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처리했다고?
그런데 금융감독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특히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부실감독이 아니라 '뱅크런'(bank run; 예금 인출 사태) 때문이었으며, 감독당국은 '법대로' 처리했다고 강변했다. 나아가 금감원 직원 비리에 대해서도 '일부의 일'로 치부하고, 현 금융감독 시스템에 별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이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사실상 반기를 들었다. 국민 일반의 정서와 한참 동떨어진 주장이다.
물론 금융감독 이슈는 정서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김석동 위원장을 비롯한 모피아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도 아니다. 따라서 차근차근 따져보아야 한다. 오늘 글에서는 영업시간 마감 이후 이루어진 예금 부당인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다.
'영업정지'에도 종류가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예금 부당인출 사태와 관련해 감독당국에는 책임이 없다는 모피아의 주장은 영업정지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사실 법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2월에 영업정지 당한 7개 저축은행에 대해 4월 29일 또다시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졌다. 2월의 영업정지는 뱅크런에 따른 유동성 부족(illiquidity)을 사유로 한 것이고, 4월의 영업정지는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지급불능(insolvency)을 사유로 한 것이다. 영업정지의 사유에 따라 감독당국이 내릴 수 있는 처분에도 차이가 있다. 금산법 제14조에 따르면, 유동성 부족의 경우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만을 명령할 수 있을 뿐인 반면, 지급불능의 경우에는 그 외에도 자본금 증액명령, 임원의 직무집행 정지, 관리인 선임 등의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자본금 증액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계약이전, 영업인가 취소 등의 추가 조치도 가능하다.
따라서 유동성 부족을 사유로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지난 2월 당시에는 감독당국은 관리인조차 선임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부산저축은행 임직원들이 예금 부당인출 등의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막을 수단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직접 법률을 찾아 읽어보자
여기까지는 보도자료 등에 나타난 모피아의 변명이다. 여기서 멈추면, 모피아에게 맨 날 당한다. 직접 관련 법률을 찾아 읽어보아야 한다. 영업정지 명령의 근거가 되는 부실금융기관의 정의와 관련한 금산법 제2조 제2호의 (가)목과 (다)목이 해당 조항이다. (가)목이 지급불능 사유, (다)목이 유동성 부족 사유에 해당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지난 2월 당시 금융위가, (다)목의 유동성 부족 사유가 아닌, (가)목의 지급불능 사유를 들어 영업정지 명령을 내림으로써 관리인 선임 등의 보다 강력한 조치를 통해 예금 부당인출 등의 불법행위를 막을 수는 없었는가에 있다.
금산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2. "부실금융기관"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금융기관을 말한다. 가. 경영상태를 실제 조사한 결과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금융기관이나 거액의 금융사고 또는 부실채권의 발생으로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여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것이 명백한 금융기관으로서 금융위원회나 '예금자보호법' 제8조에 따른 예금보험위원회가 결정한 금융기관. 이 경우 부채와 자산의 평가 및 산정(算定)은 금융위원회가 미리 정하는 기준에 따른다. (중략) 다. 외부로부터의 지원이나 별도의 차입(정상적인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차입은 제외한다)이 없이는 예금등 채권의 지급이나 차입금의 상환이 어렵다고 금융위원회나 '예금자보호법' 제8조에 따른 예금보험위원회가 인정한 금융기관 |
그런데 (가)목을 읽어보면, 부실금융기관 결정의 요건이 두 가지로 나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 있는 '경영상태를 실제 조사한 결과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금융기관' 부분이 4월 29일 두 번째 영업정지 명령의 근거가 되었다. 실사 결과 7개 저축은행 모두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BIS비율은 무려 두 자리 숫자의 (-)였다.
한편, (가)목의 뒷부분은 뭔가? 즉, '거액의 금융사고 또는 부실채권의 발생으로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여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것이 명백한 금융기관'이라 함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것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렇게 될 것이 명백하게 '예상'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경우에도 (가)목에 의한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할 수 있고,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만이 아니라 관리인 선임 등의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시 문제를 정리해보자. 지난 2월 당시 금융위는, (다)목의 유동성 부족 사유가 아닌, (가)목의 뒷부분을 사유로 해서 7개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관리인 선임 등의 강력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는가. 만약 이런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면, 금융위는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곧 드러났듯이, 이들 저축은행은 모두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심각한 부실상태에 빠져 있었고,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회피에 급급한 금융위
그러나, 필자가 단언하건대, 모피아는 영웅의 심장을 갖고 태어나지를 못했다. 영웅이 되려 하기보다는, 만의 하나 일이 잘못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는 상황을 피하는 데만 능수능란한 머리를 갖고 있다.
