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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방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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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방은 멀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제20호 <3>

평온한 권력이양…파격적인 행보

북한에 3대 세습 정권이 출범한 지도 벌써 8개월이 지났지만, 북한 내부가 혼란스럽다거나,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하게 비칠 수 있는 정세는 조성되지 않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외부 세계에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러한 평가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김정은 정권이 권력의 공고화에 성공했다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여전히 많은 변수가 있다. 그 중에서 경제정책, 특히 개혁·개방 여부는 장차 가장 파급력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3대 세습정권의 등장은 비교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특이한 현상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세대를 달리하면서 세습정권이 성공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유형에 대한 비교정치론적 논의가 필요하다. 필자 주)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달리 공개 행사 참석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인 리설주를 공개하고 공식 행사에 대동하고 있다. 유원지를 현지지도 하면서 허리를 굽혀 잡초를 직접 뽑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을 공개했다. 가위 북한 지도부의 세속화라고 부를 수 있는 파격의 연속이다. 소형 목선을 타고 경호 인력도 거의 없이 서해 최전방 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 비서와 부인 리설주. ⓒ로이터=뉴시스

그러나 이런 파격은 공개 행사에서 뿐만 아니라, 리영호 총참모장을 전격적으로 해임하면서 통치 스타일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김정일에 의해 김정은 권력 기반의 군부 내 후원자로서 2010년 3차 당대표자회에서 일약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급부상한 리영호가 김정일 사망 후 불과 7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경질됐다는 것은 단순한 사건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을 움직이는 주역인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정은의 재가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김정은의 과단성이든, 강력한 파워든 작용했을 것이다. 다만 리영호의 해임이 일요일에 회의를 열어 진행됐고, 그 직후 '중대보도' 형식을 빌어 김정은의 원수 칭호 부여가 결정됐다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부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와 같은 파격 행보와 리영호에 대한 전격적인 해임 등은 김정은 리더십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더해 '6·28 방침'으로 알려져 있는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시행하려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의 관심은 과연 김정은 정권이 조만간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고 추진할 것인가에 있다. 개혁·개방에 비중을 두는 관측과 전망은 이와 같은 김정은의 독특한 리더십과 6·28 방침에 근거를 두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북한이 개혁·개방의 경로를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경제관리 방식을 다소 바꾸려는 것인지, 아니면 6·28 방침도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경우처럼 유산된 개혁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이와 같은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일지도 모른다. 만일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려 한다면 개혁·개방의 내용을 담은 정책을 공표해서 실제 집행에 들어갔을 때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북한 정세 변화가 개혁·개방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에 대해 가늠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최근에 제기된 분석은 대략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 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관측, 둘째는 6·28 방침의 내용이 '북한식의' 개혁·개방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 셋째는 6·28 방침의 내용이 집행될 경우 상당한 구조적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정적 효과가 예상된다는 관측 등이 있다.

첫째와 둘째의 관측은 대체로 개혁·개방의 가능성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같은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나, 전자가 의지를 강조했다면 후자는 시장화라는 조건의 성숙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세 번째의 관측은 북한의 경제관리 방식 변화가 개혁·개방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논의의 차원은 다르지만, 북한 정권의 의지나 여건에 상관없이 유산될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내각중심제' 강조, 개혁·개방을 위한 초석?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이후 북한의 개혁·개방을 기대하게 하는 징후는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김정은이 스위스에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방과의 협력이나, 개혁·개방에 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가질 것으로 예상하는 견해가 대두한 바 있지만, 이러한 언급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1월에 당 간부들에게 "자본주의 방식 논의에 눈치보지 말라"고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4월 15일 태양절 열병식에서는 "주민들의 허리띠를 더 이상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이른바 '4·6로작'에서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나가는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며 내각 중심으로 경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6월 29일 『로동신문』 '정론'에서는 "선군정치로 국력이 다져진 조건에서 이제 경제강국의 용마루에 올라서야 한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이 외에도 지난 8개월 동안 개혁·개방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 정권이 인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과거와는 차별적인 변화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과 정치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른바 개혁적 리더십와 정치적 조건이 세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오히려 더 어렵다고 할 만큼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낮다. 이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리더십이 개혁에 대해 불만을 갖는 기득권 세력을 무마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단순한 비교는 어렵지만 김정은이라는 젊은 지도자가 과거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덩샤오핑과 같은 리더십을 가졌는가, 북한의 정치구조가 중국과 같이 경제 사업을 담당하는 내각에 힘을 실어주면서 하부 경제 단위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틀을 갖출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김정은이 보여주는 파격 행보에서 과거와는 다른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동시에 그러한 파격이 경제정책에 투영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자의성과 즉흥성도 고려해야 한다. 아버지와는 뭔가 다른 정책을 추진해서 아버지 대에 겪었던 최악의 경제 형편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욕심이 정책에 반영될 때 그것은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개혁이란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추진된다고 해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파동을 겪게 마련이다.

