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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해방구'에서 美 전초기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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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해방구'에서 美 전초기지까지

[정욱식의 '오, 평화'] 다시 제주 해군기지의 의미를 묻는다 <上>

한반도 최남단인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 강행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얼마 전까지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핫 이슈'였다. 약 5년에 걸친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 도민들의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저항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지킴이'를 자처했고, 연대의 함성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도 울려 퍼졌다.

그러자 작년 여름부터 보수 언론과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색깔론'을 펴기 시작했다. "종북·좌파의 해방구", "김정일의 꼭두각시"라는 험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공안대책회의까지 열어 범정부적 대응에 나섰고, 그 결과는 '범죄없는 마을'을 '범죄자의 마을'로 전락시킨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구속되고 벌금을 맞으면서 전과자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강정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지만, 육지의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4.11 총선을 앞두고 야권은 문제 해결을 다짐했지만, 새누리당의 '말 바꾸기' 프레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더구나 총선 이후에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제주 해군기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좌클릭'을 한 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득세했다.

통합진보당은 부실·부정선거 파문에 휩싸여 총선 이후 3개월 동안 사실상 '식물 정당'으로 전락했었다. 이 사이에 제주 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차원의 추동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은 '제주도를 하와이로 만들자'는 황당한 발언까지 하고 있다.

신발끈 동여매는 강정마을

최근의 상황 전개도 실망스럽다. 대법원은 7월 5일 제주 해군기지에 관한 두 가지 사건, 즉 국방·군사시설사업실시계획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과 절대보전지역 변경처분 무효확인소송에 대해 원고인 강정마을 주민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말았다.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졌고, 절대보전지역 해제도 날치기로 처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국방부와 시공업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앞선 6월 29일에 이명박 정부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해 민간 선박의 입출항 허가권을 관할 부대장이 행사토록 했다. 이는 '민군복합 관항미항'이라는 이름하에 건설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가 군사기지임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어렵게 성사된 '끝장토론'도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해온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강정의 아픔과 꿈을 제주도 전역은 물론이고 육지와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1만명 참가를 목표로 '강정평화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폭염 속에 내딛게 될 이들의 고행의 발걸음이 희망의 행진이 되게 하는 몫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이 행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강정마을 홈페이지(http://gangjeong.com)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소수의 울분과 고통에 대한 연대 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기어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면, 대한민국 전체에게 큰 불행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동아시아에서 전개되어온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중국 사이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이명박 정부가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에 은밀하고도 깊숙이 편입되어온 것이 확인된 만큼,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자해적 비수가 될 공산이 더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 해군기지사업의 실상과 강정마을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생명평화 바람개비 자전거 국토순례단'이 지난 4일 오후 경기 수원 화성행궁 앞을 지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과 이에 편입되고 있는 한국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한미 및 한중 관계, 그리고 미중관계 관계의 맥락에서 그 위험성을 지적하면 '왜 한국군 기지를 자꾸 미국 및 중국과 연결시키냐'는 반론을 많이 듣게 된다. 제주 해군기지가 한국군 기지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그 하위법인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등에 따라 미국이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냉엄한 현실이다.

SOFA에는 미국이 "적절한 통고"를 하면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제주 해군기지의 사용 여부는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미중 패권 경쟁의 맥락에서 반드시 그 득과 실을 짚어봐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간의 전쟁을 치르고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해 군비 삭감이 불가피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선언했다. 이는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커다란 마찰음을 내면서 '아시아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낳고 있다.

실제로 중국 봉쇄를 겨냥한 미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우선 군비삭감 계획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군사력을 늘리고 있다. 2015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건조 중인 최신예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USS Ford)'를 추가로 배치해 항공모함을 5척에서 6척으로 늘리는 등, 현재 52%인 아태 지역의 해군력을 2020년까지 6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비증강의 핵심적인 목표는 중국의 거부 전략(denial strategy)을 무력화해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를 공고히 하려는 데에 있다.

둘째는 한국-미국-일본, 미국-일본-호주, 미국-일본-인도 등 세 가지의 3자 동맹을 구축해 중국에 대한 포위·봉쇄망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을 기축으로 삼아 동쪽-서쪽-남쪽에서 대중 포위망을 좁히려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이들 3자 관계 가운데 한미일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군사협정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는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 복원 및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미국은 2010년부터 "남중국해에서 항해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은 미국의 국익"이라며 이 지역에서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의 영유권 분쟁에 적극 개입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군사 지원, 합동 군사 훈련 실시, 추가적인 기지 및 기항지 확보 등의 방식을 통해 군사협력을 크게 제고하고 있고,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깊숙이 편입되면서 미중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한 지역동맹으로 재편되고 한미일 3각 동맹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한국이 편입되고 있는 데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특히 미중간의 갈등이 2015~2020년 사이에 절정에 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시기에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평택 미군기지는 중국의 심장부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 기지가 될 터이고, 제주 해군기지 역시 미국이 기항지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의 위험성

그렇다면 중국 봉쇄를 겨냥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한국이 깊숙이 편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는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태평양 세력"을 자임하면서 아시아로의 귀환을 천명한 미국은 동아시아에 더 많은 기항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둘째, 해군력의 60%를 아태 지역으로 집중하겠다는 계획은 그만큼 미군 함정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이는 추가적인 기지와 기항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미국은 한국-오키나와(沖縄)를 포함한 일본-괌을 단일 전장권으로 칭하면서 한국이 이들 지역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요격에 기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MB 정부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 인근 수역은 오키나와나 괌으로 날라가는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다. 넷째, 미국은 해양안보와 통항의 자유 확보를 동아시아 해양 전략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중국과 대결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제주도는 남중국해-대만 해협-동중국해-서해를 잇는 미-중 간 갈등의 바다에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된다.

만약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중국 봉쇄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하게 되면, 한중 관계는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그리고 통일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할 국가라는 점에서 한중관계의 파탄은 대한민국 국익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 국익을 위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이유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한국의 생존 전략으로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협력하는 연미화중(聯美和中)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미중 관계에서 균형을 취하자는 취지일 게다. 그러나 한국이 자기중심을 세워 미중 양국에게 우리의 발언권을 높이지 못하면 '양다리 걸치기'로 전락해 가랑이가 찢어질 우려도 있다. 한국의 자기중심성과 발언권 강화는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에 있다.

동시에 미중 패권 경쟁에 한국이 휘말릴 수 있는 씨앗을 애초부터 키우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 때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 및 이와 연동된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는 평택 기지와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다. 유사성은 그것이 건설되면 미중 패권 경쟁에 한국이 휘말릴 우려를 키운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요구와 압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주권적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백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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