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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김재연이 청년대표?…취업 걱정 해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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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준석, 김재연이 청년대표?…취업 걱정 해봤나"

[길 잃은 '노동정치', 좌표는?·③] 20대는 진보정당에 무엇을 바라나?

- 길 잃은 '노동정치', 좌표는?
☞<1>"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2>"쓰레기차에 실려간 영정사진들이 남긴 숙제"

기묘했다. 예비 노동자인 20대에게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표방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견해를 물어볼 계획이었다. 인터뷰 대상자 선정 기준은 하층이거나 적어도 서민이면서 정치성향은 진보적인 20대였다. 주제는 '20대에게 물어본 진보 정치의 재구성'이었다. 20대 두 명의 대답이 기묘했다.

지방대를 휴학하고 생계전선에 뛰어든 A(여·23) 씨와 명문대에 다니는 지방 출신 B(남·24) 씨를 지난 22일 만났다. 둘 다 자신이 최하층이거나(A 씨) 서민이면서(B 씨) 진보적이라고 답했다. A 씨는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B 씨는 자신을 (예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동자이든 노동자가 아니든 결론은 같았다. 둘은 모두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정리해고 앞둔 20대, 민주통합당에 투표

대형 팬시점에서 사내하청 파견 직원으로 일하는 A 씨는 전형적인 '88만 원 세대'다. 4월 11일, 생애 첫 총선 투표를 맞이한 그는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어느 정당을 찍을지 고민했다.

주변 동료들은 통합진보당을 찍으라고 했다. 마침 회사가 정리해고를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안 그러면 비정규직부터 목이 날아간다니까?" 아버지의 견해는 달랐다. 무조건 새누리당을 뽑으라고 했다. "야당놈들은 빨갱이라 안 돼." 그는 고민 끝에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모두 민주통합당을 찍었다.

▲ 커피 전문점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체험한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 ⓒ진보정치

"진보정당 못 믿는 이유요? 공약이 실현된 걸 본 적이 없으니까"

A 씨는 "정치성향을 굳이 꼽자면 중도인데 진보에 가깝다"고 했다. 보수는 "부자들 위주로 돌아가고, 서민을 생각한다면서 자기들끼리 노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내가 늘 노동자라고 생각한다"며 "소득 활동하는 사람은 화이트칼라건 블루칼라건 노동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월급날이 다가올 때,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일해야 할 때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이 든다"며 "내가 휴학생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린 지 오래고 그냥 일하는 사람이라고 본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이자 진보적인 20대이자 하층인 A 씨는 왜 '노동자 정당'을 외면했을까. 그는 "통합진보당은 노동자나 하층을 위한다고는 하는데 딱히 결실이 없다"고 답했다. 당내에서 최근 빚어진 '부정투표 논란'은 "진보정당이든 보수정당이든 서민은 안중에 없이 세력 다툼만 한다"는 생각을 굳히는 데 일조했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또 무슨 비리를 저질렀겠거니 싶었다"고 했다.

A 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질이 나아지거나 공약이 실현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치적인 관심과 욕구가 없지는 않지만, 딱히 정치가 자신의 삶을 크게 바꾸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반값 등록금이 솔직히 실현되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대학이 거의 다 사립이고 대학들이 등록금을 동결하면서도 생색내는데 반값 등록금 실현은 별로 안 될 것 같다"고 체념했다. 그래서 거대한 공약보다는 소소하지만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원했다.

"우리들(20대)이 좋아할 만한 공약을 '실현'시켜주면 통합진보당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벌 없이 취업이 잘 되게 한다거나 좋은 일자리를 만들거나. 그런데 그런 건 실현이 안 될 것 같고, 그냥 학자금 대출 이자라도 깎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20대를 위해 문화생활비라도 감면해주거나. 영화비 1000원 할인 같은 거요. 솔직히 저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도 돈 아까워서 못 해요. 제 소원이 있다면 알바는 최소한만 하면서 문화 생활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만 팍팍한 게 아니라 거의 모든 20대들이 다 팍팍해요. 어쩔 수 없죠."

"솔직히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데 돈이 될까요?"

그가 지적한 '학자금 이자 감면, 문화생활 지원' 등은 새누리당도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또한 반값 등록금 등으로 대변되는 보편적 복지와 양극화 해소 정책은 민주통합당도 이미 추진하고 있다. A 씨가 민주통합당을 찍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은 제1야당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일하는 A 씨에게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해 묻자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었잖아요. 어차피 서비스직이라서 쉬는 건 기대 안 했는데 회사에서 수당을 1.5배로 안 줬어요. 초과수당이랑 주 40시간이 의무인데, 한 달에 7일밖에 안 쉬어도 초과수당이 없어요.

그런데 내가 다니는 학교는 지방이라서 친구들이 알바를 해도 최저임금을 못 받아요. PC방이나 편의점 알바 하는 친구들 보면 작년에 가장 많이 주는 데가 시급 4000원, 가장 조금 주는 데가 3000원이었어요. 그나마 여긴 서울이라 최저임금은 주니까….

