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좋은기업센터·한국여성노동자회·환경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28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삼성전자가 서울대 등에 의뢰해 실시한 반도체 사업장 내 화학물질 노출평가 자문 보고서 일부를 공개했다. 삼성전자의 기흥·온양공장,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천·청주공장 등 6개 사업장을 평가한 이 보고서에서 이번에 공개된 부분은 삼성전자의 기흥공장 관련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흥공장 5라인에서 총 99종의 화학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삼성은 이 물질들의 성분에 대해 공급업자가 제출하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자료에 의존할 뿐 MSDS에 기재된 성분이 맞는지 자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용제품의 60%는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제품에 들어간 83종의 단일화학물질 중 삼성이 작업환경측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물질은 24종으로 28.9%에 불과했다. 10종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조사의 성분 자료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지난 3월 온양공장 반도체 노동자였던 故 박지연 씨가 숨졌을 때 공정에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산업안전관리공단의 역학조사 당시 모두 공개했다는 삼성의 주장과 배치되는 결과다.
또한 2009년 2월부터 7월까지 5라인에서 46건의 가스 검지기 경보가 울렸는데, 이중 3건은 정상적으로 공정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설비의 유지·보수 과정에서 경보가 울린 횟수가 25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일부 가스 누출의 경우 95분 가까이 지속됐지만 삼성은 현장 근로자의 대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분석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설비 유지·보수 등 표준작업절차(SOP)를 지키면서 작업해도 경보가 발생했다면 SOP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설비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라며 "직무별 노출수준 평가에서도 유비·보수 엔지니어들의 화학물질 노출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28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 강당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중 기흥공장의 화학물질 노출위험 평가 보고서를 들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반도체 산업, 법이 못 따라가"
화학물질이 중앙공급을 통하기 때문에 작업장 안으로 누출될 가능성이 적다는 삼성의 주장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99개 화학제품 중 중앙공급방식으로 사용되는 제품은 32종이었고 작업자가 병 모양의 용기로 직접 투입하는 제품이 65종, 드럼 형태의 용기에 담아 사용하는 제품이 2종이었다. 제품의 보관 과정에서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누출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임 소장은 "신기술이 바로 바로 흡수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다양한 문제가 발생함에도 산업안전보건법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이 주로 아시아에 집중되어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이 산업을 주도하는 한국 정부가 풀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역시 이날 발표한 '2010 국정감사 시민사회단체 이슈리포트'를 통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사안에 있어 영업상의 비밀이 있을 수 없다"며 "정부과 삼성은 그동안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와 서울대에서 수행한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최종 보고서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또 "직업성 암이나 희귀질환은 명백한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불가능해 산재보험 혜택으로부터 사실상 배제되고 있었다"며 "발암물질 규제를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전자는 기자회견이 있던 이날 오후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참여연대 등의 분석 결과를 반박했다. 자문단의 조사결과가 짧아 소통의 오류가 있었을 뿐 화학물질의 이력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고, 삼성이 아닌 제조사에서 영업비밀을 이유로 성분을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하지만 "보고서가 최대한 비판적으로 작성되었고, 실제 작업환경은 이보다 훨씬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는 삼성과 국정감사 등을 통해 '삼성 반도체 사업장의 비밀'을 밝히려는 이들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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