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정부의 반서민적인 감세에 분노하면서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던 것은 반대여론에 굴복하여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려 했던 강만수 전 장관의 독선이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겼다. 한 편에서는 소리만 요란한 친서민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다른 편에서는 또 하나의 반서민적인 폭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발된 반서민 폭거를 지켜보면서 뇌리에 떠오른 사람은 영국의 대처 전 총리다. 그는 부유층의 소득세 부담을 줄여 주고, 서민들의 부가가치세 부담을 높여 영국의 빈부격차를 심각한 수준으로 벌려 놓은 장본인이다. 강만수 전 장관은 평소 그의 이런 정책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복지수준,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감행된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감세,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터져나오는 정체불명의 증세론. 정부는 통일세 운운 이전에 대처가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해 영국의 빈부격차를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벌려 놓았는지부터 공부를 해 두는 게 좋을 듯 싶다.
국제연합(UN) 소속기관인 국제연합대학교(UNU)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처 집권기(1979~1990)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극도로 나빠졌다. 대처가 집권하기 바로 전 해인 1978년 영국의 지니계수는 0.234였다. 그러나 그가 물러난 1990년에는 0.335로 악화되었다. 무려 0.101이나 나빠진 것이다. 이 기간 소득분배 악화율(=지니계수 악화율)은 무려 43.1%에 달했다.
▲ ⓒ홍헌호 |
레이건 집권기(1981~1988)의 미국 지니계수 악화율과 비교해 보아도 대처 집권기 빈부격차 악화율은 유난히도 높다. 레이건 집권기 미국의 소득분배 악화율은 7.2%로 나타난다.
왜 그렇게도 대처 집권기에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을까. 그것은 대처가 누진세 감세와 함께 역진세 증세를 동시에 추진했기 때문이다. 대처는 누진세인 개인소득세 부담을 1/3 가량 줄이고, 역진세인 부가가치세 부담을 2배 이상 늘렸다. 부가가치세 세율은 8.0%에서 17.5%로 높아졌다.
▲ ⓒ홍헌호 |
대처의 반서민적인 조세정책은 영국의 세입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개인 소득세 비율은 11.5%에서 7.9%로 낮아졌다. 반면 부가가치세 비율은 3.1%에서 6.1%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심각한 계층간 소득양극화로 나타났다.
대처는 왜 그렇게도 개인소득세 부담을 낮추고 싶어 했을까. 그것은 당시 영국의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율이 OECD 평균인 9~10% 수준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과다한 감세였다는 비판을 별도로 한다면 대처는 그럴듯한 감세 명분은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반면 2008년 소득세를 대폭 감세한 강만수 전 장관은 애당초 이런 명분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율이 OECD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OECD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율은 4.1%로, OECD 평균 9.2%의 절반도 안된다.
▲ ⓒ홍헌호 |
우리나라에서 증세를 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어떤 세목의 부담을 늘려야 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소득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 OECD 평균과의 격차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GDP 대비 세액 비율과 OECD 평균을 비교해 보면 소득세에서는 2.2배, 소비세에서는 1.3배, 사회보장세에서는 1.6배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런 지표에는 관심도 없다.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감세가 가져올 재정손실을, 서민들의 세금인 부가가치세 등의 증세를 통해 보충하려는 생각에만 몰두해 있다.
물론 정부가 통일세 세원을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소득세, 법인세와 같은 누진세원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또 설령 그것이 누진세원으로 확보된다 하더라도 서민들에게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서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서민복지를 늘리고 지방재정 지원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세라는 생뚱맞은 세목이 등장하면 그것들을 확보할 길이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
그 동안 진보 진영에서는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누진세 감세를 철회하고, 그 재원이 서민복지와 지방재정으로 되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구를 묵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려 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 광화문에서 열린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통일세 도입을 주장했다. ⓒ뉴시스 |
통일비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연구소들은 1990년 이후 독일의 통일비용이 2조5700억 달러(3000조 원) 이상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통일비용도 이에 버금갈 것이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1989년 서독 경제규모의 2/3 수준이라는 점과, 북한의 경제수준이 1989년 동독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주장이 근거없는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도 북한이 급격하게 붕괴할 경우 통일비용이 2조1400억달러(2500조 원)에 달할 것이라 추정한 바 있다.
필자는 냉철하게 판단할 때 이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가며 흡수통일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이 중국처럼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내 빈곤층 복지수준을 OECD 최하 수준에 머물게 하는 정부가 북한 주민들까지 건사하겠고 나서는 것이 '과욕'으로 보인다. 또 그들이 원하지 않는 흡수통일 방식을 강요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라 볼 수 없다. 더구나 그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이 서민들의 부담을 우선적으로 늘리는 것이라면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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