김정은의 리더십에 더하여 북한의 정치구조 역시 개혁을 추동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개혁의 사령탑으로 비중을 높이고 있는 내각의 경우 전승훈 전 금속공업상과 로두철이 부총리를 맡고 있다. 이들은 박봉주, 곽범기와 함께 북한 경제를 이끄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박봉주는 2003년에 내각 총리를 담당하면서 당시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북한이 경제정책을 변화시킨다면 박봉주의 과거 경험이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박봉주는 당 부장이고, 곽범기는 당 비서이다. 내각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 전문 테크노크라트인 이들이 당간부로서 경제정책 변화를 주도한다는 점이 과거 이들이 경제정책을 담당했을 때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당과 내각이 호응하여 향후의 정책 추진에 힘을 발휘할 가능성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치구조의 재배치

반면에 1995년 김정일 정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내세웠던 '선군정치' 노선 하에서 중량감이 더해진 군부의 향배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리영호의 숙청이 경제정책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설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 과거 북한 역사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숙청이 표면적으로는 정책을 둘러싼 갈등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투쟁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대표적인 사건이 1967년 갑산파 숙청이다).

리영호는 김정일에 의해 김정은 정권을 보위하는 군부의 책임자로 임명된 아버지의 사람이다. 그런데 최룡해를 '군내 서열 1위'로 앉힌 것에 대한 불만이 리영호뿐만 아니라 군부의 지도자들 사이에 만연했을 것이고, 그것을 리영호가 표출하다 숙청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군 경력이 전무한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임명은 군부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군대는 주지하듯이 자신들의 외화벌이 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러나 군대는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선군정치' 하에서 정치적 이익의 비중도 높였다. 북한 군부는 단순히 안보적 이익만을 충족시키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그런 군부를 당료 출신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통제하고 지휘한다면 군부의 불만은 증폭될 것이다. 군부가 갖는 자부심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내각과 당을 통해 경제정책을 변화시키려 할 때 비대해지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군부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지, 만일 만족시키기 어렵다면 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해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형중("새로운 경제관리체계의 도입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CO 12-33)이 지적하듯이 군부를 비롯한 특권 기관들이 갖고 있던 "독과점권 및 기타 특권이 폐지"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내각의 권한이 커진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북한 정치구조와 권력관계가 재편성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편성은 김정은이라는 '3대 수령'의 위상과 권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군을 비롯해서 당이나 안보기구들이 갖는 특권의 기반 위에서 존재하는 '수령'이 이들의 특권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때 과연 '수령'으로서의 면모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혁·개방, '너무 먼 당신'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북한이 당장에라도 개혁·개방으로 달려갈 것만 같다. 물론 '북한식'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서기는 하지만. 비록 북한이 "적들이 원하는 그런 식의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은 단순히 자신들이 벌이려는 일이 외부 세계의 희망사항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엄포용일 수 있다. 장성택의 방중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여 뭔가 단기간 내에 성과를 거두려는 조급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5년 북한 경제난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이후 북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부침은 북한의 경제정책 선택이 의지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개혁은 개방을 필요로 하며, 개방은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북한과 같이 자원도 없고, 자본도 열악한 상황에서 외부의 수혈이 없이는 어떤 정책 변화도 성공할 수 없다. 외부 수혈을 받으려면 내부의 제도와 체제가 정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혈이 아예 안 되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북중 경협을 통해 중국 측에 쌓였던 불만을 표출하면서 원자바오가 장성택에게 '훈계'를 했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과거 남북 경협을 통해서 북한이 보여주었던 악습이 중국과의 경협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시장화가 확산됨으로써 개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했다는 분석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시장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사회주의가 몰락하기까지 과거 동유럽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상거래와 유통을 위한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개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체계적이고 정교한 개혁 프로그램이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은 정치구조 자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개혁이라는 칼은 경제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도 겨냥한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아직도 멀고 먼 '당신'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여부는 우리 대북정책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비록 북한이 핵개발이나 대남 적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만일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위해 경제정책을 바꾸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그리고 남북 간에 협력할 공간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에 따라서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그러한 정책을 선택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이를 촉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의 주장은 우리가 대북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꾸면 북한이 개혁·개방을 선택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개혁·개방은 북한의 몫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다만 북한이 그러한 정책 선택을 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를 촉진시키기 위해 과감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 대안을 상정해 놓고 북한이 가고 있는 위치가 어딘지를 파악해서 북한의 정책 선택이 한반도의 대변환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9·10월호(제20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 어디로 가나?'입니다.

* 원제 :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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