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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도, 백수도 즐기는 이것…정말 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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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도, 백수도 즐기는 이것…정말 해로울까?"

[IT 일상다반사] '한국은 게임시대'-②규제 갈림길 선 게임산업

☞'한국은 게임시대'·①: 게임, 21세기 로큰롤인가 오타쿠 전유물인가

얼마 전 소설 <영원한 제국>의 작가로 잘 알려진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가 한 신문에 올린 기고가 화제로 떠올랐다. 중국 온라인게임 <열혈삼국>이 게이머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관련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보통의 온라인게임에서 게임 이용자의 분신인 '아바타'는 다른 이용자에 의해 치명상을 입어도 부활이 가능하다. 반면 <열혈삼국>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아바타가 피해를 입을 경우 복원이 불가능하다. 이용자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캐릭터가 완전한 죽음을 맞는다. 다른 어느 게임보다 극단인 '소멸'을 맛볼 수 있는 만큼, 유해성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올 만했다.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이 교수가 바로 <열혈삼국>의 심의위원으로 참여해 '15세 이용가' 등급을 매긴 장본인이었으며, 동료들까지 끌어들인 열혈 게이머였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원활한 게임운영을 위해 현금거래로 강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다수 구매할 정도로 이 게임에 몰두했다. 그런데 캐릭터를 판 상대방 연맹(길드)이 이후 이 교수의 연맹을 공격해 관련 캐릭터를 다시 빼앗아가버렸다. 분노한 이 교수는 인터넷 민원신청 사이트인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기까지 했다.

결국 이 교수의 기고는 게임세계에서 받은 패배감을 현실의 권력을 이용해 되갚으려는 행동으로 누리꾼들에게 인식됐다. 논란이 커지자 이 교수는 자신의 캐릭터를 모두 강탈당한 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이 사례는 누구나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할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게임 중독을 두고 방송이 그토록 강경한 논조의 비판기사를 내보내는 이유다.

통제 불가능한 몰입도

게임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대표적인 여가활동으로 자리잡았다. 영국이 자랑하는 대중음악인 폴 매카트니 경은 대표적 게임기획자 미야모토 시게루의 열혈 팬이다. 닌텐도의 대표작 <슈퍼 마리오> 시리즈는 지금까지 3억 장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블리자드의 다중접속수행역할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전 세계에 12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게임산업이 성장할수록 우려도 커진다. 극도로 강한 몰입도 때문이다. 아마도 게임은 세계 학부모들이 가장 증오하는 오락 산업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충격기로 고문을 가하는 황당한 치료법이 나왔는데도, 자녀의 중독치료를 신청한 부모가 줄을 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두고 '닌텐도 좀비'라는 극단적인 말을 쓰기도 했다.

갱단의 일원이 돼 자동차를 탈취하고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스토리를 담은 <GTA> 시리즈를 두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상원의원 시절 "사악하고 반공동체적인 게임의 판매를 영원히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공지능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과 대결을 벌이는 온라인게임의 중독성이 강력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미국의사협회(AMA)의 연례정책회의 보고서는 "미국 청소년의 90%가 게임을 하고 있고, 전체의 15%는 중독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MMORPG의 중독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대부분 문제는 온라인게임에서 나온다. 이제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끄는 엔씨소프트의 대표작 <리니지> 시리즈와 관련된 사고는 잊을만하면 뉴스를 장식한다.

때로 완성도 높은 게임은 온라인 기반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문화와 결합해 중독 현상을 퍼뜨린다. 스타 개발자 시드 마이어의 최근작 <문명5>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세계 각지 문명의 주인공이 돼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이 게임은, 아직 국내에 정식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문명하셨습니다('운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의 비유)"라는 신조어까지 낳을 정도로 화제를 낳고 있다.

이상우 게임평론가는 "게임 이용자는 물리적 조작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여가문화에 비해 몰입도가 높은 건 사실"이라며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리자드의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 장면. 하단에는 이용자가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창이 마련돼 있고, 화면 가운데는 사용자의 캐릭터가 자리하고 있다. 사용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갖고 가상의 세계를 누비며, 다른 이용자와 현실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되는 가운데 중독성이 강화된다. ⓒ프레시안

왜 중독되는가

사람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여가산업이고, 여가산업의 본질은 재미 추구다. 자연히 게임개발업체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재미를 최대한 지속시키는 게임, 곧 중독성 높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실제 게임에는 사용자의 관심을 유지시키기 위한 갖가지 장치가 마련돼 있다. 온라인게임 대부분이 이용자가 놀이에 지칠 때 즈음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다. 캐릭터의 레벨을 한 단계 높이는 시기 역시 사용자가 게임에 지겨움을 느낄 때로 설정해 최대한 긴 시간동안 게임을 붙잡게 만든다. 이에 더해 게임을 보다 원활하게 플레이 가능토록 하는 유료 아이템 시스템을 개발해 수익극대화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과 같은 MMORPG들은 사용자가 장시간 게임을 이용하거나 새로운 모험을 즐길 경우, 강력한 성능을 가진 전리품을 얻을 수 있도록 설정해뒀다.

그런데 이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는 많은 동료를 모으고, 적대관계에 놓인 엔피시(NPC, 사용자가 이용하지 못하는 인공지능 캐릭터로, 대부분 사용자의 캐릭터를 해치려는 존재다)를 공격하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게임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아이템을 착용해야 하며, 무엇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미 게임의 재미에 빠진 사용자는 기꺼이 개발사에 비용을 지불한다.

