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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만원짜리 대선…기권하려거든 '단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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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만원짜리 대선…기권하려거든 '단체'로!

[밥&돈·14] 개인의 기권행위에 대한 경제적 분석

2004년 4월 12일 총선을 사흘 앞두고 <조선일보>에 실렸던 파격적인 기사를 기억하는가?

당시 <조선일보>는 선거일(목요일)과 주말을 이용해 떠나는 휴가야말로 '황금휴가'라고 강조하면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권리"라는 20대 여성의 발언과 자신의 홈페이지에 '꼬옥 투표하세요'라고 썼던 여대생이 결국 투표 대신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한 마디로 '젊은이는 투표하지 말고 놀러 가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조선일보>는 그런 번거로운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기권족(族)'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 기권족은 20대, 30~40대는 물론 50대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우석훈 박사(경제학)에 따르면 총인구 중 35~40% 가량이 이런 기권족에 속한다.

우석훈 박사는 이번 <밥&돈> 칼럼에서 투표 대신 기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경제적 합리성'을 빌려 '차갑게' 설명한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 걸린 각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650만 원이다. 상당한 액수이지만 지지 후보가 없거나 지지 후보가 십중팔구 패배하리라고 보는 사람에게 이 돈은 그저 '매몰비용'일 뿐이다. 이 사람들은 대선게임에 참가하게 됐을 때 물어야 하는 추가비용(우 박사는 50만 원이라고 추정했다)을 내기 거부한다. 650만 원 '꼴아박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도 차갑다. '혼자서 조용히 기권을 하는 것'보다는 '단체로 기권의사를 표명하고 기권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롭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기권은 아무런 경제적 의미가 없지만, 우리 모두의 기권은 다음 정권의 정책기조와 국정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아직 투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편집자>

최근에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 국민들 중 약 50%가 광주 5. 18에 기원을 둔 민정당 시절부터 단 한 번도 한나라당 쪽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이 50% 중 5% 정도가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머지 45%의 국민들에게 이번 대선은 '투표 할 맛 안 나는 선거'일 가능성이 높다.

여당의 촉망받는 대중정치인, 베스트셀러를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는 유명 저자, 그리고 다음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몇몇 사람들이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이런 스타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학생들과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지도 모르는 청소년들까지도 이미 '투표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직접 들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나도 아직 이번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정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투표를 할지 안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은 650만 원짜리

예전에는 투표 안 한다고 하면 장나라 씨 같은 최고의 흥행스타를 모델로 내세워 "그럴 수는 없다"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 이번 대선에서는 그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서 투표율이 낮아진 근본 원인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폐해에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나는 동의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함께 진행됐던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특정 정당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지방의회 선거는, 그야말로 '토호 선거'와 마찬가지로, 막대기만 꽂으면 되는 하나마나 한 선거가 되었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월드컵 4년 주기와 지자체 선거 4년 주기가 딱 맞으니, 지방 선거 때마다 '흥행률 저조'라는 참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안게 된다.)
▲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 씨가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안 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경제적 합리성을 찾을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따지면, 이번 대선은 각 개인이 2000만 원(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인구수) 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총회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은 개별적으로는 약 2000만 원 정도의 경제적 이해가 걸린 문제인 것이다. (실제로는 투표권을 가진 인구수는 이보다 적으니 2,40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자.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이 각각 10%와 5%씩 변화하고 정부 대 민간의 실질적 영향력이 3:7이라고 가정하면, 이번 대선은 각 개인에게 연간 총 130만 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대통령 임기인 5년 간 누적되면 이자율 빼고 65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바로 이 650만 원이 개인들의 경제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긴다고 해서 늘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선거 결과는 개인들에게 이 정도의 재산효과(wealth effect)를 발생시키게 된다. 보통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선은 워낙 큰 결정이라서, 많은 경우 개인들은 650만 원의 평균적 변화보다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옵션들을 선택하게 된다. 고향을 1차 변수로, 일차적 지인과의 직접적 연고관계를 2차 변수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3차 변수로 해서 한국 유권자의 투표행위에 대한 행위함수를 설정한다면, 90% 이상의 설명이 나온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례인 것 같다. 언뜻 보면 별로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어쨌든 경제학은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므로 분석은 가능하다.)

650만 원 버린 걸로 모자라 50만 원을 '더' 버려?

