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나라당은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의 '민심반영율'을 둘러싸고 이전투구의 희극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수구정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지금 이런 희극의 대상이 될 상황에 처해 있다. 그것은 민주노총이 지난 3월11일 민주노동당 정기 당대회에서 부결, 폐기된 '개방형 경선제'를 다시 관철시키기 위해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의 소집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세 대선후보들에게 그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행보는 정당한 것인가. 한국의 진보정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당의 논의 및 의결구조를 통해 결정된 사항을 부정하는 반민주적 행태다. 자신들이 추진한 사안이 채택되지 않았다고 최대지분을 지닌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세 명의 대선후보에게까지 '압력'을 행사, 그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공적인 조직'이 취할 정도(正道)가 아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그 동안 민주노총이 공적인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해 왔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양식 있는 사람들의 회의가 가시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진보정당의 존재 의미를 상징하는 진성당원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는 진성당원제에 따라 당원이 선출하면 된다. 보수, 수구정당은 자본과 권력을 정치적으로 대변하기에 선거 때가 되면 그들의 빈곤한 대표성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경선제'를 실시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경우는 자본과 권력에 억압받는 대중들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만큼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당과 대중들 사이에 간격이 존재한다면, 제반 정치적 실천과 정책을 통해 그 간격을 좁혀나가는 게 정도이고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부단한 자기혁신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진보진영 안에서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 확대를 진정 걱정한다면, 동어반복의 이유를 들이대며 세몰이를 통해 개방형 경선제를 소생시키려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편으로 민주노총 소속 당원들이 더 효과적으로 당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다른 한편으론 민주노동당에 대한 진보운동 세력들의 광범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도록 당의 정치사업 활성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셋째, 향후 민주노동당의 '과두제'를 심화시키는 지름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성당원제야말로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데, 그나마 빈사 상태에 있는 이 기제를 무력화시키면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은 누구의 참여와 통제 아래 놓이게 되는가. '배타적 지지'를 외친 민주노총이, 아니면 대선후보들이 그것을 책임질 것인가. 민주노동당의 급속한 엘리트화, 과두제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당원 참여의 빈곤 내지 부재의 진보정당은 이미 진보정당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돈과 권력을 지닌 보수 혹은 수구정당과 달리 진보정당은 당원을 매개로 한 대중의 지지획득 활동이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는 점임을 감안할 때, 대선 이후 총선에서의 의미 있는 성과가 요원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총은 개방형 경선제의 소생에 역량을 집중해 그나마 희소한 물적, 인적 자원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지금 민주노동당에게 절실한 당원교육의 실질화를 위해 중앙, 지역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 더 기여하는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민주노총의 이러한 시도는 결국 민주노동당을 보수정당의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시켜 한국 정당민주주의를 '엘리트민주주의'의 그늘로 다시 회귀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을 보수, 수구정당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리 없이 저변에서 고투하고 있는 한국사회당 등 진보정치 세력의 노력마저 함께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책임한 행위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기에 이러한 결과는 민주노총과 무관한 일이라고 말한다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민주노총이 정말로 시급히 해야 할 일들
필자가 보기에 더욱 큰 문제는 민주노총 자체에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금 전국현장투어를 하면서 대중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현장정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온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 내용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하나가 재벌에게 대화를 요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에서 폐기된 개방형 경선제를 다시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진정 현장 밑바닥의 요구이고 희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노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가 조직노동자들의 '조합주의적 이해'를 대변하는 것에 있다면 더 이상 이러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노동현장에서 들려오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의 적자(嫡子)'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전국현장투어를 하고 있다면, 가장 고통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노동운동에 관심이 없는 문외한조차 인정하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재생산되는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들을 해소, 극복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이 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생산의 정치', '현장의 정치' 아닌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개정노동법이 통과된 이후 민주노총의 행보에서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대중적 힘으로 전화, 관철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필자의 과문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노사관계로드맵'의 국회통과 이후 '노동관계법의 전면적 재개정 투쟁'을 선언했던 민주노총이 이를 위해 어떤 의미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최근 노동자들 사이에 '민주노총은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 노동위원회만도 못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탄식이 있다는 것을 민주노총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개방형 경선제가 부결된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을 흠집 내기 위한 '몇몇 부류의 불순한 비판' 정도로 본다면 '민주'노총의 장래는 더 불투명해질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재벌들, 특히 삼성에 대고 대화하자고 요구하고 '특사'를 파견할 의향을 내비치는 것이 아니라,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부결된 개방형 경선제를 소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지구화 속에서 과연 민주노총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가장 고통 받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에게 좀 더 다가가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지를 숙고하고 실천하는 것에 있다.
정치를 정치인에게, 정당에게 맡기라는 말이 아니다. 이처럼 자신들이 해도 해도 모자랄 '현장의 정치'를 방기하면서 민주노동당 내 최대지분을 지렛대 삼아 다시 개방형 경선제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이 과연 공적인 역할을, 운동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진정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그렇게 내세우고 싶으면, 그에 걸맞게 '배타적 지지'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의 대중적 신뢰와 정치력을 제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그것이 민주노동당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을 각성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 민주노총이 지금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정치 내지 '정치적인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수반되지 않는 '배타적 지지' 운운은 그나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양식 있는 대중들을 그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나아가 지금 진행되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현장투어도 그 시간과 정력에 관계없이 한갓 보수정치 엘리트들을 흉내 내는 '이미지정치'의 아류쯤으로 인식될 것이다.
민노당, 배타적 지지의 표에 끌려다닐 텐가
민주노동당 지도부, 대선후보들 또한 각성해야 한다. 지금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또한 그 어떤 대선후보도 당과 대중조직의 관계, 당의 정치와 대중조직의 정치의 변증에 관해 민주노총에 조언하거나 논쟁을 벌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 시대의 징표를 읽어 대선에 출마한다는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대선 후보의 '희망의 정치'인가. 이러한 민주노총의 시도에 대해 당이 재논의하면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니 민주노동당에는 정기당대회보다 상위의 그 어떤 결정권자가 따로 존재하는가. 이것이야말로 당원과 당에 우호적인 대중들, 지지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당과 대중적 노조운동의 관계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정치세력을 배제하고 민주노조운동을 인정했던 87년 체제'의 반영물로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맺고 있는 현재의 이 '기형적인 공조관계'는 재설정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지금 민주노총이 해야 할 당면사안을 지적하지 않고 그들의 '배타적 지지', 그들의 표에 눌려 끌려 다닌다면,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위상 또한 조기에 마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은 그런 식의 '배타적 지지'라면, 의미 없음을 선언할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단지 의석 수 몇 개가 아니라 진정 100년을 기약하는 수권정당, 대안정당으로의 발전을 원한다면 말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민주노총이 이런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차라리 민주노총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그들이 '독자적인 민중후보'를 내어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또한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긴 호흡에서 보면 오히려 그것이 헤게모니 빈곤의 조합주의적 노동운동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 속에서 진보와 민주주의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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