게임에 사람이 중독되는 다른 이유는 대리만족이다. 현실이 어떠하든 가상의 세계에서 이용자는 값비싼 자동차를 고속으로 몰 수 있고 상상속의 악마를 처치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거대한 성을 다스리며 세금을 징수하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도, 미개문명을 발전시켜 우주를 정복하는 꿈을 현실로 만들수도 있다. 이용자는 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게임에서 추구하게 된다. 현실에서 얻기 힘든 경험이 가상 세계에서 극대화되는 셈이다.

게임이 고달픈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통로로 활용될 여지가 많음을 뜻한다. 취업난이 심화되고 고용불안이 이어지면서 성인 게임중독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09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끈질긴 규제로 청소년 게임중독은 줄어들었으나, 성인의 중독이 오히려 늘어났다. MMORPG게임 이용자 김모 씨(33)는 "적어도 게임을 하는 동안은 내가 집단을 이끄는 리더다. 잠시라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서 계속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중독성 입증 안 돼

그런데 게임이 중독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게임의 해악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으나, 여전히 중독성은 논란이 되는 소재다.

AMA도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모든 아동이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게임 과다 몰입을 정신질환으로 포함시킬지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장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도 상반된 연구 결과가 나온다. 지난해 교육방송(EBS) <다큐 프라임 '아이의 사생활II'> 제작팀이 중앙대 용산병원 정신과 한덕현 교수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실험팀은 게임중독 판정을 받은 중학교 3학년 남학생 5명에게 2주 동안 하루 두 시간씩 게임 대신 농구를 시켰다.

실험 결과 아이들은 게임에 몰두했을 때보다 농구를 한 이후 간단한 산수 문제를 푸는데도 뇌를 훨씬 더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면 두뇌의 활동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 결과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정신의학과 크라머 교수 연구팀은 60~70대 노인 40명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는 게임 <라이즈 오브 네이션스>와 <룰링 더 월드>를 한 달간 실행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은 게임 이용을 통제했다. 이 게임들은 가상으로 문명을 다스리도록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사용자가 다양한 전략을 수립해 상대방을 무찔러야 한다.

실험 결과, 게임을 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기억력과 추리력, 인지능력 등이 크게 개선됐다. 몸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게임기 '닌텐도 위'는 노인의 치매 예방 기구로 일선 의사들도 추천하는 게임기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치매 예방을 위해 이 게임기를 이용해 화제가 될 정도다.

닌텐도 현상이 미국을 휩쓸 무렵, 미국 의료계는 게임이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닌텐도를 즐기는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치료에 따르는 고통을 절반가량만 느낀 것이다. 실제 상당수 전문가들은 TV가 아이에게 미치는 폭력성과 유해성이 게임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이상우 평론가는 "중독담론은 지금도 계속 연구되는 문제이지만 아직 정확한 의학적 결론이 내려지진 않았다"며 "기실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여가 수단은 일정 정도의 중독성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에도, 영화에도 지나치게 몰입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하루종일'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장시간 동안 몰입의 대상이 되는 오락은 아니다. 게임의 중독성에 여론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뉴시스

규제는 필요…"도피처 필요없는 사회 만들어야"

비록 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없으나, 게임이 다른 여가활동에 비해 높은 중독성을 가진 건 틀림없어 보인다. 일정 정도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게임중독을 막기 위한 대응책이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게임 과몰입 대책'은 크게 △게임이용시간 제한 △본인인증 강화 △게임이용 관리 서비스 도입 △아이템 현금 거래 규제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제도들은 주무부처가 어디냐를 놓고 문체부와 여성부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피로도 시스템'을 MMORPG에 도입해 장시간 게임 이용시 이용자가 스스로 게임이용시간을 조절하도록 유도했다. 피로도 시스템이란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게임 아이템을 획득하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캐릭터 레벨업 속도가 느려지도록 한 장치다.

특히 청소년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기 어렵도록 각종 감시서비스를 구축토록 했다. 부모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된 게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를 구축하고, 부모의 요청시 게임서비스업자가 청소년 자녀의 게임이용내역을 공개토록 강제했다. 적지 않은 청소년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게임을 즐기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아울러 일부 MMORPG는 밤 12시부터 새벽 6시 사이에 아예 청소년의 접속 자체를 차단하는 셧다운제를 도입키로 했다.

게임개발업체도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게임의 부작용이 지나치게 부각될 경우, 산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대문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규제 자체에 대해 아직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는 아니다"라면서도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강한 상황이니만큼 사회공헌의 일환으로라도 게임중독 대책을 업계에서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우 평론가는 "국내에서 특정 문화가 편향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짙다보니 게임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소비된다"며 "규제를 강화하는 입장과 산업을 키우자는 입장의 접점을 우리 사회가 슬기롭게 찾아가야 할 때"라고 조언다.

무엇보다 게임에 중독되는 이가 줄어들 수 있도록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알콜중독, 도박중독 등 중증 중독환자들 상당수가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도피처를 찾은 것에서보듯, 게임에 중독되는 이들 상당수도 사회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유다.

이 평론가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즐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게임을 건전하게 소비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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