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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담뱃값부터 올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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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담뱃값부터 올리자고?

[홍헌호 칼럼] 흡연율과 담뱃세, 아무런 상관 없다

정부가 담뱃값을 40% 인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흡연율도 낮추고 감세로 줄어든 세수도 확보하자는 게 이유다. 그러나 필자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선진국들의 흡연율과 담뱃값 사이에는 밀접한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제 수준과 조세부담률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담뱃값이 낮은 게 아니라는 결론도 얻을 수 있었다.

이 글은 담뱃값 인상론에 동조하는 <조선일보>가 최근 내놓은 기사를 보고 작성했다. 이 신문은 지난 24일 "담뱃값 가장 싼 러시아 흡연율 최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담뱃값이 쌀수록 흡연율도 높다"며 담뱃값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 신문이 활용했다는 WHO의 '세계 담배 보고서 2009'를 분석해 본 결과 이 기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이 부분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일보>의 심각한 사실왜곡

(1) 선진국일수록 흡연율이 낮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선진국일수록 흡연율이 낮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의 성인 남성 흡연율이 35.3%에 이른 반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13.1%에 그쳤다. 여성 흡연율의 격차는 더 크다. 유럽 국가들이 19.4%에 이른 반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1.3%에 불과하다.

(2) 담뱃값이 가장 낮은 나라가 러시아?

또 이 신문은 러시아를 "국제적으로 흡연율이 최고, 담뱃값이 최저인 나라"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WHO 보고서는 흡연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그리스를, 남성 흡연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담뱃값이 가장 싼 나라가 러시아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담뱃값은 0.16달러로 0.51달러인 러시아의 3분의 1 수준이고, 파라과이와 파키스탄의 담뱃값도 러시아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WHO 보고서는 러시아보다 담뱃값이 싼 나라로 16개국을 소개했다.

(3) 미국의 담뱃값이 가장 비싸다?

또 이 신문은 전 세계적으로 담뱃값이 가장 비싼 지역으로 뉴욕주를 지목하고 뉴욕주의 담배 한 갑이 11달러(1만3000원 수준)라며 "이 정도면 '돈 없어서 담배 피울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이런 보도 내용도 WHO 보고서와는 무관하다. WHO는 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담배 브랜드를 조사대상으로 했다. 따라서 각국의 일부 지역이나 특정 상품을 추려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지적으로 성실한 태도라 볼 수 없다. WHO 보고서 자료를 분석해 보면 미국의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은 3.5%로 167개국 중 15번째로 낮다.

(4) 캐나다가 최저 흡연율?

또 이 신문은 캐나다를 "최저 흡연율" 국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의 남성 흡연율은 16%로 147개국 중에서 112번째로 높고, 여성흡연율은 13%로 144개국 중에서 50번째로 높다. 캐나다가 비교적 남성흡연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캐나다를 "최저 흡연율" 국가라고 소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담뱃값, 어느 정도 수준인가?

우리나라 담뱃값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2007년 유류세 논쟁이 한창일 때 <조선일보>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들은 각국의 '1인당 GDP 대비 기름값 비율'이라는 지표를 들고 나왔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대비 기름값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최근 담뱃값 논란 과정에서는 이 지표가 쏙 들어갔다.

기름값이든 담뱃값이든 제대로 된 국가간 비교를 하려면 △'1인당 GDP 대비 담뱃값(혹은 기름값 비율)'이라는 지표를 활용해야 옳고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비교해야 옳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들은 2007년 기름값 논쟁과정에서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끼리 비교하려 하지 않았고, 최근 담뱃값 논쟁과정에서는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이라는 지표를 활용하려 하지 않고 있다. 지적으로 매우 불성실한 태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1인당 GDP 대비 담뱃값(혹은 기름값 비율)'을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기름값과 담뱃값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먼저 기름값부터 들여다 보자. 유류세 논쟁이 한창이던 2007년 필자는 국제에너지 기구(IEA)의 보고서를 토대로 1일 1인당 GDP 대비 영업용 디젤유 리터당 가격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기름값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휘발유는 나라마다 상품이 다양해서 비교가 용이하지 않아 디젤유를 비교대상으로 함).

▲ ⓒ프레시안

[그림-1]을 보면 각국의 디젤유 1일 1인당 GDP 대비 리터당 가격 비율이 경제수준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인당 GDP 4만 달러 이상의 국가에서 그 비율은 0.65%에 불과한 반면, 3000달러 이하 국가에서는 무려 11.85%에 달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국제유가는 비슷한데 비해 각국의 1인당 GDP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국의 기름값을 비교할 때는 반드시 경제수준을 나타내는 1인당 GDP를 활용하여 실질적인 개인별 국민부담 차이를 계산해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2004년 당시 우리나라의 디젤유 1일 1인당 GDP 대비 리터당 가격 비율은 2.04%로 국민소득 1만 달러대 국가 평균 1.97%보다 다소 높기는 하지만 호들갑을 떨 수준은 아니었다.

