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P5+1'로 불리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및 독일은 5월 23~24일 접점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6월 18~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회담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바그다드 협상을 앞두고 이란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비밀 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 합의 타결이 임박해지면서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도 높였다. 이와 관련해 이란을 방문한 유키야 아마노(天野之) IAEA 사무총장은 약간의 이견은 남아 있지만 "곧 사찰 협정에 사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협상 대표를 맡고 있는 사에드 잘릴리 역시 IAEA와의 회담은 "아주 좋았다"고 평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이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이란-IAEA 사찰 합의 타결 움직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도 "이란인들은 회담에 진전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기술적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란의 의도는 국제적 압력을 무력화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우라늄 농축 제한 VS 제재 완화
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최대 쟁점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제한과 서방의 대이란 제재 완화였다. 24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P5+1이 제기하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20% 이상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미 20% 이상으로 농축된 우라늄을 이란 밖으로 넘기라는 것이며, 셋째는 쿰 인근 산악에 건설 중인 우라늄 농축 공장을 폐쇄하라는 것이다.
이란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면 항공기 부품 수입 재개 허용 등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내놓고 있다. 또한 이란의 이미 농축한 20%의 우라늄 반출에 동의·이행한다면, 의료용 농축 우라늄을 대신 제공하겠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란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석유 수출 금수 조치 해제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이란의 제안은 훨씬 포괄적이었다. 협상 직전에 발표된 5개항의 포괄적 제안에는 핵과 제재 문제 이외에도 시리아 사태, 마약과의 전쟁 및 소말리아 해적 퇴치 등도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이란 핵문제 이외의 문제는 이번 회담의 의제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핵심적인 현안은 우라늄 농축 수준이다. IAEA는 20%를 기준으로 저농축과 고농축을 나누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인 이란은 이를 근거로 20%까지 우라늄을 농축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핵무기는 이슬람에서 금기시 되는 '하람'(haram)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핵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의 농축 우라늄의 용도도 핵무기 제조용이 아니라 의료용이라는 입장도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 등 서방국들은 이란이 여러 차례에 걸쳐 NPT를 위반한 전력이 있고,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을 촉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근거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금지하거나 최대한 제한하려고 한다. 특히 20%의 농축 우라늄은 빠른 시간 내에 90% 이상의 무기급 우라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 미만'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
▲ 2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호시야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오른쪽 두번째)과 캐서린 애슈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나란히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
미국 대선, 이란 핵 협상 발목잡나?
이제 관심의 초점은 6월 18~19일 모스크바 회의로 모아지게 됐다. 7월 1일부터 미국과 유럽의 한층 강화된 대이란 경제제재가 시작되고 미국의 대선전도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모스크바 회의 결과는 향후 세계 평화와 경제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양측 모두 바그다드 회의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P5+1 협상단 대표인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중대한 이견이 남아 있지만, 약간의 공동 기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대표 잘릴리 역시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번 회담은 긍정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복안은 7월 1일부터 예정된 유럽연합의 이란 원유 금수 조치를 모스크바 회담에서 협상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고위 관료가 25일자 <뉴욕타임즈>를 통해 "이란이 아직 최대한의 압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유럽의 경제제재에 기대감을 나타낸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기실 이란 핵 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대선을 앞둔 미국 내부 정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약간의 유연성을 보일 기미만 보여도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돌직구'를 던지면서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기 전까지 경제제재 해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친이스라엘 로비 집단도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 미국의 중동 전문가인 아론 밀러의 발언은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는 25일자 <뉴욕타임즈>를 통해 "(바그다드 회담은) 이란의 취약성 및 제재 해제의 필요성과 서방 세계의 전쟁 공포로 인해 성사된 관리 연습(management exercise)"이라며 "서방은 제재와 관련해 충분히 양보할 수 없고, 이란은 핵문제에 대한 충분히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결론적으로 바그다드 회담에서 찾았다는 희미한 희망의 씨앗을 모스크바에서 꽃 피우기 위해서는 20% 이상의 우라늄 농축 중단과 경제제재의 실질적인 완화 사이의 교환 관계를 찾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미국에게 이러한 유연성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미국이 제재 문제에 대해 경직된 태도를 고수할수록 이란 역시 유연성을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관건은 유럽연합과 중국·러시아, 그리고 이란 핵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온 터키와 브라질 등이 어떤 중재안을 내놓을지에 있다. 모스크바 회담이 세계 평화와 경제의 '지옥의 문'을 여는 결과를 초래할지, 아니면 그 문을 굳게 닫아거는 성과를 가져올지, 이것도 아니면 회담의 모멘텀을 살리는 최소한의 성과라도 도출할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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