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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차 보좌관의 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서럽지 않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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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차 보좌관의 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서럽지 않은 나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 논쟁의 착시현상, 실제론 복지 후퇴하기도

19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17, 18대에 이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나는 지난 8년 간 줄곧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일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은 8번 바뀌었고, 대통령도 바뀌었다. 17대 국회는 열린우리당이 152석이었으나 18대 국회는 한나라당이 153석으로 제1당의 위치가 뒤집혔다. 19대 국회는 새누리당이 150석, 50%의 의석을 확보하여 여전히 제1당이지만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석도 늘었다.

보건복지위 보좌관 8년, 8명의 장관을 경험하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변화만큼 '복지'를 둘러싼 상황도 역동적이다. 17대와 18대의 가장 큰 차이는 '실질적 제도 도입' 여부다. 17대에는 기초노령연금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새롭게 도입되었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어 장애인 관련 정책이 일보 전진한바 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통과된 것도 이 때다.

18대는 기억에 뚜렷이 남을 만한 제도가 새롭게 도입된 것이 없다. 장애인연금제도가 시행되었지만 기존 장애수당과 큰 차이가 없으며 장애 등급 심사 평가 강화는 오히려 강력한 반발에 휩싸였다. '사회복지사 등의 지위 및 처우 향상을 위한 법률안', '장애인 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은 의미가 크지만 법 제정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도 클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반면 복지 예산에 대한 논쟁은 4년 내내 계속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복지예산이 최대라고 주장하였지만 실질적 복지예산 증가율은 제자리걸음이었으며 완만한 증가조차도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인상해야 하는 제도들로 의한 것이었다.

무상보육의 성과와 한계

그나마 피부에 와닿는 것은 '무상보육'이다. 선거 직전 전격적으로 보육료 전면 지원이 실시되었다. (연령에 따라 시행 시기에 차이가 있다. 만 5세와 영유아부터 우선 적용하고, 중간연령인 3~4세는 나중에 시행하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보육비 지원은 환영해 마지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무상보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이 민간에 맡겨져 있는 보육 공급구조의 특성 상 '기타 필요경비'라는 이름으로 거둬지는 특별활동비, 현장학습비 등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보육료 외에 내야 하는 비용이 연간 최고 344만 원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무상보육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기타 필요경비에 대한 통제와 함께 국공립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 추가비용 부담이 적어 보육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공립보육시설은 매우 부족하다. 2010년 3월말 기준, 국공립보육시설 1개소 당 평균 61명이 대기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경우 1개소 당 대기자가 109명, 경기지역은 96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공립어린이집 신축 예산은 2008년 99억 원(52개소)에서 2009년 75억 원(39개소), 2010년 19억 원(10개소)으로 매년 줄어들었다. 2011년, 2012년 예산도 2010년과 동일했다.

영아 무상보육이 실시되면서 지난 연말과 올해 초 두 달 사이 전국적으로 어린이집이 500여 곳이 새로 생겼다. 그 가운데 국공립 시설은 35곳뿐이고, 민간시설(가정과 민간어린이집)이 438개소로 국공립 수의 12배나 늘었다고 한다. 무상보육의 효과가 어디로 가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기초노령연금 인상 내팽개친 뻔뻔한 18대 국회

기초노령연금제도에 대한 18대 국회와 정부의 태도는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초노령연금법에서는 연금액을 2028년까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인상하도록 하고 있다. 재원 마련 방법과 시기 등에 대해 논의하도록 '2008년1월부터 국회 내에 연금제도개선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라고 같은 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만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는 2011년에야 설치되었고,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활동이 종료되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연금액 상향은커녕 대상자 축소 안을 제출하였다. 전체 노인의 70%까지 지급하고 있는 것을 '최저생계비의 140% 또는 150% 이하'로 변경하는 안이었다. 현재의 최저생계비가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경우 최저생계비의 140%를 기준으로 하면 2028년에는 전체 노인 인구의 56%만이 대상자가 된다. 18대 국회는 17대에 논의를 마친 내용조차 거꾸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참고로, 유력 대선주자까지 나서 기초노령연금을 늘리겠다고 했던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에는 기초노령연금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기초노령연금법은 연금액을 2028년까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인상하도록 규정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연금액 상향은커녕 대상자 축소 안을 제출했다. 사진은 쪽방촌 노인. ⓒ프레시안(최형락)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 이처럼 복지를 둘러싼 상황도 요동친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복지를 말하고 있으니 마치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전진하는 듯한 착시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거꾸로 후퇴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더 없이 뜨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방자치선거 시기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에서 국민들은 무상급식 실시에 손을 들어줬다. '보편적 복지'는 처음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말이 아니다. 복지국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국민들도 증가하고 있다. 국민들의 시선은 복지국가를 향해 있는데 정치권의 논쟁 지루하고, 제도와 예산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복지국가 논의, '주체' 문제로 나아가야

