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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고인에게 건넨 빵과 향불, 사람까지 쓰레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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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고인에게 건넨 빵과 향불, 사람까지 쓰레기처럼…

[현장편지] 쌍용차 분향소의 긴 하루…함께 싸워줄 국회의원은 어디에

5월 24일 아침이었습니다. 지방에 다녀오느라 이틀째 들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발걸음을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로 이끌었습니다. 지난 주말 범국민대회 때 천막 두 동이 새로 들어오고, 평택에 있던 쌍용차 조합원들도 상경을 해서 분향소가 외롭지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경찰에서 분향소를 철거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오는 28일이 석가탄신일인데, 부처님 오신 날은 넘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거리행진에서 사용했던 22개의 관만 치우면 천막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얘기도 들려 약간은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9시 25분, 조합원들이 천막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분향소 앞에 가방을 내려놓고 신문을 펼쳐드는 순간,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경찰들이 분향소에 들이닥쳤습니다. 회의를 하던 조합원들이 뛰어나오고,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 경찰이 철수하고 난 후의 쌍용차 분향소. ⓒ이창근 트위터 (@Nomadchang)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되던 날

중구청 직원 두 명이 나서더니 천막을 철거하겠다고 했습니다. 쌍용차지부 한 조합원이 계고장 제시를 요구하고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그들의 대답을 대신한 것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었습니다. "공무집행을 방해하지 마시오. 방해하면 전원 연행하겠습니다."

이미 각본은 잘 짜여 있었습니다. 소화기를 손에 든 경찰관 여럿이 분향소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조합원들이 항의하고,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이 무언가를 들어 자신의 몸에 붓자 곧바로 소화기가 난사되었습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소화기가 뿌려졌습니다. 그 사이 경찰들은 조합원들을 분향소 밖으로 끌어냈고, 경찰버스에 태웠습니다. 쌍용차지부 정비지회 문기주 지회장과 함께 경찰버스에 실렸습니다. 사진을 찍는 조합원도, 영상을 찍는 활동가도 강제로 끌려 나갔습니다.

대한문 분향소는 눈물도 피도 없는 무법천지로 변했습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한다는 노동자들의 호소와 절규와 울부짖음은 소화기의 자욱한 포연 속에 사라졌습니다.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트위터로 이 소식을 알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85호 크레인이었던 쌍차 대한문 분향소가 소화기를 뿌리며 난입한 경찰과 구청의 합동작전으로 30분 만에 초토화됐고, 나를 포함해 많은 조합원들이 연행됐다. 그러나 연대의 마음까지 철거할 수는 없다. 분향소는 다시 세워져야 한다."

경찰버스 유리창 너머로 치욕스런 장면이 보였습니다. 중구청의 쓰레기차가 분향소 앞으로 들어오더니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22명의 죽음을 아파하며 함께 눈물 흘렸던 수 천, 수 만 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건넨 소중한 물건들이 '쓰레기'로 던져지고 있었습니다.

전태열 열사의 동생 전태삼 선배가 매일 아침 가져와 향불 옆에 올려놓았던 소보루빵과 향불도 쓰레기차에 처박혔습니다.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님이 써주신 전태일 열사의 일기 액자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두 명의 여성노동자가 쓰레기차를 막으며 절규했지만 이내 쓰레기처럼 치워졌습니다.

분향객 수 천 명의 마음이 담긴 물건들이 쓰레기차로

그렇게 30분 만에 분향소는 싹쓸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간부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대한문 앞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기자들은 뒤늦게 여기저기서 흉측한 철거 현장에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경찰버스에 던져졌던 조합원들이 풀려나고, 경찰서로 끌려갔던 김정우 지부장이 돌아왔습니다. 소화기를 하얗게 뒤집어쓴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어느 노동자의 눈가엔 눈물이 매달렸습니다.

"23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쌍용차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싸워줄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비례대표 부정선거로 만신창이가 된 통합진보당, 당 대표 선거의 흥행에 들떠있는 민주통합당의 국회의원들은 멀리 있었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폐허가 된 분향소 자리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싸울 국회의원은 어디에?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천막 10동, 현수막 20개를 설치한다는 내용으로 한 달 동안 집회신고가 되어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로 집회 물품을 가로막았습니다.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참여한 기자회견이 끝나고 천막이 들어왔지만 수 백 명의 경찰에 의해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천막 조각이라도 지키기 위해 경찰에게 수도 없이 밟혀야 했습니다. 한 여학생은 얼굴이 찢겨져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고, 법적으로 해산된 어느 정당의 사무총장은 안경이 산산조각이 난 채 경찰에 목을 잡혀 끌려가다 여성조합원들에 의해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50일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지난 4월 5일 대한민국 모두가 야권연대와 여소야대에 빠져있을 때 22번째 참극을 확인한 쌍용차 노동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세우기 위해 열흘 밤낮으로 끔찍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영정 사진 하나를 모시기 위해 수도 없이 경찰에 끌려가고, 병원에 실려 갔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륭전자, 재능교육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맨 앞에서 싸웠고,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사회원로들과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면서 대한문 분향소는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85호 크레인이 되었습니다.

ⓒ이명옥 트위터(@akkassi)

연대의 마음을 50일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경찰은 대한문 분향소를 박살내 50일 전으로 되돌려놓았지만, 정리해고의 아픔과 상처를 나누려는 연대의 마음까지 과거로 되돌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분향소의 흔적을 쓰레기처럼 치웠지만, 더 이상의 참극을 막기 위해 쌍용차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공감의 마음을 치울 수는 없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들은 이들이 달려왔습니다. 대한문은 아침부터 밤까지 연대의 물결로 넘실거렸습니다. 경찰은 비닐 한 장, 천막 한 조각도 허용할 수 없다며 덕수궁 앞을 무법천지로 만들었지만, 연대의 마음은 마침내 작은 분향소 하나를 다시 세워냈습니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보낸 긴 하루였습니다. 지난 두 달간 계속되고 있는 절망의 정치로부터 가장 고통 받았던 이들은 바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노동과 투쟁의 현장에서 멀어진 그들만의 정치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절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문 앞으로 이어지는 연대의 발걸음에 싸워야 할 희망을 발견합니다.

오는 6월 16일은 행복한 연대를 위한 초여름 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지난 해 희망버스 탑승객들의 벌금 폭탄에 맞서고, 쌍용차 정리해고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거리행진과 밤샘 문화제가 열립니다. 연대의 장터인 바자회와 신나는 공연마당이 대한문 밤거리를 수놓을 것입니다.

절망의 정치로부터 상처받은 모든 이들이 정리해고의 상징, 또 하나의 85호 크레인인 대한문 앞에서 희망의 연대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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