우리는 학교에 다녀도 일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계속 기대수명이 늘어나잖아요. 죽기 전까지는 배워야 하고. 내가 벌어서 내 앞가림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어요. 지금 제 소원이 있다면, 한 달에 7번 쉬는 거 말고 일주일에 3~4일만 일하고 학교 다니고 싶어요. 3~4일만 일하면 돈이 안 돼서 그렇게 못하지만."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그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솔직히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데 돈이 될까요?"

팍팍한 A 씨의 삶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거의 없는 듯 했다.

"통합진보당 사태 안타깝지만…"

통합진보당이 "비리를 저지르고 싸워서 싫어졌다"던 A 씨와는 달리,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녹색당을 지지하는 대학생 B씨는 통합진보당에 애착을 가졌다. 한국 사회에 '대중적인 진보정당'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게다. 그는 통합진보당에서 빚어진 구당권파와 나머지 세력 간의 갈등을 두고 "안타깝다"고 했다.

영남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그는 지난 4.11 총선에서 견제 투표로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비례대표는 녹색당을 찍었다. 딱히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치 성향은 진보이지만 부드럽고 편한 것이 좋다고 했다. "진보신당과 녹색당이 같은 내용을 얘기해도, 감수성에 차이가 있거든요."

그가 통합진보당에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러한 '내부 문화'에 있다. 그는 "전반적으로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을 동원의 대상이자 객체로서 대하는 것 같다"며 "80년대에는 동원의 논리가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개인이 매몰된 문화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B 씨는 "지금은 100명을 끌어다 모으기보다는 5명, 10명의 소수 모임이 많아져야 하는데, 거대한 적과 싸우다 보니 통합진보당에 집단주의 패권이 생긴 것 같다"며 "통합진보당은 거대 담론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다보니 낭만적이고 추상된 구호에 머무를 뿐, 실질적으로 서민의 삶을 개선시키는 디테일에서는 약했다"고 혹평했다.

청년비례대표, 진짜 '청년' 대변하나?

20대로서의 그가 통합진보당에 바라는 방향을 물어봤다. B 씨는 "최근 기존 정당들이 20대를 많이 챙기려 했다"면서 "장애인, 노인, 비서울 지역주민 등 소외받는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있는데 20대만 무턱대고 챙겨달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운을 뗐다.

다만 기왕 20대의 표심을 잡고 싶다면 20대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제대로 영입하라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민주통합당은 20대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슈퍼스타 K'식의 경선 방안을 도입했다. 새누리당은 하버드대학 출신인 이준석(27) 씨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했다. 김재연(32)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당선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이다. 이들 모두 보편적인 청년 대표자로서의 상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서울 중심적이에요. 20대 젊은 스타들은 다 서울에서, 광화문에서 발언합니다. 명문대 엘리트고요. 소위 말해 사회적 기준을 안 따르고 운동해도 '밥벌이' 할 수 있잖아요. 20대 활동가를 비례대표로 뽑고 싶다면 차라리 비수도권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난한 20대를 비례대표로 영입했으면 좋겠어요."

"보수적인 20대는 적지만 자기 삶을 정치로 못 풀어낸다"

주변의 20대 친구들은 정치에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MB 정부 이후로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20대가 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로 4.11 총선에서 20대 투표율(45%)은 전 세대에서 투표율이 전반적으로 낮았던 2008년 총선은 물론, 2010년 지방선거와 비교해도 3.9%포인트 올랐다. 특히 서울의 20대 투표율은 64.1%로 전국 평균 45%보다 19.1%포인트나 더 높았다.

B 씨는 "한국 대학생들이 이념적으로는 보수가 적다"면서도 "다만 행태적 보수가 많다"고 덧붙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월 세대별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2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22%,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지지율은 43.9%였다. 표면적으로는 진보가 보수보다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행태적 보수가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묻자 B 씨는 "주변 친구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표현할 줄 모른다"고 했다.

"학생들이 정치를 일상화할 줄 몰라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머리로는 안철수니 문재인이니 자기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대선 공약은 알아도 자기 지역 구의원, 시의원, 학생회 후보는 몰라요. 자기 삶을 정치로 풀어낼 줄 모르는 거죠."

ⓒ프레시안(김봉규)

질문을 바꿔 통합진보당을 싫어하는 20대가 있는 이유를 물었다. B 씨는 "우선 운동권에 대해 터부시된 교육을 받아서"라고 했다. 한국 사회의 강고한 이데올로기의 벽에 20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20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시민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며 "경제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해 부모가 준 돈으로 대학에 다니는데 무슨 주체성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 문제나 과거의 구시대적인 운동방식 때문에 오는 진보진영 내부의 한계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첫 번째 조건을 얘기하지 않고 두 번째 이유를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사회가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으니까"

비슷한 맥락에서 B 씨는 자신이 '예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동권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노동자라고 말하기도 전에 "색칠 당한다"는 것이다. 20대에게 취업이란 "그냥 밟고 올라가야 할 과정"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20대 노동자'라고 부르는 A 씨의 생각은 어떨까. 그도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노동자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 같다"며 "뭔가 소외를 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정당을 표방하는 통합진보당에 대해 바라는 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회가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으니까, 솔직히 열심히 배워서 취직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저도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도 비정규직이거든요."

진보정당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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