담뱃값의 경우는 또 어떨까. WHO 자료를 토대로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 비교를 해 보면 다음과 같은 수치들을 얻을 수 있다.

▲ ⓒ프레시안

[그림-2]를 보면 2008년 우리나라의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은 3.8%로 OECD 평균 5.0%에 비해 낮게 나타난다. 만약 정부의 의도대로 담뱃값이 40% 오를 경우 그 비율은 5.3%로 OECD 평균을 넘어서게 된다(2008년 현재 일본은 3.2%, 미국은 3.5%).

그러나 정부의 이런 시도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 3.8%는 OECD 평균 5.0%의 76% 수준이지만, 조세부담율 또한 26.5%로 OECD 평균 35.8%의 74%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표적인 서민세금인 담배소비세부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때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담뱃값 인상론, 정당한 명분 있나?

특히 고소득층들이 주로 부담하는 소득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담배소비세부터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자고 할 때, 국민들은 더더욱 이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 ⓒ프레시안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담배소비세는 그 어떤 세금보다도 '역진성'이 크다. 여기에서 역진성이 크다는 말은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조세부담액 비율이 고소득층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한국조세연구원의 성명재,박기백 연구위원은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효과>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통계청의 통계 원자료를 활용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세, 교통세(유류세), 부가가치세, 담배소비세, 건강보험료라는 5대 세목 중에서 담배소비세의 역진성이 가장 크다.

▲ ⓒ프레시안

[그림-4]를 보면 5대 세목 중 소득세의 누진성이 가장 크고, 유류세와 부가가치세는 대체적으로 소득과 비례하며, 담배소비세와 건강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역진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실증 보고서는 기존 교과서의 설명과는 사뭇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기존 교과서들이 각국의 구체적인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소비세의 일종인 유류세의 누진성이 오히려 비례세로 알려진 건강보험료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계층별 자동차 유류 소비의 양극화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부가가치세의 경우에도 통념과 달리 소득과 비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 세목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서민배려장치가 마련되어 왔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이 세목의 적용을 받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원포착률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 [그림-4]를 보면 사회보장세의 일종인 건강보험료의 역진성이 의외로 크게 나타나는데, 그 원인은 이 세목이 가구 전체소득이 아니라 가구주의 근로소득(자영업자는 업주의 사업소득)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가구소득에는 가구주 근로소득(혹은 사업소득) 이외에도 전가족의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역진성이 가장 큰 세목은 담배소비세다. 계층별 소득 대비 담배소비세 비율을 보면 소득상위 10% 계층의 소득 대비 부담률은 0.08%에 불과한 반면, 소득하위 10% 계층의 부담률은 0.38%에 달한다.

▲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금연을 장려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담뱃값과 흡연율을 연결짓는 논리가 명백한 억지라는 점도 분명하다. ⓒclimateshifts.org

선진국들, 담뱃값 쌀수록 흡연율 높은가?

<조선일보>는 또 24일 기사에서 WHO 보고서에 수록된 144개국의 흡연율 통계 중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11개국의 자료만을 골라 "담뱃값이 쌀수록 흡연율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 태도도 매우 부적절하다.

저개발국의 경우 담뱃값에 비해 소득이 지나치게 낮은 탓에 담배 구입이 어려워 흡연율이 낮게 나타난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에는 소득 대비 담뱃값 비율이 크지 않아 흡연율이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WHO 보고서를 보면 선진국들 간의 담뱃값과 흡연율 사이에는 밀접한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어렵다. [그림-5]를 보면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각국의 흡연율 차이가 담뱃값 수준에 큰 영향을 받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프레시안

담배소비세 부담률만 선진국 수준인 나라?

소득세 부담률(=소득세액/GDP)이 선진국의 절반인 나라. 그럼에도 최악의 역진세인 담배소비세 부담률만큼은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사람들. 유감스럽게도 WHO와 OECD 보고서들은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나라의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이 OECD 평균의 76% 수준이지만, 조세부담율 또한 OECD 평균의 74% 수준이어서 담배소비세부터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또 선진국들 간의 담뱃값과 흡연율 사이에는 밀접한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도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율이 의미있는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IMF 등 국제기구들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초입에 들어선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담배소비세 인상을 시도하는 정부 관료들은 이들 보고서들을 들여다 보기는 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아직 공부가 덜 되어 있고 국민들과 토론할 준비도, 소통할 준비도 안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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