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나무 판자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열흘이 넘게 15만4000볼트 전기가 흐르는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농성을 이어가는 동안 천의봉 사무국장의 '철탑일기'를 실을 예정입니다. <편집자>
2012년 10월 22일. 농성 6일차
비가 온다 해서 어제 그 난리를 쳤지만 다행히 아침에 눈을 뜨니 비는 오지 않았다. 철탑을 지키려던 조합원 100여 명이 있었기에 철탑 위의 날씨는 후끈하게 느껴졌다. 평소 출근 투쟁하는 대오보다 많은 100여 명이 모여서 일주일을 알리는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일주일동안 여기를 지키느라 지칠 만도 한 조합원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곳을 사수하고 있었다.
오늘부터는 사수대오가 줄어든다. 조합원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현장으로 돌아간다. 저녁 내내 잠잠했던 하늘도 바뀌어 먹구름이 철탑 위를 뒤덮고 있다. 하늘도 뭔가 비장한 각오를 한 모양이다. 비 올 채비를 마쳐놓은 상태다. 좁은 공간에 걸쳐진 판자는 바람에 요동을 친다.
오늘 울산본부 주최 문화제가 열린다. 그렇지만 하늘은 우리에게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화제 시작과 동시에 비가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여기 내가 있는 곳은 15만4000볼트 전기가 흐르는 고압전선 송전탑이다. 나는 전기를 무지 싫어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들과 배터리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뒤에서 물고기를 주워 담다가 내가 감전되고 말았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어렸을 때 12볼트에 잠깐 기절했는데 천둥번개가 쳐서 철탑으로 전기가 타고 흐르면 이게 몇 볼트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잠깐 후회를 해본다. 술 먹으면서 병승이 형이랑 송전탑에 오르기로 약속했던 그 날을.
밖에 집회문화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해본다. 비는 와도 좋은데 천둥번개만 치지 말라고.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비로 인해 온몸이 다 젖은 나는 철탑을 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앉아있는 곳은 나무 합판이어서 전기는 안 통할 거라 생각한다.
폭우로 인해 문화제는 중간에 취소되고 비를 피하려는 조합원들은 하나둘 씩 눈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앞에 있을 때는 괜찮다고 스스로 나를 달래봤는데 조합원들이 하나둘 씩 안 보이기 시작하니 나의 불안감은 더 커져가고 있다.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담배를 꺼냈는데, 이런 젠장! 라이터도 물에 젖어 켜지지가 않는다. 입에서는 자연스레 욕이 나온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르고 비는 그쳤다. 비 때문에 잠깐 꺼내지 못한 내 전화기에는 수십 통의 문자와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힘내라는 문자와 응원격려 메시지였다. 이 문자를 보며 아까 잠시 후회했던 그 순간이 미워진다. 응원 격려 메시지와 함께 내 마음도 다독거려 본다. 내 몸이 나의 몸이 아니라 10년간 현대차에 한을 품고 있는 조합원들의 몸이라고. 850만 비정규직의 몸이라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철탑 밑 농성장도 분주하다. 비 맞고 몸 상한 데는 없는지 걱정이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지나가는 비와 함께 나의 하루도 지나간다.
▲ 대법원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최병승(아래) 조합원과 천의봉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위). ⓒ뉴시스 |
2012년 10월 24일. 농성 8일차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을 때쯤 이상한 기분이 든다. 비정규직지회 임원·상근집행부 카톡방에 "지회장 경찰이 잡아감"이라는 문자가 뜬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아직 벌어진 상황에 대해 다들 어리둥절하다. 곧바로 지회장 카카오톡이 뜬다. '연행 중이라면 어떻게 문자를 남기지?' 생각하고 다시 카톡방에 들어가서 "이런 장난치지 마세요"라고 문자를 남기니 조직부장에게 "장난이 아닙니다"라고 다시 문자가 온다.
순간 머리가 삐쭉 섰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지? 어제 지회장의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포위의 날 호소문' 문구 중에 이런 말이 순간 떠오른다.
"제가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철탑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입니다. 그 짧은 거리를 갈 수 없습니다. 제 눈으로 동지들을 보고 싶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10월 26일, 수 천, 수 만의 동지들이 저의 눈이 되어 주십시오. 저의 눈이 되어 두 동지들의 안전을 확인해주십시오."
지회장이 연행된 동부경찰서까지는 차로 20분인데 나 역시 지회장한테 가지 못한다. 참 눈물 난다. 처음 임원으로 결의할 때 박현제 지회장은 결혼 10년이 지나서야 어렵게 가진 딸이 있었다. 그 딸 10개월 핏덩이를 두고 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해 가족을 버리고 지회장이 될 것을 결의했다.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주체를 못하고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금고 잠시 나약해졌던 나의 마음을 다시 잡아 본다. 내가 여기서 나약해지면 안 된다. 지회장 체포는 회사와 정부의 오판이다. 수장만 잡아가면 이 싸움을 못할 거란 오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전체 조합이 지회장이 되고 전체 조합원이 임원이 되어서 다시 들풀처럼 일어서리라. 밑에 조합원들도 어려운 분위기이건만 나보고 먼저 힘내라 한다.
이때 마침 시골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들이 미안하다. 너는 그 높은 데 바깥에서 자는데 따뜻한 방에 누워있는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가슴에 북받친 설움이 다시 한 번 밀려온다. 다 같이 잘살자고 여기서 고생하는 거니깐 조금만 참아 달라고 어머니를 달래본다. 어머니가 나를 키우는 과정에서 무진장 고생하셨는데. 어머니 연세가 65세다. 나를 키우느라 몸도 성한 데도 없다. 이제 내가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당히 정규직 쟁취해서 이제부터는 편히 살게 해드릴게요.
아무튼 오늘 기분은 엉망이다. 오늘부터 한국시리즈 야구가 있다. 내 나이 31살. 아직까지 꿈 많고 놀러 다니고 싶은 나이다. 야구장 가서 쌓인 스트레스나 풀면 좋으련만….
이 글은 <레디앙>, <참세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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