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인은 '공공기관의 신용 보증'에 있다. 햇살론에서는 대출액 회수가 불가능해졌을 때 신용보증재단이 원리금의 85%를 대신 갚아준다. 그러나 미소금융에는 그런 제도적 보증장치가 없다. '무신용, 무(연대)보증'을 표방한 미소금융에 이런 제도적 보증장치가 없다 보니 이들이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렸다.
역대 정부가 햇살론식 금융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이유
역대 정부는 왜 '햇살론'과 같은 제도를 조기에 시행하지 않았을까.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과다하게 늘어난 중소기업 신용보증 규모를 줄이도록 권고했기 때문이다. IMF와 KDI는 외환위기 이후 지나치게 늘어난 신용보증이 과도한 대출을 부르고, 종국에는 중소기업과 금융기관 모두들 부실화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시장지상주의에 경도된 IMF와 KDI가 특출한 '혜안(慧眼)'을 가지고 이런 권고를 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단지 그들은 경제학 교과서들이 가르친대로 외환위기 극복 이후 '출구전략의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의 우려와 경고는 적절했다고 본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고도성장하는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다 그렇듯이 왕성한 투자성향(소득 대비 투자 비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투자성향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곤두박질쳤다. 대기업들의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많은 현금이 쌓였지만 투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저투자·저성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기업의 낮은 투자성향은 이들을 주요 대출고객으로 하는 금융기관에 치명타를 안겼다.
대기업 대상 대출시장이 급속도로 작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금융기관들은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기 시작했다. 때맞춰 부동산 시장은 1980년대 일본처럼 끓어 올랐다. 국민들은 재태크란 미명 아래 부동산 투기에 몰두했고, 분별력없는 일부 관료들은 '금융기관 대형화' 운운하며 돌아다녔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금융기관에 이만큼 폭리를 취하기 좋은 여건은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은 80년대 일본 거품상승기의 추태를 그대로 재현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 IMF와 KDI가 내놓은 과다한 신용보증에 경계심. 이전 정부는 햇살론과 같은 매우 위험한 상품을 내놓을 상황은 아니라고 보았다. 햇살론은 중소기업보다 신용이 훨씬 좋지 못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제1금융권(은행권)보다 재무건전성이 좋지 못한 제2금융권(저축은행, 상호신용금고 등)을 상품 취급기관으로 하고 있다.
물론 고금리 사채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구제한다는 명분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 명분과 무관하게 햇살론이 매우 위험한 대출이라는 본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것을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평가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혹자는 방글라데시 등에서 성공을 거둔 '그라민은행' 운운하며 미소금융이나 햇살론의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경솔한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방글라데시와 전혀 다르다. 방글라데시는 기업의 한계투자성향(소득증가분 대비 투자증가분 비율)이 200%를 넘어섰던 우리나라 70년대 경제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기업의 한계투자성향은 10% 내외다. 좀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우리나라는 공황 직전 상황이고, 방글라데시는 전쟁 직후 상황이다. 즉 우리나라는 수요부족에 시달리는 경제고 방글라데시는 공급부족,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경제다. 이 두 상황이 같다고 오판하면 곤란하다.
▲ 햇살론은 결국 서민층에 빚을 더 지게 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많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햇살론' 현장점검을 위해 지난 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 새마을금고를 방문했다. ⓒ뉴시스 |
햇살론과 창업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다
햇살론은 서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햇살론이 고금리 사채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일시적으로 구제한다는 목표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없이 햇살론식 대출이 무분별하게 확대될 경우 서민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햇살론이 가장 이상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햇살론으로 돈을 빌린 사람이 그것으로 고금리사채를 갚고 본인은 중소기업 등에 고용되는 경우다. 그러나 반대로 이들이 고금리사채를 갚는 대신 영세자영업 시장으로 바로 진입할 경우 혹 떼려다 또 다른 혹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2000년 IT버블 때의 창업열풍 운운하며 신규창업을 독려했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대통령의 오류는 대부분 이런 식의 '경험주의적 오류'다. 특수한 시기, 특수한 공간에서의 경험을 일반화시켜 모든 시기, 모든 공간에 적용하려는 아집을 '경험주의적 오류'라 한다.
