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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푸틴 다큐, '검은 9월'은 왜 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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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푸틴 다큐, '검은 9월'은 왜 뺐을까?

러시아 반체제 인사 "친 푸틴 다큐"…논란 격화

공정한 보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달부터 선보인 4부작 다큐멘터리로 곤혹을 치루고 있다. 러시아에서 세 번째 대권을 노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서방의 관계를 다룬 이 다큐가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로부터 '친(親) 푸틴 방송'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러시아, 그리고 서방>이라는 제목의 이번 프로그램은 8개국에서 100명 이상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웰, 콘돌리자 라이스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 유명인사들도 등장했다. 러시아 측 인물로는 국방장관을 지낸 세르게이 이바노프와 그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등이 나왔다. 푸틴 자신도 제작 초기 출연을 검토했지만 몇 달 간의 협상 끝에 거부했다고 1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다큐는 첫 전파를 탔던 지난달 19일부터 논란을 낳았다. 방송에 출연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수석비서관이었던 조나단 파웰이 모스크바 공원에 영국 정보 당국이 바위로 위장한 스파이 장치를 설치해 놓았다는 의혹을 인정한 게 발단이 됐다.

조나단 파웰의 발언이 문제가 된 건 이러한 시인이 불러올 파장이다. 이른바 영국 정보 당국의 '스파이 바위'(spy rock) 의혹은 지난 2006년 푸틴 정부가 자국 내 야당 성향 NGO 단체 인사를 공격할 때 근거로 내세운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정부와 친정부 성향의 방송은 NGO들이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뱓는 것을 넘어 외국 정보 당국의 끄나풀로 활약하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이러한 의혹을 동원했다.

<가디언>은 이 다큐가 나가고 난 이 러시아의 친정부 언론인 아르카디 마몬토프가 파웰의 발언 내용을 전하며 자국 내 NGO 활동가들이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요원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전했다. NGO들은 이에 대해 정치적 반대파들을 흠집내려는 푸틴 진영의 중상모략이라고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 3번 째 대권을 노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AP=연합뉴스
이번 다큐가 3월 4일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당선 후보인 푸틴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러시아의 언론인 빅터 다비도프는 야당 성향 언론 <모스크바 타임스>에 지난 29일 기고한 칼럼에서 "이 다큐는 확실하게 많은 의문을 불러오고 있다"며 몇 가지 의혹을 제시했다.

다비도프는 우선 지난 1999년 '검은 9월'로 불렀던 일련의 폭탄테러 사건을 다큐가 다루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1999년 9월 4일부터 16일까지 모스크바, 로스트프, 다게스탄공화국 등 러시아에서 4건의 폭탄 테러가 터져 총 300여 명이 숨지고 2000명이 다쳤는데 러시아 당국은 이를 체첸 반군의 지령을 받은 이슬람 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2차 체첸 전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 '검은 9월' 사건에 푸틴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당시 러시아 지도자로 막 부각된 푸틴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정보 당국이 손을 썼다는 것이다. 이 논란은 현재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지만 <BBC>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그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이번 다큐에 돈을 댔다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러시아의 유명 블로거 안톤 노지크는 다큐 제작자들이 과거 러시아 정부가 대외 홍보를 위해 계약을 맺었던 미국의 컨설팅 업체 '케첨'(Ketchum)을 통해 제작비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다비도프는 그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영국 내에서도 러시아에서 온 반체제 인사들이 다큐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구 소련 시절 12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1976년 영국으로 망명했던 반체제 인사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는 다큐에 대해 "명백한 친푸틴적 방송"이라고 비판했다.

부코프스키는 지난달 25일 러시아의 야당 성향 라디오방송 <모스크바의 메아리> 홈페이지 블로그에서 "(이번 다큐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작전이라는데 아무런 의심이 없다"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이 다큐는 러시아 정부가 주장하는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고 있다"며 "푸틴이 자신의 선전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다큐를 만들라고 지시해도 이보다 더 잘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다큐를 제작한 프로듀서 노마 퍼시는 이번 다큐가 푸틴에 대한 국내적 논란보다는 러시아의 대외적 위상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췄다며 프로그램의 목적이 '친푸틴'이나 '반푸틴'여론을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러시아 정부와의 연루설에 대해, 컨설팅업체 케첨 출신의 인사를 제작에 참여시키긴 했지만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큐 감독을 맡은 폴 미셸도 "다큐가 방영된 후 트위터를 통해 들려오는 반응이 대부분 긍정적이었으며, 푸틴에 대한 불편한 사실들을 가린다는 불만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누구도 (다큐를 보고 푸틴을) 환상적인 남자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BBC>의 러시아어 방송 편집자 출신인 마샤 카프는 이번 다큐가 체첸에 대한 푸틴의 야만적인 정책을 다루는 방식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프는 <가디언>에 이번 다큐가 훌륭한 제작 기술에 비해 러시아의 최근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변형시켜서 푸틴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은 푸틴 자신에게도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니며 서방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을 정당화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말 러시아 하원 선거 부정 의혹 등으로 3선 가도에 악재가 생긴 푸틴은 자신이 올해 대선에서 결선투표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AFP>에 따르면 그는 1일 대선 감시단에 참여할 법조인과의 간담회에서 ""현행법에 따라 결선투표가 치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필경 지속적인 갈등과 정치적 불안으로 연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는 여당의 선거 조작 의혹이 반푸틴 시위로 번지면서 자신이 1차 투표에서 당선에 필요한 과반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돼 주목된다. 하지만 푸틴은 "결선투표에 대해 두려워할 것은 없다"며 "필요하다면 결선투표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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