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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파업'에 대학생 지지 폭발…"용돈이 아니라 임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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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파업'에 대학생 지지 폭발…"용돈이 아니라 임금을!"

[현장] "'청소 노동'의 소중함, 학교가 깨닫는 계기 돼야"

"지금쯤 난리 났을 거야. 화장실 쓰레기통은 흘러넘칠 것이고, 칠판은 안 닦여 있고. 학생들이 음료수 먹고 남은 캔도 그대로 강의실에 버려놓을 텐데. 날마다 청소해도 그렇게 더러운데 지금은 얼마나 더럽겠어."

정말 그랬다. 닦지 않은 화장실 바닥에는 구정물이 흘렀고 휴지는 금세 동났다. 바깥 쓰레기통은 넘치다 못 해 쓰레기가 밖으로 삐져나왔다. 쓰레기를 비워주지 않은 탓에 담배꽁초가 쓰레기통에서 연기를 내기도 했다.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한 지 반나절 만에 벌어진 광경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일하는 이양순(62) 씨는 "더러워진 학교를 보고 '청소 노동'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며 "학교가 이번 기회에 반성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가 파업에 돌입한 8일 연세대학교의 한 쓰레기통. ⓒ프레시안(김윤나영)

"86만 원에 세 식구 사는데…용돈이 아니라 임금을!"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경비 노동자 860여 명은 8일 일일파업에 들어갔다. 요구안의 핵심은 '용돈'이 아니라 '임금'을 달라는 것. 연세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은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86만 원가량을 받는다.

연세대학교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추만임(52) 씨는 "남편은 나이가 있어서 집에서 놀고, 30대인 막내아들도 사업이 고꾸라져서 논다"며 "집에서 나 혼자 버는데 세 식구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추 씨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청소 노동자는 최저임금인 시급 4320원을 받고 나머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집안의 가장'이다. 이영숙 고려대 분회장은 "여기 다니는 청소 노동자들은 대개 남편이 퇴직해서 자기 홀로 벌거나,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를 혼자 키운다"며 "돈 100만 원 없이는 한 가정을 꾸리기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역업체와 청소 노동자들 사이에 입장이 끝내 평행선을 달리면서 지난해부터 시작된 교섭은 12번이나 어그러졌다. 이양순 씨는 "학교들은 서로 총대 안 메려고 난리"라며 "자기들끼리 눈치만 보다가 한 학교가 먼저 나서면 마지못해 합의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합의해줘야 용역업체도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소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월급 100만 원이 그토록 과한 요구인가"라는 탄식도 나온다. 연세대에서 일하는 김명희(가명‧59) 씨는 "교직원 하루 술값도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이러는 게 서글프다"고 말했다.

"우리가 벌어야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지. 엄마들이 낸 등록금으로 여기 교직원도 월급 타 먹는 거 아녀. 그런데 우리 월급은 높은 사람들 하루 술값도 안 될걸. 80만 원 가지고 되겠어? 우리가 월급으로 자녀들 등록금 벌어야 교직원들이 월급 받고 술도 먹지."

ⓒ프레시안(김윤나영)

"휴게실 유해물질에 며칠간 토하고, 물집 생겨"

고려대병원에서 일하는 최점자(가명‧60) 씨는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설움'을 풀어놓았다. 총 11개 병실을 맡은 최 씨는 새벽 4시에 출근한다. 원래 출근 시간은 6시지만 그 시간에 나오지 않고는 일이 안 끝나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는 양에 비해 사람이 터무니없이 적다 보니 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병원이다 보니 일이 힘들거든.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으니 하루 종일 서 있지. 여기서 불러대고 저기서 불러대니 앉을 틈도 없이 뛰어다니고…. 그런데 우리가 1시간 반 일찍 출근하는 건 생각 못하고 10분이라도 일찍 가면 난리나. 우리를 사람으로 안 보니 서글퍼서 혼자 울 때가 많지. 그렇게 최선을 다 해서 깨끗이 했는데 전혀 몰라주고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질타하면 눈물 나지."

