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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에게 부탁한다"

[우석훈 칼럼] "이제는 '공감의 시대'"

'야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한동안 '라도' 혹은 김용철 변호사 표현대로라면 '전라디언'과 같은 말과 동의어였다. 경상도 혹은 TK와 같이, 국민들에게 부여받지 않은 권한을 사용하면서 경제 권력을 틀어잡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하던 시절, 야성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게 허용되었던 견제의 권한이라고 할 수 있다. 경상도가 아닌 지도자를 갖는 것, 그거라도 해보자는 게 우리의 꿈이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에 현대사 최대의 사건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겹쳐진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TK가 아닌 것, 그런 것들을 대변한 정당이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고향 친구, 고향 출신에게 투표하는 그런 나라였다. 계급투표, 그런 건 아마도 강남에나 있지, 못사는 동네 일수록 자기 동네 사람에게 투표하는, 그렇게 계급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어왔다. 박정희의 유산인지, 아니면 3김 시대의 후유증인지, 어쨌든 한국 정치에서 계급은 투표 행위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진정책은, 그런 한국적 특징 내에서만 의미 있는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주변에 전문관료가 너무 없었고, 경제관료는 정말 드물었다. 그래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들이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영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렇게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 김진표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처럼 결국 대표 자리에까지 간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김 원내대표 당선을 계기로, 민주당이 실제로는 얼마나 보수적인가, 그리고 국민들의 열망과는 동떨어져 있는가, 그런 것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다. 물론 진실은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남에 기대지 않은 정치인 그리고 금융가를 포함해서 경제계 내부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기존의 정치인이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역동성, 그건 정치라는 분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 아니겠는가? 경제에는, 그런 역동성이 없다.

가끔 사람들에게 경제를 표현하면서, 가장 급진적인 경제학자도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말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에서 바꿀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그렇다. 생산체계를 단기에 전환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문화나 서비스의 경제적 기반, 그런 것도 단기에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자율이나 환율 같은 변수를 무리하게 조정하면, 아무리 방향이 맞더라도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경제적 실책 중 가장 큰 것은, 그들의 이념적 성향이 '국가는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자유 방임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자리를 탐하느라고 엄청나게 경제에 개입했고, 결국 너무 많은 것을 단기에 바꿀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자, 지난 3년을 돌아보면서 사례 하나만 생각해보자. 대통령은 한전 민영화를 하겠다는 게 대선 전 기조였다. 그러나 민영화했는가? 당장 여당 쪽 사람들 자리 만들어주느라고 한전 사장 자리 한 번 챙기고 나더니, 민영화 얘기는 쏙 들어갔다. 노조나 시민들이 민영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그런 게 아니라, 권력을 탐하다보니, 자기네들이 무슨 주장을 했는지도 벌써 까먹은 사람들이다. 그리고는 영 어색하니 발전자회사 통합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감사나 사회이사 같은 데, 자기 쪽에 줄 선 사람들 챙겨줘야 하니까 결국 은근슬쩍 덮어두었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돈이 있는 자리를 탐한 건, 지난 두 번의 민주정부도 마찬가지고, 현 정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경제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정치권력으로 경제권력을 탐한 것, 즉 소탐대실 정부가 되었고, 지금은 밑바닥부터 붕괴하고 있는 것 아닌가?

▲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뉴시스
김진표 원내대표가 보수적이라느니, 친기업이라니, 그런 얘기를 지금 새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의원으로, 정치인으로 성공하기를 바라고, 다음 대선까지 성공한 원내대표가 되어서 부디 정권교체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성공한 민주당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존의 정치인들이, 특히 호남 기반의 '지사형' 정치인들이 절대 해결하지 못했던 일 세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이건 경제관료들이, 특히 호남과 상관없는 경제관료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첫 번째, 금융 민주화의 출발. 금리 문제, 환율 문제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이념적이었던 관치 금융, 이런 문제의 해악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물론 많은 문제들이 정권을 잡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외환은행 문제처럼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론스타에 팔아먹은 외환은행, 이 문제는 실제로는 지난 정부에서부터 넘어온 문제 아닌가? 많은 국민들은 국민주 방식의 외환은행 독자 생존을 지지한다. 꼭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지금 청와대가 생각하는 하나은행 매각과는 다른 방식의 해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 문제에 원내대표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시라. 그게 한국에서 모피아 해소 등 금융 민주화로 가는 첫 단추가 될 것 같다. 마침 지난 해 헐리우드 다큐상을 받은 '인사이드 잡'이라는 영화가 이번 주에 개봉한다. 투자은행 리만 브라드스가 어떻게 파산하게 되었는지, 미국 경제관료들이 뭘 실패했는지, 소상하게 나와 있다. 부디 참고하시기 바란다.