19대 국회에서는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실질화할 것인가. 그동안 복지국가 논쟁에서 빠져있던 핵심 중 하나는 '주체'의 문제, '누가 만들 것인가'의 문제였다. '내가 만들겠다'는 의식적 선언이 최초로 반영된 것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었다. "내가 건강보험료를 더 낼 테니 기업도, 정부도 더 내라. 이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그 다음 등장한 것이 '내가 만드는 복지 국가'다. 국민들이 복지국가에 대한 '관람자'에서 '행위자'로 나서자는 운동이다.

이런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상컨대,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점차 더욱 격렬해질 것이고, 그것은 복지국가에 가까워질수록 더한 반발에 휩싸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고소득자, 재벌기업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니 이들의 저항이 있을 것이고, 복지를 둘러싸고 기득권을 형성하고, 이윤을 얻고 있는 이들의 반발도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로 복지 논쟁의 발목을 붙잡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의 논쟁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19대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주체'와 함께 복지국가를 향해 실질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조직된 노동자의 힘, 자발적 시민의 힘에 근거할 때에 저항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19대 국회가 꼭 이루어야할 과제들

이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왜곡된 구조를 개선하는 의미도 동반한다. 적은 예산으로 복지 영역을 확장해온 결과 우리나라 복지서비스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에 기반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쉬지 않고 꼬박 일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부처님 심성'과 '강철 체력'을 요구한다. 이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서비스를 받을 사람과 서비스를 행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복지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고서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를 말할 수 없다. 장기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지역아동센터 교사 등 사회서비스 전 영역에 걸쳐 마찬가지다.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 조건 개선에 집중해야 하는 게 19대 국회의 첫 번째 과제다.

다음으로 19대 국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영리화 저지'다. 보수 진영은 '한번 도입된 복지제도는 되돌리기 어렵다'며 복지제도 도입에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그 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한 번 추진한 '영리화'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자본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FTA에 의하여 무를 수 없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나면 의료영역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예방중심 전환도, 공공성 강화 주장도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복지국가를 말하는 모든 세력이 영리화 저지에 필사적으로 나서야 한다.

보편적 복지 강화를 위한 제도 도입도 멈추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 기초노령연금 확대, 아동수당 도입은 특히 시급한 과제다. 기초노령연금을 19대 국회 임기 내 현재 연금지급액을 두 배 인상하여 20만 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수급대상도 현행 소득하위 70%에서 80%로 확대해야 한다.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국민연금의 혜택이 적은 어르신들의 노후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오래된 약속이다.

아동수당은 세계 80여 개 이상의 나라가 지급하는 대표적인 아동복지제도다. 우리나라 아동복지 예산은 절대액 자체가 부족하다. 2012년 예산안에 의하면 복지부 전체 예산에서 아동복지 예산은 0.56%에 불과하다. GDP 대비 아동복지지출 비율도 0.46%에 불과하여 스웨덴 3.4%, 영국 3.2%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아동수당은 도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어느 정도 액수로 도입할 것인가를 검토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이제는 좀 바꾸자. 그만하면 오래 버텼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하여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대다수는 노인, 장애인 가구다. 하루하루 버티다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주목받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복지국가를 말 할 수 없다.

장애인 차별 금지의 상식은 대체 언제쯤 사회적 상식이 될 것인가. "보험 가입하고 싶다. 영화도 보고 싶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활동하고 싶다." 장애인들의 이 당연한 요구가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랜 기간 가로막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회 복지보좌관의 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서럽지 않은 나라"

올해는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 해이며 대선이 있는 해다. 사회적 요구가 제도화되기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나의 꿈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서럽지 않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 꿈이 실현되는 길은 성숙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 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구호를 넘어 그대와 내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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