최점자 씨는 "휴가를 쓰면 옆 사람이 내 몫까지 다 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두 명분의 일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3년 동안 일하면서 휴가를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쉴 공간'도 변변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휴게실이 주로 지하 공간이다 보니 공기가 탁하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이과대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이과대는 실험실이 있어서 약 냄새가 많이 난다"며 "새로 들어온 사람은 적응을 못 해서 며칠간은 토한다"고 말했다. 유해물질을 다루면서 피부병이 생기기도 예사였다.

"어쩔 수 없이 휴게실에서 약 냄새 맡으며 쉬지. 머리 아프면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폐기물, 약 냄새 때문에도 고역이고 유해물질 버리기도 고역이야. 유해물질이 피부에 닿아 병원에 다니는 사람도 있어. 약물 묻으면 톡톡 빨간 게 올라오고, 물집도 생기고…."

이들이 바라는 것은 휴게 공간에 환기가 잘 되고 화장실에 온수가 나오는 것이다. "유해물질이나 먼지를 씻어내야 하는데, 찬물이 나오니 손가락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 대학 노동조합은 시급 5180원 외에도 휴게공간 개선, 휴가 확충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용역업체는 "휴게실은 학교 건물이기 때문에 용역업체가 개선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학교는 "직접 고용한 용역업체에게 문의하라"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파업 사태에 대해 연세대학교 총무처 관계자는 "오늘 같은 날 기사 나가서 좋을 게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학생 서명 4만 명, "힘내라며 끼던 장갑 벗어주기도"

반면에 파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연세대는 이틀 만에 1만2000명의 서명을 받아내 목표치인 1만 명을 초과 달성했다. 세 대학을 합치면 4만여 명이 이들의 파업을 지지한다는 서명을 했다. 이양순 씨는 "서명을 받으러 강의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박수 쳐주고 호응해준다"고 말했다.

"우리가 강의실에 들어가서 학생들한테 '여러분, 총무처가 돈이 없어서 우리 임금을 못 올려준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라고 물으면 학생들이 야유하고 꽥꽥 막 소리를 질러. 교수님도 우리가 발언하러 가면 자리를 비켜주시고….

학생들이 지지해주고 서명해주니 힘 나고 고맙지.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사다 주기도 하고, 서명한 뒤에 껴안아주고 가는 학생도 있고. 어떤 학생은 힘내라고 자기가 끼던 장갑도 벗어주고 갔어. 어찌나 고맙던지…."


청소 노동자들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학생들이 있으니 (본관에서 집회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집단교섭을 하는 이유를 묻자 "다른 학교가 먼저 하면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하고 서로 눈치만 보니 한방에 교섭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홍대 사태 해결된 배경은 집단교섭"

▲ 8일 연세대학교에는 청소·경비 노동자와 학생 1000여 명이 모여 "진짜 사장, 연세대가 생활임금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재용 민주노총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 조직차장은 집단교섭이 필요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서울 지역 청소 노동자들의 싸움을 북돋아 전체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상향평준화해보자는 시도"다. 다른 하나는 "원청인 대학을 교섭 상대로 끌어 내리기 위해서"다.

이재용 차장은 "단위 사업장에서만 싸우면 매년 고용불안, 재계약, 저임금 등 같은 상황을 반복해야 한다"며 "사업장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노동조건을 갖춰야 원청인 대학에 요구하기도 쉬워진다"고 지적했다. "용역회사와만 싸우면 대학과 용역회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지만, 한 대학에서 문제가 생길 때 나머지 세 대학 노동자들이 대응하면 대학과 직접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차장은 홍익대 사태가 잘 끝난 배경에도 집단교섭의 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가 집단교섭할 때, 홍익대 청소‧경비 해고자들의 복직 문제가 안 풀리면 서울 서부지역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총파업하겠다고 하자 홍익대 관계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귀띔했다.

이날 연세대학교에는 청소·경비 노동자와 학생 1000여 명이 모여 "진짜 사장, 연세대가 생활임금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세 대학 노조는 파업을 마치고 다음날 곧바로 업무로 돌아갔지만, 추가 교섭이 또 결렬될 때는 장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섭이 또 결렬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한 청소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가 안 들어주면? 홍대처럼 빗자루 들고 될 때까지 해야지."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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