필자가 다시 한 번 단언하건대, 모피아는 다음과 같이 항변할 것이다. (가)목의 뒷부분을 다시 읽어 보아라. 거기에 '명백한'이라는 형용사가 들어가 있지 않느냐. 지난 2월 당시에 이들 7개 저축은행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할 것이라고 어떻게 '명백하게 예상'할 수 있었겠느냐. 법을 집행하는, 특히 해당 저축은행 대주주의 권익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내리는 금융감독당국으로서 명백한 증거 없이 추론에 근거하여 경거망동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라고….
말인즉슨 옳다.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가)목의 뒷부분은 있으나마나 한 사문화된 조항이 될 수밖에 없다. '명백한'이라는 추상적인 형용사 하나가 모피아에게는 자기책임을 완벽하게 회피할 수 있는 안전한 그늘이 되는 것이다.
모피아, 관치와 책임회피의 달인
결론적으로, 모피아는 지난 2월에 (다)목의 유동성 부족을 사유로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것이 불법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번 4월에 두 번째 영업정지를 당한 7개 저축은행과 마찬가지로, 2003년부터 2010년 6월까지 영업정지 당한 16개의 저축은행 대부분은 실사 결과 BIS 비율이 두 자리 숫자의 (-)로 추락할 정도로 부실이 은폐되어 있었다. 이는 부실 저축은행이 자체 공시한 재무자료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분식 덩어리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 16개의 저축은행 중 12개에서 대주주의 불법행위가 부실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과거 경험을 감안하면, 도대체 얼마나 '명백한' 증거가 드러나야 (가)목의 뒷부분을 사유로 한 부실금융기관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이 자체 공시한 2010년 12월 말 기준 반기보고서를 보면, PF대출이 총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71.8%와 69.9%였다. PF대출에 대한 감독당국의 지도 기준이 30%임을 감안할 때, 이는 PF대출에 올인했다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PF대출의 부실 가능성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황에서, 얼마나 '명백한' 증거가 드러나야 (가)목의 뒷부분을 사유로 한 부실금융기관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한편, 놀랍게도, 명백한 증거가 없는데도 모피아가 과감한 결정을 한 사례도 있다. 2003년 9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건이 그것이다. 2003년 6월 기준 외환은행의 BIS비율은 8%를 넘었지만, 2003년 12월 말 기준 '예상' BIS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추정을 근거로 부실금융기관으로 간주하여 예외 승인을 한 것이다. 부실금융기관으로 간주한 것의 근거는 은행법이 아니라 그 시행령에 있는 것인데, 그것도 법문상의 한 글자("…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서 '등'이라는 한 글자)를 확대해석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그런데 이 예외 승인은 은행법 제15조에 대한 예외일 뿐, 산업자본과 관련한 제16조의2 조항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모피아는 특정 정치적⋅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없는 일도 서슴지 않는 관치를 하는 한편,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는 법령상의 자구 하나하나를 따지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모피아는 관치금융의 달인일 뿐만 아니라 책임회피의 달인이다.
금융위, 반성하고 쇄신해야
▲ 김석동 금융위원장 ⓒ뉴시스 |
감독당국에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루에도 천문학적 액수의 금융거래가 이루어지고, 또 그 거래기법이 빠르게 발전하는 현실에서, 금융거래의 불법 여부를 가릴 기준을 법령에 세세히 기술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령에는 불법 여부에 대한 추상적 기준만을 서술하고, 이를 해석⋅집행하는 재량권을 감독당국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감독당국이 그 재량권을 공정하고도 엄정하게 행사하느냐 여부가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될 것이며, 그 신뢰가 다져졌을 때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모피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론스타-외환은행 사례는 재량권을 오남용한 사례이고,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책임회피에 급급한 나머지 재량권을 스스로 부정한 사례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재량권의 오남용과 재량권의 부정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산저축은행 사태, 특히 예금 부당인출 사태와 관련하여 '명백한'이라는 형용사 하나에 매달려 감독당국의 책임은 회피한 채 대주주와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만 나무라는 태도를 가지고서는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를 축적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와 함께 재량권의 확대가 가능할 것이며, 그래야 우리나라의 금융감독 시스템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금융위는 도망가고, 금감원만 때려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금융위부터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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