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MD,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2>: 일본의 경거망동 막은 DJ, 경거망동 부추긴 MB
☞>MB와 MD,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3>: MB 5년, 한·미·일 3각 동맹은 어떻게 이뤄져왔나?
앞선 세 편의 글을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와 사실상의 '한미일 3각동맹'에 어떻게 편입되어왔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미국 MD에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거나 '한일 군사협정은 한미일 3각동맹과는 무관하다'는 이명박 정부의 해명이 얼마나 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임기 초부터 '쥐도 새도 모르게' 이를 추진해온 이명박 정부는 급기야 26일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기습 강행 처리했다. 그리고 군수지원협정 체결까지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일 군사협정은 MD를 매개로 한미일 3각동맹으로 나아가는데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 정세의 중대 현안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국민적 논의나 국회 동의도 거치지 않고 있다. MB 정부의 민주주의 결핍증을 거듭 확인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위협의 커졌고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손을 잡고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북한의 미사일을 막고자 MD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반론도 있다. 북한의 미래가 불확실한 반면에, 한국 혼자의 힘으로는 통일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미국과 일본의 힘을 빌리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세의 힘을 등에 업고 무력 흡수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62년 전 김일성의 재앙적인 선택과 너무나도 닮은꼴이다. MD는 '믿을 수 없는 방패'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고 동북아 신냉전을 초래할 '피스 킬러'(peace killer)가 될 공산이 대단히 크다. 한미일 3각동맹을 통해 부상하는 중국에 맞선다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전략적 패착이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씩 따져보자.
MB의 흡수통일론이 남긴 후유증
먼저 MB 정부 대외정책에 똬리를 틀고 있는 흡수통일론과 62년 전 공산 진영의 재앙적인 선택을 비교해보자. 둘 사이의 유사점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맥락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졸저 <핵의 세계사>에서 한국전쟁을 '예방 전쟁'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핵심적인 요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스탈린은 미국 주도하에 일본-한국-대만을 잇는 동아시아 반공 블록이 구축될 경우 전쟁은 시간 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선제 남침을 통해 미래의 큰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소련이 주도할 3차 세계대전의 전주곡으로 간주하고, 한국전쟁 개입을 3차 대전의 예방 전쟁으로 간주했다."(<핵의 세계사>, 106-107쪽)
그런데 당시 북한-중국-소련은 '일본위협론'을 공유하고 있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일본의 조선 침탈과 제국주의 전쟁으로 이어진 19~20세기 전반기에 대한 공산 진영의 역사 인식은 일본이 재무장하기 전에 아시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전략적 공유를 낳았다. 특히 미군이 일본, 한국, 대만 등에 주둔하고 미일동맹의 맹아가 싹트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마저 머지않아 재무장을 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판단은 북한-중국-소련의 공산 동맹의 결속을 야기했고, 소련과 중국이 북한에게 대규모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는 김일성-마오쩌둥-스탈린이 한반도 공산화를 겨냥해 한국전쟁을 개시한 인식론적·물리적 토대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도와는 상반되게 나타났다. 미국 역시 공산권의 남침을 3차 세계 대전의 전주곡으로 간주하고 이를 예방한다는 목표 하에 신속한 개입을 선택했고,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 구축에도 박차를 가했다.
MB 정부의 흡수통일론도 비슷한 맥락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주도한 네오콘 중에는 중국 봉쇄를 위해서는 북한을 무너뜨려 한미동맹 주도의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인사들이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가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위협론'을 중국 봉쇄를 위한 한미일 3각동맹 추진의 호기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인식이다. 62년 전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3차 세계 대전의 전주곡으로 간주했듯이, 미국 내에서 유행해온 '북한정권교체론'이나 MB 정부의 '흡수통일론'도 결국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인식이 대단히 강하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핵과 로켓 문제에 불구하고 북한의 불안정을 관리하기 위해 예방 외교와 지원에 나서고 있고, 만약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해 한-미, 혹은 한미일이 무력 흡수통일을 시도할 경우에는 예방 전쟁도 불사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물론 MB 정부 임기가 막바지이고 북한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어, 위와 같은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당분간 거의 없다. 그러나 MB 정부 흡수통일론의 후유증은 대단히 크다. 남북관계 파탄뿐만 아니라 동북아 신냉전 및 한중간의 전략적 불신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불호를 떠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보다 전향적인 결단을 내리게 하거나 북한 붕괴시 외교적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MD와 한미일 3각동맹에 편입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런 방향으로 갈수록 중국은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지키고자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더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한미해상합동훈련이 서해에서 열린 24일 미군의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에서 슈퍼호닛(F/A-18E/F)이 이착륙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MD가 국익에 반하는 이유
다음으로 MD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MD는 그 본거지인 미국에서 군산복합체에게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납세자에게는 '돈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사업 규모에 따라 비용은 달라지겠지만, 본격적으로 MD를 추진할 경우 수십조원대의 예산 낭비가 불가피해진다.
