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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아나운서 성희롱 면접, '남의 일'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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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女아나운서 성희롱 면접, '남의 일' 아니에요"

'압박면접'의 그늘…"'똥돼지'에 두 번 우는 구직자"

한 공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김희진(가명·27) 씨는 지난 여름 한 기업체 면접을 보러 가서 겪은 일을 잊지 못한다. 이른바 '술자리 면접'이었다. 면접 도중 화장실에 들른 김 씨는 다른 지원자들이 토하는 모습을 봤다. 사실 억지로 술을 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면접관이 권하는 술잔을 거부하는 '간 큰 구직자'는 없었다. 김 씨는 술을 전혀 못하는 구직자가 비록 농담조이긴 하지만 면박을 당하는 장면도 봤다.

담배 피우는 면접관, 주눅 든 구직자…'갑'과 '을'의 불균형

이수연(가명·25)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이 씨는 지난해 한 기업체에 원서를 냈다. 평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회사였다. 다행히 최종 면접까지 볼 수 있었다. 사장이 직접 면접을 보는 자리였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사장이 면접 자리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면접관은 '갑', 구직자는 '을'일 수밖에 없는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이 씨는 생각한다. 이 씨는 기자에게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한쪽은 최대한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반면, 다른 한쪽은 기본적인 예의도 무시하는 불균형을 떠올리며 이 씨는 실망스러워 했다.

이를 놓고, 사회 초년병이 겪는 '통과의례'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하지만 올해 취업에 성공한 송지수(가명·26) 씨는 고개를 젓는다. 한번 겪고 지나는 일이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불안감을 낳는 일이라는 게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50여 군데의 기업에 원서를 냈던 송 씨는 면접 과정에서 생긴 온갖 에피소드를 두루 꿰고 있다. 송 씨는 "한 대기업에서 면접을 하면서 '우리는 여자 안 뽑는다, 뽑아 봤자 결혼하고 임신하고 하면 그만둘 거 아니냐'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여성은 임신하면 관둔다'는 편견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아나운서 지원자 성희롱 사건, '남의 일' 아니다"

하반기 채용이 한창이다. 삼성, LG, STX, 두산 등이 지난 9월 채용을 시작했고, 포스코, 한화, NHN, 현대건설 등도 10월에 신입 공채에 나섰다. 앞서 소개한 김희진 씨나 이수연 씨의 사례가 곳곳에서 반복될 게다. 젊은 구직자들이 채용 결정권을 쥔 기업 앞에서 주눅들고 한숨 쉬는 풍경 말이다.

최근 구직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구직자가 약자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악용한 사건이다. 지난 8월 서울 동작문화원이 여성 아나운서를 채용하면서 '술자리 면접'을 치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원자를 성희롱 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인데, 한창 구직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에겐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김희진 씨는 "술자리 면접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지원자 입장에서는 저항할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송지수 씨 역시 "개인과 기업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누가 쉽게 싫다는 말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개한테 목줄 채워 놓고, '싫으면 도망가면 되지'하는 것"

당시 사건이 논란이 되자, 문화원 측은 "본인이 싫었으면 언제든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채용하는 쪽과 일자리를 구하는 쪽 사이의 거리를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취업준비생 강희철 씨(가명·26) "개한테 목줄 채워 끌고 다니면서 '싫으면 도망가면 되지'하는 것과 같다"며 "구조상 거부할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구형근 씨(가명·25)도 "기업과 구직자 관계가 동등한 입장이면 '쿨'해질 수 있는데(싫은 것을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데) 대부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구직자 입장에서는 싫다고 포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 블로거(booyaso)는 "실업률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면접관의 면접 방식에 토를 달고 싫다고 할 수 있는 지원자가 과연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다른 블로거(savenature)도 "아나운서가 아니라 룸살롱 여종업원을 선발하려 한 게 아닌가"라며 빈정거렸다.

▲ 한 대학 교정 풍경. 기업은 '갑', 구직자는 '을'이라는 구도가 굳어지면서 젊은이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프레시안(여정민)
'압박면접' 유행, 구직자 인권 침해 가능성

문제는 구직자에게 수모를 주는 면접 방식이 오히려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압박면접'이다. 동작문화원 사건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어도, '부모님이 왜 이혼했느냐'는 식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은 다반사. 인권 침해 가능성이 충분하다.

'압박면접'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2년이다. 당시 언론은 '이색 채용 방법'이라며 가볍게 다뤘다. 그리고 8년 사이, '압박면접'은 대세가 됐다. 구직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준 동작문화원 사건은 이런 세태의 한 반영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취업을 했던 세대에겐 이런 풍경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 취업 준비를 위해 그리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다. 하지만 요즘 구직자들에게 그 시절 이야기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구형근 씨는 "80년대에는 대학 동아리방에 대기업 입사 원서가 널려 있었다는 얘기를 삼촌에게 들은 적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10여 년 사이에 기업과 구직자의 역관계가 크게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구 씨는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면 '너 따위는 필요없다,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채용 방식에 대해 대학원생 김혜진 씨(가명·27)는 "손 안 대고 코풀기"라고 말했다. "구직자들이 알아서 '스펙'을 갈고 닦아 오니까, 회사는 사원들을 교육시킬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인턴 생활은 면접의 연장?'정규직 전환 약속 깰까' 조마조마

과거와 다른 채용 풍경은 보통 시장 원리로 설명된다. 구직자 수는 늘었는데, 채용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다. 일리 있는 설명이지만,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새로 도입된 제도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인턴 제도다.

