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전신은 국민승리21이다. 1997년 대선에서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 후보로 내기 위해 국민승리21이 만들어질 때 두 기둥은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었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전국연합은 1997년 대선 이후 주요 성원들이 여기저기로 이탈해 사실상 이름만 남은 상태다. 두 조직이 1997년 대선 이후 처한 상황은 대중조직과 전선체조직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민주노동당의 뿌리인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활동하는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노동자들이 있는 한 노동조합의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도 있게 된다. 하지만, 전선체조직은 다르다. 그때그때의 정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국연합의 공식 이름 앞에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 붙어 있었고,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지향한다고 여겨진 김대중 정부의 탄생과 더불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더군다나 김대중 정부를 계승해 참여정부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가 바로 이어 등장하면서 전국연합 다수는 여당 혹은 친정부 세력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전국연합 안에서 국민승리21을 지지하면서 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까지 이어진 세력은 소수였다.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중심에 놓았을 때 운동 진영의 우향우가 있었다면, 좌향좌도 있었다. '노동자의 힘', '사회당'을 비롯한 이른바 강경파들의 불참이 그것이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흐름에 '합법주의', '의회주의', '사민주의'의 딱지를 붙이면서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2007년 대선을 눈앞에 둔 지금 한국 사회 전체로 볼 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출현에 끝까지 함께 한 사회운동조직은 민주노총뿐이었다. 혹자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재정과 조직 동원에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발전에 기여한 바에 크게 못 미친다.
대기업 노동운동 없었다면 민주노동당도 없어
2004년 국회 입성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을 두고 남성-정규직-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이라는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남성-정규직-대기업 노동운동이 갖고 있던 자원과 동원력 그리고 투쟁력이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이 지금 누리는 성공은 감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2005년 말 민주노동당 부설 연구소가 "대기업노조를 한국 사회 위기의 10대 주범의 하나"로 지목한 것을 보면서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는 속담을 떠올린 게 필자만은 아니리라.
2006년 초 민주노동당 대표 경선에 나선 세 후보가 "당의 최대지지 기반인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당 대의원·중앙위원 안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노총의 비중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재정립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민주노총 내부에서 먼저 제기됐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2000년과 2004년 총선 사이가 그때다. 지금은 한국 정치사의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린 개혁당을 지지했던 일부 세력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이른바 '범좌파'를 지지했던 일부 세력 역시 똑같은 주장을 했었다.
민주노총 안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둘러싼 논란이 잦아든 때는 단병호 위원장 시절인 2002년 대선에 즈음해서였고, 확실하게 정리된 때는 2004년 1월 민주노총에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창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민주노동당의 조기 궤도 안착과 2004년 총선 성공의 숨은 공로자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국회의원 10명을 당선시키고 엄청난 국가보조금을 받으면서 민주노동당의 위세가 커지자 두 조직의 관계 재설정 문제를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이 제기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노조 간부와 민주노총 임원의 비리사건으로 당 지지율이 타격을 입었다는 판단이 직접적인 계기였으나, 민주노동당 내부 정파들의 이해관계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원 40%의 대표체'로 대접해줬나
2000년 창당 이후 2005년 초까지만 해도 민주노동당은 "전체 당원의 40%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설명을 당 정체성의 근거로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하지만, 국회 입성 이후 한 해도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에게 민주노총의 존재는 떼어내야 할 혹처럼 다뤄지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당이 노동조합(노총)을 만든 스웨덴 모델보다는 노동조합이 당을 만든 영국 모델에 가깝다. 영국 모델의 경우 노동조합이 당을 만들다 보니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엄청났고,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은 당이 급격히 '좌경화'하거나 '우경화' 하는 것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김을 약화시키길 원하는 그룹들이 생겨났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트로츠키주의 류의 좌경그룹이 대표적이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영국 일류대학인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변호사인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전문직 지식인 중심의 우경 그룹이 대표적이다.
특히 전문직 지식인 그룹은 노동조합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1993년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당헌규정으로 보장되던 노동조합의 블록투표제를 폐지해버렸다.
블록투표제는 전당대회의 안건에 대해 특정 노조 안에서 찬성 600표, 반대 400표가 나오더라도, 노조 위원장은 전당대회에서 노조원 전체의 표(즉 투표에 참가한 1,000표+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노조원)를 찬성표로 던지게 되는 제도를 말한다. 1993년 전당대회의 결정으로 전당대회에서 노동조합 내부의 찬반 투표수는 그대로 계산되고, 노동조합이 전당대회에서 차지하는 투표권을 당원의 규모와 관계없이 70%로 제한하게 되었다. 영국 노동당 당원에서 노조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도 영국 노동당은 노동조합의 정치헌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과 당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원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개인당원을 증가시키고 당비를 개인당원의 당비, 기업인과 독지가의 기부금 등으로 다양하게 조달하는 사업을 벌여 왔다.