자, 그렇다면 선거 거부의 심리는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없거나 혹은 그 후보가 패배할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대선에 따른 평균 변동폭 650만 원을 일단 포기하고, 그 다음에 추가적으로 발생할 비용을 계산하게 된다. 이 경우, 각 개인이 기대할 수 있는 650만 원은 이미 기(旣)투자분인 '매몰비용(sunken cost)'로 처리되는 셈이다.

가장 직접적인 선거 비용은 집에서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데 드는 '여행비용(travelling cost)'과 공휴일의 시간 일부를 포기함으로 발생하는 '여가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가비용의 계산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휴일 하루에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지는 가치 추정과 연동된다. 아직 이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추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휴일 하루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해 그 수치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가 생각하는 진짜 선거 비용은 이보다 다 직접적인 2개의 비용일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치르게 될 비용, 이를테면 밥을 한 번 사는 데 드는 비용이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지지하는 데 사용한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 같은 것이 첫 번째 종류의 비용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 회원들이 광주 시민들에게 친필로 편지를 썼을 때의 노동을 인건비로 환산한 금액이나 그들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독려했을 때 사용했을 개인적 비용이 바로 이런 예이다.

두 번째 종류의 비용은 주관적 비용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탈락했을 때의 상실감 등에 대한 비용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번째 비용이 오히려 더 중요할 것이다. '사표방지 심리'는 바로 이 두 번째 주관적 비용이 물리적, 객관적으로 발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10사람의 유권자 각각에게 1만5000원 상당의 삼겹살 200그램과 소주 2병을 샀다면, 그리고 나도 합석해 똑같이 먹었다면 각각 15만 원씩 총 30만 원의 비용 지출이 예상된다. 그 다음으로 지지 후보의 낙선으로 인한 상실감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1주일간 겪게 될 심리적 허탈감, 그리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정신상담 등에 들어가는 비용 등 -각 개인의 문화적 차이와 재산규모 등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평균 20만 원 정도의 비용 지출이 예상된다. (물론 정서적 상실감과 공허함의 경제적 가치는 이보다 훨씬 클 것 같지만, 이것을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가상가치법(CVM)처럼 여론조사를 통해 직접 유권자들에게 물어보고 이를 숫자로 환산하는 방법이 있기 하지만, 이런 추정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렇게 계산하면 대선 패배에 따른 개별적 비용지출은 평균 50만 원 정도이다.

종합해 보면, "선거에는 관심 없다" 혹은 "뭐 하러 선거장에는 가느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선거 후유증 비용 50만 원을 추가로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선거 패배로 650만 원의 매몰비용을 안게 됐는데, 그 이상의 추가지출이라도 줄이고 싶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투표거부 행위함수에 대한 경제적 비용편익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투표하는 나머지 15%는?

최근에 이번 대선의 실제 투표율은 60%를 기준점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를 기계적으로 환산하면, 한나라당에 단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80~85%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표를 하는 나머지 15%는? 5%가 민주노동당에, 나머지 10%가 지금의 범여권에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흥행에 완전히 실패한 민주통합신당의 국민경선 참여율과 왠지 맥이 빠져버린 듯 한 느낌을 주는 민주노동당의 최근 지지율은 이 같은 수치와 일치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기권하려거든 집단적으로 기권하라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 하나가 남는다. 한나라당에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던 국민 50% 가운데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80~85%의 기권 행위를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행위'로 전환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술적인 결론을 내 보면, '그냥' 혼자 기권하지 말고 '기권하겠다고 선언하고' 집단적으로 기권하는 것이다. 집단 기권은 최소한 집단적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에 향후 정책기조와 국정운용의 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대선에 따른 개별적 재산효과 650만 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의 삶에 지친 20대, 패배주의와 냉소주의만 남은 386, 그리고 강금실의 표현대로 "50대도 외로워요", 이런 사람들로부터 나온 기권표가 '투표 포기' 혹은 '투표 거부'라는 하나의 틀로 묶이면 틀림없이 경제성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혼자서 투표 안 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집단적으로 투표 안 하면 유의미한 일이 생기게 된다."

기왕에 투표를 안 할 것이라면 그냥 혼자 안 하지 말고 "우리 투표 거부하자"라고 외치며 안 하는 게 낫다는 말을,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래도 나는 이번에도 결국 투표를 할 것 같은데, 그 길이 고심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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