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파격적인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위는 지난 7월 중순, 군인출신으로서 군부내의 실질적 일인자이자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의 일등공신인 이영호 총참모장을 전격적으로 해임한 일이다. 모든 직위에서 일거에 이영호를 해임한 이유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최룡해, 장성택 등 당료가 군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운 이영호가 숙청된 것, 군부 이권사업을 당 혹은 내각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군부가 반발한 것에 대한 본보기식 자르기, 알려지지 않은 이영호 자신의 개인 비리 혹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한 불만표출 등이 해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군부 1인자인 이영호를 전격 해임한 것은 현재 또는 앞으로 북한 내 권력체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가운데),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왼쪽)이 지난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 열병식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
이영호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에 대한 외부 평가에 있어 견해가 나뉘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거침없는 과단성을 언급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군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김 제1위원장의 경험 혹은 노련미 부족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영호 해임 이후 1-2달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 북한 군 내부의 특별한 동요나 집단행동 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지도부가 이영호 해임 조치 즉시 총참모장에 신진세력인 현영철을 임명하였고,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공화국 '원수' 칭호를 부여하면서 군을 포함, 각계 충성대회를 개최하였다. 원수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을설로 하여금 충성문을 기고하게 한 것도 군부의 동요를 막자는 치밀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나타나는 현상으로 짐작해 볼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영호 전격 해임을 통해 군을 보다 확실하게 통제하고, 나아가 "어느 누구도 자를 수 있다"는 생사여탈권, 절대권력의 막강한 힘을 보여줌으로써 김 제1위원장에의 절대 복종과 충성심을 유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영호 해임에 따른 향후 북한 권력체제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김정은 체제의 '당권' 확립과 북한내 '당료' 정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이영호의 해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군에 대한 당의 통제이다. 선대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가 중심이 된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시책을 운영한 반면, 김정은 체제 아래에서는 군부보다는 당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완전히 이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에는 김 위원장이 사실상 당기능을 방치하였고, 당의 결정보다는 군인이 주축을 이룬 국방위원회가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김일성 사후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김정일의 홀로서기를 뒷받침해 주었던 세력이 군부였음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을 갖지 않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오히려 막강한 김정일 시대 군부세력에 경계심을 표출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미 4월 당대표자회 등을 통해 최룡해가 전면 등장한 것이나, 2010년 이후 장성택·김경희 등 로얄패밀리가 군과 관련된 직함을 부여받을 때부터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이영호 해임에 대해 최룡해와 장성택 중심의 후견세력이 군부세력에 대해 한판승을 거둔 것이라고 분석하는 것도 이것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의 군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되는가? 군의 요직에 당 혹은 민간출신들이 진출할 경우, 상대적으로 북한 내 군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군 인사의 세대교체와 함께 군 인사의 문민화(혹은 지금과 같이 당료의 군직함 겸직)로 이어질 수 있고, 체제 보위기능을 제외하고 군이 북한의 주요정책 결정 기능으로부터 점차 배제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착각하지 않아야 할 부분은 북한 군부내 당료의 진출과 그들 권한의 확대로 순수한 군출신의 진출이 제약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북한이 표방하는 '선군정치'의 뿌리를 흔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군을 이끄는 구성원에 있어 군출신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을 뿐이지 군은 여전히 북한 체제를 받치고 있는 탄탄한 기둥임에는 틀림없으며, 최룡해, 장성택 등 당료들 또한 아무리 스스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더라도 총정치국장, 국방위 부위원장 등 군의 직함을 통해서 군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는 군이 북한의 대외정책, 즉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중관계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하여 왔고, 상업·무역에 따른 이권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부분에 있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임은 틀림이 없다.
셋째, 이영호 해임 이후 당료의 권한 강화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선군(先軍)에서 선민(先民), 선경(先經) 등의 우선순위 변동이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군을 우대하는 한편으로 북한 주민의 민생문제, 경제난 해소의 문제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여러 곳에서 이러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미 올해 1월 당 간부들에게 "자본주의적 방식 논의에 눈치를 보지 말고 이러한 방식을 포함하여 활용할 만한 것을 도입하라"는 지시를 한 바 있으며 현재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관리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경제관리 방식을 개편하기 위한 '상무조'가 조직·운영되고 있으며, 이른바 '6.28' 경제관리개선방안이 도입되어 각 근로단체 조직과 인민반, 공장·기업소를 상대로 새 관리체계에 대한 강연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선 공장에 생산품목을 지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산·판매를 허용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올 가을부터는 농업생산량의 30%를 개인 소유로 인정한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결국 북한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배급제의 폐기 과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고 있다.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북한 경제상황에서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농지나 기업 이윤의 사적 자율권을 확대하는 것은 생산확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또한 국영가격과 시장가격의 괴리를 메우고, 공급·유통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조치들은 김정은 체제가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착륙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시범적으로 이러한 조치를 취하면서 효과를 검증한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눈에 띄는 것이 북한의 대외활동 부분이다. 8월 초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방문하였다. 특히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도이모이' 정책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전환을 이룬 베트남의 경험에 관심을 표명하였다고 한다.
한편, 지난 7월말 8월초 왕자루이 중국 대외연락부장이 방북하여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불편했던 북중관계를 복원시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내 실질적 2인자로 군림한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최근(8.13-18) 중국을 방문한 것도 특색이다. 나선·황금평 공동지도위 회의 참석이라는 공개일정에 따른 것이지만, 북한의 2개 개방구의 개방정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장성택의 방중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중국 정부도 그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듯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와의 면담을 허용하였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중에 앞서 북중간 정치적 유대관계를 다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나선지구는 중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자와 인프라 건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황금평 지역 개발은 이에 비해 진척도가 느리다. 그러나 앞으로 황금평 지역의 개발이 가시화될 경우 북한의 동서지역에서 북중간 경협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보이며, 중국식 경제개발의 북한 전이와 북한의 대외개방 정책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영호 해임이후 북한 내에서 전개되는 변화가 표면적이고 설익은 부분도 있지만,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런 북한의 전반적인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면밀히 주시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당중심의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북한 군부의 반발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거나 김정은 제1위원장 스스로 북한 군부의 불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군의 불만을 외적으로 돌리기 위해 대미, 대남 정책에서의 기존 행태를 계속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제1위원장이 대남, 대외정책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분에 있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둘째, 당료의 부상은 또 다른 권력 집중을 낳게 되며, 이는 그간 권력 분점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왔던 북한 체제에 잠재적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으나 임기식 집단 지도체제를 통해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방지하고 있다. 유일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 권력구조에서 권력의 집중은 늘 권력의 암투를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가늠할 수 있는 경제부분의 변화가능성이다. 북한은 과거 2002년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았다가 '시장경제'가 확산되는 것에 놀라 실행을 유보한 적이 있으며, 2009년 화폐개혁을 통해 가격조정에 나섰다가 환율과 물가가 급등하여 폐지한 사례가 있다. 김정은식 경제관리 개선이 북한 주민들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든지 혹은 김정은 체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파급력을 가져올 경우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경제분야에서 유일한 후견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의 원조와 협조가 더디거나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일관계 등에서 돌파구를 열지 못할 경우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개혁·개방 실험도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정권변동이 예견되고 있는 남한, 중국, 미국 등은 현재 김정은 체제와 향후 변화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정보 공유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바람직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종합적이고 일치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9·10월호(제20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 어디로 가나?'입니다.
* 원제 : 이영호 해임과 김정은 권력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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