그 결과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조합의 입김은 많이 빠졌고, 영국 노동당은 '대중적 계급정당'에서 '인민정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전문직 지식인이 주도하는 당 지도부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음은 물론이다.
노동당에 '노동'은 없었다
국제 회의에서 민주노동당을 방문한 경험을 가진 외국인 노조간부를 만났다. 그에게 민주노동당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대뜸 "노동당 맞느냐"고 되물었다. 민주노동당 정책담당자가 하는 이야기에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는 없고 농민,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 이야기뿐이더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이야기는 없더냐고 물으니, "비정규직 철폐" 주장만 늘어 놓더라면서 "머리로는 이해되는 구호지만, 정작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일지는 의문이 남더라"고 말했다. "노동당 간부들 가운데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와서 또한번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사실 민주노동당 안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노동'도 크게 부족하지만, 제대로 된 전문가 역시 크게 부족하다. 교수나 박사, 변호사, 회계사 자격증을 가졌다고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한국의 정치 환경은 물론 자신의 역량과 조건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독일 녹색당 창당 시 실험된 '당직·공직 겸임 전면 금지'와 '당의 의원 통제' 기조를 기계적으로 도입했다가 큰 코를 다친 바 있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직 운영 원리의 ABC를 무시한 제도 자체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당의 조건과 사회의 변화를 고려할 때 '내용'이 받쳐 주지 않는데도 외국 사례를 교조적 관념적으로 받아들여 '형식'만을 고집하는 행태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의원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의원을 '자유방임'하는 우스운 결과를 낳았다.
당 안팎의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지도부에 세울 고민은 하지 않고, 당내 정파 구도를 그대로 지도부 구조에 반영시킨 최고위원회 제도도 마찬가지였다. 당내의 정파가 경쟁에 질 경우 승복하는 조직 문화가 취약하고 선거제도가 승자 독식 원칙인데도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관념적인 구도' 속에서 제도를 만들다 보니 어느 누구를 갖다 놓아도 구조적으로 '최저'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역시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집행위원회를 흉내 낸 것이다.
조직 관리의 기초를 무시한 '보좌진 풀(pool)제'도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 힘들다. 귤이 회수를 건너자 그만 탱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혹자는 '자주파'가 어떻고, '평등파'가 어떻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도부와 실무자 모두 경험과 역량이 부족하고 당조직 일선기관과 활동가들의 상태가 민주노동당이 대변하려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유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정파의 차이는 종이의 앞뒤 면이다.
국가보안법이 이슈가 됐든, 비정규직이 이슈가 됐든, 부유세가 이슈가 됐든지 간에 엄동설한에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하는 '철야농성' 방식의 저급한 정치 행태가 계속되는 한, 지도부를 '자주파'가 장악하든 '평등파'가 장악하든 상관 없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게 분명하다.
정당은 정파조직일지 모르나,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다. 만약 정당이 노동자들에 기반을 둔 계급적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 노동조합은 그 당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여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기업노조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사업장이 많은 한국노총보다 민주노총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앞에서 이미 썼지만 민주노동당이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기업노조가 가진 풍부한 자원과 인력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노총에 소속된 산별조직이나 대기업노조는, 사회경험이 부족한 20대나 30대가 다수인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이 갖고 있지 못한 인적 풀(pool)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한 직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로, 또 가정을 가진 보통의 가장으로, 대중의 바다에서 대중과 더불어 살아 왔다.
'고립'과 '평균'의 정당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민주노총에 거리를 두는 대신 민주노동당은 비정규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혹자는 '비정규센터'를 주장하기도 하고, 어느 지구당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의 노조 결성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찬란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주노총조차 제대로 끌어안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을 민주노동당이 끌어안을 수 있을른지는 의문이다. 솔직히 말해 활동가들의 수준ㆍ경험ㆍ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운동의 성과조차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재 실력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다.
지금 조건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이 아닌 '노동당'을 지향한다면, 당이 노동조합의 의견을 더 많이 묻고 들어야 할 것이고, 노동조합을 잘 알고 관련 경험을 많이 가진 이들이 당에서 많이 일해야 할 것이다. 2006년 초 당대표 경선에서 주대환 후보는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어머니"라고 말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옳은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자주'와 '평등'은 아름다운 가치다. 그 '자주'와 '평등'을 '고립'과 '평균'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치러야 할 비용은 아직 많은 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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