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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되려면 '1만1000원의 기적'을 호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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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 되려면 '1만1000원의 기적'을 호출하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건강보험 하나로 100만원 상한제'를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선거가 임박해오고 있건만 좀처럼 정책 의제가 뜨지 않는다. 핵심 선수로 세 명이 정해졌지만 정책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 포괄적인 의제는 오래전에 등장했지만 논점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 구도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탓이지만, 후보들이 구체적인 정책을 예각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것도 주요한 이유이다.

문재인·안철수, 정책 의제 경쟁 벌여라

이러다간 정말 11월 중순까진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줄다리기로, 나머지 대선 한 달은 최종 야권후보에 대한 검증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투표장에 나가야될지도 모르겠다. 일반 시민들의 세상살이가 고달픈 상태에서 민생을 다루는 정책 의제가 실종된다는 것은 권력을 쥔 여권의 책임을 추궁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을 의미한다. 야권에 속하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적극적인 정책 경쟁이 절실한 때이다.

남은 기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국민의 민생 염원을 집중할 수 있는 의제로 무엇이 있을까? 나는 야권 후보들이 병원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책 공약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100만 원 상한제'를 내걸기를 희망한다.

우리나라에서 5000만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면서 민생 불안의 핵심 뿌리에 있는 문제가 병원비이다. 동네 병원에서 치료하는 가벼운 감기 정도야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하지만 누구든 중병이나 만성질환에 걸릴 수 있기에 병원비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고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근심은 더욱 커진다. 절박한 마음에 가계비를 쪼개면서까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까닭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78%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가구당 보유한 보험이 평균 3.6개이고 평균 매월 18만 원씩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연금, 종신 등 특약을 포함하면 월 28만 원).

병원비 해결 못하는 국민건강보험

누구든지 중병에 걸릴 수 있다. 젊었을 때 건강했더라도 세상을 떠나기 이전에는 대부분 병원신세를 오래 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질병과 그에 따른 병원비를 걱정하고 있고, 이 문제에 사회가 함께 대응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이 출발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이 병원비를 모두 해결해준다면 우리가 병원비를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무상의료가 실현되고 있는 선진국 국민들처럼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빈약하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이 제공하는 보장률이 6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병원 원무과에서 발급받은 병원비 명세서에 총 금액이 1000만 원이면 대략 600만 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책임지고 환자가 약 400만 원을 본인부담금으로 내는 구조이다. 중병이 재발하거나 입원기간이 길어질 경우 본인부담금은 수천만 원에 이를 수 있다.

왜 병원비를 함께 해결하자며 만든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가? 국민건강보험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올해 의사, 약사 등 의료공급자가 청구한 병원비 총액이 약 64조 원에 이른다(의원, 약국 진료비 포함). 그런데 국민건강보험이 가진 돈은 40조 원이다. 그 결과 나머지 24조 원이 환자 본인부담금으로 전가되고 중병에 걸리거나 비급여 진료가 많은 경우일수록 환자의 병원비 부담이 커진다.

해결방법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늘리면 된다. 만약 국민건강보험이 올해 24조 원을 더 지출할 수 있었다면 5천만 국민 모두가 단돈 1원도 부담하지 않는 완전 무상의료를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환자본인부담금을 모두 없애 필요는 없다. 환자에게 상징적인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 본인부담금이 존재할 수 있다. 바로 '100만 원 상한제'이다. 이것은 어떤 경우도 환자 1인당 급여, 비급여 진료를 모두 포함해 1년에 본인부담금 총액 한도를 100만 원으로 정하자는 제안이다.

1년 동안 본인부담금액 총액이 50만 원인 경우 추가 혜택은 없을 것이다. 반면 본인부담금 총금액이 500만원인 사람, 5000만 원인 사람은 100만 원만 지불하면 되므로 각각 400만 원, 4900만 원씩 혜택을 보게 된다. 이렇게 1년에 본인부담금을 100만 원만 한도 이상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병원비 불안은 해소된다고 볼 수 있다.

ⓒ뉴시스

가입자·기업·정부 각각 30%씩 더 내자

100만 원 상한제를 실현하는 데 얼마의 돈이 추가로 필요할까? 약 14조 원이다(일부 하위계층 보험료 지원 재정까지 포함).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 40조 원이 54조 원으로 늘어나면 된다. 정말 우리에게 14조 원을 더 늘릴 능력이 없는 것일까?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 기업, 정부 3자가 함께 마련한다. 예를 들어 직장가입자가 5만 원을 내면, 기업도 같은 금액을 낸다. 그리고 정부는 직장가입자, 기업, 지역가입자가 낸 보험료 총액의 20%를 보조한다. 원래는 의료보험이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에, 직장가입자 보험료의 절반은 기업, 지역가입자 보험료 절반은 정부가 지원했었다. 현재는 직장과 지역이 통합된 까닭에 정부 지원금 계산방식도 지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보험료 총수입 기준으로 수정되었는데, 현재 국고지원금은 애초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몫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재정이다.

