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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냐 갈등이냐, 열쇠는 한국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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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냐 갈등이냐, 열쇠는 한국이 쥐고 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동북아정세 대해부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사태 이후 동북아지역에 신냉전적 대립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립구도와 과거의 냉전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미국과 중국의 경제네트워크가 조밀하다. 따라서 두 나라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기는 쉽지 않다. 둘째, 한국이 미국의 조지워싱턴호를 불러오고, 북한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하듯, 남북한의 자율성은 냉전시대보다 증대된 상태다. 셋째, 북중 경제관계는 비대칭적이지만, 한중의 경제는 상호의존적이다.

이 조건들을 고려할 때, 한반도 국제정치를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첫째, 미중갈등의 격화를 예상하기란 어렵다. 미중이 한반도 핵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에 동의한 이유는, 동북아에서 공동의 안보이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중갈등보다 미중협력의 가능성이 높다.


둘째, 북한보다 남한의 선택지가 많다. 북미 핵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미국, 중국과 동시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중갈등의 전면화는 한중 모두에게 손해일 수 있다.

셋째, 따라서 무엇보다도 한국의 선택이 동북아 국제정치의 구조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한중관계 및 남북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 갈등을 원하지 않는 미중을 '대신하여' 남북갈등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대 북중의 대립구도는 불가피하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 및 한중관계의 개선을 통해 동북아 협력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가 협력 관계로 갈 것인가, 갈등 관계로 치달을 것인가, 그 열쇠는 한국이 쥐고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났던 2008년 이후 한반도 상황을 점검하면서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움직임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지금, 한국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인가.

다음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포커스> 10호(2010년 11·12월호)에 실린 구갑우 교수의 '한반도 국제정치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전문이다.

<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로, 이번 10호는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를 주제로 5편의 글이 실렸으며 이 글은 그 마지막 편이다. <편집자>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분석할 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지구적 수준에서 동북아를 거쳐 한반도로 하강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남북한 국내정치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와 동북아로 상승하는 방법이다. 전자가 행위자들의 선택범위가 제한적이었던 냉전시대에 유효했다면, 후자는 남북한의 확대된 자율성이 한반도 및 동북아 국제정치를 구조화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탈냉전시대의 정세분석일 수 있다. 물론 후자의 방법에서도 상승과 하강의 상호작용은 고려되어야 한다. 상승의 방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전략보고서가 현실을 구성하려는 '담론'이듯, 정세분석이 현재에 대한 인식이지만 동시에 그 인식이 미래의 생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동북아 질서의 역사가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이 사건이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탈냉전과 냉전이 중첩되어 있는 동북아에서 천안함 사건은 2001년 9.11에 버금갈만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전후로 한 동북아 질서의 재편과정을 가능한 일지의 형태로 촘촘히 정리하면서, 한반도 국제정치를 읽어본다.

2008년 하반기에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가 교환되면서 6자회담은 종착역에 접근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금 6자회담과 북미협상이 난항에 부딪히게 되자,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한국정부는 5월 26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발표했다. 6월 12일에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를 발표했다. 북한은 유엔 결의안에 대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와 우라늄 농축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대응했다.

2009년 10월 24일 협상의 결렬과 긴장의 고조 이후 대화가 재개되는 북미관계의 법칙이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했다. 북한 외무성의 리근 미국국장과 미국 국무부의 성김 북핵담당 특사가 뉴욕에서 만났다. 그리고 2009년 12월 미국의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했다. 또 다른 변화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2차 핵실험을 비난했던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의 2009년 10월 5일 북한방문이었다. 2006년 1월 후진타오-김정일 회담 이후 3년여 만에 북중 정상회담이 재개되었다. 중국, 미국과 접촉한 후 북한은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을 다시금 의제화했다. 2010년 1월 신년사에서 북한은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주장을 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연계하는 북한의 전략은 미국 오바마정부의 핵무기 없는 세상 정책에 대한 나름의 독해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이 2010년 4월 「핵태세보고서」에서 비확산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잠재적 적으로 설정했지만,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드러난 것처럼,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다. 북한은 2010년 4월 21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비확산과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에 기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연계라는 의제가 논란이 되는 시점에서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고, 2010년 5월 3일 김정일은 중국을 방문했다. 후진타오-김정일 회담에서는 양국의 '전략적 소통'이 강조되었다. 이 표현은 북한의 내정문제에 대한 중국의 개입의사로 읽힐 수 있지만, 북중관계 밀착의 지표이기도 했다. 2010년 5월 20일 한국정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 때문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5월 24일 남북교역 중단, 한미연합 대잠수함훈련 실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건의 회부, 한미동맹 차원의 제재 협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5월 23일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섬 밖으로 이전하기로 한 민주당정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군기지를 섬 밖으로 이전하는 것이 미군의 억지력 저하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해석될 수 있는 조치였다.

2010년 7월 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공격주체로 명시하지 않고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attack)을 규탄한다(condemn)"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2010년 7월 27일과 9월 27일에는 한반도의 동해와 서해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었다. 이 두 훈련을 관통하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7함대 소속 원자력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였다. 이 항공모함이 한국영해로 진입한 사건을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조지워싱턴호라는 고유명사 그 자체가,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단호한 대응을 상징하는 하나의 텍스트였다. 그러나 조지워싱턴호는 동해훈련에는 참가했지만, 천안함 사건의 현장인 서해로는 가지 않았다. 조지워싱턴호는 선을 넘지 않았다. 중국은 7월 초 서해에서의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바 있고, 실제로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언론은, 한국이 최대의 무역상대국인 중국을 잠재 대상으로 설정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보다 파괴력이 크다고 말하기조차 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저우융캉 공산당 정치상무국 위원이 손을 잡고 지난 10일 평양 시내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퍼레이드 참관 도중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한미합동군사훈련 사이인 2010년 8월 김정일은 중국의 동북3성을 방문했고, 창춘에서 후진타오와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매우 이례적으로 3개월 만에 중국을 다시 방문한 것이다. 김정일의 방중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첫째, 2009년 11월 중국이 발표한 '창지투(長吉圖) 개발사업'-중국두만강유역합작개발계획강요: 창지투를 개발개방의 선도구로-과 두만강유역 개발사업의 연계 가능성이다.1) 둘째, 김정일의 동북3성 방문은 항일무장투쟁을 매개로 북한과 중국이 정체성을 공유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중국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를 중국공산당의 항일무장투쟁 시기로 정리하던 전통을 수정하여, 북중이 함께 참여했던 1931년을 기점으로 '14년의 항일무장투쟁'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2)

