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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게임' <디아블로3>, 한국 사회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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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게임' <디아블로3>, 한국 사회 뒤흔들다

"나도 게임마니아" 곳곳에서 커밍아웃…게임 보는 시선 바꿀까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 중인 이진동(34, 가명) 씨. 그에게 지난 15일 밤은 특별했다. 11년을 기다려 온 역할수행게임(RPG)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인 <디아블로3>가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 "게임을 다운로드 하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이 씨에게 게임은 운동과 함께 유이한 취미다.

이 정도면 '한국 사회를 뒤흔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블리자드사의 인기 콘텐츠인 역할수행게임(RPG) <디아블로3>가 출시 이틀 만에 온라인을 장악했다. 사람들을 줄을 서 한정판을 구매했고, 게임 캐릭터를 흉내낸 코스튬 플레이가 마니아의 축제로 열렸다. 가장 늦게 한정판이 발매된 제주도 이마트에서 일어난 사용자와 업소의 충돌은 기사화되기까지 했다.

17일 PC방 조사 기관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디아블로3>의 PC방 점유율은 26.09%를 기록해 2위 <리그 오브 레전드>(14.12%) 점유율의 두 배에 가까웠다. 갓 출시된 게임의 효과라는 점을 고려해도, 놀라운 기록이다.

<디아블로3> 동시접속자 수는 20여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디아블로3> 출시의 후폭풍으로 <리니지> 시리즈를 만드는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흔들릴 지경이다. 잦은 서버 접속 오류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 게임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무엇이 이 게임 추종자를 그토록 낳는 것일까.

▲게임 <디아블로3> 플레이 화면. ⓒ블리자드코리아

악마적 마력

<디아블로> 시리즈는 게이머가 주인공이 돼, 천사와의 대결에서 패해 지상으로 내려온 악마 '디아블로'와 그의 동료들을 처치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액션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RPG 게임에 신기원을 이룩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더해 게이머의 수집욕을 적극 활용한다. 고성능 아이템을 구하기 어렵게 해, 게이머들이 반복적으로 게임에 접속해 아이템 수집에 나서도록 유도한다. 아예 <디아블로3>는 게이머들 간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경매장 시스템을 만들어 수집욕을 더욱 자극한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현금 거래는 금지시켰다.

여기에 음침하고 기괴한 배경과 음악, 잔혹한 무술, 비현실적인 살육장면이 게이머를 더욱 열광시킨다. 블리자드가 선공개한 <디아블로3>의 최초 준비 화면을 보면, 악마가 주인공을 갈기 찢어 죽이는 장면도 도입될 예정이었었다(이 장면은 발매작에서는 삭제). 대중 취향의 게임이라 말하긴 어렵다.

실제 국내에서 이 게임은 19세 이상이 이용할 수 있는 성인용 게임이다. 초기 지속된 서버 오류 등으로 인해 해외 사이트에서는 이 게임에 짠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제한된 이용자 수를 가졌음에도 이토록 이 게임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의 상당부분은 전작의 대성공, 그리고 그에 따라 게이머들이 갖게 된 블리자드사에 대한 충성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 도입부에 소개한 이 씨는 이십대 시절 <디아블로2>의 열혈 마니아였다. 전역 후 남는 시간 대부분을 <디아블로2> 즐기기에 투자했던 그는 모든 게이머가 원하는 '꿈의 아이템' 상당수를 수집했고, 이로 인해 모든 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짜릿함을 경험했다. 당시의 추억이 <디아블로3>를 구입케 했다. 이 씨는 "<디아블로> 시리즈, 블리자드사에 대한 신뢰가 있다. <디아블로3>를 예전처럼 열광적으로 즐기진 않겠지만, 일단 신작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가 게임 <디아블로3>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한 인파로 가득차 있다. 한정판은 게임과 관련된 원화집, 개발과 관련된 얘기들을 담은 DVD, 게임 아이템 등을 포함하고 있다. ⓒ뉴시스

'커밍아웃'하는 게임 애호가들

"게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진 않느냐"는 질문에 이 씨는 "뭐가 문제냐"고 답했다. 한국인 상당수는 게임을 주요 취미로 즐기면서도 이를 당당히 말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언론에서 게임은 좋지 않은 취미로 묘사됐고, 해악만이 강조됐다.

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0 한·일 게임이용자 조사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53.9%) 사람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또 응답자의 가장 많은 28.3%가 여가수단으로 게임을 즐긴다고 답해 TV시청(22.1%), 영화관람(19.7%)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한국인 제1의 취미는 바로 게임이다.

흥미로운 건, 정작 한국인들은 자신의 취미를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진흥원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45.3%는 게임에 대해 '부정적이다'라고 답했다. 게임이 '긍정적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불과 23.8%에 그쳤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일본의 응답 비율이 56.7%, 43.3%로 비슷했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디아블로3>의 출시 현장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바로 한국인 대다수의 거리끼는 성향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왕십리역에서 실시됐던 <디아블로3> 한정판 판매 행렬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정판을 구입한 게이머는 온라인 게임웹진 <디아블로3 인벤>과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로 사회적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모두가 즐기는 문화니, 더욱 당당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도 "사는 게 재미없다. 힘든 건 아닌데, 특별히 성공을 위해 노력할 생각도 없고,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않는다"며 "게임만큼 건전하고 돈 안 드는 취미가 어디 있나. 너무 부정적으로 게임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많은 스타들이 <디아블로3>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밝힌 모습 역시 변화를 상징한다. 윤일상, 리쌍 등은 <디아블로3> 홍보에 나섰다. 비록 논란을 낳곤 있지만 한 인기 아이돌 멤버들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디아블로3>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마저 이 게임이 일으키는 열기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디아블로3>라는 인기 콘텐츠가 게임에 대한 시선 자체를 바꿀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디아블로3> 홍보에 나선 가수 리쌍, 작곡가 윤일상, 배우 이지아(좌로부터). ⓒ블리자드코리아

"게임은 사회의 거울"

소설가이자 게임마니아로도 유명한 이인화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특히 <디아블로3>와 같은 게임에 현대인이 열광하는 이유로 '전쟁'을 대리 경험하는데서 오는 쾌감을 꼽는다. 전쟁과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게임의 폭력성은 대리만족을 주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현대인은 게임을 좋아할 수밖에 없고, 이를 나쁜 눈으로만 이해하려는 건 부당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게임문화재단이 발간하는 월간지 <게임컬처>에 기고한 최근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실질적인 성과에 의해서 계측되고 평가받는다. 아무리 평화주의적인 사회활동도 그것이 성과를 목표로 삼는 순간, 그는 내면화된 전쟁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전략과 전술의 냉혹한 논리 아래 준비하고 싸우고 승패가 갈리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중략)… 현대인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무의미한 전쟁 상태를 자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전쟁 상태의 의도적인 묘사를 보면서 현실의 직접적인 힘을 극복하며 일상 생활의 짐이 빼앗아간 자기 자신의 결핍부분을 이해하는 것이다. 게임을 통해 현대인은 자신이 고립된 개인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외부에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필수불가결한 세계의 힘을 인식한다."


이 교수는 "게임은 사회의 거울이며, 사람들은 비현실을 마치 강렬한 현실인 양 몰입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적 리얼리즘의 인식을 경험한다"며 "(게임은) 문학과 영화의 리얼리즘보다도 더 사회적이고 전체적"이라고 강조했다.

<디아블로3>가 출시 이틀 만에 한국 사회에 일으킨 바람의 정수는, 어쩌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같은 삶을 사는 자신에 대한 위로 욕구를 당당하게 내보이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표면화됐다는 데서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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