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삼성일반노동조합은 12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공공연맹 회의실에서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를 열고 피해 노동자의 유가족들이 겪었던 삼성 측의 회유 내용을 공개했다.
▲ 12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공공연맹에서 열린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결의대회에 참가한 유가족 및 피해 노동자가 숨진 노동자들의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보상은 하지만 산재는 아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세척업무 등을 하다 백혈병에 걸려 2007년 숨진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는 딸의 투병 당시 삼성 측으로부터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나"라는 말을 들었다. 산업재해 신청부터 마치고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는 황 씨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한다.
황 씨는 남은 치료비 5000만 원을 보상하겠다는 삼성 관계자의 말에 백지로 된 사직서에 딸의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삼성이 지급한 돈은 단 500만 원이었고 이에 항의하는 황 씨에게 "사직서를 써 회사 사람도 아니고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태도를 바꿨다.
황 씨는 "2007년 3월에 딸이 숨지자 삼성 측이 다시 찾아와 장례식을 잘 치르고 나서 보상 문제를 마무리하자고 했지만 불과 일주일 뒤에 '산재와 관련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딸의 시신을 데리고 삼성 측에 행패를 부릴까 봐 장례부터 치르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1급 장애를 얻은 한혜경 씨의 모친 김시녀 씨는 "병원비 때문에 (뇌종양 수술 이후) 입원을 하지 못하고 외래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삼성 측에서 전화가 와 위로금을 줄 테니 산재 신청에서 빠져 달라'고 했다"며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이 돈 몇 푼으로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와 함께 나온 한혜경 씨는 "삼성이 원인을 제공했으면 어떻게든 해야지, 이게 뭐예요"라며 "나 같은 사람은 또 나올 수 있고 죽은 사람도 있는데 책임져야 한다. 아파도 수술도 못 받고 그러면 안된다"라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뇌종양 수술 이후 발음이 불편한 한 씨는 말을 마치고 난 후 끝내 오열했고 주위의 유가족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반올림에 접촉하면 제시한 위로금도 못 주겠다 하더라"
▲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종격동암으로 숨진 연제욱 씨의 동생 연미정 씨(왼쪽)가 발언 도중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연 씨는 "재심사청구를 준비하는 가족에게 삼성 측은 2억 원의 위로금을 제시하며 몇 년 동안 소송해서 받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나을 거라고 회유했다"며 "산재신청을 통해 정당하게 보상받겠다는 가족에게 '반올림이면 무슨 뾰족한 수가 나겠느냐'고도 했다"고 말했다.
연 씨는 "삼성 측은 '오빠의 병은 겉으로 드러난 게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데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기 때문에 임직원이었던 사람에게 성의 표시로 주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반올림과 접촉하면 제시한 돈도 줄 수 없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반올림과 삼성 일반노조는 지난 3월 백혈병으로 숨진 박지연 씨의 어머니 황금숙 씨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삼성으로부터 3억8000만 원을 받고 산재 불인정에 대한 행정 소송을 취하했다"고 밝힌 인터뷰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투병 생활로 대부분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은 "삼성이 주장하듯 피해자들의 질병이 삼성과 무관한 개인 질병이라면 무엇이 두려워서 돈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 하나"며 "진정으로 원하는 보상은 공식적인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의 이러한 행위는 지난 5월 외국의 기관투자가 그룹이 삼성의 노동환경에 대한 공동 질의를 보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보상을 통해 유가족들이 산재인정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피해 사실을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