운, 그래서 결국 관심이 가지 않는 그 무엇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통계 숫자 너머에 있는 삶에 와 닿는 정책으로 성평등 복지국가의 얼굴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성평등복지국가 담론과 여성의 일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찾아보고자 민우회는 2012년 6월~10월에 걸쳐 '대중참여 연구를 통한 성평등복지 의제와 정책과제 발굴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성평등 복지국가 전략보고서>에서 제시한 '성평등복지국가 기본방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보고서에 제시된 '노동, 연금, 건강, 돌봄, 주거, 교육'이 아닌, '노후, 시간, 건강' 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구 영역을 설정했다. '노동, 연금, 건강, 돌봄, 주거, 교육'이 정책적 통합성을 갖추기 위한 분류라면, '노후, 시간, 건강'은 각각 그 수위가 다르고 연관된 정책 영역 또한 혼재되어 있는 분류지만, 일상사의 구조를 더 밀접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분류일 것이다. 또한 연구의 중심에는 좌담회를 배치했다. 좌담회에 모인 여성들의 이야기로 모든 여성들의 삶이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서로 다른 삶들이 만나 공감이라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지점을 발견하고, 그 지점을 믿을만한 좌표로 삼기 위해서였다. 확인된 좌표는 노후가 불안하고, 삶 자체가 바쁘며, 일상적으로 아프다는 것이었다. 왜 불안하고, 바쁘고, 아픈가. 그 이유와 대안을 담은 결과물이 성평등복지 의제와 정책과제이다.

성평등복지 의제로 그려보는 대안 사회의 밑그림

첫 번째 의제는 '독립과 연대로 준비하는 노후'이다. 이 의제는 노후 불안의 원인을 가족을 기본 단위로 만들어진 복지체계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가족 구조 변동 현상 사이에 개인들의 삶이 놓여 있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더 이상 '가족'으로 삶이 정형화되지 않는 시대임에도, 복지체계와 돌봄 관계망이 가족을 중심으로 제한되어 있어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진단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성평등한 복지국가의 모습은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가족을 중심으로 닫혀있지 않으며, 돌봄 공동체의 가능성 역시 결혼을 중심으로 닫혀있지 않은 사회이다.
11월 8일 서울시에서 발표한 <통계로 보는 서울시민 가족생활> 결과에서도 가족구조 변동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의제인 '노동시간 재구성으로 쉼표 있는 사회 만들기'는 돌봄을 수행하지 않는 남성 성역할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일만 할뿐 자신과 가족을 돌볼 권리는 없는 삶을, 여성은 일하면서 가족까지 돌보는 이중고를 감당하는 삶 혹은 일할 권리 자체가 제한되는 삶을 겪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을 일과 돌봄 그리고 쉼을 균형 있게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전제하는, 지금보다 느리고 여유 있는 사회를 다음 사회의 밑그림으로 제안한다.

OECD 국가들의 연간 노동시간
▲ <출처: OECD Stat.Extracts>

OECD 가입국 중 2위인 장시간 노동문화는 '일만 하는 남성 성역할'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이 설계된 결과이다.

세 번째 의제인 '모성건강을 넘어 여성건강으로'는 다이어트, 미용, 성형, 패션 산업에서의 여성의 몸 이미지 왜곡으로 대표되는 '여자다운 몸'을 유지하라는 사회문화적 압박이 여성의 건강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 보호' 영역에 한정되어 있는 여성 건강 정책 사이의 괴리를 드러낸다. 그리고 몸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로 추구되며, 사회구성원들이 다양한 몸 경험을 격려 받음으로써 평생 건강을 준비할 수 있는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영양 과잉의 시대임에도 20대 여성 저체중군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건강정책은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다.

세 가지 성평등복지 의제의 구체적인 결은 앞으로 연재될 연속 기고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성평등복지 의제는 각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성평등복지 정책 제안도 함께 담고 있다. 앞으로 소개될 1인 1국민연금제, 생활연대협약법 제정, 점심시간 유급화, 노동 안식년제, 몸다양성보장법 제정, 국민건강증진법 개정과 같은 성평등복지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10년 뒤 한국 사회는 지금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 다른 사회의 모습을 함께 상상해보자.
▲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성평등복지로 가는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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