2010년 9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창젠(長劍)-10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고 한다. 사거리 1,500-2,000km인 창젠-10은 지상과 해상의 목표물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로, 저고도 비행을 하고 방향을 수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레이다 포착이 어렵다고 한다. 또한 중국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상호개발하지 않기로 합의했던 1,500km급 대함탄도미사일(ASBM)을 실전배치하려 하고 있다. ASBM은 사거리가 길고 속도가 극초음속대 이상이기 때문에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대 전투함들은 자신의 상부를 관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ASBM의 표적이 된 함정은 인근의 다른 방공함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3) 중국이 ASBM을 실천배치한다면, 미국의 군사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2010년 9월에는 중일 영토분쟁의 대상인 일본명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근해에서 일본이 나포한 중국어선의 선장을 체포한 것에 대해, 중국은 희토류 금속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의 전방위적 강압외교로 일본에 대응했다. 중일갈등도 현실화되고 있다.

2010년 10월 8일 열린 제42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는, "어떠한 도발, 불안정 사태 또는 침략"이라는 구절이 담겨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 또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있을 수 있다는 한미의 인식공유였다. 한미는, "미합중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능력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강화할 것이라는 미합중국의 계속된 공약을 재확인"하고 확장억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확장억제정책위원회'를 제도화하기로 합의했다. 2010년 10월 15일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은 한미뿐만 아니라 일본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한국정부는 10월 24일 한미 미사일방어체계(MD)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0월 25일 한미는 원자력협정 개정협상 회의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0년 10월 하순 실시를 검토했던 미국의 항공모함이 참여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취소되었다.

2010년 10월 10일 북한의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중국공산당 저우융캉(周永康) 정치국 상무위원, 중국공산당과 대외연락부 부장과 부부장, 길림성위원회 서기, 외교부 부부장, 상무부 부부장, 요녕성위원회 부서기, 흑룡강성위원회 부서기 등이 참석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10월 9일, "조선로동당이 끊임없이 발전할 것과 중조친선이 대를 이어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축전을 보냈다. 10월 9일 북한과 중국은,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 서명에는 중국의 동북3성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2010년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새롭게 구성된 '영도집단'의 중국방문을, 북한은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방문을 요청했다. 10월 12일 중국을 방문한 김계관 북한의 6자회담 대표는,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0월 19일에는 북한의 시·도당 책임비서 전원이 중국을 방문했다. 북중은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한 것을 기념하여 군사교류를 진행했고, 10월 25일 중국의 시진핑 부주석은, '항미원조전쟁'이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날 북한은 "중국의 강화발전과 더불어 약동하는 친선도시"라는 제목 하에 김정일이 방문했던 '천진시'에 관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상의 일지에서 우리는 한미일 대(對) 북중의 대립구도를 발견할 수 있다. 중일, 한중의 소규모 갈등도 볼 수 있다. 냉전체제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냉전시대와는 다른 점들이 있다. 첫째, '태평양수지균형'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과 중국의 환율경쟁이 극단적 대립으로는 가지 않듯이, 미국과 중국의 경제네트워크는 조밀하다. 둘째, 한국이 미국의 조지워싱턴호를 불러오고, 북한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하듯, 남북한의 자율성은 냉전시대보다 증대된 상태다. 셋째, 북중 경제관계는 비대칭적이지만, 한중의 경제는 상호의존적이다. 북한은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북중밀착을 선택하면서도 중국의존적 경제를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경제의 주체화'에 대한 강조에 북한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북한은 '지정학'과 '주체'를 항상 함께 고려하고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북한경제의 중국의존이 종속화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 수 있다.

이 조건들을 고려할 때, 한반도 국제정치를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첫째, 미중갈등의 격화를 예상하기란 어렵다. 조지워싱턴호는 중국과 인접한 서해로 가지 않았다. 미중이 한반도 핵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에 동의한 이유는, 동북아에서 공동의 안보이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중갈등보다 미중협력의 가능성이 높다. 둘째, 북한보다 남한의 선택지가 많다. 북미 핵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미국, 중국과 동시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 내에서도 친미냐 친중이냐는 이분법적 선택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한중갈등의 전면화는 한중 모두에게 손해일 수 있다. 셋째, 따라서 무엇보다도 한국의 선택이 동북아 국제정치의 구조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한중관계 및 남북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 갈등을 원하지 않는 미중을 '대신하여' 남북갈등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대 북중의 대립구도는 불가피하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 및 한중관계의 개선을 통해 동북아 협력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선택이 한반도 및 동북아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계산해야 한다.

필자 주

1) 이남주, <동북아경제협력과 한반도경제: 창지투개발사업에 대한 평가와 대응을 중심으로> 2010년 9월 '한반도 통일론의 재구상' 학술회의

2) <연합뉴스> 2010년 9월 6일

3) <디앤디포커스> 2010년 7월 25일


* 원제 : 한반도 국제정치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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