그 결과 현재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국민건강보험 월 보험료 수준은 엇비슷하다. 가구당 직장은 9만2000원, 지역은 7만7000원이고, 가구원수 1인당 기준으로 환산하면 직장, 지역 모두 약 3만7000여원이다(건강보험하나로 시민회의 추정 금액).

국민건강보험이 14조 원을 추가로 조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보험료를 30% 인상하자! 그러면 가입자의 보험료, 기업의 분담금, 정부의 지원금이 동시에 30%씩 오르게 되어, 가입자가 14조원의 약 절반을, 기업과 정부가 나머지 절반을 책임지게 된다.

가입자가 추가로 내야할 몫을 전체 국민으로 나누면 1인당 월평균 1만1천원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이 방안을 '1만 1천원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물론 1만 1천원은 평균금액이다. 하위계층은 월 4천원, 중간계층은 9천원, 상위계층은 4만원 정도 추가로 납부한다. 재벌대기업 임원들은 어떨까?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 상한액이 매우 높아서, 월소득이 7810만원을 넘는 고소득자는 매월 68만원을 더 납부하게 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료 30% 인상! 인상률 수치만 보면 깜짝 놀랄만하다. 하지만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월평균 1만1천원이다. 하위계층은 더 금액이 작다. 형편껏 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도 1년에 본인부담금이 1백만원을 넘지 않는 멋진 병원비 해결제도를 가지게 된다!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부과되고 급여는 아픈만큼 지급되는 사회연대원리로 설계되어 있는, 이 아름다운 제도를 왜 우리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까?

당장 추가 보험료 지출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가계 부담을 절약하는 일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009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 78%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매월 의료와 관련해 내는 보험료만 평균 18만 원에 이른다. '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되면 4인 가족은 평균 4만4000원을 더 내게 되지만, 대신 앞으로 월 18만 원의 민간의료보험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보험료, 어디서 결정되나?

이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이외로 간단하다. 최저임금이 매년 노동계, 경영계, 공익위원 3자가 참여하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되듯이, 국민건강보험료는 가입자, 의료공급자, 공익위원 3자가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매년 표결로 결정된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음식업중앙회 등 가입자대표 8명, 의사협회, 병원협회, 제약협회, 약사회 등 공급자 대표 8명, 정부가 임명한 공익대표 8명, 그리고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차관 등 총 2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국민건강보험료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의료수가, 급여적용 범위 등 국민건강보험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국민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적 정책결정기구이다.


보통 국민건강보험료 협상은 매년 10월에 시작돼 11월 중하순께 표결로 마무리된다. 만일 올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에서 보험료 30% 인상을 의결하면, 가입자, 기업, 정부 몫이 함께 30%씩 늘어나고 곧바로 100만 원 상한제가 가능해진다. '민간의료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100만 원이 넘는 모든 병원비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획기적인 보험료 인상과 이와 연동한 보장성의 확대 안건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다루어진 적은 없다. 손익계산만 따진다면 가입자는 약 7조 원을 내고 14조 원의 급여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기업, 정부는 혜택은 없이 추가 재정 책임만 지게 된다. 따라서 이 안건을 기업, 정부가 먼저 제시할 이유가 없어 보이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가입자는 어땠을까? 보장성의 전면 확대를 위해 대대적인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내건 적이 있는가? 가입자 대표 역시 보험료 인상을 회피해 왔다. 대다수 국민들이 지닌 국민건강보험료에 대한 저항감이 반영된 대응이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료는 다음해 병원비 지출의 자연증가분 정도를 따라잡는 수준에서 인상돼 왔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0%대 초반에 머물러 왔으며, 이러한 상태를 이용해 민간의료보험이 자신의 시장을 확장해 왔다.

언제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 가입자들은 과중한 본인부담금과 민간의료보험료로 허리가 휘고, 기업과 정부는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문재인·안철수, 국민건강보험료 인상 내걸어라!

곧 10월 중순부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내년 건강보험료와 보장성 범위를 둘러싼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급식, 보육에 이어 무상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크다. 올해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는 '건강보험 하나로 100만 원 상한제'를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

대통령 후보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들의 병원비 걱정을 해결하겠다는 민생 후보라면 국민들에게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가입자, 기업, 정부 3자가 함께 병원비를 책임지는 '건강보험 하나로'를 제안하길 바란다. 당장 올해가 어렵다면 자신이 집권한 첫 해인 2013년 11월엔 반드시 '100만 원 상한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이를 위해서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사회적 논의로 올려 국민의 동의를 꼭 구하겠다고 말이다. 국민건강보험료 논란이 생기겠지만 옳은 길이라면 단호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경쟁도 생기고 후보의 국정운영 비전과 능력도 제대로 검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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