두 번째, 삽질경제 해체. 자, 상식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4대강 문제와 새만금 문제가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문제라서 4대강의 수중보들을 당장 해체하고 생태 복원할 수는 없더라도, 전라도의 새만금은 민주당에서 의견을 모으면 당장이라도 의미 있는 전진을 보일 수 있는 문제이다. 생각보다 많은 전북 주민들과 전라도 의원들이 '새만금 해수유통'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라도라서 말도 못 꺼내보고 있는 상황이다. 해수유통은, 부분개발이라는 이한동 총리시절의 총리실안보다 더 양보한 안이다. 어차피 그 지역에 수질 문제로, 전면개발이 불가능하고, 기술적 문제로 그렇게 산업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총리실에서도 다 검토를 끝낸 문제 아닌가? 최소한의 해수유통에 대한 논의를 하고, 기술적 검토를 해보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민주당 원내대표안으로, 새만금에 대한 기술적 재검토를 해서 해수유통에 대한 의견서 혹은 건의안을 만드는 것은, 대선 전이라도 가능하다. 전라도에서 합리적인 정책절차가 시작되고, 삽질경제의 해체를 알리는 첫 번째 정책이 나갈 때, 경상도와 전라도 혹은 충청도에도, 이젠 삽질경제 그만하고, 토건이 아닌 상상, 토건이 아닌 지역경제를 찾아나가자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누군가 탈토건을 하자고 말하면, 경제관료들은 "당신이 경제를 아느냐?"고 윽박질렀다. 이 문제에 첫 길을 여는데, 신임 원내대표는 좋은 지식과 상징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국무조정실상을 거쳐 경제 부총리와 교육 부총리를 역임한 경력이 지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청년 경제와 문화 경제의 시작.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난 3년 동안 일자리가 문제라고만 했지, 실제로 청년들에게 의미 있는 얘기를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몇 년 동안,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꽤 고민을 해봤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엉켜있는 상황에서, 지난 정권에서 별 것도 아닌 사학재단에 사외이사 파견하자는 것을 한나라당 특히 박근혜 전대표가 '3대 개혁악법'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결국 정권을 바꿀 정도로 한국의 사학 문제는 접근이 어렵다. 교육부 장관 해보셨으니까 잘 아실 것 아닌가? 내 생각에는 순서상으로 대학을 전체로 무상교육으로 바꾸는 것 보다는, 국문과나 국사학과와 같이,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는 꼭 필요하지만 인기가 없어서 지키기도 어려운 과를 먼저 '무상지원과'로 바꾸는 것은 지금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카이스트 방식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문사철, 물리학과 등 기초과학, 이런 분야부터, 그리고 지방 우선 서울 나중, 이렇게 무상지원과를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궁극적으로 우리는 무상대학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는 나중에 재원이 되면 천천히 무상으로 지원해도 될 것 같지만, 일단 시급한 곳들부터 지원을 한다는 것은, 신임 원내대표가 안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의 입장으로 볼 때, 대통령은 너무너무 싫고, 한나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미덥지 않은 게 사실 아닌가? 대통령이 되면 뭔가 하겠다고 하지만, 그 논의의 시작은 지금도 공개적으로 열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이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다, 그래서 정권교체 하겠다, 그 얘기는 지금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건 정책의 형태로, 아니 그게 어렵다면 전단계 논의의 정책안의 형태로 지금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추진하는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대선 공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기에, 지금의 원내대표는 좋은 위치에 있고, 또 그만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 전임 원내대표가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은, 그가 충분히 개방적이고,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나와서 소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90년대식 밀실정치' 혹은 '공작정치'라는 이미지가 따라 붙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그렇게 하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민주당이 하고 싶은 일, 만들고 싶은 일, 그런 것을 자주자주 토론회에 붙이고, 공청회도 열고, 시민 설명회도 벌어시기 바란다. 촛불을 들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민주 시민, 그런 사람들이 정책 설명회에 올 수 있다면, 그렇게 소통을 위한 개방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정권 바꾸는 길이다. 의원들 사이에 둘러쌓여서, 결국은 전라도 토건, 이렇게 갈 거다는 이미지를 뒤집어 쓰면, 한나라당의 공작 정치를 넘어서기가 어렵다.

시대는 소통을 넘어 공감으로 가고 있다. 현 대통령은, 소통의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그게 결국 그에게 조기 레임덕을 안겨 주었다. 다음 시대는 공감이다.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시기가 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느냐, 그게 바로 시민적 공감대이고, 그건 토론과 논의 혹은 수다와 같은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대통령이 절대로 하지 않을 정책,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을 늘리는 일, 그게 바로 정권 바꾸는 진짜 길이고, 가장 강력한 일 아닌가? 한나라당은 할 수 없고, 민주당은 할 수 있는 일, 그건 복지와 같은 개별 안이 아니라, 바로 공감의 능력이다. 정책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공감을 만드는 일, 그건 한나라당이 환골탈퇴하기 전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에게, 공감의 시대의 맨 앞에 선 사람이 되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소통, 정의를 넘어 공감의 시대로 간다. 그 시대를 열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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