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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국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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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국의 올림픽

[런던올림픽 결산] 신아람 오심에서 박종우 '해프닝'까지

금메달 13개.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이 거둔 성적표다. 당초 계획했던 목표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이다.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표현하기에 충분한 결과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이 우리에게 전해 준 진짜 메시지는 메달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종목에서 펼친 선전과 그 도전을 둘러싼 인간 드라마다.

'유럽 스포츠' 펜싱의 한국적 재발견

펜싱은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힘을 중시하는 싸움의 기술이었지만 16세기 무렵 프랑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여성적인 우아함을 강조하는 예술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영국이나 북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서 프랑스, 이탈리아의 펜싱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었고, 펜싱은 유럽의 귀족 스포츠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1950년대까지 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올림픽에서 펜싱 종목을 석권한 이유도 이런 귀족적 성격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진정한 주류로 인정 받기 위해 펜싱을 택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프랑스나 영국의 국민이 되고 싶어 했다.

유대인의 펜싱은 특히 상대의 허점을 놓치지 않는 민첩성에 장점이 있었다. 그들의 재빠른 손동작은 올림픽 펜싱 역사를 다시 쓰기에 충분했다. 그 뒤 펜싱은 얼마나 빠른 손동작으로 상대를 찌르고 베느냐에 집중해 왔다.

그런데 런던올림픽에서 그 흐름이 바뀌었다. 변화의 주체는 한국이다. 한국은 퀵 스텝 전법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빠른 발로 절묘하게 상대 공격의 예봉을 차단하는 한국 스타일은 유럽 선수들에게는 이질적이었다. 아무리 전광석화처럼 찌르기를 하는 선수도 사정권 밖에 있는 상대를 찌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펜싱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냈다. 펜싱 최강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른 셈이었다.

▲ 신아람이 지난 4일(현지 시각)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고 있다. ⓒ연합뉴스

신아람의 눈물과 진짜 공동 은메달

우리가 펜싱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사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펜싱의 가능성을 눈치챈 대한펜싱협회는 유럽 무대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이 1년에 6개월 이상 유럽에서 전지훈련을 하도록 지원해 왔다. 하지만 한국형 펜싱을 완성하기까지는 선수들의 절대적인 희생이 필요했다. "런던에 오기 1년 전부터 거의 외출, 외박을 못하고 훈련만 했다"는 한 메달리스트의 증언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의 펜싱 선수들은 "정말 빨리 가족을 만나 이제 좀 쉬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어느 종목 선수 이상으로 땀을 많이 흘린 한국의 펜싱은 억울한 판정 때문에 울어야 했다. 분명히 판정은 억울했다. '신아람이 아니라 다른 유럽 선수였다면 심판은 똑같은 판정을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대처도 깔끔하지 못했다. 펜싱에서는 오직 선수만이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지만 한국은 코치가 항의를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유창하고 논리적인 항의도 규정에 어긋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올림픽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 지닌달 30일 런던올림픽 여자 펜싱 에페 준결승에서 '1초 판정'으로 패했을 당시 신아람. ⓒAP=연합뉴스

더 아쉬운 건 대한체육회의 생색내기용 공동 은메달 제안이었다. 대한체육회는 메달보다 펜싱 선수들의 자존심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사실 신아람에게 필요한 건 국제펜싱연맹의 진정성 있는 사과였을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신아람은 스스로 에페 단체전에 나가 동료들과 진짜 '공동 은메달'을 받았다.

한국이 '도마의 신'을 배출한 이유

한국 체조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양학선 덕분에 생각난 건 '임춘애의 라면 신화'다. 88 꿈나무 육성에 매진하던 한국에 임춘애는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그녀는 1986년에 아시안게임 3관왕을 차지했다. 가난 때문에 라면을 먹어야 했다는 잘못된 얘기까지 나왔다. 사실 그녀는 라면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과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 중에는 가정 형편이 안 좋은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산층 가정에서 메달리스트들이 꽤 배출된다. 한국 스포츠에서 '헝그리 시대'는 지나간 추억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양학선이 등장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월급 80만 원을 송금해왔다는 효자 양학선에게 그의 어머니는 "너구리(라면)나 끓여줄까"라고 답했다. 올림픽을 한풀이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한마디였다.

사실 한국의 올림픽은 눈물 코드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시작부터 그랬다. 고(故) 손기정 옹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달고 월계관을 쓴 뒤 그가 했던 말은 짧지만 여전히 울림이 크다. "웬일인지 오늘은 울고만 싶소".

1948년 런던올림픽 때도 그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한국의 올림픽 참가 승인을 받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던 도중 전경무 올림픽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한국 선수단 경비 마련을 위해 복권이 발매될 때, 그의 얼굴이 복권에 있었다. 안타까운 그의 사연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국인들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의 도마 기술은 흠잡을 데 없었다. "다음 올림픽에 대비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믿음직한 말까지 했다. 그런데 한국의 체조는 유달리 도마에 강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에서 유옥렬, 여홍철은 모두 도마 종목에서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왜 그럴까?

조성동 체조 대표팀 감독은 "다른 (체조) 종목에 비해 단일 기술로 펼쳐지는 도마가 심판들의 판정 영향이 가장 덜 미치는 종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평행봉에 출전해 오심으로 금메달을 놓친 양태영이 겪었던 불상사가 도마에서는 비교적 나타날 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한국 체조가 최대한 빨리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도마를 전략종목으로 택했다.

▲ 지난 6일 런던올림픽 남자 체조 도마 종목에 출전한 양학선. ⓒAP=연합뉴스

아직 한국 축구의 런던올림픽은 끝나지 않았다

사상 처음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한국 축구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특히 축구종가 영국을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3·4위전에서 숙적 일본까지 꺾은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은 국민영웅이 됐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최대 장점은 자유로움에 있었다. 물론 한국 선수들은 팀을 위해 철저히 희생했다. 특히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는 단순히 감독의 지시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 자발적이었다. 병역 면제의 달콤한 혜택만으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그들이 똘똘 뭉칠 수 있는 근본적 이유였다. 동료를 위해 뛰는 그들은 어느새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여기에는 최대한 선수들의 자유를 옥죄지 않으려는 홍명보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반영돼 있었다.

▲ 지난 10일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3·4위 전에서 라이벌 일본을 꺾은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는 홍명보 감독.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전에서 승리한 뒤, 박종우는 관중이 건네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운동장을 질주했다. 올림픽에서 '정치적 세리머니'를 금지하고 있는 IOC는 박종우에 대한 동메달 수여를 보류했다. 승리에 도취된 순간 일어난 우발적 행동이었다. 이제 공은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박종우에 대한 징계는 일차적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축구협회의 대응이 중요한 상황이다.

끈끈한 팀 정신으로 동메달을 따낸 홍명보 호의 런던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순간의 해프닝 때문에 열심히 뛴 박종우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에게 메달 박탈의 중징계가 내려진다면 이미 신아람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한국의 스포츠 외교력은 비난의 화살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정치적 세리머니를 했다는 이유로 메달을 박탈당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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