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민주주의의 역사, 좌파 정치의 역사, 그리고 자주적 노동운동의 역사 모두 이제 스무 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한 마디로 표류하는 상황이다.
오랜 어용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 온 한국노총은 지난 총선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 시도에서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올해 대선에서도 사실 확실한 지지정당을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 총투표로 지지정당을 결정한다는, '대단히 민주적'으로 보이는 선택은 노총 리더십의 취약성과 제도정치와의 취약한 관계를 반영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과의 관계는 마치 샴쌍둥이에 가까운 모습이긴 하지만 과연 둘이 한 몸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요 몇 년 새 두 머리는 상대방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형국처럼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정당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주도하는 대공장 노조들의 도덕성 실추와 더딘 자기 혁신에 발목 잡힐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독일 사민당-노동조합의 균열
한국의 상황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그간 마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처럼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어 온 독일의 샴쌍둥이, 사회민주당(SPD)과 노동조합(DGB)은 최근 점점 심하게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은 과거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 때 "더 나은 독일 의회를 위하여" 대정부 투쟁을 벌였고, 그 이후 SPD 출신 총리였던 슈미트, 브란트, 슈뢰더 정부 하에서는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하여 분투하는 그대의 목소리"임을 자처하며 SPD 정부를 지지했다. 반대로 SPD는 노사관계상의 민감한 사안들, 예컨대 해고규제, 공동결정 혹은 공장폐쇄 등 제도적인 기제의 도입이나 관련법률 개정이 의회 내에서 의제가 될 때마다 충실하게 노동조합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SPD와 노동조합 사이의 관계는 2004년 슈뢰더가 이른바 '아젠다2010', '하르츠 Ⅳ' 등 노조의 반대를 무릅쓴 노동시장 개혁을 강행하면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2005년 말 대연정 정부로 바뀐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아니 오리혀 그간 점점 더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PD는 CDU와의 대연정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에도 계속해서 슈뢰더 시절에 고안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을 계속해 왔다. 현 정부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최저임금제'의 도입 내용이나 '연금67'과 같은 정년연장 정책의 도입 등과 관련하여 SPD는 CDU와의 팔짱을 풀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충실히 받아들이지 않은 내용으로 구성한 정책 기조를 그래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올해 들어 벡과 같은 다소 좌파적인 SPD 인물이 당 지도부를 이끌며, CDU와 메르켈 총리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나, 노조의 마음을 돌릴 정도의 획기적인 '좌회전'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그 사이에 SPD를 이탈한 좌파 세력이 만든 선거대안(WASG)과 동독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민사당(PDS)이 연합하여 만든 '좌파정당(Linkspartei, 약칭 Linke)'은 더 왼편에서 대연정과 SPD의 우경화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하며 대중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해 왔다. 그러자 노동조합은 자신의 정치적 연대의 대상으로 점점 Linke에 기우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SPD에 대한 독일 노동조합의 거리두기 징후는 무엇보다 이번 노동절을 맞이하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일의 주요 언론은 이번 노동절의 표정 가운데 인상적인 것으로 독일 곳곳에서 열린 노조의 집회에 과거와 달리 SPD의 정객들이 초청되지 않고 Linke의 정객들로 채워진 사실을 독일 노총(DGB) 의장인 좀머의 불만 가득한 얼굴과 함께 보도했다.
바이에른 주의 소도시 파이팅의 주정부 의원이자 SPD 소속 저명한 정치가인 프로놀트는 슈뢰더의 개혁 정치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바이에른의 DGB는 그가 최근 국회에서 '연금 67'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이번 노동절 행사에 그를 초청하지 않았다. 프로놀트는 이에 대해 "DGB의 개별 노조원들 가운데 Linke를 지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것이 SPD와의 관계 단절을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삐걱거리는 대연정…사민당에 대한 노조 지지 하락도 원인
현재 SPD를 대표하는 지도자인 노동사회부 장관 뮌터페링과 당수 벡의 경우 이번에 DGB 집회의 초청을 받긴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위해 마련된 발언장은 DGB의 중앙본부가 집회를 개최한 겔젠키르헨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지방의 작은 도시들의 집회에 초청을 받았을 뿐이며, 중앙 집회에는 SPD 출신의 지역시장에게 예의상 발언이 배정되는 정도에 그쳤다.