한국이 독일로부터 구매한 48기의 패트리어트 PAC-2 미사일을 PAC-3로 업그레이드 할 경우에 드는 추가 비용은 2조원 정도이고, 3척의 이지스함에 스탠다드 미사일-3(SM-3)를 장착하는 비용도 2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여기에 MD 체제의 눈과 귀의 역할을 수행하는 정보 자산과 뇌의 역할을 하는 작전통제소 구비 비용에도 수천억원대의 예산이 필요하다. 아울러 무기체계의 수명을 20년 정도로 잡을 경우 운영유지비는 구매가의 3∼4배 정도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본적인 MD 비용으로 20조원 안팎은 족히 들어간다.
이처럼 비용은 엄청난 반면에 그 효과는 극히 불확실한 실정이다. 패트리어트 시스템의 경우 1990-91년 1차 걸프전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그 성능이 입증된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는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보호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방패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1차 걸프전 당시 PAC-2의 스커드 미사일 요격율은 제로에 가까웠고,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당시 요격할 스커드는 없었다. 오히려 미국과 영국 전투기 1기씩을 격추해 '아군 잡는 미사일'이라는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요격 실험 성적도 저조하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시험에서 PAC-2의 미사일 요격율은 1/3으로 나타났다. 또한 요격율을 높이고 위해 근접 폭발 방식이 아닌 '맞춰서 요격하기'(hit-to-kill) 방식을 채택한 PAC-3는 모두 13차례의 탄도미사일 요격 실험에서 6차례만 성공했다. 공차는 방향을 알려주고 페널티킥을 하는데도 방어율이 이 정도라면, 미사일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날라올 지 알 수 없는 실전에서의 요격율은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패트리어트의 주된 요격 대상으로 거론되어온 스커드 미사일은 지상으로 떨어질 때, 회전하면서 상하좌우 변동폭이 커 최종단계에서 이를 요격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패트리어트는 또한 10∼30km의 낮은 고도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하층 방어' 시스템이자 요격 범위가 2-4km 정도로 대단히 좁은 '지점 방어' 시스템이다. 이는 일례로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경내나 바로 인근에 패트리어트를 배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패트리어트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를 방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1개 패트리어트 발사대에 장착되는 PAC-2는 4기, PAC-3는 16기인데, 수도권 전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수백~수천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도권 전역의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방예산 전체를 투입해도 모자란다.
패트리어트의 이와 같은 한계로 인해 일각에서 보완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지스함에 SM-3를 장착한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이다. 그러나 ABMD 역시 문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 국방부가 1999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해상미사일요격체제로는 해안 시설을 보호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나, 내륙의 시설이나 인구 밀집 지역을 방어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 ⓒ연합뉴스 |
MD의 자해적인 결과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격화시킬 것이라는 점에 있다. 미국은 MD의 유용성이 적의 탄도미사일 가치를 떨어뜨려 탄도미사일 개발 동기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MD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는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신형 미사일 개발·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동의 이란과 동북아의 북한 및 중국 역시 MD에 맞설 미사일 능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들 나라가 MD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 전력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방패까지 갖는다면 군사력 균형이 와해될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이 한국의 미국 주도 MD 편입을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한국이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부상이 걱정된다고 해서 MD 및 한미일 3각동맹을 통해 이에 대응하려하면, 그것은 혹을 떼려다가 혹 하나를 더 붙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대안은 '자제력을 갖춘 군사적 억제'와 '문제 해결 지향적인 능동적 외교'의 조합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억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북한에게 한미동맹의 보복 의지와 능력을 각인시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통한 북한의 굴복이나 무력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안보 딜레마의 심화만 가져올 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북한의 집착 못지않게 한미일이 외교다운 외교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의 상황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언행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추가 핵실험 계획이 없다'고 두 차례나 밝힌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이다. 그런데 한미일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북한의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한일 군사협정과 한미일 3각동맹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흔히 '도발-대화-보상-도발'로 이어지는 북한식 패턴이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북아 위기의 본질은 이러한 북한식 패턴 못지않게 북한위협론을 부풀려 군비증강과 동맹 강화의 빌미로 삼아온 한미일 강경파들의 패턴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둘 사이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야말로 대안의 출발점이자 문제 해결의 근원에 접근하는 길이다.
또 한 가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는 좋은 해법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정치 지도자들이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데에서 기인한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고, 오늘날에는 한미일 정부가 그러하다. 문제를 풀고자 하면 해법을 찾으려 하지만, 그걸 피하거나 이용하려고 하면 구실을 찾기 마련이다. 단호한 의지와 정교한 해법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들의 안목, 그것이 바로 대안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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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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