창업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다. 물론 신상품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형태의 창업은 정부가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지 않고, 기존의 협소한 시장을 갉아먹는 형태의 창업이라면 정부가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예컨대 1만 명이 진입하여 겨우 연명하는 시장에 정부가 1000명을 추가로 진입시킬 경우, 그 결과는 공멸(公滅)로 나타날 수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7년 우리나라 자영업자 연간 폐업자는 85만 명에 이른다. 1995년 33만 명의 2.5배에 달한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빚내서 영세자영업으로 들어가라고 부추킬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취약계층에 저금리대출을 남발해서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군사정부 이래의 '농어촌정책'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농민들에게 저금리로 대출해주며 빚으로 농사도 짓고 부업도 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농민과 금융기관, 정부 모두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지금도 정부는 농가부채 탕감을 위해 매년 6000~7000억 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에야 정부는 '저리융자형 금융정책' 농촌을 살리는 데 약이 아니라 독이 되었다 진단하고, 그 정책방향을 '소득보전형 복지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저신용 저소득층과 영세자영업자들을 동시에 살리는 방법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과 영세자영업자들을 동시에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정책에서도 경험했듯이 한두 개의 대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첫째. 정부가 무분별하게 창업을 독려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고용부터 확대되도록 도와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효과가 검증된 중소기업인턴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에 청년인턴으로 채용돼 기간이 종료된 8685명 중 81.2%인 705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는 30세 미만 청년이 중소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하면 정부가 인턴기간 6개월간 임금의 50%를 최대 80만 원까지 지원하고, 인턴종료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 월 65만 원씩 6개월간 추가 지원하는 제도다. 이 사업 추진을 위한 2009년도 총예산은 1331억 원이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로 확보되는 세수 1조5000억 원을 전액 중소기업인턴제 확대에 써도 좋다고 본다. 1조5000억 원은 2009년 소요예산 1331억 원의 11.3배에 해당한다. 중소기업인턴제 사업비가 10배 이상 늘어날 경우, 이 제도에 힘입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인원은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제도 하에서 1년간 청년 한명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대략 780만 원(월 65만 원) 정도다. 지원 대상과 지원 기간을 늘리고, 월지원액을 높이는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둘째, 근로시간을 줄이고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OECD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64시간)보다 492시간이나 더 길다.
평균 근로시간을 현재보다 100시간 줄이면 75만 명의 추가고용이 가능하고, 200시간을 줄이면 158만 명의 추가고용이 가능하며, OECD평균으로 줄이면 452만 명의 추가고용이 가능하다.
셋째, 영세자영업자 과잉상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저소득층의 고용을 늘리려면 경제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비중이 낮은 복지인력 비중을 높여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선진 21개국보다 16.7%포인트 더 높다. 전체 취업자 2350만 명 중에서 16.7%인 392만 명이 과잉상태다.
반면 복지인력 비중은 선진 21개국보다 7.4%포인트 더 낮다. 2350만 명 중에서 7.4%인 172만 명의 복지인력이 과소상태란 뜻이다. 복지인력 비중을 당장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진 못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홍헌호 |
넷째, 정부가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를 철회하고, 서민들에 대한 복지지출을 늘려 영세자영업자의 시장수요기반을 넓혀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곳에 대한 신규진입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한계소비성향을 산출해 보면 정부가 최고소득층에 1조 원의 감세혜택을 줄 경우 3500억 원 정도의 소비가 늘고, 최저소득층에게 1조 원의 복지혜택을 줄 경우 1조 원 대부분이 소비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내수를 살리고자 하는 정부라면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를 철회하고, 서민들에 대한 복지지출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지지출을 낭비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복지지출이 늘면 서민들의 소비가 늘고, 서민들의 소비가 늘면 자영업자의 매출이 늘며, 자영업자의 매출이 늘면 그들의 소득 또한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형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의 지나친 확산을 막아야 한다. 대형마트와 SSM의 지나친 확산은 중소상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전체 수입과 소득을 큰 폭으로 줄여놓기 때문에 영세자영업자 과잉사태를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시킨다.
중소기업 중앙회에 따르면 2002년과 2008년 사이 재래시장 매출액은 41조5000억 원에서 25조9000억 원으로 15조6000억 원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 매출액은 17조4000억 원에서 30조7000억 원으로 13조3000억 원이나 늘었다. 무차별적인 대형마트 진출로 인해 재래시장의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계청은 대형마트 영향으로 재래시장 매출이 전국 평균 42.8% 감소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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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기업이 직영하는 유통점포에 대한 규제를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직영하는 점포와 영세상인들이 운영하는 점포 사이의 경쟁력 차이가 지나치게 큰 상태에서는 무차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영세자영업자 수가 과도하게 많은 이유는 이들의 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보건복지인력 비중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세자영업자의 경쟁력 기반 또한 선진국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선진국이 다 하는 대형 유통점 규제를 포기할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서민경제의 파탄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기업의 중소유통업 진출을 방조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체의 중소유통업 진출을 제한한 상태에서 재래시장 상인들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정부가 대·중소 유통업의 상생 발전을 위해서 △대기업체의 무분별한 중소유통업 진출을 제한하고 △주차시설 등 편의시설 확충, 양질의 경영노하우 교육, 양질의 경영 컨설팅 사업 확대 등을 통해 중소상인들의 경쟁력을 키우며 △이런 과정을 거쳐 중소상인들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때 가서 대기업체의 유통업 진출에 대한 규제를 점진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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