서북부 지역의 소도시 오스나브뤼크의 '노동조합의 집(Gewerkschaftshaus)'에서는 최근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여기선 과거 아우구스트 베벨 등 SPD 지도자의 모습을 노동조합의 초기 역사의 한 장면으로 당당히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회의 공간이 현대의 이야기로 옮아오면서, 특히 슈뢰더 정부 시대에 이르자 전시를 주최한 노동조합은 슈뢰더의 SPD를 자신의 역사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그 시기를 정부와의 "갈등의 시대"로 명명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또 오스나브뤼크의 DGB 지부는 최근 벌인 아동빈곤 근절을 위한 캠페인에서 SPD가 아니라 Linke와 함께 공동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230만의 대규모 노조원을 보유하고 있는 서비스 노조 베르디(Ver.di)가 노조원의 노동시장에서의 상황과 정치적 지향의 관계를 분석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에 종사하는 노조원들의 12%가 SPD 당원이고 3%가 Linke의 당원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취약고용형태에 종사하는 노조원들 가운데 SPD 당원은 5%였던 반면 Linke의 당원은 무려 23%였다.
이러한 모습은 SPD가 점차 증대하는 독일의 취약계층의 이해 대변을 Linke에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감소 추세인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독일 노동조합으로서는 취약노동계층들이 SPD에서 마음을 돌리고 있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노조는 SPD가 지금의 대연정에 참여하는 한 '좌파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분간 노조와 CDU 사이에서 SPD의 단호하지 못한 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그러는 가운데 지난 1세기 이상 쌓아 온 노조와 SPD 간의 신의의 훼손 역시 좀처럼 회복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다고 양자관계의 파탄까지 예견하는 건 시기상조로 보인다. 노조가 Linke를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로 확정한 것도 아니다. 다만 노조는 SPD에 대한 압력의 수단으로 Linke를 계속 활용할 것이며 그러한 가운데 Linke는 자신의 성장에 유리한 정치적 기회구조를 계속해서 누릴 수도 있다.
SPD가 계속해서 좌파정치의 내용적 복원을 이루지 못 할 경우 양자관계는 더욱 심하게 훼손될 수도 있겠으나 이미 SPD 내에서는 빨간불이 켜진 듯하다. 최근 법인세 인하문제, 상속세 부과와 관련한 개혁문제 등으로 대연정의 두 주체인 SPD와 CDU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며 대연정이 삐걱거리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단적으로 SPD가 대중적 기반을 회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보다 좌파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계속 될 것인가?
우리의 경우 1980년대 말에 간신히 띄운 민주화의 나룻배가 1990년대에 세계화의 태풍을 만나 표류하면서 그 가운데에서 노동운동이 소외되고, 사회적 대화가 실종되며, 노동기본권의 개념과 범주의 정의와 재정의가 다시 계급투쟁의 의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민주화의 나룻배를 항공모함으로 키워나가는 데 노동운동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함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으로서는 자기혁신과 대중적 기반의 확대, 나아가 정치력의 성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이미 운동정치만이 아니라 제도정치의 장을 충실히 활용해야 하는 지혜를 요구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20년 민주주의 실험이 진전되고 있음에도 분열된 노동운동을 아우를 수 있는 정체성을 갖는 정치세력이 제도정치 내에 발을 딛고 있지 못한 상황의 지속은 지켜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이제 이른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더 이상 국가와 자본의 음모나 불성실의 문제로만 환원하기엔 한국 노동운동의 연륜과 지혜, 그리고 자원은 이미 젊은 성인(成人)의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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