인턴 제도는, 도입 취지와 달리 기업이 고학력 구직자를 헐값에 쓰다 버리는 용도로 변질됐다는 게 구직자들의 평가다. 김희진 씨가 지금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인턴을 '신입사원'으로 대우한다. 그러나 김 씨는 자신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다. 김 씨는 "회사에선 마치 전혀 자르지 않을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연말에 평가를 해서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를 인사 담당자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할 말은 없죠. 우리는 인턴이고, 채용할 때도 평가 결과에 따라 전환하겠다고 공고를 내긴 했으니까. 그래도 막상 들어와서 보면, 윗 사람들은 우리가 사고를 치지만 않으면 거의 안 자를 것처럼 말해요. 실제 (인턴 직원들을) 부를 때도 '인턴'이 아니라 '신입사원'으로 부르고 또 그만큼 일을 시키니까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잘릴 수도 있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죠."

노조마저 등 돌려…"아무도 우리를 책임지지 않는구나"

정부 지침에 따른 공기업 연봉 삭감 등으로 올해 채용된 인턴직원들의 연봉도 감소했지만 김 씨는 "월급이 적거나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다"며, "잘릴지 말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인턴제 하면 회사는 좋겠지만 인턴의 권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우리에겐 마음 놓고 직장 다닐 권리가 없는 것 같아요. 잘리면 누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니까. 노조도 인턴들 문제에는 뒷짐지고 있는 것 보면 '정말 아무도 우리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죠."

김 씨가 말한 '엄청난 공포'에는 근거가 있다. 인턴 채용시 거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홍보해 놓고 실제로는 인턴 중 상당수와 정규직 전환 계약을 맺지 않은 경우가 실제로 있다.

지인호 씨(30세, 가명)는 "두 달 전까지 모 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처럼 얘기해 놓고는 채용된 인턴들 중 40% 정도를 쳐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일보>에 실린 이 그룹의 채용 관련 기사에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스스로 입사를 포기하거나 인턴과정 중 눈에 띄게 근무태도가 불량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식 채용된다고 보면 된다"고 나와 있다. 모 그룹은 재계 서열 30위권 내의 대기업이다.

이런 사례가 있는 이상, 면접 과정에서 겪은 '을'의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다. 인턴 기간 내내 면접 치르듯 지내야 한다. 불만이나 수모 역시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다.

여전한 연령 차별…法은 무용지물

대개의 구직자가 '을'이라면, 나이 든 구직자는 '병'쯤 된다. 처지는 더 절박하고, 그만큼 감수해야 하는 수모도 크다. '요즘은 취업 할 때 연령 제한이 사라졌는데'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법률 상으로는 그렇다.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된 게 지난해 3월이다.

그러나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취업준비 카페 '취업뽀개기'의 한 회원은 9월 중순경 이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기업의 채용) 웹사이트 상엔 나이 제한이 없었는데 원서 받아보니 있더라" 면서 "꼬박 2박 3일간 잠도 못 자고 이력서 작성했는데 (정작) 입사지원서 받으러 가니 거기(서류)엔 나이제한이 있어서 지원도 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송지수 씨는 "드러내 놓고 연령 제한을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나이 어린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늦게 시작해도 빨리 취업이 되는 반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취업이)어렵다"며 "그런 것을 보면 은연 중에 (연령 차별이) 아직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온라인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236개 중 47%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여전히 연령상한선이 있다고 대답했다. 연령차별금지법은 거의 무시되는 분위기다.

'모범생 뽑았더니, 별로더라'는 기업, 한편 긍정적이지만…

▲ 한 대학 도서관 통로.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프레시안(여정민)
채용 결정에서 '면접'의 비중이 커진 상황에서 이런 차별을 막기란 쉽지 않다. '면접'을 빙자한 인권 침해와 '시험 점수로는 파악할 수 없는, 진짜 능력을 검증하는 일' 사이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전자가 제대로 공론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후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취업·인사 포털사이트 '인트루트'의 정재훈 홍보팀장은 "과거에는 주로 성적순이나 학점 등으로 (구직자를) 채용했는데, 그런 '모범생' 타입이 꼭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게 기업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신입 공채가 줄어들었다가 2005~2006년 정도 신입 공채가 활기를 띠면서 다양한 평가방법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지원자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다차원적 평가를 도입해 인성이나 과제 수행 능력 뿐 아니라 인간 관계나 쉬는 시간은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의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점수'만 보고 사람을 뽑지 않겠다는 방침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세밀한 뒷받침이 없으면, 부작용도 크다. 강희철 씨는 최근 유행하는 합숙면접 등에 대해 "사생활 침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기업이 노동력을 사는 거지 사람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회사에서 24시간 먹고 자게 하지 그러냐"고 말했다. 구형근 씨도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 들 때가 많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똥돼지'에 두 번 운다…"누군 '술자리 면접', 누군 부모 잘 만나서…"

여성 및 고령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수치심을 주는 발언 등 '면접' 위주 채용이 낳는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공정하게만 이뤄진다면, 큰 반발은 없다. 구직자들이 느끼는 진짜 문제는 이 지점에서 불거진다. 이른바 '똥돼지' 논란이다. 부모의 연줄을 이용해 취업한 이를 가리킨 표현이다.

구 씨는 "누구는 합숙·술자리 면접까지 하면서 취직하려고 발버둥치는데, 어떤 애들은 좋은 부모 만나서 취직 잘 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을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프레시안>에서는 취업 과정에서 연령·학력·성별 등을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은 경우나 채용·면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제보를 기다립니다.(nowhere@pressian.com)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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